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6월14일 [(녹)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내렸다(야고 5,18 참조).>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8,41-46
복음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 [서울]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2018년 나해 6월14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왼쪽 손목이 부어서 잘 가는 침술원엘 갔습니다. 원장님은 부은
손목을 치료하지 않으시고 오른손에 침을 놓으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반대편에 침을 놓는데도 왼쪽 손목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원장님은
얼음찜질하거나, 감자를 썰어서 손목에 붙여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부은 손목에 침을 놓으면 오히려 더 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왼쪽 손목은 시간이 지나 부은 것이 가라앉으면 침을 놓는 것이
좋다고 하십니다.
저는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감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화가 나 있을 때는 잠시 멈추는 것이 좋았습니다.
화가 나서 결정하는 것들 때문에 때로 일을 그르치기도 했습니다.
화가 나 있는 상대방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도 결과는 신통치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화가 난 감정을 추스르면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면
좋은 방법이 떠오를 때가 많았습니다. 화가 난 상대방도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할 때가 있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상대방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현명한 방법 같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요한복음 8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은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손에는 돌이 있었습니다.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은 율법에 따르면 돌로 쳐서 벌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떨고 있는 여인을 보셨습니다. 감정에 휩싸여 눈에는
핏발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셨습니다.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되기 때문입니다. 벌을
주어야 한다는 분노를 가졌던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습니다. 떨고 있던 여인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 그리고
여인에게도 이야기하십니다. ‘나도 그대의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
어제는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감정에 얽매이기보다는 국민의
선택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면 더욱 겸손하게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해야 할 것입니다.
기대한 것보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역시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인공위성이 없고, 기상 관측기구도 없던 옛날에는 자연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지혜롭다 하였고, 자연의 이치를 아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은 바람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것이 ‘적벽대전’입니다. 이슬람
제국이 해상 무역을 통해서 신라의 경주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람을 이용할 줄 알았고, 경도를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콜럼버스가 바람만을 이용해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편서풍이 있다는 것을, 무역풍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엘리야도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였습니다.
먹구름이 흘러오는 방향을 예측했습니다. 가물었던 땅에 비가 내릴
것을 예측했으니, 그 옛날에 위대한 예언자로 불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내비게이션, 인공위성, 기상관측 기구를 통해서 원하는 곳을
쉽게 갈 수 있고, 1주일 혹은 한 달가량의 날씨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혜롭다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것은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인공위성으로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파처럼 겉모습만 하느님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누며,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며칠 앞의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사람에게 화가 난다면|전삼용 요셉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6월14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오 5,20ㄴ-26
사람에게 화가 난다면
학교-성당-만화방 밖에는 모르던 한 여대생이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2003년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렸습니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미투’는
작은 일이 아닌데 그 당시는 더 엄청난 무게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교수를 음해하려 한다느니 꽃뱀이라느니 하며 가해자의 편을 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온 몸과
입천장까지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밤에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몸이 그걸 보여주려고
두드러기를 생기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 몸에 돋아난 불꽃과
같은 두드러기들의 이름을 ‘화(火)’로 붙였습니다.
그 이후로 다니던 성당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있었습니다. 겨우
숨을 쉴 정도의 힘만 있었고 그나마 부모님의 간호만이 큰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죽고 싶었지만 부모님을 보아서라도 살아야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숨을 쉬는 것뿐이었습니다. 방 안에서 숨을
쉬고 겨우 일어나 산책을 하며 숨을 쉬고 요가를 하며 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가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쁘다... 이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피부병은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치유가 되었습니다. 화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성경구절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네 이웃을 미워하는 것은 내 몸을
미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내 몸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몸이 이웃의 몸과 둘이 아닌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요가를 통해 많은 봉사를 하며 독일인 남편과 매우 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처: ‘지금 나를 만나러 갑니다’, 최아룡 몸과마음연구소 소장,
세바시 287회]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웃이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라고도 하십니다. 이것은 삼중직무
중의 예언자직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남을 판단하는 것과 예언자
직무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남을 판단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고 예언자직무는 이웃을
위하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할 때는 화가 나지만 예언자직무를 수행할
때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어떻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이웃에게 화가 나면 내가 화를
입는다는 것을 알면 용서하기가 조금 수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아룡씨가 이 강연을 하며 제목을 ‘지금 나를 만나러 갑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나’는 나의 나가 아니라 이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운영하는 요가학원의 이름이 ‘세상 속으로 가는 요가원’
입니다. 이웃 안에 내가 있습니다. 이웃을 만나지 않고는 나를 만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예언자직무를 수행하면서 이웃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웃의 잘못을 용기 있게 지적해주면서도 그것이 자기에게 하는
것처럼 사랑으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지적하되 화를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에게 피해자의 아버지가 법정에서 가해자에게 한
말을 들으며 참된 예언자직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사람에게 화가 나 있다면 예언자직무가 아닌 사람을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아들아, 나의 조카여. 내 아들과 그의 어머니를 대신해서 나는
당신을 용서하겠소. 자네가 저지른 범죄를 자네 탓으로 돌리지
않겠네.
난 자네에게 화나지 않았네.
당신이 내 아들을 난도질한 무리 중 한 명이라는 이유로 말일세.
나는 악마에게 화가 나있을 뿐일세.
나는 악마를 탓하겠네.
자네를 잘못 인도하고 그런 끔찍한 범죄로 이끈 그 악마를 말일세.”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도회] 작은 것이 소중합니다!
2018년 나해 6월14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작은 것이 소중합니다!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큰 사건사고들, 인간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참극의 발단을 쫓아 올라가보면, 너무나 사소한 것이어서 헛웃음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눈빛인데, “왜 쳐다봐?”로 진전되면서, 전치 몇주의
진단서가 나옵니다. 그냥 혼자 웃었을 뿐인데, “왜 비웃냐?”로
전개되면서 난투극이 벌어져, 구치소까지 가는 케이스도 봤습니다.
별 의미 없이 던진 말 한 마디가 도화선이 되어 한 인생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방 선거를 바라보면서, 더욱 말이 지닌
파괴력, 위험성을 실감합니다. 따지고 보니 작은 것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잘못 사용될 때, 그
누군가에게는 살상도구로 변화되니, 사려깊고 신중한 언어의 선택이
참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런 인간의 실상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아주 강경한
어조의 권고 말씀을 우리에게 건네십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오 복음 5장 22절)
예수님 당부 말씀을 들으면서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틈만
나면 분노 조절에 서툴러, 벼락같이 화를 냈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일로 관계가 틀어진
누군가를 향해 ‘바보’ ‘멍청이’ 보다 훨씬 더 센 용어까지 사용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작은 것에 좀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겠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해야겠습니다. 작은 계명, 작은
사람, 작은 일, 작은 사랑의 실천을 소홀히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언어 사용에 있어 더욱
신중해져야겠습니다.
큰 건물이나 다리가 붕괴될 때, 그 첫 출발은 볼트 너트 조임의 부실
같은 한 작은 결함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의
불행이나 멸망도 작은 죄, 작은 악행, 작은 악담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궁극의 행복도 매일 우리가 쌓아올리는 작은 덕행의
벽돌 한장 한장에 의해 완성된다는 진리를 언제나 마음에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작은 것이 사실은 큰 것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큰 사랑을
가슴에 품지만, 사소한 일상을 정성껏 살아가야겠습니다.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피조물 안에 깃든 하느님의 손길을 찾아나가야겠습니다.
매일의 작은 사건 사고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가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 24)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6월14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 24)
서로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그것은 바로 화해입니다.
화해는 가장 좋으신 하느님께 열리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먼저 화해를 청해야 합니다.
화해보다 더 좋은 사람의 대답은 없습니다.
화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여정입니다.
화해를 통해 우리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화해만큼 더 좋은 예물은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화해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이 바로 화해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물은 바로 화해입니다.
진심으로 형제와 화해하십시오.
그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간절한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기타] 함께 기도해주는 성도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6월14일 목요일
함께 기도해주는 성도
오늘은 “함께 기도해주는 성도”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사도행전 21장 5절 말씀에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오는 길에 머물렀던
두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주일을 머무는 데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간청을 합니다.
이는 바울이 분명 예루살렘에서 큰 어려움을 당할 것을 성령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만을
원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함께 복음으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겪어야 할 바울을 성문 밖까지 전송하고 바닷가에서 바울을
위하여 무릎을 꿇어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우리도 교회 안에서 어려운
성도들을 보면 나뿐 아니라 나의 가족까지 다 나와서 함께 기도해주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교회라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는 기도해주기 원하면서 남이 어려울 때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어려운 사람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중보 기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청주]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6월14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마태5,20-26)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고해성사를 준비합니다. 이른 아침 몸을 씻으면서 육체적인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인데 마음보다 육적인 것에 집착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외적인 더러움보다 지저분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탐하고
즐겼던 모든 것에 주님의 자비를 간구합니다. 육적인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을 거스르게 마련인데 양다리
걸치기를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잘해 보려고 하면 남의 단점이 유난히 잘 보이게
됩니다.‘사람이 왜 저럴까?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이런 것 하나
제대로 못하나’ 하면서 사람을 판단하고 마음에는 화를 쌓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도 성장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늘 나는 잘하는데
남이 따라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단계를
넘어서서 남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여전히 탓을 남에게 돌립니다. 그러다 결국은 남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덩어리가 되어 남의 입에 오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재판에 넘겨지고,
‘바보’라고 하는 자, ‘멍청이!’ 라고 하는 자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 안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실까?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하면 결국은 큰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입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따라서 먼저 ‘마음을 다스려라.’
‘뿌리를 다스려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성을 다스리지
못하면 미움이 생기고 미움이 커지면 더 큰 죄를 범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죄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먼저 마음을 단속해야겠습니다.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온갖 해악이 미치길
은연중에 바라기 마련입니다. 심지어는 죽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의 첫째 편지 3장 15절에서는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난 행위도 중요하지만 내적으로 싹트고 있는 화에 대해
무엇보다도 두려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실 형제와 이웃 간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서지 않고는 그 관계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흠 없는 나를 가꾸고 주님의 마음으로
빛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도 의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의롭습니다. “마음이 똑바로 향해 있으면 행동 또한
바릅니다. 그리고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때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의로움의 징표는 화해입니다. 하느님과의 화해를 원하시거든 먼저
사람과 화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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