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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조용한 힘이다. 햇볕은 하루 종일 아무 소리 없이 그 열을 발하지만 그 속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인력도 역시 소리없는 힘이다. 인력에는 기계 돌아가는 것과 같은그런 요란한 소리가 없지만 모든 별과 세계가 궤도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으며 우주 공간을 변함 없이 정확하게 회전하도록 하고 있다. 이슬은 사람들이 잠을 자는 밤에 아무소리 없이 내리지만 모든 식물에 새로운 생기와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 우렁찬 천둥 소리에 전기의 힘의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번개 속에 전기의 힘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대자연에있어서까지도 힘은 조용함 속에 있으며 가장 큰 위력은 소리없이 작용한다.
호 14:5
말씀에 의지하여(눅5:1-11)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5:5)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수제자 베드로를 부르신 사건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평범한 어부에 불과했습니다만, 예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시몬 베드로를 부르신 예수님을 배우고 부르심을 받았을 때 베드로와 같이 부르심에 잘 응답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새벽 설교를 하시는 예수님(1-3)
바쁜 목회 생활에 지친 목사님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새벽기도 생활을 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부담이 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새벽 기도회는 어느 놈이 만들어 놓았노” 했다는 목사님이 유명한 길 선주 목사님이시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은혜를 받기 이전에는 새벽 기도회가 그렇게 부담이 되셨던 모양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매일 설교를 한다는 것은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새벽 기도회는 예수님이 시작하셨으니까 해야 합니다. 전장(前章) 4:31절 이하부터 볼 것 같으면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가버나움에 내려 오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31) 그리고 가르치시다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4:35) 또 이어 시몬 베드로의 집에 심방을 가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습니다.(4:39) 또 그날 날이 저물 때, 각색 병으로 앓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매 예수님은 일일이 손을 얹어 고쳐 주셨습니다.(4:40) 또 많은 사람들에게 붙어 있는 귀신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러하시다 보니 4:42절에 날이 밝아 왔습니다. 그러니까 한 밤을 예수님은 꼬박 세우시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아 오매 한적한 곳에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했습니다. 보세요, 예수님은 온 밤을 세워 복음을 증거 하시고 새벽에는 조용히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시고 이어 어떻게 하시었습니까? 오늘 본문 1절에 <무리가 옹위하여 말씀을 들을 새> 했고, 3절에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했습니다. 이 때가 아직 일은 새벽인데 예수님은 개인 기도를 마치시고 지금은 몰려온 무리에게 말씀을 하시고 가르치시니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새벽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게네사렛 호수란? - 구약에서는 “긴네렛 못”(민34:11, 수12:3)이라 하였으며 그 못의 모양이 “비파”처럼 생겼기 때문에 긴네렛이 게네사렛으로 된 것입니다. 여기 게네사렛 호수란 팔레스틴에서 제일 큰 호수로서 “갈릴리 바다” 혹은 로마식 이름으로 “디베랴 바다”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게네사렛 호수, 갈릴리 바다, 디베랴 바다라고 3가지 형태로 불립니다. 그 길이는 약 20km이고 넓이는 약 13km나 됩니다. 그리고 이 바다는 수면보다 200m나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만, 물이 대단히 맑고 고기가 많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갈릴리입니다. 이른 새벽 아름다운 게네사렛 호수가 햇살은 물결 위에 비취이고 온 호숫가는 은빛 바다가 되었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마치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한 편 예수님은 1절을 보면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무리들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옹위하여”라는 말을 볼 때 무리들이 서로 예수님 가까이에서 말씀을 들으려고 에워싸 밀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리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무리들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새벽 기도회에 열심을 했습니다. 요사이처럼 좋은 건물에서 아니고 바닷가였습니다.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말씀을 증거 하시다가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아마도 이 두 배 중 하나는 시몬의 배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배이겠습니다.(10) 이 두 배의 어부들은 지금 예수님이 나와서 새벽 설교를 하시는 곳에 참석하지를 않고 자기들의 일에만 열심 중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들이 생업에만 몰두했습니다. 이들은 이제 밤새도록 고기를 잡고 그물을 깨끗이 손질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때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우기를 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습니다. 4:38,39절에 예수님이 베드로 집에 심방을 오시고 또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꾸짖어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은 상당한 인격적인 관계성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청대로 배를 조금 띄우고 예수님은 배 위에 앉아서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앉아서 가르치는 것은 유대 랍비들의 관습이었습니다. 예컨대 산상 보훈에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무리들이 나아 오는지라 입을 열어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께서 앉으사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앉아서 가르치셨습니다.
Ⅱ.명령을 내리시는 예수님과 순종하는 베드로(5-7)
이렇게 말씀을 마친 후 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무슨 명령을 하셨습니까?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셨습니다. 여기 “깊은 바다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명령하시는 이는 누구십니까? 요한 복음 1:2,3절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이십니다. 이 주님께서 땅이 형체가 없고 어두웠을 때 주의 음성이 있기를 가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말씀에 의지하여“ 빛이 생겨났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낮과 밤이 자기 자리를 차지했고 물이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뭍이 드러났고 바다는 물러나 한쪽으로 모였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땅은 푸른 식물로 뒤덮였고 채소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기 위해 태와 달과 별들이 나타났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생물이 바다와 공중과 육지를 채웠고 마침내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능력이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믿습니다. 지금도 주께서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히1:3)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연을 지탱하시고 움직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4:12)
베드로는 예수님이 배를 달라 하시니 배를 빌려주고, 그 곁에서 말씀을 듣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힘이 생겼습니다. 또 얼마 전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심방을 오셔서 심한 열병을 앓는 자기의 장모를 말씀 한 마디로 물리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몬 베드로를 향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니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베드로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즉각 순종 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님이어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고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곧 순종을 했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했을 때 순종하기 힘든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날이 밝아 왔다는 것입니다. 고기는 해가 질 무렵이나 구름이 끼는 어두운 때에 잘 잡힙니다.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밝아 올 때는 잘 잡히지 않습니다. 2) 깊은 데는 고기가 없습니다. 수심이 200m 정도의 대륙붕에 고기가 많지, 깊은 데는 고기가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어부들의 경험으로는 고기를 잡을 여건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3) 예수님은 목수 출신이고, 베드로는 어부 출신인데 무엇을 알아서 그러십니까 할 수도 있습니다. 4) 갈릴리 바다도 알고, 깊은 데 고기가 없고 밝아 올 때 고기가 안 잡히는 것을 알고 이 밤에 고기 있을 만한 곳에 그물을 내려보았습니다. 어느 조류에 고기가 모이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순종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5) 밤새껏 잡아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이젠 포기를 하고 그물까지 다 씻었습니다. 주부들이 설거지하기 싫어하듯이 이미 다 정리를 하고 깨끗이 그물을 씻어서 마치려고 하는데 순종이란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명령을 하시자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선생님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여기 “말씀에 의지하여” 베드로는 시도를 했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대한 권위를 확신했습니다. 베드로는 주의 말씀이기에 순종을 했습니다.
노족장 아브라함의 이마에 주름이 지고 노족장의 눈에 눈물이 이슬을 맺히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말씀에 의지하여 이삭을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그 때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갔습니다.(창22:3) 그리고 그는 그곳에 당도하여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했습니다.(히11:17) 그 아들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렸다 했습니다. 노족장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아들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드렸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핀 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데 아브라함이 그것을 가져다가 이삭 대신에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여호와 이레가 생겨납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자는 친히 우리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하나님이 준비한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 의지하여” 애굽을 탈출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의지하여” 홍해에 들어섰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광야에 나섰습니다. 그 백성들이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할 때 홍해 바다가 열리고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넜습니다. 메마른 광야 40년 동안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갈 때 옷이 헤어지거나 바리 부르트거나 먹을 것이 없어 죽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로 40년 동안 먹이시고 반석에 샘물이 나게 해서 목마르지 않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오늘날도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자는 여호와 이레가 되고 번성한 삶이 있는 줄 믿습니다.
요한 복음 4:46-54절에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이 들었습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 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하가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셔서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명령을 합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고 하셨습니다. 이 때 그 신하가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했습니다. 이 신하는 “예수의 말씀에 의지하여” 믿고 내려갑니다. 이렇게 말씀에 의지하며 내려가다가 아이가 살아났다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베드로와 같이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 구약에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의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을 때 멸망당했습니다. 또 노아 홍수 심판 때에도 그 당시 사람들과 친척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심상히 여기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경외심이 잇는 자들은 모두 축복을 받고 주의 영광을 체험했습니다. 나아만은 군데 장관으로서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잠그고 가라 했을 때 그는 그 말씀을 의지하여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잠갔더니 그 살결이 어린아이 살결 같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였더니 가뭄이 다 할 때까지 기름병에나 가루 독에 기름이나 식량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하인들이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였더니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의 말씀에 의지하여 믿고 실로암에 가서 씻었더니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이여,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절을 다시 한 번 봐 주시렵니까? “시몬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말씀은 주의 명령이기 때문에 한 번 더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밤새껏 고기를 잡았습니다. 해 볼대로 다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물을 씻고 철수를 하려는데 주께서 “그물을 깊은데 가서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명령하시니 얼마나 귀찮을 터인데 주님께서 말씀하시니까 한 번 더(again)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에는 한 번 더하는 것이 나옵니다. 시몬은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써 봤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한 번 더 그물을 쳐보겠습니다.” 하고 한 번 더 그물을 치는 베드로를 봅니다.(현대인의 성경 눅5:5)
제가 잘 아는 친구 목사님은 대학을 7수만에 들어갔습니다. 그분이 6수를 하고 이젠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자살을 해 버리겠다고 해서 주일날 저녁 예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멀리 있는 그를 찾아가서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주의 말씀이니까 한 번 더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분이 순종해서 합격을 하고 지금은 실력 있는 훌륭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발명의 왕 에디슨이 발명의 왕이된 것은 말씀에 의지하여 한 번 더 하였기에 발명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그러나 기도하다가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기도하라 하셨으니 말씀에 의지하여 한 번 더 기도해 보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응답이 있는 줄을 믿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한 번 더 해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Ⅲ.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한 베드로의 자세(8-9)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는 안하고 오히려 두려워하며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떠나 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5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선생으로 알고 선생님으로 불렀습니다만, 이제 말씀에 능력을 체험하고 난 베드로는 예수의 무릎 앞에 꿇어앉아 주여!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죄인 된 자기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성실을 믿고 살았을 때 그는 자기가 그토록 큰 죄인인 줄 몰랐습니다. 자기를 의인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안았을지라도 비교적 자기는 의롭게 살았다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서 보니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사야는(사6:5) 성전에서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뵙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하며 입술이 부정한 자신의 죄와 백성의 죄를 애통하였습니다.
Ⅳ.네가 사람을 취하리라(9-10)
시몬 베드로는 주님의 무릎 아래서 자기를 발견하고 두렵고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주님은 10절에 “무서워 말라” 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할 때 죄가 드러나면 무섭고 부끄럽고 두려워 견딜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이같이 죄를 고백하고 떨고 있으니 주님은 무서워 말라 죄사함의 선포를 해 주셨습니다. 마치 이사야가 회개할 때 스랍들이 핀 숯불을 그 입에 대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해졌다는 말씀과 같습니다.(사6:7) 예수님은 사죄의 권세 자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1요1:9)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회개와 진실한 고백을 기뻐하시고 무조건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깨끗해진 베드로에게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전에는 고기를 잡기 위한 베드로였으나, 새 사람된 베드로는 이제 사람을 살리는 어부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회개하고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디모데후서 2:20-21절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 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이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주님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도리라” 베드로는 주님 앞에 귀히 쓰였습니다. 수제자로서 귀히 사람을 취하는 자로 쓰였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경외했기 때문이요, 그는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했기 때문에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자였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며 사는 자였기 때문에 귀히 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