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닦는 최고의 수행법, 염불】
/ 선용 스님
나무아미타불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맛있는 음식을 향해,
세상의 명예를 향해,
돈을 향해,
육신의 쾌락을 향해,
우리의 마음은 거대한 메모리 칩이요,
유능한 화가와 같아서 내가 생각하는 모습을 그리고,
온 우주와 시방법계를 모조리 담을 수 있는
거대한 용량의 메모리 칩과도 같아서
모든 현상, 모든 소리, 모든 행동, 모든 의식을
찰나 찰나에 놓치지 않고
모두 저장시키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시겁으로 저장되온 기억들이
모두 잠재의식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까르마가 되어 나의 수행에
때론 장애가 되기도 하고
때론 큰 힘이 되기도 하지요
전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만나서
부부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 샌가 자신들도 모르게 닮아가게 되며
타인들로부터 닮았다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또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시키며,
너무나도 괴롭게 하는 시어머니를
마음 속에 자꾸 미워하다 보면 어느샌가
며느리도 자신의 시어머니처럼
새로 들어온 며느리에게
자신도 모르게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또 사찰마다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을 열심히 예경하고
수행하는 주지스님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과 흡사한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주지스님을 만나기 전에 부처님만
먼저 뵈어도 주지스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현대 과학에서 얘기하는 유전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닮음꼴현상인데,
이러한 것들은 오직 부처님의 말씀인
유식론에 근거한 마음작용으로 밖에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모든 만물은 다 마음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서 상대를 보고 닮아가고
물들어가는 현상이 바로 마음작용의 원리이지요.
능엄경에도
‘사람이 양을 죽여서 잡아먹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되고,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된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러한 원리도 역시 사람이 양을 죽일 때,
마음 속에 양의 모습을 사진찍어 메모리 시켜
마침내 사람이 죽을 때, 자신이 죽인 양의 모습이 떠올라
양의 태를 쫓아들어가 사람은 양이 되고,
양은 죽으면서 사람에게 원한과 분노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자신을 죽인 사람의 모습을 사진 찍어,
사람의 태를 쫓아 들어가 사람의 몸을 받고
죽을 때 강한 분노를 일으킨 까닭에 사람이 되어서는
화를 많이 내거나 깡패가 되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가 염불이 최고 수행이라고 믿고
또 열심히 염불수행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마음작용의 원리에 입각해서
우리 마음 속에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고
입으로는 부처님명호를 부르고
행으로는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거룩한 행을 본받아서 실천할 때
바로 우리 자신이 부처님이 되어가는
최상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 순간 자신의 마음자리를
놓치지 말고 항상 돌이켜 볼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운마음,
좋아하는 마음,
물질에 대한 탐욕심,
이성에 대한 탐욕심,
분노심, 공포심, 명예에 대한 집착심 등
모든 허망하고 부질없는 마음들을
순간 순간 돌이켜서
그 마음에 대고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부르면서
우리의 번뇌에 물든 마음자리를
부처님의 마음자리로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마음을 닦는 염불 공부이며,
이렇게 마음을 닦아나갈 때
비로소 '번뇌' 즉 '보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어떤 분한 일을 당하거나,
남에게 큰 손해를 보았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모든 것은 인과법이니까..’
‘전생에 내가 지은 죄과를 지금 받겠지..’
이렇게 마음을 돌이켜서 분노를 누르고,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단순한 회심(廻心)이지,
마음을 닦는 공부법은 아닙니다.
물론 회심을 통해서도 우리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가라앉힐 수 있지만 그러한 회심은
진정으로 우리의 마음 안에
메모리를 지워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거나
부부간에 갈등으로 화병이 생긴 분들도
모두 나름대로 회심(廻心)은 하지만
결국 홧병이 생기는 까닭은
바로 우리의 마음자리를 닦아내는(수심:修心) 공부와
회심으로 순간 순간을 모면해 나가는 것과의 차이점입니다.
마음을 닦아나가는 공부는 우리가 순간 순간
부딪쳐나가는 문제에서 바로 바로 마음자리에 물든 마음,
잘못된 메모리, 무시겁으로 저장되었다가
용솟음치고 올라오는 업장들, 바로 이러한
마음자리를 모두 부처님명호로써 용해시키고
분해시켜서 다시 부처님성품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심(廻心)과
수심(修心)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회심은 쓰레기를 수면 밑으로 잠재워서
가라앉히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수심(修心)은 물위에 뜬 쓰레기를 건져내는 방법이며,
더 나아가서는 물 밑에 가라앉은 쓰레기마저
휘휘저어 물 위로 끌어올려서 건져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진정으로 마음닦는 우리 염불행자에게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절천지 원수가 아니라
바로 나의 업장을 제거해 주는
참 스승이며 고마운 도반이 될 수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되지 않고 모두
공부거리 아님이 없는 것입니다.
- 선용 스님 / '정토법문'
- 그 림 / 담원김창배님 - 禪수묵화[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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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처님 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
감사 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