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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촌에도 다정한 이웃이
<닥종이 인형전 장터>
고독한 군중이란 소리가 있다. 거리와 유원지에는 인파가 넘쳐나고, 직장의 빌딩이나 공동주택의 벌집 창문마다 안엔 엄청난 인총(人叢)들이 자리 잡고 있어 수시로 스치거나 마주 대하는 데도 말이다. 모두 예전엔 정다웠던 이웃사촌인데도 말이다.
‘이웃사촌’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현대사회에선 이러저런 이유들로 부정적인 사이로 되었다고 한다. 아파트의 층간소음으로 다투다 끔찍한 살인사건으로까지 번졌다는 뉴스들이 ‘아! 그렇기도~!’ 하게 만든다.
그러니 요즘 아파트 세대(世帶)들에게 있어 이웃은 소원(疎遠)하다기 보다 오히려 불편한 관계로의 개념이 되고 만 것이겠지만, 나는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인 듯싶다.
“소확행(小確幸)”이라 했나? 어쩌면 그 작은 행복을 가진다고도 하겠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지하철역과 공원이 백여 미터로 가깝고 정원이 아름다우며 이른바 서울강남3구에 위치하니 남부럽지 않은 조건의 환경이다.
그렇지만 역시 여느 아파트처럼 같은 동(棟) 같은 층(層)의 이웃이라 해도 서로 다정다감 친밀하거나 막역(莫逆)하지는 않다.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고 내가 머리 허연 어른이니, 때로 공경(恭敬)받는 미소의 인사는 주고받는 사이일 것이다.
같이 탄 어린이를 귀여워해주면 젊은 부모들이 반색을 하고, 아파트 관리나 경비하는 이들과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수고한다고 인사하면 호감 가진 인사를 되받는 정도라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럼없이 정을 나누는 이들은 같은 아파트 거주 주민이라기보다 아파트 주변 상가의 사람들이다. 날씨 인사나 건강 안부를 주고받는 데에서 더 나아가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의 큰 뉴스를 화제로 삼아 공감하거나 일상생활의 유익한 꿀팁을 나누기도 한다.
그 중 부동산중개사무소, 구둣방, 미용실, 세탁소의 사장님들과 친한 편이고, 단골 마트와 식당의 주인장, 야쿠르트 아줌마 같은 이들과도 이러저러 편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우선 단지의 동남쪽 정문입구 부동산중개사무소 사장님은 여기 재건축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전에 있던 아파트를 살 때부터, 분양입주 아파트를 팔고 같은 단지 아파트로 전세살이 했다가 다시 같은 단지 아파트를 구매해 지금까지 사는 14년 동안 내내 주택문제를 상담하고 주선해 해온 분이다.
그렇다고 나누는 이야기가 부동산 거래만이 아니다. 시시 때때 나라와 세계 경제의 흐름도 전해 주고, 사무실 앞 화단을 만들어 가꾸면서 꽃 이야기도 나눈다. 본인도 매일 공원을 산책하며 우리 부부가 단지 내 정원을 산책하면 건강에 도움 될 거라며, 맨발로 걷기가 면역력 높이기에 유익하다는 인터넷 기사(박동창 맨발걷기운동본부 회장 이야기)를 카피해 와 전해주기도 한다. 사모님은 우리 집사람처럼 우울증이 있었다며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고 직원들도 오가며 만나면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그런 사이다.
단지(團地) 남쪽 정원 코너엔 구두수선부스가 있다. 닦고 수리하고 열쇠고장수리 출장 가는 건 다른 곳과 마찬가진데, 사장님은 나처럼 단신(短身)이지만 탄탄해 보이는데 보행이 부자연스러워 중풍의 후유증이 있음을 보여주었었고, 회복하다 다시 악화돼 한동안 부스를 닫기도 했었는데, 까다롭게 보이시는 부인이 늘 함께 마주앉아 이것저것을 일일이 참견하고 있었다,
수선을 맡기거나 매일 산책길에 지나며 살펴보면, 마냥 착해 보이는 남편만 종일 좁은 구석에서 고생하게 감시하며 수선료만 챙기는 야박한 여편네란 이미지를 가졌었는데, 나중에야 이 아주머니가 알뜰살뜰하기 이를 데 없어 아픈 남편을 지성으로 모시며 각고의 근검으로 명품아파트도 장만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안해하며 맘을 고쳐먹고 다정하게 대한 후로는 산책길의 걸음 느린 집사람에게, 쓰러졌던 자기남편도 열심히 걸어서 건강을 회복했으니 힘내라고 위로해 준다. 부스 옆 정원의자에서 쉬고 있으면 부리나케 나와서 사탕도 나눠주고, 음식 조리방법 등 생활상식도 나눈다.
그렇게 친해지던 끝에 나처럼 특전사 출신임을 알게 돼 서로 반가워했는데, 특수전 교육을 받았을 때 교관이었던 내 모습도 새삼 기억나니 한참 선배님이시라며 이후로는 늘 깍듯이 인사를 해온다. 인사 받기가 다소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정을 가지고 이들 부부를 대하게 되었다.
구두수선부스 골목 맞은편엔 빵집이 있다. 가까운 지하철역사거리 파리바게트의 빵이 다양하지만, 동네빵집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려고 일부러 들린다. 다소 비싸지만 모두 쌀로 만든다고 해 친 환경적이란 생각에서이기도 하다.
복스러운 모습에 친절한 아주머니에 비해 불친절하고 까칠한 남편이 거슬리지만, 빵 굽는 냄새가 향기로운 가운데 열심히 사는 부부의 모습이 한편의 그림이어서 가끔 들리며 행복감을 느낀다.
빵집 같은 편 서쪽엔 미용실이 있다. 오래전 아내의 친목회 회원이면서 우리 가정사를 속속들이 알면서 친교해온 길 건너 아파트 성훈 엄마 네를 제외하고는, 이곳 원장님이 우리 부부가 가장 고마워할 이웃일 것이다.
아내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2014년의 이듬해부터 만만하게 데려갈 미용실을 찾다 1층이라서 들리기 시작했는데, 늘씬하고 건강해 보이는 용모여서 운동선수 출신인가 했지만, 아내의 기복 있는 건강진행상황에 함께 희비(喜悲)를 나누며 일일이 배려해 주는 따뜻함을 가지신 분이다.
미용실 원장님들이 원래 세상사 정보통이시긴 하지만, 다양한 화제로 위축된 아내의 대화를 유도해 주고, 아이들 결혼문제, 며느리와의 좋은 관계 유지 일상(日常), 남편과 일시 헤어졌다 운명처럼 재결합한 일 등 모범적인 인생사와 함께 담근 김장김치가 빨리 쉬지 않게 하는 꿀 팁 등 유용한 생활지식들도 알려줌은 물론이다.
공격적인 정치세력들에 의해 조성되고 있는 한심하고 암울한 나라 정세에 대한 시사분석도 전문가 수준으로 제시해 주어.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남들과의 대화를 꺼리는 아내도 이 원장님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 나가기도 하고, 건강이 좋아졌을 때엔 이분이 추천한 이웃동네 칡냉면을 배달시켜 함께 미용실에서 먹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고개 숙여지게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이분이 남자들 머리커팅을 아주 잘하시는데, 이전의 수서역근처 미용실에서부터 많이 했었고 주로 장애인들 머리깎아주기 봉사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주 화요일 미용실을 쉬는데 바로 조발(調髮) 봉사를 위해서이다, 그날 못한 이들은 평일에도 미용실로 줄지어 찾아오는데 살뜰하게 맞아주는 광경을 내가 지켜본 적도 여러 번이다.
같은 천주교신자로서 사랑을 실천하는 이웃을 보는 기분은 뿌듯하다, 그래서 아내와 내가 머리를 하려가지 않더라도 산책길에 들려 믹스드 커피와 둥글레차를 얻어 마시기도 한다. 지나가면 불러 세우시기도 한다. 이런 미담의 주인공이실 이웃을 존경하고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용실에서 더 서쪽, 초등학교 담장 아래 귀퉁이엔 세탁편의점이 있다. 여기 사장님도 생활철학이 훌륭해서 본받을 분이시다.
예전엔 기업에 다니다 기업을 운영하기도 하셨다는데. 은퇴 후엔 클린토피아 분점을 맡아하신다. 노트북을 펼치고 독수리 타법으로 세탁물을 수납하고, 틈이 나면 직접 내린 커피를 권하기도 하며, 이모저모 세상이야기를 나눈다.
경북 김천에서 성주방향 시골이 고향이라고 해서, 백두대간 등산하며 갔던 그분의 고향지역 황악산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는데, 중국무협지들이 수록된 컴퓨터 메모리스틱을 주기도 하고, 당구에 취미를 붙였다니 쓰리쿠션 뱅크샷 요령 ‘파이브앤하프시스템’도 설명해 주며, 건강에 도움 될 거라면서 손가락 관절 지압 요령도 알려주신다. 참 지혜로움이 커피 향 같은 분이시다.
간혹 병원 가는 날엔 아주머니가 대신하고, 최근엔 아들도 와서 대신한다. 척 보기에도 참 다정한 가정이다. 이분도 천주교신자이고 쉬는 날엔 머리깎기 봉사에 나서고 있다. 옆 점포 미용실 원장님과 함께 모범시민(^^)이시다. 나 같은 나이롱 천주교 신자로선 더욱 더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까지 내 친근한 이웃으로 소개한 중의 구둣방 빵집 미용실 세탁소하시는 분들은 서로서로 ‘성실하고 훌륭하고 사람 좋은 사람들’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말 유유상종 같은 골목의 따뜻한 이웃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여름철 텃밭에서 수확해 오는 상추 가지 고추 배추 등을 나눠주기도 하고, 가을철 처남이 보내오는 청도반시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 빵집 빵을 살 땐 곰보빵이나 단팥빵을 더 사서, 이분들게 간식하시라고 나누어 준 적도 있다. 그런 인정 나누기가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비록 통성명을 하거나 나이를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은 사이이면서도 말이다.
이 밖에도 다정한 인사를 나누는 이웃들이 있다,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 같은 층 옆집 부부는 엄청난 미남미녀라서 말붙이기가 주저될 정도였는데, 미녀 부인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다 마침 친구들과의 텃밭에서 가져오던 잘 생긴 가지 2개를 주면서 말문을 텄고, 그래서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야구를 해 뒷바라지에 바쁘다는 사연도 들었고, 엄마를 닮아 예쁜 딸이 많이 커서 엄마와 구분이 안 된다는 덕담을 나누기도 해, 요즘은 우리 부부에게 산책 잘 다녀오란 인사도 해오곤 하게 됐다.
아파트 우리라인 청소담당 아주머니는 선천적 보행장애가 있어, 우리 아내가 아픈 이후로 걸음이 뚜걱거리자 동병상련의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며 아침 인사를 반갑게 나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동차로 부지런하게 단지를 출입하며 열심히 사시는 야쿠르트 아줌마와의 건강한 웃음인사 나누기도 봄바람 가을볕과도 같다.
큰 길 건너 마트 점원 분들과도 사이가 좋다. 마트를 집의 냉장고처럼 생각해서 냉장고를 비우자는 ‘미니멀라이프’ 캠페인에 호응(?)해 식음료 조달은 매일 산책길에 해결하려 들리는 우리 부부가 커플룩으로 나타나면 참 보기 좋다면서 덕담의 인사를 먼저들 해주고, 주인 아들이기도 한 푸줏간 총각은 우리 취향대로의 돼지목살을 정성껏 잘라 주니 그저 좋다.
게다가 주인 가족도 같은 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음을 서로 알게 된 이후론 더욱 정다워졌다고나 할까.
빵집 큰거리 쪽 자주 가는 약국의 약사님도 참 마음 편히 대해준다. 평소의 잔잔한 병증에 대해 처방이 필요 없는 적당한 약을 물어보면 성심껏 복약요령까지 잘 알려주어 주치약사(?)나 다름없는데, 코로나 창궐 초기 마스크가 부족했을 때. 생년월일 상 목요일이 구매해당일인데 아직 여유가 있어 머뭇거리자, 마스크가 막 도착해 여분이 많으니 사가시라고 권해주기도 할 정도였다. 이 또한 믿음을 주고받으니 고마운 이웃이 아니겠는가!
아울러 늘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는 건, 우리 아파트의 관리소와 경비실 근무하시는 분들이 참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시는 모습들이다. 집안 시설 고장이 생기면 방문해 성심껏 해결해주고 이후 예방정비요령이나 수리요청 연락할 전문업체 전화번호까지 자상하게 알려준다.
전지(剪枝)를 하고 낙엽을 쓸며, 오물을 줍고 인공연못과 개울의 장애물들을 정리하는 모습이 자기 집 정원처럼 애정 어린 손길로 가꾼다. 분리수거도 도맡아 하는데 주로 경비근무하시는 분들이다. ‘경비인 내가 왜 이런 일을~?’ 같은 식 불만의 기색일랑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저절로 늘 ‘수고하십니다.’ 인사하게 되고, ‘좋은 하루 되십시오.’란 인사를 되받게 된다.
이 정도면 아파트촌에서도 다정한 이웃들이 아닐까? 모든 게 저 하기 나름일 것이다. 나이 들어 늦게나마 이런 점을 깨달으니 다행이다. 정말 나날의 작은 행복을 누리게 되는가 보다. 우리 이웃들 모두 행복하기 바란다. ♣
2020년 11월4일
一鼓 金明秀
첫댓글 참 따뜻한 글이네. 미국에서는 이웃과 친해져도 한계가 있고 늘 겉돌기 마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