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암 특집
*나의 창작의 산실- 유년기의 햇살과 바람과 파도
문학작품은 대부분의 경우 그 작가의 유년기적 체험과 깊은 연관고리를 가진다. 즉 작품은 작가의 체험의 반영이고 동시에 그 체험의 바탕에서 연상되어진 상상력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작품은 유년기적 체험을 유전인자로 해서 다양한 변용을 거쳐 창작되어진 것이라고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강렬한 아침 햇살이다. 나는 늦잠꾸러기여서 잠에서 깨어날 때쯤엔 늘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호지를 바른 창문을 열면 곧바로 햇살이 밀려온다. 집이 정남향이고 언덕 위여서 퇴마루로 나서면 남쪽 멀리 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아직 레일이 깔리지 않은 동해부부선 철로길, 들판을 가로지르는 연곡천 물길, 궁바다라고 불리는 솔숲, 공동묘지, 문둥이 마을, 그 너머로 동해안의 백사장과 푸른 바다. 수평선에서 한참 떨어진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아침 해가 강렬한 빛살을 쏘아댄다. 그 눈부신 햇살을 늘 잊을 수 없다.
한낮의 햇살과는 달리 밤이면 공동묘지가 있는 솔숲은 늘 으스스한 음기가 감돈다. 공동묘지 입구에 문둥이 마을까지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다. 비바람이 거세게 부는 밤에는 솔숲에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문둥이들이 무덤을 파고 죽은 아이의 시체를 파내어 간을 꺼내간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들을 자주 들었다.
마루에서 눈길을 조금만 서쪽으로 돌리면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들의 물결을 대할 수 있다. 오대산 영봉들이다. 그 중에서 소금강의 절경을 이루는 능선들이 쏟아져 내리는 그 산자락에 영진리라는 고향마을이 있게 된다. 산이 높아서 바람도 거세다. 그 바람이 파도를 일구고 파도소리가 늘 내 잠자리를 파고든다. 나는 달려드는 파도에 떠밀리고 잠기고 뒤채면서 뒤숭숭한 잠자리에서 헤매기도 한다.
나의 출생지인 영진리는 동해안의 어촌마을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지만 포구에 면해 있는 어촌마을은 언제나 떠들썩하다. 거기에다 주문진읍도 십여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영진리는 농촌과 어촌, 도시의 여러 요소를 두루 갖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장날이면 어머니를 따라 주문진읍으로 나들이를 간다. 엿장수의 가위소리, 약장수의 목쉰소리, 어시장에서 악다구니 하는 장사꾼들의 욕지거리. 도시 전체가 활기에 넘치는 사람살이의 모습이다.
영진리 큰이모댁은 300여 호 되는 어촌마을을 대표하는 집안인 셈인데 어촌마을의 열댓 척 되는 모든 어선들을 소유한 선주였고 상당한 농토도 소유한 대지주였다. 항상 일하는 사람들로 들끓었는데 트럭이 있어서 매일 같이 잡아오는 생선을 당일로 서울까지 운반해 갔다. 그 트럭이 서울서 돌아올 때는 설탕 등의 생필품을 싣고 왔는데 교통이 극히 불편했던 당시에는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큰이모댁은 영진리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일본식 건물인데 마치 학교건물처럼 방의 앞쪽으로 긴 복도를 배치하고 어깨 높이로 유리창을 달아서 전통적인 한옥과는 그 구조가 전혀 달랐다. 본채에 10여 개가 넘는 방이 있었고 이모부가 손님들을 마지하는 손님방, 바둑을 두는 놀이방도 있었다. 부엌 옆에 두어 개의 문간방이 따로 있었고 본채 둘레로 10 여개의 곳간 채가 있었다. 화장실도 복도의 양 끝에 남녀용으로 따로 설치했고 신식 목욕탕까지 갖춘 주택이었다.
식사 때는 모두 함께 식사를 했는데 자신이 필요한 만큼 공기에 밥을 담아서 몇 그릇이고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워낙 식솔이 많다 보니 잡곡밥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보리고개가 있던 시절이라 이런 풍요는 다른 집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큰이모네의 살림살이를 관리해주고 있어서 나는 이종 형제들과 어울리며 큰이모네집에서 살다싶이 했다. 이종형들은 서울에서 대학엘 다녔고 누님들은 강릉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당대에 유행하던 각종 잡지들이 집에 넘쳐났다. 초등학생이던 내가 ‘명랑’이며 ‘야담’ 같은 잡지책을 수시로 대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문화적 혜택 때문이었다.
내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밝게 전망하는 것은 궁핍하지 않았던 유년기적 생활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금도 파도에 휩쓸리는 꿈을 구면서 밤을 보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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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 어디까지 왔나 - 신화로서의 소설적 구조
우리나라에서 소설가가 되는 길은 각 일간신문에서 실시하는 “신춘문예” 등단, 또는 문예지의 “신인상” 당선, 또는 문예지의 “추천완료”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지망생들은 오랜 기간을 신춘문예 작품공모에 응모하는 것으로 습작기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의 경우도 고등학교 문예반에 들어가서 소설습작을 시작한 이래로 이십여 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문예지를 통한 등단의 절차를 통과할 수 있었다. 「겁화경」(劫火經)이란 작품으로 월간문학 신인상(1979년) 「조기」(弔旗)란 작품으로 현대문학지 추천완료(1981년)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등단은 나름대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를 내포하게 된다. 그 단점의 하나가 단편소설 중심이란 점이다. 그것이 빠른 등단에는 도움을 주지만 인간이나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감하기 보다는 개인적 또는 충동적 시각이나 인상에 편향되기 쉽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명의 복합성과 우주의 다양성에 대한 본질을 천착하는 데는 많은 편견을 노출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 때문에 근년에 이르러 나는 가급적 장편소설 장르에 관심을 두고 있다. 환경파괴 문제를 다루어서 녹색문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는 『한송사의 숲』(2019)이나 탈북자 문제를 다룬 『피안으로 가는 길』(2020) 같은 장편소설은 작가의 개인적인 인상보다도 사회적 총체성에 적응하는 존재를 다루려는 노력을 한 바가 있다.
본고에서는 문단 등단시기의 단편소설과 근년에 창작한 장편소설의 내용을 검토하고 작가가 지향하고 있는 소설의 방향성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한다.
* 단편소설 「겁화경(劫火經)」과 「조기(弔旗)」
내가 〈월간문학〉에 신인상으로 당선된 작품은 단편 「겁화경」이다. 이 작품은 뱀잡이 노인 이야기다. 땅군인 뱀잡이 노인이 산불을 만나 불길을 피해서 마을로 내려오는 뱀들을 무더기로 잡는 행운을 마지하게 되는데 결국 그 행운이 지나쳐서 결국 자신이 잡은 뱀에 물려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산불과 뱀, 땅군 노인의 삶을 뒤섞어 다룬 것으로서 인간의 숙명적인 생애의 단면을 그린 것이다.
단편 「조기」는 〈현대문학〉에 추천완료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코레라가 번진 섬의 어촌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그곳을 탈출하고 싶어도 탈출할 수 없는 타향출신의 초등학교 교사의 심리적 갈등을 그린 것이다. 암울한 사회적 현실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겁화경」이 땅군 노인의 극히 개인적 삶의 족적을 운명적으로 서술한데 비해서 「조기」의 경우는 전염병이 만연한 지역의 한계상황에 처한 젊은 교사의 현실인식을 다룬 것이다. 전자가 “운명적 개인” 으로서의 삶이라면 후자가 갇힌 사회의 “한계적 상황”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가 보다 개인적 운명과 직결되고 후자가 보다 사회적 한계 상황과 접맥되는 것이긴 하지만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적 한계 때문에 당대의 시대상이나 사회상 보다는 주로 개인적인 고뇌와 운명 등을 인상적으로 서술하는 양상이 되었다고 하겠다.
*장편소설 『한송사의 숲』 과 『피안으로 가는 길』
장편소설 『한송사의 숲』(2019)은 동해안의 해안가에 건립된 화력발전소 측과 그 옆에 자리잡고 있는 한송사라는 절간과의 갈등을 다룬 것이다. 산업화의 시대적인 대세를 업고 화력발전소측은 연료로 사용하고 버리게 되는 탄재처리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송사라는 작은 절간을 매입하여 없애려고 음모한다. 그런 위협에 처한 절간의 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난관을 극복하며 투쟁하게 된다. 이는 당대의 사회상을 확대시켜 거대 자본의 횡포와 민중으로 대변되는 약소한 민간인의 희생을 함께 다룬 것으로서 산업과 환경의 상관관계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피안으로 가는 길』은 인간본성의 내면을 다루려고 한 것이다. 이는 크게 보아서 “고향으로 돌아감” 또는 “고향에서 멀어짐”의 두 형태로 나뉘어지는데 이는 회귀본능으로서의 인간의 생명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엄청난 장애물 즉 현실적인 벽에 대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계설정의 양상이 직접적으로 잘 드러나는 예가 분단국가로서의 민족적 현실이 아닌가 싶다. 부모형제를 북쪽에 둔 월남인들의 북한에 대한 향수나 북쪽의 곤고한 삶의 조건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탈북민들의 탈북과정은 결과적으로 이상향에 대한 도전의 양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개인적인 이상향과 사회적 장벽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삶의 한 양태라고 파악하게 된다.
*신화로서의 소설적 구조
소설은 역사성과 신화성을 동시에 지닌다. 소설의 역사성은 등장인물의 체험의 소산이지만 신화성은 보편성의 중심이 된다. 많은 경우에 작가는 개인의 체험 영역에 관심을 두어서 작품 기술에 있어서 역사성이 잘 확보되는 경우는 많지만 그럴 경우 자칫 보편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럴 경우 개인적 체험의 사사화(私事化)란 말로 경계하게 되는데 소설은 역사적이기 보다는 신화적인 성격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설의 신화성은 대체로 주인공이 전형적(典型的) 인물로 선정되고 그의 행동은 당대의 시대와 또는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성격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인자로서 자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송사의 숲』이나 『피안으로 가는 길』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런 점에서 모두 특정 시대 또는 특정 사회의 산물이다. 그 때의 개인은 시대와 사회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작품을 떠나 현실적인 인간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장편의 인물들이 단편의 인물들보다 실존적인 성격이 강하게 되고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삶의 성찰이란 측면에서 보다 효용성이 크다고 하겠다.
나의 경우 근래에 이르러 단편소설 보다 장편소설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것이 “노블(novel)”이라 불리는 현대소설의 본령에 보다 근접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설이 지니는 호소력이란 측면에서도 보다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월간문학 2021.7. 홍성암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