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의 흰빵 / 이복희
종종 마음이 약해지는 유혹의 대상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몇 안 되는 것들 중에 빵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방금 굽는 빵 냄새다. 버스 정류장에서 환승할 차를 기다리고 서 있다.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뒤에 있는 빵집에서 아침 빵 굽는 냄새가 풍겨 나온다. ‘버스가 오지 않으니까 그 사이에’ 하는 핑계를 대면서 기어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막 오븐에서 꺼내지는 것도, 이제 진열되고 있는 것도 모두 보기 좋게 갈색으로 부풀어 눈과 코를 즐겁게 해준다. 군침을 삼키며 빵을 고르다 힐끗 밖을 내다본다. 저런,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왔다. 할 수 없다. 빵을 이대로 두고 뛰쳐나갈 수는 없다. 그렇게 버스 한 대를 놓치며 나는 빵을 산다.
‘빵’이라는 말만 들어도 푹신하고 말랑한 식감과 구수한 냄새가 떠올라 입맛을 다시게 된다. 입안을 그득 채우는 푸짐함은 또 어떤가. 스펀지처럼 기포를 품고 적당히 부풀어 있어 빵은 더 먹음직하다.
어린 시절 즐겨 읽던 '알프스의 소녀'. 주인공 하이디는 어린 여자 아이들의 동경이요, 꿈이었다. 좁은 우리 집 다락방은 하이디가 살던 곳과 조금도 닮지 않았지만 곧잘 숨어들어 상상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아름다운 알프스 풍광을 그려보면 양들의 목에서 딸랑거리던 방울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짚더미의 향긋함 대신 퀴퀴한 먼지 냄새만 가득한 우리 집 다락방에서 가본 적도 없는 알프스의 골짜기를 헤매기 일쑤였다. 하이디가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흰 빵은 만화의 말풍선처럼 머릿속에서만 둥둥 떠다녔다.
그때는 식빵을 구경한 적도 없어 상상 속의 그것은 항상 크고 둥근 모양이었다. 그 맛이 어떤가는 더더욱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짐작만으로도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입에 감도는가 하면 그럴싸하게 구수한 냄새까지 느껴지곤 했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 그때부터가 아닐까.
어려서는 엄마가 밀가루 반죽에 소다를 넣고 쪄주시던 찐빵 밖에는 달리 빵 구경을 못해 보았다. 가끔 아버지가 귀한 나마가시를 사다 주셨지만 그 달콤한 맛은 너무 진해 순간의 즐거움일 뿐, 한 두 개면 족했다.
그러나 덤덤하기만 한 엄마의 찐빵은 몇 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밀가루와 소다냄새가 어우러진 그 맛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어려서부터 갈 데 없는 서민이었던 게다. 덕분에 이담에 크면 빵집 주인에게 시집보내야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제빵 회사에 다니던 사람과 연애를 한 적은 있지만 빵집으로 시집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 사람과 사귈 때는 정말 말이 씨가 되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빵은 어쩌다가 먹는 주전부리 정도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다시 빵을 즐기게 되었는데 친구가 준 토스터가 문제였다. 매 끼니마다 밥을 먹어야 하는 식성인지라 특별히 필요치 않던 물건이지만 생겼으니 써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식빵을 사서 구워 보았다. 그러자 잊고 있던 빵의 풍미에 사정없이 사로잡히는 것이 아닌가. 바삭하게 잘 구워진 빵에 버터를 발라 한 입 베어 물 때의 그 맛은 도무지 끊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한 개만 더 한 개만 더 하다가 서너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기 일쑤였다. 밥은 밥대로 먹고 저녁마다 그랬으니 그게 바로 중독이 아니었을까.
입맛의 기억은 의외로 집요했다. 빵집 앞에서 머뭇거리다가도 어느새 식빵 봉지를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배 둘레 햄이 늘어나는 줄도 모르고 탐닉했던 시간들. 빠져 나오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실제로 그 후 몸무게가 많이 늘어버렸다. 물론 그 식빵이 주범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최근에 또 빵의 유혹이 만만치 않다. 동네에 새로 생긴 빵집에서 하이디의 흰 빵을 만난 것이다.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차지고 말랑말랑한 그 버터식빵이야말로 어린 시절 꿈꾸던 하이디의 흰 빵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맞춰서 가면 방금 구워 나오는 따끈한 식빵을 살 수가 있다. 식을까봐 서둘러 봉지에서 꺼낸다. 그때 전해져 오는 야들야들한 촉감은 거의 감동에 가깝다. 쫀득한 탄력이 한낱 빵조각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이럴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는 그 오래된 수식어는 유혹의 절창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입에는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촉촉한 식빵 한 쪽을 손에 들고 살살 찢어 입에 넣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이 곁들여지면 그 순간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학창시절, 어떤 친구가 자신의 왕성한 식욕을 한탄하며 스스로 하등동물이 아닌가 걱정하곤 했다. 나는 하이디의 흰 빵을 먹을 때 기꺼이 하등동물이 되어도 좋았다. 구태여 절제해야 한다든지 식탐은 저급한 것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을 터. 좋아하는 음식을 탐하는 즐거움은 삶의 소소한 기쁨 중 하나가 아닐까.
빵을 좋아한다는 나의 말에 친구하나가 흰 빵은 금물이라고 한다. 시커먼 곡물 빵이 몸에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긍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검은 빵을 먹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주 먹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이디의 흰빵’을 먹는 기쁨을 내려놓을 마음은 없다. 어린 시절의 꿈을 먹는 일은 몸에 나쁠 리가 없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