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6월21일 목요일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제1독서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48,1-14
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5
◈ [서울]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2018년 나해 6월21일 목.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지난 수요일에는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집권당인 민주당의 압승으로 드러났습니다. 17곳의 광역
단체장 중에서 14곳에서 승리했습니다. 서울에서는 100명의 시의원
중에서 97명이 당선되었고, 경기도에서도 129명의 도의원 중에
128명이 당선되었습니다. 이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민주당은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고민하고,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당은 다음 선거에서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쇄신해야 할 것입니다. 새는 두 개의 날개가
있기에 원하는 방향으로 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비판을
할 수 있는 세력이 있어야 더욱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은
배를 띄우는 물과 같다고 합니다. 배가 국민의 뜻을 따라서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서 가면 순한 파도가 되지만, 국민의 뜻을 저버리면
사나운 파도가 되어서 가라앉히기도 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신앙의 꽃이 핍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풍요와
번영 속에서도 신앙의 꽃은 시들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30년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사제가 늘어났고, 신자가 늘어났고,
성당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교회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사제 성소가 줄고 있습니다. 쉬는 교우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 소외된 이, 아픈 이들에게 교회의
문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외적인 성장을 채워줄 영적인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모님도 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주님의 뜻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길을 가기 전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치워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성모님과 예수님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잘못한 이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 또한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자본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어려움이
없어지기를 기도하기 전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 나가듯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우리는 살면서 고난과 역경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고, 유혹에
빠지지 말며, 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불 소용돌이|전삼용 요셉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오 6, 7-15
불 소용돌이
강길웅 신부님의 말씀 중에 멍 수녀님과 똑 수녀님의 이야기가 나와
소개합니다.
멍 수녀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성은 멍 씨가 아닌데 다만 그분의
재주가 신통치 못하여 이에 답답함을 느끼신 본당 신부님께서
“멍청이”라 부르신 데서 나온 이름이었습니다. 원래 그 수녀님은
드러내 놓을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성가도 잘하지 못했으며
교리지도도 더듬거렸고 나중에는 제의방으로 밀려났는데 그것마저도
본당 신부님의 신경을 자주 건드리곤 했습니다. 그저 재주가 있다면
“멍 수녀!”하고 불러도 늘 생글생글 웃는 그 미소가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멍 수녀님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신자들이야 으레
약자편이긴 하지만, 늘 겸손하시고 신자들의 어떤 말도 다 받아 줄
뿐만 아니라 남몰래 많은 기도와 희생을 하고 있는 줄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 원장 수녀님은 나이는 멍 수녀님보다는 훨씬 적으나 대단히
똑똑하고 재주가 반짝반짝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독선적이고 직설적인 언행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상처를
받게 되었고 그래서 신자들은 ‘똑 수녀님’을 싫어하고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그 수녀원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원장 수녀님이 신부님들의
사생활에 대해 얼마나 ‘따따부따’하시든지 듣기가 아주 민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원장 수녀님의 생활도 대단히
고급화되어 있는데도 아마 자기 자신의 모습은 잘 안 보이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때에도 멍 수녀님은 그 특유의 재주인 미소만을 가지고 우리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다 받아 주고 계셨습니다. 결국 멍 수녀님은 본당
신부님과 원장 수녀님의 합동작전으로 먼 곳으로 쫓겨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가실 때는 눈치를 보느라 많은 이들이 전송을
해주진 못했지만 가시고 난 뒤에는 수녀님을 잃은 아쉬움과 불만으로
많은 이들이 분개를 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재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재주는 자신의 눈을
감기게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위선의 탈을 뒤집어쓰게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신앙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내려가는 겸손을 닮을
때 축복이 되는 것이며 잘 사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왜 멍 신부가 되지 못할까? 세상을 바보처럼 사시지만 그 속에
사랑이 있고 평화가 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최고의 덕인 겸손으로
사시는 멍 수녀님을 생각하면서 닮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도 해봅니다. 멍 수녀님, 사랑해요!
엘리야 예언자는 불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 올리어져 엘리사에게
자신의 겉옷을 떨어뜨려주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겉옷을 받고
성령으로 가득차서 그 또한 스승 엘리야 못지않게 큰일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건널 때에도 불기둥이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불기둥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엘리야가 예수님이라고 하면 불기둥은 십자가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제단이고 그 불은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의 불로 자신을 봉헌하면 이 세상에 또한 성령을 전해주는
이가 됩니다.
가끔 화장터에 가서 관 속에 들어있는 작은 육체가 거센 불로
순식간에 태워져 재만 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남는 것은 한 줌의 재입니다. 이 세상 것은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 타고 재만 남았을 때, 그래도 무언가
남아있다면 그것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참 나입니다.
이렇게 불로 내 자신을 붙잡고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들을
태워버리는 과정이 광야의 과정입니다. 가나안 땅에 다가갈수록
자신은 불로 옷을 태워 벌거벗겨지고 살을 태워 정결해지며 뼈를
태워 재만 남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제인 나도 아니요, 돈 많은 나도 아니요,
성공한 나도 아니요, 봉사자인 나도 아니며, 아버지나 어머니가 된
나도 아닙니다. 그냥 ‘나’ 자신입니다. 불로 탈 수 있는 세상 것이 다
타버리고 남는 나가 참 나입니다. 하느님은 태어날 때 숨만 쉬고 있을
때의 나를 원하십니다. 그때가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이 세상 것들로 자신을 꾸며가며 거들먹거리기 시작할 때 그분을
만들어주신 입장에서는 다시 그 옷들을 벗기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른이 되어도 그런 어린이의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살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나를 바보라 하여도, 무시하여도, 침을 뱉어도,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여도 그냥 웃어줄 수 있는 ‘멍청이’가 될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가벼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칫 영성생활을 하면서도 옷을 벗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두껍게
자기를 세상 것으로 채워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불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게 아닙니다. 광야로 나온 게
아닙니다. 저도 가끔은 무례한 모습을 보이는 신자가 있으면,
“사제에게 그러면 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사제의 옷을
입은 교만한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합니다. 아직은 벌거벗은 나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제로 옷 입혀진 나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는 ‘나중에’ 입혀진 옷입니다.
그런 것들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더군다나 이 세상에 어떤 유익한 것도 남길 수 없게 됩니다.
내가 타서 남길 수 있는 것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나는 불 소용돌이 속에서 광야를 걷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이집트 땅에 머물며 세상 것들로 참 나를 더 두껍게
가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주님의 기도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6월21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 6,7-15: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이들이 기도할 때 말을 많이 하면 하느님께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신다고 생각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에서 우러난 믿음의 기도를 바치라고 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며, 우리가 아뢰기도 전에
우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고 계시다. 그러니 기도는 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총을 내려주실 마음이 드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것은 아들을 믿는 이들의 특권이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라는 말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말이며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우리에게
든든한 확신을 주실 수 있도록 아버지라 불리기를 바라신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9절)는 우리의 기도로 더욱
거룩해 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나날이 우리
안에서 거룩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기를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살아 우리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은 먼저 하느님 나라가
자신들 안에 세워지기를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다스리시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이시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지만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모든 것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즉 의인들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듯이, 죄인들이 회개하도록 죄인들도 당신의 뜻을 행하게 해
달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 청원은 하느님의 정의가 마침내
행사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용할 양식은 나날이 구원의 양식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가
죄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과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 양식을 받아 모시며 우리는 거룩한 신성에 참여한다. 이 일용할
양식은 하루에 충분한 만큼만 주어지며 내일을 위한 영원을 위한
양식이며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양식이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짓기 때문에 용서를 청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이
청원은 우리가 용서를 청하는 이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전제한다. 우리에게 용서를 청하는 이들과 같이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께 용서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용서받았으므로,
용서에는 하느님과의 확고한 계약이 담겨있다. 그것을 소홀히 할
경우 앞서 한 모든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계약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가 용서되는 것만이 아니라, 죄를 철저히
거부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하신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13절) 이 청원은 우리가
사탄에게 끌려가도록 두지 마십사는 의미이며 현재와 미래에 항상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나라가 오게 하시며, 하느님의 뜻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세 가지 청원은 영원한 삶과 관련된 것이다. 일용할 양식과 죄의
용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원되기를 바라는 뒤의 네 가지
청원은 현세의 삶과 관련한 것이다.
주님의 기도를 잘 묵상하며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를 바치며, 우리의
삶으로 이 기도를 살아야 한다. 이 주님의 기도를 잘 살려고 노력할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 좋은 방법으로 더
풍성하게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기타] 내가 먼저 하겠습니다!
2018년 6월21일 목요일
내가 먼저 하겠습니다!
오늘은 “내가 먼저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이사야 6장 8절 말씀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지방자치제 선거에도 1표 차로 희비가 엇갈린 곳이 있습니다.
‘1398 vs. 1397' 3번이나 표를 점검해봤지만 당락이 바뀌다가 결국
1표 차이로 무소속 후보가 청양군의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입니다.
유권자들 중에는 ‘내 한 표쯤이야’라고 말하지만 투표를 하지 않거나
아무런 생각 없이 투표를 하는 경우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표가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자를 뽑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어려움이
오고 또 봉사자들이 필요할 때, 내가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을
한다면 다른 성도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모두가 다 ‘나 하나쯤이야 빠져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작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은 접으십시오. 이사야와 같이
‘내가 먼저 하겠습니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솔선수범하십시오. 교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성도! 하나님이 참 기뻐하는 성도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청주] 열매를 맺는 기도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6월21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마태 6,7-15)
열매를 맺는 기도
기도는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찬미와 감사 청원이 다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합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기도하기보다
입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간절할수록 말은 적어지는 법인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떠들어 대지
마라”고 하십니다. 이는 세속의 시끄러움, 허영의 시끄러움입니다.
살아가면서 흔하게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기도해 주겠다.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기억을 되살리고 약속을
지켰는가를 생각해 보면 소홀함이 많습니다. 약속도 하고 결심도
하지만 그저 흘려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간절함으로 청하고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하며 삶의 기도를 봉헌해야 효과 있는 기도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원의를
알고 계시는 분께 떼를 쓰는 것보다는 제가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니
그 바람을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어
주십시오. 무엇이 주어지든 당신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제가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씀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해야 하겠습니다.
허공에 대고 빈말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의심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들으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니만큼 어눌한
말이면 어떻고 두서없는 말이면 어떻겠습니까? 그저 마음을 담고
사랑을 담아 믿음으로 올리면 그 정성을 헤아리셔서 흔들어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담을 그릇은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사실
“기도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 전지전능하신 이도
양보하시는 힘, 견줄 바 없는 특권, 전능하신 아버지가 그 자녀들의
필요와 염려에 관심을 나타내실 수 있는 길, 주 하느님의 창고는
기도로 열리며 믿음은 그 열쇠를 돌리는 것”(작자미상)입니다.
혹 누군가에게 약속한 기도를 잊었다면 오늘 그 기도를 채우시고
지나가는 소리로 청했다면 진지하게 갈망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바라는
간절함이 큰 만큼 걸 맞는 삶으로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지적인 사색에 있다기보다는 사랑에, 그리고 의지의 실천에
더 있기 때문입니다(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사실 간절함이 크면 클수록 입은 다물게 되고 마음은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아직도 입에 있다면 깊은 침묵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소음이 크면 그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기도하려면 먼저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
외에는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기도는 분명 하늘의
열쇠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남미 우루과이의 작은 성당 벽에 써있는 기도문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 하지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면서.
"아버지"라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하지말아라. 내뜻대로 되기를 원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말아라.
죄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도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주님의 기도에 대해 ‘완덕의 길’에서 “그
어떤 책보다도 훌륭한 주님의 기도를 정성스런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로 묵상한다면 다른 책이 아쉽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를 마음을 다해 자주
바쳐야 하겠습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수도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 9)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6월21일 목.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 9)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향하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아버지를 뜨겁게 만납니다.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찾습니다.
아버지께로 흘러가야할 우리의 모든 마음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통해 기도의 가족이 됩니다.
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우리가 되어
만들어가는 삶의 모든 관계입니다.
아버지 사랑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용서와 양식을 얻습니다.
기도로 아버지 하느님을 점점 더욱 닮아갑니다.
사람의 시간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아버지로 시작하여 아버지께로 다시
들어 올려지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가장 좋으신 아버지 하느님을 기쁘게 찾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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