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9월19일 [(녹)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코린 12,31─13,13
복음 루카 7,31-35
◈ [서울]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2018년 나해 9월19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작은
조약돌이다. 그 돌을 밟고 넘어서라. 그러면 산을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고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
남북의 경제협력, 문화교류, 평화구축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 분명 산을 넘어야 하지만 많은 걸림돌이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쌓여진 불신이 있습니다. 주변국들의 이해와 득실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함께 가려고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다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남과 북이 평화와 협력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였던 우리 민족을 갈라놓은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남과 북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한 민족이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가족은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은 그럼에도
사랑해야 합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따지고 사과를 받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족은 그럼에도 사랑해야 합니다. 주변국들의 우려와
불신이 있겠지만 가족은 그럼에도 사랑해야 합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것도, 성공을 기대하는 것도, 놀라운 결실을 맺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다시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비용이 많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산을 넘어야 합니다.
겨울이 긴 것 같았지만, 추위가 계속 될 것 같았지만 작은 씨앗이 땅을
뚫고 새싹을 보여주면서 봄은 오는 것입니다. 봄이 오고 있는데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걸림돌을 하나씩 밟고 오른다면 우리는 평화와 화합이라는 산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 없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송가’를 함께 나누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내가 인간의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완고한 유다인들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9월19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7,31-35: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놀이와 장례놀이를 들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당시의 바리사이파 사람들, 율법학자들, 사두가이들,
원로들은 요한의 가르침도 예수님의 기적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따라다니지도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두고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31절) 하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춤추고 피리를 불며 혼인놀이를 하자고 해도 고집을
부리고 있고, 반대로 곡을 하면서 장례놀이를 하자고 해도 꼼짝없이
서있는 아이들에 비유해서 말씀하시고 계신다. 즉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 자는 마귀가
들렸다.’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 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33-34절). 이런 사람들의 욕구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35절)
지혜의 자녀들이란 의인들을 말한다(집회 4,11 참조). 우리는 참으로
지혜의 자녀들인가? 혹시나 우리 자신이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가졌던 사고판단, 고집스러운 비판의 자세는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진정한 뜻은 모른 채 자기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만일에 그렇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도 십자가를
외면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이 우리에게서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마르 8,29-33 참조). 이것이 하느님의 계획을 우리
마음대로 바꾸어보려는 자세일 수 있으며, 그 때문에 구원의 은총을
거부하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순간에 내가 이루어야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고집스럽게 서있는 아이들과 같은 것이 아니라, 즉시 따르는 그러한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 안에서만이 진정 풍요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진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를 위해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 자유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지만 받아들이는 한에서 자유롭고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시지만 그것은 인간이 받아들여야할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어떤 면에서 자신의 원의대로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고 싶어 하기 때문에,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즉 이기주의에서
연유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회개는 이러한 이기적인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하느님께로 하느님의 뜻에로 향하는 데 있다. 이 회개는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루카 7, 34)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9월19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루카 7, 34)
우리는 얼마나 많은 판단속에서 살아갑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은 없습니다.
착각으로 우리가 없는 그 자리에 예수님은 계십니다.
세리와 죄인들 모두 소중한 우리 형제들입니다.
우리와 다르다 여겨왔던 부정적 시각을
주님께서는 바로잡아 주십니다.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 내면을 보시며
우리를 다시 아름답게 하십니다.
모두가 함께해야 할 축제의 시간입니다.
죄인들까지도 행복해야 할 잔치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뜨거운 심장에서 다시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 이들이 오히려 예수님의 기쁜 친구가 됩니다.
오늘 우리의 친구는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살아갑니까.
예수님의 삶은 죄인들과 친구가 되시는 기쁨의 삶이었습니다.
옳은 지혜는 친구가 되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기타]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
2018년 9월19일 수요일
오늘은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신명기 4장 38절 말씀에 “너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 뜻을 대적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바로 그들의
땅으로 쳐들어가 그 땅에서 하나님의 기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치 미국의 땅이 원래는 우상을 섬기는 종족, 즉 인디언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겼고 자연을 섬겼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을 믿는 청교도들이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기독교
국가를 세우게 되었지요. 물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서
논란이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지만 결국은 우상을 철폐하고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만 복을 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나로
하여금 기업이 되게 하고 열매가 되어 그 기업이 날로 번창하고
발전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충만하고 정복하는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기업을 주고 잘 되게 하고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슬쩍 옆으로 밀치거나 뒤로 밀쳐놓고 자기가 앞서 나가고 자기
계획이 앞서 나가는 이들 참 많습니다.
나부터 하루에 몇 차례나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지 땅을 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청주] 어깃장을 놓지 마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9월19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루카7,31-35)
어깃장을 놓지 마라.
“제 눈에 안경이라” 는 옛말이 있습니다. 남은 우습게 보는 것도
마음에 들면 좋게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물론 자기는 좋게 생각하는데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모습을 인정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중심으로 사는 고집이 살아 움직일 때가 있어 걱정입니다.
고집 센 어린이들의 비유를 들으면서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7,32).는 얘기는 고집을
피우면서 상대편을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피리를 부니까
장례식 놀이를 하고, 장례식 놀이를 하려고 하니까 결혼식 놀이를
하며 피리를 부는 것은 어깃장을 놓는 행위입니다. 사실 ‘제가 하는
일에 장단을 맞춰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비딱 선을 탄 고집불통의 어린이들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남이 잘되면 축하해 주고 어려움에 처하면 같이 아파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고 시기질투의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잘못되면 고소해 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나의
잇속을 챙깁니다. 그리고는 사람들로부터 현명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해
버립니다. 실은 내가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데
세상을 탓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세상을 예수님의 눈으로
본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눈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은 우리를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너무 금욕적이라고 하여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거룩하지도 않고 세리들이나 죄인들과 어울리는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고
비판하며 자기 구미에 맞는 메시아, 구세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작 그분께서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한1,11). 그러나 구원의 길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리는데 있습니다. 완고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구원의 길은 멀고도 멉니다.
아무리 은총이 크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담지 못하고 준비된 사람에게서는 하느님의 지혜가 빛나게 됩니다.
지혜서를 보면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지혜6,14-15).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득 차 있는 그릇에는 아무 것도 담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릇을 비울
수 있는 지혜를 얻어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기꺼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눈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님께 고정되어
있습니다. 빛 속에 거니는 사람이 어둠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님께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은 시선을 헛된 것에 둘 수
없습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정채봉 @@
진자와 가짜
진짜 사랑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들어 있고
가짜 사랑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들어있다
장애물 경주
장애물 경주와 같은 것
출발보다 도착이 중요한 것
사랑의 경주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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