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1.
부정과 부패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지식인
홍 성 암
내가 처음 소설가의 꿈을 지니고 작품을 대하던 시기는 이른 바 전후의 시대로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허무와 절망의 늪에서 헤매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때의 중심 사조가 실존주의였다.
실존주의 철학사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의 독일에서였는데 그 원조는 덴마크의 키엘케고어로 파악된다. 이러한 사조는 니체, 딜타이, 하이덱거, 야스퍼스 등에 의해서 더욱 발전되었고 문학에 도입되어서는 까뮈나 사르트르 같은 작가를 배출하였다.
실존주의에 있어서 실존의 개념은 존재자를 본질과 실존으로 나누었던 오랜 근원에서 비롯된다. 즉 모든 사물은 본질이 있고 그것의 불완전한 형상화가 실존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본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실존이 본질에 우선하게 된다.
인간은 이처럼 스스로가 자기의 본질을 마들어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말로 귀결된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말은 또한 인간은 모든 인류의 운명에 대해서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는 말로도 설명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위하여 매순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자신의 존재를 한정지으며 동시에 인류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
이런 실존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로 카프카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카프카의 단편 「변신」 「어느 개의 고백」, 장편 『심판』 등인데 이들 작품은 실존주의적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의 반응을 실험적으로 관찰한 것이다. 그 이후에 사르트르의 『구토』나 『벽』 까뮈의 『이방인』 『페스트』 같은 작품들이 실존주의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한국 전후소설의 중심사조였던 실존주의 문학이나 실존주의 철학은 문학을 공부하는 문학도들을 매료시킨 철학이고 문학이었지만 문학을 처음으로 접하고 있던 초심자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것들이어서 글을 읽어도 제대로 알 수 없었고 설명을 들어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들은풍월로 대화에 참여하고 토론을 통해서 주장하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지냈다. 이 때 절대 고독이니 한계상황이니 참여니 선택이니 하는 의식을 행동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면서 방황하기도 했다.
이런 실존주의적 문학의식이 작품으로 창작된 것이 한국의 전후소설이다. 김성한의 「바비도」에서 자유의 문제를, 선우휘의 「불꽃」에서 한계상황에서 선택의 문제를, 장용학의 「요한시집」에서 자살의 문제를, 손창섭의 「유실몽」에서 무기력한 삶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때 소설공부를 처음 시작한 초심자들은 전후작가들의 이런 철학적 사색, 철학적 고뇌를 함께 체험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한국인의 삶과 가치관, 철학적 갈등 혼돈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고 그러기 위해서 독서하고 사색하고 토론에 참여 하는 등으로 자기 계발에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던 것이다.
우리의 근대문학사를 보면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철학적 가치관의 혼란은 비단 6·25를 전후한 시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구한말 조선조의 멸망과 일제의 식민지시기를 포함해서 소설문학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해 왔다.
이광수의 『무정』이 자유연애를, 김동인의 「배따라기」에서 낭만주의, 이상의 「날개」가 드러내는 심리주의, 이기영의 『고향』이 추구한 사회주의, 최학송의 「탈출기」에서 드러나는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이념을 문학작품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한 문학작품을 사회적 이념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을 많이 대할 수 있다.
근대문학의 초창기에 매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이처럼 노력한 선배 소설가들의 노력을 생각할 때 요즈음의 우리 작가들은 너무 안이한 방법으로 창작에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성하게 된다. 근래에 발표되고 있는 소설의 대부분이 당대의 사회적 이념을 외면하고 극히 개인사적인 경험에 의존해서 작품을 창작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요즈음의 시대는 과거 전후의 시대와 비교할 때 훨씬 가치관에 있어서 분열되고 모호한 상태이기도 해서 소설가들의 날카로운 분석이 필요로 하는 부분이 크다고 하겠다. 범세계적으로 번진 중국 우한발 코로나가 지니는 위험성과 부도덕성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으며 미국의 선거부정과 빅테크의 횡포로 빚어진 가치관의 몰락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미중간의 이념적 대결에서 전 세계가 어떻게 멸망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것인지, 스스로 그 회오리에서 독립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국내 문제에 있어서도 기존의 가치관이 상당부분 붕괴되고 있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상식이 무너지고 기존 법치의식이 무너지고 기존의 도덕적 기준도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법체계의 붕괴는 심각한 것이어서 검사의 기소권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판사가 재판에 인용하고 있는 법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규범의 파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힘이 곧 정의라는 원시적 인식이 사회유지의 기준이 된다. 이런 조건 속에서는 선량한 국민들, 일반 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켜갈 수 없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회의 질서 유지가 불가능하다. 사회의 약자들이 살아남기 어렵게 된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고 새로운 질서의식을 정립하는데 소설가들의 임무가 크다고 보게 된다.
우리 소설가들은 이런 무질서에 저항하고 새로운 가치관 정립에 앞장 서야 하고 이런 목표를 작품을 통해서 구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소설가들의 작품이 개인사적 의식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올바른 시대정신과 보편적 가치관을 지니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불의와 부정, 부패에 저항할 수 있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야 할 것이다.(한국소설, 2021. 7. 권두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