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으로서의 구제
(본문:딤전6:18,19)
나눔은 사회복지와 번영의 열쇠입니다. 경제적으로 분배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사회가 복된 사회입니다. 반면 부와 권력을 특정한 소수의 계층만이 독점하는 사회는 온갖 불행과 갈등의 요소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도 부한 자들에게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될 것을 권면합니다. 남보다 풍족하게 있는 자들이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 것을 나눠주는 것이 곧 구제의 큰 의미입니다. 나무의 정신이 결여된 곳에 불신과 미움과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제 구제의 큰 뜻인 나눔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독교적 삶의 요체인 나눔(시112:9)
1) 구원 진리의 원리임
나눔은 우리 기독교회의 삶의 원리와 요체를 이루고 있는 가치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힘과 지혜와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교제하며 사단의 사망 권세를 이기도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 은혜의 요체는 바로 '나눔'인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의 처지와 고통을 나눠지시고, 자신의 영광과 의를 우리에게 나눠주신 것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 은혜인 것입니다. "기록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후9:9)고 했듯 그 영원한 하늘의 의와 영광과 권세를 우리 죄인에게 나눠주셨기에 우리가 '성도'의 자격을 얻게 되었으며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영생의 소망을 지니고 살게 된 것입니다. 나눔의 정신은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은혜와 그 섭리의 요체를 이루는 영원한 가치인 것입니다.
2) 기독교적 덕의 요체임
그러므로 자연히 나눔의 정신은 기독교의 모든 덕의 요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삶을 나누고, 이웃과 마음과 몸과 물질을 나누는 것이 곧 기독교의 사랑 원리요 덕의 실상인 것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3:16)라고 한 것처럼 나눔의 실천이 결여된 사랑과 덕은 곧 가식이요, 위선이요, 허상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제 활동은 이웃의 어려움을 돕고자 자기의 재산을 나눠주는 초대 교회의 삶에서 시작된 것입니다(행2:4,5). 무엇이든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에 기독교의 선한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2. 구제의 본질인 나눔(히13:16)
1) 확실한 사랑의 표현임
구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대표적인 덕목입니다. 곧 사랑의 행동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은 사랑에 대한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 사랑의 실행에는 지나치게 소극적이지 않는지 반성해 봐야 합니다. 즉 입으로는 사랑을 늘상 외치지만 손은 그만큼 행치 않는 폐단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의식과 실천의 부조화, 말과 행동의 괴리는 우리 한국 교회의 큰 단점 중 한 가지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7,18)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눠주는 것은 곧 사랑의 확실한 표현이요 구제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입니다. 나눔의 실천 없이 구제를 말하거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이웃과 자기 양심을 기만하는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2) 청지기 된 성도의 의무와 본분임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람의 자비심과 동정심에 앞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행하라고 명하신 절대 명령인 것입니다. 구제는 곧 예배 못지 않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상대적인 일이 아니라 성도가 반드시 행해야 할 절대 본분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고 허락하신 재물을 빈핍한 이웃에게 나눠주어야 할 청지기적인 의무가 성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마24:45)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듯 성도의 재산은 성도와 그 친지들만이 독점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성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탁해 놓으신 것이기에 독식하고 독점할 수 없으며 이웃과 나눠야 올바른 것입니다. 나누지 않는 성도는 곧 하나님께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3. 축복의 씨앗인 나눔(잠11:18)
1) 삶의 터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임
나눔은 곧 축복의 씨앗을 심는 행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모으고 독점하면 행복이 보장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11:24)고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말씀도 나눠 구제하는 사람은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세간에는 재직시 자신의 직책을 오용하여 불의한 재물을 몰래 축적해 놓았던 전직 대통령의 행위가 발각됨에 따라 온통 떠들썩합니다. 그는 수천억을 모아 혼자 감춘 일로 국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일했던 측근들에게까지도 동정 대신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그가 그 물질을 국가를 위해 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었다면 그의 삶은 반대로 튼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눔은 이웃을 위하기 전 자신의 삶을 위한 일인 것입니다.
2) 더 많은 열매를 얻게 됨
재산은 씨와 같습니다. 심고, 뿌리지 않으면 허비만 될 뿐 증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일곱에게나 여덟에게나 나눠줄지어다"(전11:2),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11:1)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웃과 정당하게 나누는 재산만이 더 많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결론
나눔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요체일 뿐만 아니라 성도의 덕과 지혜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구제는 이와 같은 진리와 덕을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 결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로 자신과 이웃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존재 목사님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