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내용의 그림만 만나면 좋겠는데, 그림이 사람 사는 모습을 담고 있다 보니 가끔은 가슴이 무거워지는
작품도 만나게 됩니다. 지난번 소개한 에버트 피어터스가 안트워프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는 자료를 보고
그 때 시간을 함께한 화가들을 찾다가 뉴린파 화가였던 프랭크 브램리 (Frank Bramley / 1857 ~ 1915)를
만났습니다. 브램리는 뉴린파 중에서도 자신만의 화풍으로 스텐호프 포브스 나 월터 랭글리 와는 구별되는 다른
느낌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뻥이야! Every One His Own Tale /112cm x 180cm / 1885
제목을 ‘모든 남자들은 허풍을 친다’라는 정도로 번역해야겠지만 그래서는 맛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뻥이야’
라고 했습니다. 좀 더 고급스러운 표현을 찾아 볼 까 했는데 맥주를 가랑이 사이에다 둔 사내 얼굴을 보는
순간 ‘뻥’이 더 실감 났습니다. 어린 소녀는 남자의 말에 적잖이 놀란 얼굴입니다. 손이 자기도 모르게 옆의
할아버지 무릎에 올라 가 있습니다. 살며시 손을 쥐어 주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자애로움, 그 자체입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이 너무 생생합니다. 초상화 분야에서도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브램리의 솜씨를 볼 수
있습니다. 3년 생활하고 30년을 우려 먹는다는 군대 이야기가 우리 나라 남자들의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이
듯이 아마 그림 속 저 젊은이도 30년을 반복할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이야기의 화수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브램리에 대한 개인 자료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빈약한 자료로 앞 서 간 길을 쫓아 가는 것은 언제나
고단합니다. 브램리는 영국 링컨셔주에서 태어났는데, 자란 곳은 링컨셔주의 주도(州都)에서 멀리 않았습니다.
그는 링컨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나이 열 여섯 살이었습니다.
베네치아 시장의 소녀 A Venetian Market Girl / 1983
시장의 벽 한 곳을 차지한 소녀가 팔고 있는 것은 보 잘 것이 없습니다. 그저 집에서 쓰고 남은 것 몇 가지를
들고 나왔는데 아무리 봐도 돈을 버는 것이 주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진 모델처럼 저를 보고 활짝 웃어
주는 모습이나 머리에 두르는 긴 머리띠로 멋을 내고 있는 모습 때문입니다. 어쩌면 물건을 판다는 핑계로
시장에 놀러 나왔는지도 모르죠. 구김살 하나 없는 소녀를 보면서 가난했지만 즐거웠던 시절이 떠 올랐습니다.
요즘은 부유해졌다는 미명 아래 차갑고 건조한 물신(物神)이 따뜻함이 있던 자리를 조금씩 밀고 들어오는
세상이거든요.
5년간 미술 공부를 끝낸 브램리는 안트워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입학한 해만 놓고 본다면 에버트
피어터스와 동기인 것 같은데 둘이 만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피어터스는 야간 반이었으니까 오다 가다 얼굴
정도는 보지 않았을까요? 스승은 샤를 페르랏 (탕기님이 발음을 알려 주셨습니다)이었는데 피이터스의 스승
이기도 했지요.
나폴리의 생선 파는 소년 Neapolitan Fisher Boy / 1883
앞 작품의 소녀와 같은 무대인가요? 베네치아와 나폴리는 남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인데 서 있는 배경은
같습니다. 음, 브램리 선생님, 배경에 너무 무심하셨군요. 이 소년은 제법 심각합니다. 광주리와 통 그리고
손에 든 것까지 팔아야 할 생선의 양이 앞 작품 소녀의 것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그래서일까요, 표정이 조금
어둡습니다. 소년의 시선이 멈추는 곳, 그 곳에 커다란 꿈이 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꿈은 적금통장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적심(積心)통장에 쌓이는 것을 소년은 알고 있을까요?
뉴린파 화가들에게 안트워프 아카데미는 일종의 사관학교 같았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브램리 말고도 이 곳
출신 뉴린파 화가들이 몇 명 더 있기 때문입니다. 3년간의 공부를 끝낸 브램리는 베니스로 자리를 옮깁니다.
베니스에서는 학교에 적을 두고 활동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2년에 걸친 베니스 생활을 끝내고 영국으로
귀국 뉴린에 자리를 잡습니다.
보이는 눈과 보이지 않는 눈 Eyes and No Eyes / 64cm x 48cm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참 못된 젊은 아가씨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늘 귀가 보이지 않아 쩔쩔매는
노인을 보고 웃는 모습이 괘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노인도 유쾌한 모습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노인이다 싶었는데 맨 처음 작품에 나왔던 그 할아버지이군요. 아마 아가씨들이 바느질 하는 곳을 지나다가
예전 생각이 나서 한 번 도전해 보고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몸은 세월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마음은 이미 바느질을 끝내고 자리에 일어섰지만 몸은 이제 시작이고, 그것마저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나이 들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마음과 머리뿐입니다. 켜켜이 쌓인 삶의 지층에는
아무리 몸이 빠른 젊은이라도 결코 알 수 없는 보물들이 숨어있지요. 그것을 잘 전해주는 것, 나이 먹어 할 수
있는 근사한 일입니다.
영국의 뉴린 있던 콘웰 지역은 19세기 후반 화가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지역이었습니다.
항구를 통해 펼쳐지는 극적인 삶들의 모습이 화가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소재였습니다. 1884년 뉴린에 도착한
브램리는 1895년까지 11년을 뉴린에서 보냅니다. 그리고 그 해부터 정기적으로 로얄 아카데미에서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희망 없는 새벽 A Hopeless Dawn / 123cm x 168cm / 1888
창 밖으로 날이 밝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밤 새 불던 바람과 파도는 여전합니다. 혹시 하고 차려 놓은 식탁
위 음식은 차갑게 식었고 환해지는 세상 때문에 촛불의 밝기가 힘을 잃어 가듯, 밤을 밝혀주던 촛불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희망도 사위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침착하고자 했던 몸이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 이 세상은 살아 남은 자들을 위한 곳이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슬픔도 그리움도
흘러 갈거라고, 그러니 어떻게든 일어 서야 한다는 말이 도움이 될까요? 바람은 사정없이 유리창을 흔들고
있는데, 방 안은 깊은 슬픔에 적막하기만 합니다.
월터 랭글리의 ‘슬픔은 끝이 없고’와 동일한 주제의 이 작품으로 브램리의 명성은 확고해졌습니다.
하늘의 왕국은 그런 것이지요 For of such is Kingdom Of Heaven/180cm x 256cm / 1891
조그마한 장례식이 있습니다. 여인들이 들고 가는 관이 작은 것을 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은 아이입니다.
행렬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그들이 부유한 집안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가를 부르고 관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꽃을 들고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에도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내려 앉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결핵이 유행이었다고 하니까 저 소녀도 결핵을 앓고
있겠지요. 얼마 후 또 다른 장례의 주인공은 어쩌면 저 소녀일지 모르겠습니다. 행렬 사이에 아버지인듯한
고개를 떨군 신사가 보입니다. 아이를 잃은 슬픔도 크지만 장례행렬 속에 사내 아이가 없는 것도 그에게는
또 하나의 슬픔으로 자리를 잡고 있겠지요. 상대적으로 행렬을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은 비록 남루한
옷차림이지만 건강한 모습들입니다. 어찌 되었던 아이들의 죽음은 어떤 죽음보다도 더 안타깝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였던 당시, 대중들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에 열광했습니다. 브램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재능으로 이야기가 담긴 소재를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스퀘어 브러쉬 기술의 달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브램리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달인’이 되면 이름이
남게 되지요. 저는 언제고 청소의 달인이 되고 싶은 생각에 틈이 나면 열심히 쓸고 닦습니다.
친구들 Friends / 87.6cm x 64.2cm / 1907
그림 속 여인은 브램리의 아내입니다. 결혼하고 16년이 지났을 때 모습이니까 젊은 얼굴은 아닙니다. 1900년,
브램리는 장인의 집 근처인 그래스미어에 정착하는데, 그 곳에서는 정원에서 개와 함께 있는 아내의 모습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이겠지요. 제목이 참 좋습니다. 물론 개를
친구처럼 대하는 서양 사람들 정서에 맞춰 아내와 개 사이를 그렇게 표현했겠지만, 친구들이라는 제목 속에는
브램리와 아내의 사이도 포함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실 아내 같은 친구 보다는 친구 같은 아내가 법적으로
문제 없지요.
1891년, 서른 넷 되던 해, 브램리는 같은 화가인 캐더린 그레햄과 결혼합니다. 그가 남긴 아내의 모습이
여러 점 있습니다. 화가가 자신의 아내를 그린 작품을 대할 때 마다 ‘사이가 좋았겠지?”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보는 것도 징그러운데 모델로 세웠겠습니까?
그런데 사진으로 왜 나를 잘 안 찍어?
아내가 날카롭게 따져 물었습니다.
사진이 실물보다 못 하잖아. 그거 알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순간 식은 땀이 흘렀습니다.
달콤한 고독 Delicious Solitude /122cm x 91cm / 1909
참 편안한 광경입니다. 챙 넓은 모자 밑으로 턱만 보이는 여인의 얼굴이 궁금합니다. 눈은 별 같이 빛나고
있지 않을까요? 책을 손에 가볍게 쥔 자세가 더 없이 보기 좋습니다. 사방에서 꽃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릴 것
같습니다. 몸이 혼자라서 고독인가요? 저런 고독이라면 달콤한 것이 맞습니다. 진짜 고독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을 때를 말하는 것이죠.
1890년대 초기부터 브램리의 작품에 변화가 왔습니다. 이전의 작품 보다 더 밝고 붓터치는 좀 더 느슨해
졌습니다. 1894년 로얄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된 브램리는 1895년, 뉴린을 더나 드로윗위치로 이사를 갑니다.
뉴린을 떠나는 것은 몸만 떠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촌의 삶을 주제로 했던 작품의 주제도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몸이 떠나면 마음도 떠나는 것, 세상 어디엘 가도 비슷한가요?
비밀이야! Confidence / 89.5cm x 75cm / 1911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의자에 앉은 여인은 환하게 웃고 있고 앉은 여인은 굳은 표정일까요? 아마 의자에
앉은 여인이 뜻밖의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당황한 여인의 표정이 보입니다. 이야기의
열쇠는 무릎에 앉은 감은 고양이가 쥐고 있는 것 같은데, 물어 봐도 알려줄 것 같지 않군요. 가지고 있는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은 아마 그 순간을 같이 했다는 것이겠지요. 돌아보면 저도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감추는 것이 없다고 했지, 뭐야 말해 봐.
감추는 것이 없다고 하는 아내의 뒷조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아무리 봐도 저를 만나기 전에 강력계 형사로
근무했을 것 같거든요.
브램리의 작품 주제는 초상화와 시골의 풍속 그리고 상징적인 내용들이 차지 했습니다. 또 나이든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들로 그 폭이 좁혀졌습니다. 1911년, 54세가 되던 해 브램리는 로얄 아카데미
정회원이 됩니다. 그 다음 해에도 로얄 아카데미에 전시회를 계속 열었던 그는 58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어망을 꿰매며 Weaving Fishing Nets
작품 속 배경이나 기법으로 봐서는 1890년대 이전의 작품 같은데 제작 연도가 너무 작아 알아 볼 수가 없군요.
어망 손질을 하던 두 사람이 일에 지쳤는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등에 기대어 내려다 보는 남자의 눈도
그윽하지만 올려다 보는 여인의 눈매도 곱습니다. 남자는 나름대로 멋을 냈지만 여인이 더 성숙해 보입니다.
그럼 누가 누구에게 그물을 치고 있는 걸까요? 고기를 잡는 그물이 때로는 사랑도 잡을 수가 있군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그물은 튼튼한가 살펴 봐야겠습니다.
뭘 또 잡으려고?
강력계 형사 출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독특한 화법으로 엮었다는 평을 받았던 브램리였습니다.
브램리 선생님,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다음에는 자료 좀 꼭 많이 남겨 놓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