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건축 양식은 네오 고딕을 따르고 있다.
주보성인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무염시태, 無染始胎)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당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성당' 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고, 줄여서 '명동대성당', '명동성당'으로 부른다.
1898년(광무 2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유적지로 사적 제258호에 지정되어 있다.
중림동 약현성당, 답동성당, 계산성당, 전동성당, 공세리성당 등과 더불어 구한말에 지어진 대표적 고딕 양식 성당으로 분류된다.
성당이 있는 명동 언덕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의 집이 있던 곳으로 '명례방'이라 불렸던 곳이다.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 천주교 전례가 거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김범우 토마스는 자신의 집에서 이승훈 베드로, 정약전 안드레아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고 자체적으로 공소 예식을 드렸다. 포도청 당국이 이를 적발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명문가 자제라서 적당히 훈방 조치했지만, 김범우는 중인 계급이라 고문을 받고 귀양을 가다가 사망했다. 그 후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해인 1886년부터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고 나서 새로 성당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 명동성당이다.
건축 당시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명동성당의 언덕 아래에 왕실의 어진을 모시는 영희전(永禧殿)이 있어서 풍수상 곤란하다."라며 반대해서 건축이 지연되었다. 또한 성당을 짓는 실무 기술자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왔는데,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이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귀국해버려서 지연되는 일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가톨릭 교회는 빌렘 신부가 안중근 의사의 동갑내기 사촌 안명근 야고보에게 얻은 정보를 일제에 밀고한 대가로 당시 일본인과의 성당 부지 소송 문제에서 이득을 얻고자 했다. 그 결과 일제는 안명근을 포함하여 신민회소속 독립운동가 105명을 일망타진하며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명동 성당은 하사 받은 부지로 대대적인 증축을 하였으며 그 부지는 아직도 명동성당의 일부이다. 그리고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8월 15일에 (황국) 국위선양 평화미사를 거행하고 황군 위문금을 모금한 역사가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각종 민간 쇠붙이 생필품이나 철로 등과 마찬가지로, 군수품으로 쓴다며 종탑의 종을 공출당할 뻔했다. 이때는 가톨릭 교회가 자발적으로 신자에게 금속품을 일제에 헌납할 것을 장려하던 시절이다. 이에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는 종을 치는 끈을 거두고 종탑을 폐쇄했다. 그래서 종은 무사했지만, 대신에 성당 제대 앞에 있던 철재 영성체 난간(제단과 신자석을 분리하는 분리대)이 뜯겨져 목재로 교체해서 지금에 이른다. 6.25 전쟁 때는 성당 전체가 폭격으로 날아갈 위기를 모면했다. 전쟁 당시 성당 인근에 주둔하던 인민군을 몰아내기 위해, 미군은 "명동 일대를 싹 폭격한 뒤에 성당을 새로 지어주겠다'고 한국 가톨릭에 제안했다. 하지만 윤을수 라우렌시오 신부 등 한국 가톨릭에서 결사반대해서 무산되었다. 그 후 1947년, 1973년, 2009년에 보수공사가 있었다.
1959년 3월 명동 일대를 촬영한 사진. 멀리 명동성당이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197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의 성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명동성당에서는 1976년 3.1 민주 구국선언이 발표됐고 특히 그 유명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1971년 성탄 자정미사 강론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조작을 폭로했던 1987년 5.18 7주기 추모미사가 거행됐고 6월 항쟁 당시에는 대학생 농성단의 은신처로 역할을 다했으며, 6월 항쟁 이후에는 항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각종 미사들이 집전되었다.
🙏🏻1984년 명동성당은 성당 건립 이래 가장 큰 손님을 맞는다.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대회 및 103위 시성식을 주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교황은 행사 당일인 5월 6일 대회장에 가기에 앞서 오전 8시 명동성당을 방문했다. 교황은 성당 오른편에 있는 명례방 집회 성화와 한국 천주교 창립 주역인 이벽 세례자 요한ㆍ이승훈 베드로ㆍ김범우 토마스 성화, 교황 방한 기념 부조를 축복했다. 이어 제대 앞에 마련된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한국 천주교회와 한민족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2014년 사목방문차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일정의 마지막으로 명동성당을 방문하였다. 교황은 명동성당 내 꼬스트홀에서 한국 종교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진 후 대성전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주례하면서 남북한의 용서와 화해를 촉구하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