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길 떠나기를 즐긴다. 어느 장소를 택하면 주변 곳곳을 눈 감아도 찾을 만큼 지속적으로 가는 버릇이 있다. 한동안은 마라도에 꽂혔고, 또 한동안은 설악산 주변에 꽂혀 주말마다 그리로 향했다. 또 한동안은 지리산 주변을 맴돌았다. 어느 때 보다 11월 초순의 지리산 여행은 감동일 때가 많다. 지리산 정상 주변엔 하얀 눈이 쌓이고, 산 아래로 내려 올 수록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여진 환상적인 단풍을 만날 수가 있다. 가능하면 11월 초순으로 지리산 나들이를 계획하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리산 주변을 맴돌 땐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 피아골이다. 피아골엔 '불락사' 사찰이 있고 절 바로 아래에 안비취 선생님의 추모비가 있어서 이다. 숫기가 없는 난 그곳을 자주 다니면서도 스님께 인사를 드린 적이 없다. 단지 생전의 안비취 선생님을 만나는 마음으로, 갈 때마다 추모탑 앞에 섰다 되돌아오게 된다.
내가 안비취 선생님을 자주 뵈었던 때가 90년대 중반 즈음이었다. 후암동에 살았던 나는 매일 남산길을 오갔다. 남산 아랫마을에 안비취 선생님이 살고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선생님 댁은 그리 멀지 않았다. 건강을 잃으신 안 선생님께 수련을 부탁한 지인이 있었다. 명창이신 선생님의 소리를 좋아하는, 다시 무대에서 뵐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무척 많았을 테다. 나도 그랬고, 선생님의 수련을 부탁한 그분도 그랬으니까.
편마비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대화엔 전혀 문제가 없으셨기에 선생님과는 많은 얘길 나눴다. 문하생들이 수 없이 드나들고, 목소리를 틔우기 위해 가르침을 받으러 드나들던 수만은 톱 가수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두어 시간 머무는 동안 주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자리, 건강을 잃으신 선생님 댁엔 사람들의 발길이 뜸 했다. 내가 머무는 동안 선생님을 챙기던 친척 여자분 밖엔 만난 사람이 없었으니까. 나와 장시간 대화를 나눴던 것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덕분이라 생각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면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비취'라는 이름은 눈빛이 비췻빛이니 비취라고 쓰라시던 최정식 선생님이 계셨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눈빛이 아름다워 비취라는 이름을 주셨다기에 선생님의 눈동자를 다시 한번 보게 됐다. 그 연세에도 참 고운 파란 눈, 비췻빛 눈이 아름다웠다. 궁금했다 득음을 어디에서 하셨는지...
-선생님, 득음을 하신 장소가 어디세요? 득음하셨을 때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요.-
"득음? 무대에서 공연 중에 득음을 했어. 공연 중이었는데 뭔가 달라졌어. 몸도, 마음도 소리도. 득음을 하는 그 순간, 정말 황홀했었어. 이렇게 물어주니 득음했을 때의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데, 제자들은 이렇게 묻지를 않아. 어떻게 하면 득음을 할 수 있냐고 묻는데 대답할 수가 있어야지."
무슨 뜻 인지를 알고 있는 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청출어람을 기다리셨을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편마비는 불편함을 많이 준다. 음식을 급히 먹어도 사래가 들고, 그때마다 간호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안타깝고 무척 불편했을 테다. 사래라도 들리면 안절부절못하며 불편해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평생을 예인으로 사시면서 화려한 모습을 보이시던 선생님,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서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말씀을 습관처럼 자주 하셨다.
안비취 선생님 고희연, 무대에 오르셨다. 제자들이 무대를 채우고 선생님도 계셨다. 선생님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셨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고희연, 그 무대가 선생님의 마지막 무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공연을 마치고 소품으로 쓰였던 선비 탁자를 선물로 받았다. 지금도 그 선비 탁자는 간직하고 있는데.....
안비취 선생님을 만난 이후부터 건강을 잃으면 자신의 정확한 의사를 표현할 수 없다는 걸 보았다. 건강하지 않으면 절대로 자신으로 살 수 없음을 알았다. 보호자의 뜻에 따라야 하고 절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걸 말이다. 내가 선생님을 만났을 때가 마흔 초반, 그 이후부터 힘주어 말하는 게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유일함이 건강한 삶이다. 자신의 뜻대로 살 지 못한다는 건 숨만을 쉬는 것에 다름없다는 것을.
안비취 선생님의 유일한 아주 편한 말동무가 아니었을까. 어느 날 지리산 주변을 여행하다 우연히 들르게 된 피아골 '불락사'. 그곳에서 안비취 선생님의 추모비를 만났다. 생전의 선생님을 뵙듯 반가웠다. 그곳에 추모비가 있다는 걸 몰랐기에 더더욱 반가웠었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안비취 선생님.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신 분. 오늘도 지리산을 생각하면 어느새 유튜브에서 선생님의 소리를 찾아 듣게 된다. 아름다운 비췻빛 선생님의 눈동자를 기억해 내며.
첫댓글 득음의 안비취 선생님이 바라셨던 청출어람을 선생님도 기다리고 계신다는것을 느껴지네요
이세상의 모든 스승들은 청출어람을 기다리죠. 당연히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