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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빌립보서 2장19~30절
제목 :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바울이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한(22절) 디모데를 천거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한(30절) 에바브로디도를 존귀히 영접하라고 부탁합니다.
1. 디모데를 천거하다(19~24절)
1) 디모데를 보내기 원함(19절)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를 희망합니다.
디모데를 보내려는 목적은 '안위를 받기 위함'입니다.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히나 카고 유프쉬코'에서 '카고'('나도 또한')는 '에고'('나')와 강조형 용법의 '카이'('또한')가 합성된 것으로 결국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려 한 목적이 두 가지였음을 나타냅니다.
그 두 가지 목적은
(1) 빌립보 교인에게 바울의 근황(近況)을 전하여서 빌립보 교인들을 위로하며,
(2) 디모데가 바울에게 돌아왔을 때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소식을 들어서 바울 자신이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2) 디모데를 선택해 보내는 이유(20~22절)
(1)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 이기 때문이다(20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
'뜻을 같이 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소프쉬콘'은 '이소스'('동등한')와 '프쉬케'('혼')의 합성어입니다.
'이소프쉬콘'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⓵ 시 55:13의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를 칠십인역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다.
그 뜻은 '친밀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다'를 의미합니다.
(2) 문자적인 해석으로 '같은 심령을 가지다'를 의미한다.
본절의 '이소프쉬콘'은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합니다.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면 바울 주위에 디모데를 제외하면 친밀하게 돌보는 자가 없음을 뜻하고 후자의 의미로 해석하면 바울의 생각과 뜻을 같이 하는 자는 디모데뿐임을 의미합니다.
한편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은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빌립보 교회를 잘 목양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2)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기 때문입니다(21~22절)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 본절에서 바울이 책망하고 있는 '자기 일을 구하는 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사람을 파견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주변사람들에게 언급하였으나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적인 문제와 유익만을 추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위해서 희생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파견키로 한 후 빌립보 교인들에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디모데를 천거합니다.
⓵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 디모데는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시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으며(행 16:3),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시 에베소의 소동으로 바울이 휘말려 있을 때 바울을 대신하여 빌립보 지역을 순회(巡廻)하며 심방하였고(행 19:22)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시 핍박을 피해온 바울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복음 전도에 동참하였습니다(행20:4).
빌립보 교인들은 이러한 디모데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⓶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 디모데는 주 안에서 바울의 신실한 아들이었습니다(고전4:17;딤전 1:2;딤후 1:2).
이것은 바울과 디모데 사이가 매우 친밀한 관계임을 시사합니다.
⓷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 디모데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부터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며 복음 선포를 하였습니다.
(3) 바울의 빌립보 방문에 대한 확신(23~24절)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는 바울이 곧 재판을 받게 되리라고 예측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바울은 재판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안 후에 디모데를 빌립보에 보내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해석에 대해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을 그토록 사랑하는 바울이 자기의 신상문제로 인해 교회의 화급한 문제를 제쳐두고 디모데 파송을 연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반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연기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이 언급되지 않기에 우리가 알 수는 없으나 재판의 문제 때문에 연기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타당하지 못합니다.
비록 판결의 내용이 지극히 불확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울이나 빌립보 교인 모두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며, '보아서'의 헬라어 '아피도'가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 한 사실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바울의 관심이 재판 결과에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재판 결과를 알리기 위해 디모데를 잠시 지체(遲滯)시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입니다.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바울이 어떻게 풀려날 것을 확신했는지 분명치 않으나 그는 석방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1:25).
석방에 대한 그의 확신은 '주안에서'이루어졌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것은 바울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주의 계획과 바램에 따라 결정됨을 시사합니다(고전 4:19).
본문은 바울 자신의 미래 문제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 달려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 철저히 의존하고 순종하는 삶 속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2. 에바브로디도를 부탁하다(25~30절)
1)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려 함(25절)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 '에바브로디도'의 축약형은 '에바브라'입니다.
이 사람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 언급된 '에바브라'와는 다른 인물로(골 1:7;4:12;몬 1:23), 골로새서에서 언급된 '에바브라'는 골로새 출신이고 본절의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출신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본서를 빌립보 교회에 전달한 자로서 바울은 이를 다섯 가지 칭호로 부르고 있습니다.
(1) 나의 형제요. -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신앙을 공유하며 하나님 가족의 일원으로서 깊은 애정을 나누는 자입니다.
(2) 함께 수고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쉬네르곤'으로서 '동역자'를 의미합니다.
'동역자'는 복음증거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에바브로디도가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를 세운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3) 함께 군사 된 자요. - 이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대적 자들과 계속해서 싸우는 일꾼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가 계속해서 고난당하였음을 암시합니다(몬 1:2).
(4) 너희 사자로. - '사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론'은 문자적으로 '사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에바브로디도'가 '보냄을 받은 자'임을 시사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권위'를 부여받고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5)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 '돕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이투르곤'은 문자적으로 '봉사자'란 의미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필요를 도와주기 위해서 보낸 자입니다.
2)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이유(26~27절)
(1)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고 하는 두 가지 이유(26절).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
⓵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 '간절히 사모하고'의 헬라어 '에피포돈'은 강렬한 열망을 의미합니다.
'에피포톤'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과(1:8) 갓난아이가 젖을 간절히 원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벧전2:2).
이것은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간절히 사랑하고 보고 싶어 했는지를 암시합니다.
바울은 이런 에바브로디도의 열망 때문에 빌립보 교회로 보내려고 하였습니다.
⓶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 '심히 근심한지라'의 헬라어 '아데모논'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겪는 심한 고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의 건강 문제로 빌립보 교회가 염려함을 듣고 자신의 건강 문제 보다는 교회에 대해 더 크게 염려함을 시사합니다.
한편 에바브로디도가 걸린 병에 대해서 혹자는 향수병과 과로라고 추측합니다. 또한 혹자는 바울의 시중에 따른 과로는 인정하나 향수병은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문맥상 바울의 석방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에바브로디도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면서 향수병에 빠진다는 것은 타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단순히 추측에 불과하며 분명히 알 수는 없습니다.
(2)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27절)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세가 심각하여서 거의 죽게 될 뻔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진술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세가 심각했고 치유 과정이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병세나 치유 과정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바울의 관심이 병의 원인이나 치료 과정 보다는 병을 낫게 하신 하나님의 간섭 즉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다'는 것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 자신에게도 미쳤다고 진술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주의 사역에 헌신한 종들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에바브로디도의 치유로 말미암아 깊이 깨달았음을 의미합니다.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 에바브로디도의 회복은 단순히 하나님의 일꾼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확신 이상을 바울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세 악화가 빌립보 교인들을 엄청난 좌절과 실의에 빠지게 될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바울의 근심은 단순히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에바브로디도의 병세 악화나 사망이 초래할 빌립보 교인들의 충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에바브로디도의 회복은 바울이 안고 있던 이중(二重)의 근심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3)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려함(28절)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 '보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펨프사'는 서간체 부정과거로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의 편지와 함께 이미 떠났음을 보여줍니다.
한편 '더욱 급히'의 헬라어 '스푸다이오테로스'는 '보다 급하게'를 의미하는 비교급으로 중병에서 회복된 지 얼마되지도 않은 에바브로디도를 급하게 보냈음을 시사합니다.
바울이 급하게 에바브로디도를 보낸 이유는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빨리 만나봄으로 근심과 좌절에서 벗어나서 다시 활기를 찾고 바울 자신도 근심을 덜기 위함입니다.
4) 독자를 향한 당부(29~30절)
(1)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존귀히 여기라(29절)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
여기서 '주 안에서'(엔 퀴리오)가 무엇을 수식하느냐에 따라 본절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⓵ 만약 동사 '영접하고'를 수식한다면 본절 '주께서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시듯이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라'는 권면이 된다(롬 15:7).
⓶ 만약 '모든 기쁨'을 수식한다면 본절 '주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고 있는 특성 중의 하나인 순수한 기쁨으로 영접하라'는 권면이 된다(롬 16:2). 비록 강조하는 바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전체 문맥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주 안에서 한 형제 된 동료 그리스도인을 기쁜 마음으로 존귀히 여기며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에바브로디도를 존귀히 여겨야 하는 이유(30절)
“[30]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고 존귀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 갇힌 바울을 돕기 위해 처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될 지경에 이르기까지 헌신하였습니다. '돌아보지 아니한'의 헬라어 '파라볼류사메노스'는 본래 '도박사가 돈을 따기 위해 모험'을 하거나 '탐험가가 값진 것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거는 위험'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의 조력자로 봉사하는 일이 이처럼 헌신적이었음을 빌립보 교회에게 전해주면서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고 존귀히 대하라고 권면합니다.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 '일'의 헬라어는 '레이투르 기아스'(봉사)로서 복음전파 사역을 의미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과 함께 동참해서 복음 선포 사역을 감당해야 했으나, 할 수 없음으로 대신 에바브로디도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고 존귀히 여겨야만 했습니다.
묵상 Point
1) 사랑에 매인 사도 바울
감옥 안의 바울은 자신의 사정과 안위보다 빌립보 교회의 근황과 안부에 큰 관심을 갖고 심려했다.
몸은 사슬에 매여 있지만 마음은 성도들을 향한 사랑에 매여 있다.
누구보다 빌립보 성도들을 진실히 생각하는 디모데를 파송하였고, 그들을 애타게 걱정하는 에바브로디도를 속히 환송하려 했다.
그들은 진정 마음을 같이 하여 자기 유익이나 일보다 공동체의 유익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며(2:2~4) 주의 일에 힘썼던 ‘복음에 합당한 삶의 참 모범’이었다.
2) 희생적인 사람, 디모데
다툼과 허영으로 자기 일만 생각하던 이들(2:3)과 달리, 디모데는 자기 희생적 사랑과 겸손으로 복음과 교회를 위해 기꺼이 수고햐였다.
많은 연단을 통해, 또 바울과 동행하고 동역하며 그를 닮아갔고, 누구보다 그의 심정을 잘 헤아리는, 깊은 애정으로 성도들을 돌보는 사역자로 신임을 받았다.
누군가 나를 생각할 때마다 다른 지체들을 세우려고 늘 rlehg며 많이 수고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것 같은가?
3) 헌신적인 영적 군사, 에바브로디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주의 일을 위해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헌신한 형제요, 함께 치열한 영적 전투를 치러낸 군사요, 없어서는 안 될 동역자로 소개한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바울을 섬겼고, 중한 병으로 고통당할 때도 이를 알고 걱정할 빌빕보 교회를 더 염려했던 그의 마음을 전해준다.
그래서 자신을 대하듯 그를 영접하고 존귀하게 여겨달라고 부탁한다.
주님과 복음, 교회와 동역자를 향한 에바브로디도의 사랑과 헌신은 우리의 모범이다.
4) 자기 일꾼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신다.
투옥 중인 바울을 섬기던 에바브로디도의 중한 병을 고쳐주셨고, 이를 통해 바울의 중한 근심도 덜어주셨다.
주의 길을 걷고 주를 위해 살다가 겪는 많은 고초들이 있지만 그런 수고와 헌신을 아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책임져주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시니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말고 더욱 매진하고 정진하자.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9-24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간절히 사랑합니다. 이런 간절한 사랑 때문에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안위보다 그들의 상황을 염려하며 한시도 잊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들의 삶이 믿음의 제사가 된다면, 자기 피를 제물 삼아도 좋다고 말합니다(참조. 17절).
상투적인 빈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고백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이들이 복음 안에서 누려야 할 진실한 사귐의 모습입니다.
19-22절 디모데는 바울에게 복음을 위한 동역자요, 믿음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바울만큼이나 빌립보 성도를 향한 간절한 사랑이 있었고, 흠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섬기는 일에는 그리스도와 바울을 닮았습니다.
그는 자기 일만 구하는(21절) 이들과 달리 하나님이 쓰시기에 유용한 그릇이었고, 함께 동역하는 바울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내 일만 챙기느라 소홀했던 공동체의 일,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무엇입니까?
25-28절 사랑은 근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 빌립보 교회의 안부를 듣고 싶었지만, 그보다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이 편지도 그의 손에 들려보냈을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돕도록 파송한 사역자인데, 바울과 함께 동역하다가 심한 병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병은 나았지만, 빌립보 성도들은 완치 소식을 듣지 못해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도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의 완치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을 근심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근심을 속히 덜어주기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보냅니다.
아무 근심 없이 무사태평하게 사는 삶이 은혜일 수도 있지만, 사랑 없이 살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걱정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사랑이 낳은 근심인지 욕심이 낳은 근심인지 돌아봅시다.
29,30절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셨고, 바울과 디모데가 따랐던 삶입니다.
부유한 자나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이처럼 남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공동체가 존귀히 여길 사람입니다.
[기도]
공동체-복음을 위해 제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한 이들처럼 충성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열방-전 세계적으로 사립 교육기관이 증가하고 있는데 개발도상국에서 더욱 그렇다.
교육선교를 통한 복음 전파 사역이 개발되고 실행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