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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골로새서2장6~15절
제목 :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
바울은 라오디게아 있는 자들과 골로새교인들이 바울의 권고를 듣고,
바울의 마음을 얼마나 알아줄지 염려하며,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기를 바랬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미스테리입니다. 비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밀입니다.
여러분 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가장 위대한 구원의 비밀, 능력의 비밀, 치유의 비밀,
지혜의 비밀, 모든 보화의 비밀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자신의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영광스런 존재인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은 놀라운 사실이 무언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구원과 그 영광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인이란
술 안먹고, 담배 안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지는 안않습니까?
단지 일요일에 예배당에 가는 사람,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선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바울 사도는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엄청난 영광을 말합니다.
놀랄만한 엄청난 영광의 일은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6~7절)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 예수”는 어떤 분이십니까?
6절 “그러므로”는 앞 1~5절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로만 알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그리스도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뿐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1)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차지하신 메시야입니다.
*마28:18절“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다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요3:35~36절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십니다.
*롬14:9절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롬10: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주로 받았으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려면,]
첫째,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합니다.(7절)
마13장, 막4장, 눅8장에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씨가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집니다.
길 가에 떨어매 새들이 와거 먹어버렸고,
돌 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좋은 땅에 떨어지매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았으므로,
생수(영생)를 섭취하게 됩니다.
*시1: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요4:14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리스도안에 뿌리를 박을 때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과실을 많이 맺고 또한 시험과 환난을 선히 견딥니다.
*요 15: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6:33절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려면 그리스도 안에 세움을 받으라고 합니다.
“세움을 입어”는 직역하면 “지음을 입어”"(being built)입니다.
이 말은 계속적으로 건축되어감을 가리킵니다.
신앙 인격의 건설을 그리스도인이 일생 동안 계속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집은 신령한 집으로 지어야 합니다.
벧전2:5절“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하였습니다.
벧전2:6절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건물을 그리스도 안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세워지지 않은 집은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려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 합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란 말은, 골로새신자들에게 에바브라에게서 받은 교리를 신앙으로 굳게 지켜라는 부탁입니다.
*골1:7절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에바브라에게 배운 교리입니다.
그것은 “진리의 복음”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란 말은 "믿음으로 굳게 서서"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이단의 유혹에 감염(感染)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굳게 지키는 방법은 오직 신앙입니다.
그 이유는, 신앙은 영적전쟁에 있어서 방패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엡 6:16절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려면,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고 하십니다.
신자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께 감사함을 내포해야 합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특성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엄청난 영광의 일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완전 충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완전하고 충족하여 아무 것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충족하신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신성이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8~10절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바울 당시의 이단자들은 인간의 철학으로 더럽혀진 거짓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을 영지주의자라 부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시고 충족한 신성을 부인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예수께서 세례 받을 때 신성이 임하였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떠났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천사 중의 한 분일 뿐,
완전한 신성을 가진 분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다른 천사들을 소개하고,
그 천사들의 힘을 덧입음으로서 완전하고 충만해 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지주의적 사상은 오늘날 천주교 안에도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완전하고 충족한 의와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선행을 통해 믿음이 완전해지고 충만해 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완전하고 충만한 의와 구원을 위해,
많은 성자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그들의 처사는 분명 영지주의 사상과 상통합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의를 얻고 구원을 얻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를 얻는다는
성경의 교리를 정죄합니다.
천주교는 도리어 믿음만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믿음에 많은 선행을 곁들여야 완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그들 속에 있는 영지주의적 요소입니다.
그들에겐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부족하기에 마리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러 성자들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고 새로운 계시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천주교가 그릇 행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믿는 믿음만으로,
우리는 완전하고 충만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미 성경엔 인류가 믿어야 할 것과, 그리고 인류가 살아야 할 길과,
그리고 인류의 종말과 심판에 대해 분명히 밝혀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의 미래는 새하늘과 새 땅, 새로운 우주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갈1:7~9절에 다른 복음은 없고, 다름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받고 믿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만으로
우리는 완전하고 충족한 구원받습니다.
다른 어떤 천사라도, 마리아라 불리우는 어떤 귀신도,
사도들이 전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된 소식을,
부인하거나 변경하거나 다른 소리를 하면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묘한 속임수나 헛된 이적과 소위 신비하다는 선전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8절은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고 완전하고 충족한 구원을 얻습니다.
아무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덧 붙일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완전하시고 충족한 계시가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완전하고 충족한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크나큰 은총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사람입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저주 아래 죽게 하던 육신이 죽었습니다.
우리 옛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 옛 본성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리고 새사람으로 다시 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크나큰 은혜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골2:11~12절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몸을 벗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육의 몸"이란 "죄된 본성으로 타락한 성품"을 뜻합니다.
우리의 "몸, 육체"가 아니라 우리의 "타락한 성품, 부패한 본성"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육신의 모든 악한 본성을 벗어버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안에서 이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새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 본성을 벗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단자들이나 영지주의자들처럼,
자신의 육적 본성을 억누르려고 금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의 영지주의는 금욕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육체는 악하고 그 영혼은 선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선한 영이 악한 육체에 갖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선한 영이 악한 육체 속에 갖힌 것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선한 영이 이 악한 육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악한 육체를 죽이기 위해 고행을 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학대하고 굶겼습니다.
이들은 어찌하던지 영의 완전함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벗어나려 애썼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학대하고 괴롭게 행했습니다.
마치 불교에서 금욕을 실행하고 고기도 안먹고,
산채와 나물만 먹으며 금욕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앉아서 잠을 자고 며칠 씩 금식하고 자기 육체의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며 도를 닦듯이 말입니다.
금욕주의는 이렇게 자신의 육체를 학대하고 괴롭힘으로써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옛 사람"을
이 "금욕주의"라는 종교적 실천을 통해 벗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영혼이 깨끗해져서 해탈의 경지, 구원의 경지에 이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지주의의 금욕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런 일은 초등학문이요,
헛된 철학이라 꾸짖으며 경고 햇습니다.
4.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생의 모든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13절)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모든 죄를 사하시고"는 "우리의 죄가 이미 사해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 안에 거할 때 이미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해졌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그럼 여러분의 모든 죄가 용서된 것입니다.
그 어떤 죄도 모두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일생의 모든 죄도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전 생애의 모든 죄를 지시고 죽으신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43: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 죄를 기억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도 말씀합니다.
렘31:34절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리고 신약의 히브리서도 말씀합니다.
히8:12절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0:17절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참으로 감사하고 경이로운 일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기억치 않으신다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죄 용서는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의 기억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옛 죄 때문에 고민하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고 회개한 죄를 다시 자꾸 반복하며 고백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용서하신 것을 우리가 자꾸 되뇌인다면 하나님의 용서를 불신하는 처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파 이단의 주장입니다.
요즘 길거리에 보면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프랭카드를 걸고 사람들을 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구원파 이단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일생의 죄가 용서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일생에 한번만 회개합니다. 회개는 방향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일생에 한번 회개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단회적 회개라 합니다.
이 회개는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단회적 회개를 통해 죄를 미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개 후에도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돌이켜 죄의 길로 갈 때가 허다합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생을 통해 반복되는 반복적 회개입니다.
우리는 이때 우리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파는 이런 반복적 회개를 부인합니다.
그들은 오직 단회적 회개만 알 뿐입니다.
그들은 거듭난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것을 요구합니다.
요일1:9절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이 말씀은 거듭난 성도들도 죄를 범한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백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용서해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죄를 자백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등진 사실을 회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옛 죄를 기억치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고백하고 회개한 죄를 다시는 거론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용서하시고 그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죄를 기꺼이 고백하며 회개하십시오!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 그리고 크신 긍휼을 체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율법의 모든 정죄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14~15절)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기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란 율법을 뜻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지적합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정죄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우리를 적대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 고소하고 정죄를 요구합니다.
이렇게 율법은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아니면 우리가 죄를 모릅니다. 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지적합니다.
문제는 죄인된 우리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율법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율법은 죄인의 죽음을 요구합니다.
율법은 죄인의 심판을 요구합니다. 율법은 지옥의 형벌을 선고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죄인이며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율법의 모든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지옥이 우리의 처소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선한 율법이 우리를 적대하는 것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선한 율법도 우리를 죽이는 적이 되고 만것입니다.
그런데 전적으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저주하고 정죄하는 율법의 저주를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지옥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율법의 모든 요구가 이루어진 때문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빚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다 갚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율법의 정죄와 저주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놀라운 은혜입니다.
6.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영의 모든 권세와 해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사람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이것을 개선장군의 행진과 비교하여 말씀합니다.(15절)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지배하고 해하려는 악한 세력을 정복하셨습니다.
여기 "통치자들과 권세"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악한 영들이며 미혹의 영들입니다.
사단과 그의 졸개들이 그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사로잡아 무력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룬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들을 포로로 잡고 마치 로마의 개선장군처럼 개선행진을 하셨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가 말씀하는 것이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영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푸닥거리를 하고 굿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돼지머리 앞에서 고사를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영적 세력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악한 영을 사로잡아 무장해제를 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포로로 잡아 전적으로 무력하게 하신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룬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