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7월12일 [(녹)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제1독서
<내 마음이 미어진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1-4.8ㅁ-9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 [서울]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2018년 나해 7월12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이집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거대한 크기의
피라미드입니다. 이집트인들은 고유한 문자를 만들었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성서는 이집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기근을 피해서 이집트에서 지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갔고, 야곱의 가족들은 기근을
피해서 이집트로 이주를 했고, 그곳에서 정착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족으로 자랐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떠났습니다. 나자렛의 성가정도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서
이집트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굶주림을
피하는 장소였고,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장소였고, 박해를 피하는
장소였습니다.
프랑스의 마르세이유 항구에는 높은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성당이
있습니다. 성당에는 성모상이 있습니다. 그 성당은 한국 교회와 깊은
인연을 간직한 곳입니다. 바로 프랑스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이 조선을
향해서 선교를 떠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서 파견 미사를
마치고 조선을 향해서 떠나는 사제들도 울었고, 사제들을 떠나보내는
가족들도 울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조선은 너무나도 먼 나라였고,
조선으로 간다는 것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은 박해의 광풍이 불고 있었고,
선교사들인 파리 외방 선교회의 신부님들도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멀리 떠나는 배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선교사들은 마르세이유 언덕의 성모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요? 첨탑 위에
있는 십자가입니다. 엄숙한 전례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복장과
삶입니다. 세상 속에 살지만,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모습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조직화한 교회는 활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맡기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이 찾아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의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권위와 위선의 모습을 보여 주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양 냄새가 나는 목자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십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십니다.
“하늘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평화를 빌어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과연 오늘 교회가 그런 삶을
보여 주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한일병원에서 장례미사를 집전하고 왔습니다. 제가 본당 신부는
아니지만, 소식을 들었고, 저를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당은 관할구역이 있습니다. 교적을 옮기면 옮긴
본당에서 사목적인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사마리아로도 가지 말고,
이방인들의 동네에도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가십시오.’ 본당 신부는 본당 신자들을 먼저 도와드려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이라면 관할구역이 아니라
해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스라엘은 어느 지역이 아닙니다. 지금
병들고, 지금 가난하고, 지금 헐벗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사마리아이고, 어디가 이방인 동네일까요? 굳이
사제의 도움이 없어도 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위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지치고 힘든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와서 쉬십시오. 나의 멍에는 편하고
가볍습니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내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관할구역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내가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은 관할구역이 좀
다르더라도 함께 해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마지막 소원
2018년 나해 7월12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오 10, 7-15
마지막 소원
중국에 사는 5살 어린이 ‘첸’. 그는 얼마 전, 악성 뇌종양을
진단받았습니다. 엄마 ‘조우’는 첸을 힘들게 얻었기에 더욱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그러나 슬퍼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녀도 얼마 후 신장병 진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아들은 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엄마 조우는 매일 신장
투석을 받으면서도 아들을 24시간 보살폈습니다. 본인도
중환자였지만 아들을 살리려면 약해질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첸은
빠른 속도로 병세가 호전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첸의 종양이 재발했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습니다.
그는 암으로 두 눈이 멀고 온 몸이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병세도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담당 의사가 첸의 할머니를 조용히 불러 첸이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알렸습니다. 그러나 첸의 신장은 엄마를 살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딸에게 전하자 딸은 듣기 싫으니 당장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첸이 이 상황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자신의 신장을 주겠다고 애원했습니다.
“엄마, 난 엄마를 살리고 싶어요. 이게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오랜 시간 끝에 엄마는 아들의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평생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 작디작은 아이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의사들은 아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수술실로 모였고 일제히 아이 앞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첸의 왼쪽 신장이 엄마와
100% 일치했고 엄마는 며칠 후 완쾌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첸의 오른쪽 신장은
21살 여성에게, 간은 27살 남성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세 명에게 생명을 주고
떠난 첸의 나이는 7살이었습니다.
[출처: ‘온몸에 암이 퍼진 7살 소년의 결심’, 포크포크, 유튜브]
7살 아이의 마지막 소원은 자신을 태어나게 해 준 어머니에게 자신의
생명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생명과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 앞에서 그리도 인색할까요? 아마도 거저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은 자녀가 죽자 성당에 나오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자녀를
누가 주었는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내가 고생해서 낳고 내가
키웠다고 생각하고 나의 것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까지도 주님의 것인데 말입니다. 믿는다면서도 하느님을
주(인)님으로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우리가 ‘거저’ 받은 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고
우리가 가졌다고 믿는 모든 것이며 특별히 하느님 자신입니다.
하느님은 성령을 통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내가
하느님과 한 몸이 되어 나를 내어주면 받는 사람은 하느님을 받게
됩니다. 이것보다 큰 선물은 없습니다. 무엇이 아까운 이유는
‘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없습니다.
돈도 명예도 그 어떤 것도 나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한 순간에 빼앗아 가실 수도 있습니다.
참 주인은 주님이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
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면 부족할 것 같지만 주님께서 몇 배로
채워주십니다. 줘 보지 않으면 체험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행려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하면 그 후원자들이 생기고 그 후원자들이
주는 것을 통해 자신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주려고 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평화를 주면 평화로 가득 차게 됩니다.
행복해지는 비결은 행복을 주는 것뿐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도회]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마태 10, 10)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7월12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 10)
무거운 짐을 내려놓습니다.
주객전도의 시간을 멈출 때입니다.
물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물건이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우리의 삶입니다.
집착하는 물건을 비워내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첫 시작입니다.
잡착하고 있는 이 마음이
바뀔 때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집착과 믿음은 내려놓음에서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됩니다.
새로운 길이란 복음의 길입니다.
복음의 길이란 집착과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믿음은 내려놓음이라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내려놓아야 주님께서 써 내려 가실 여백이 생깁니다.
우리의 여정에서 기대어야 할 믿음은 지팡이가 아니라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필요한 것은 맡겨두리는 여백임을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기타] 감사의 위대한 힘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7월 12일 목요일
감사의 위대한 힘
오늘은 “감사의 위대한 힘”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3초의 기적, 감사의 힘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엠마’라는 고3 여학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학생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시속 160Km로 달려가는
자동차와 충돌하여 골반이 산산조각이 나고 횡격막이 찢어지고,
폐도 심각한 손상을 입는 큰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여성의 기능을 모두 상실했고 휠체어에 앉아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 그 절망 속에서 이 학생은 매일 1분간 웃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도 살았으니 기뻐 감사하다며 웃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순간 침대에서
일어난 이 학생은 드디어 걸어서 퇴원하여 대학을 나왔습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감사에는 이처럼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오늘부터 1분간 하나님께 감사하며 힘차게
웃어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적 같은 일이 지금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청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7월12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마태10,7-15)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10,9-10).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삶의 기본자세를 철저한 무소유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근본에 충실할 것이지 말단을 걱정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성직자, 수도자, 선교사들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일합니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을
불태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사도직 행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에서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발밑의 먼지를
털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철저한 무소유를 통해 가진 자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돈에 사로잡히고
출세를 노리는 사람은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봉사하는 대신에 출세하려고 안달하고, 돈에 얽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과 주교들이 그러고
있는지 보았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슬픕니다. 아닙니까? 복음의
근본, 예수님의 부르심의 근본은 이것입니다. 봉사하는 것, 자기
자신을 잊고 봉사에 몸 바치는 것, 멈추지 않고 언제나 저 너머로
가는 것입니다. 지위의 편의성. 저는 하나의 지위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광장을 지나다니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바리사이들처럼, 정직하지 않게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봉사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를 장사꾼이 되게 합니다."
사실 재물을 소유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용해야 할
곳에 제대로 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 때문에 하느님을
소홀히 합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다 뭐냐’ 고 합니다. 그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셨으며 물질에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쌓아놓으면 쌓아 놓을수록 줄 것이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면 줄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법입니다. 그야말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잠시 맡겨 주신
것이니 만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은 보통 돈과 물품만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입니다. 금전적인 도움은 즉각적으로
수혜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받은 돈이 떨어지면 또 다른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베풀 수 있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물질보다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요즘은 재능기부도 많이 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자기의
경험과 지식, 삶의 경륜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주십시오. 그렇지만
기왕이면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결코 물질 때문에 하느님께 소홀히 하는 일은
없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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