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10월16일 [(녹)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제1독서 갈라티아서 5,1-6
복음 루카 11,37-41
◈ [서울]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2018년 나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고양시의 저유소에 화재가 났습니다. 원인은 외국인 근로자가 날린
풍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풍등을 날린 것은 불법이었고,
외국인 근로자는 저유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이유로
긴급체포했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법적으로는 외국인
근로자가 잘못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청와대에 청원을
하였습니다. 풍등을 날리는 것이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아는
국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고, 그 정도의 풍등으로 화재가 났다면
저유소 관리를 잘못한 사람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이유였습니다. 검찰은
화재의 인과관계가 정확하지 않고, 풍등을 날린 외국인 근로자의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영장 신청을 기각했고, 외국인 근로자는
석방되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를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 보다는 저유소와
같은 위험물은 관리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논리가 타당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잘못한 여인을 데리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율법에 의하면 잘못한 여인은 돌을 던져서
단죄하도록 되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손에는 돌을 들고
있었습니다.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습니다. 법의 이름으로 여인을
단죄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못한 여인을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돌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잘
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것보다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비를 베푸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그 돌을 맞는 개구리는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율법의 돌도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율법의 돌은 유대인들을 자신들만의 ‘틀’ 속에
가두었습니다.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로마에 협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라는 ‘율법’의 돌은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도 예수님께 율법의 ‘돌’을 던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돌로
남을 단죄하거나, 심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겉으로는 친절한척하고, 웃으면서 뒤로는 남을 험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남을 돕는데
인색한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욕심 때문에 형제와 다투는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참된 신앙생활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말,
친절한 말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몸도 깨끗이 씻지만, 마음과 영혼과 의지도 깨끗이
씻읍시다!
2018년 나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몸도 깨끗이 씻지만, 마음과 영혼과 의지도 깨끗이 씻읍시다!
한 수도원에 들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들고양이지만 색깔도
연한 갈색에다 물결무늬까지 아주 잘 나왔고, 더구나 꽤나 붙임성이
있었습니다. 수사님들과 자연스레 친해진 고양이는 마치 집고양이처럼
편안히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수사님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주제는 고양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였습니다. 결과는 한 식구로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습니다. 한식구로 받아들여진 고양이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식탁 위에도 올라오지를 않나? 기도 시간에도 성당에
들어와 다른 수사님들을 따라 꾸벅꾸벅 졸지를 않나?
할수 없이 수사님들은 제2차 회의를 개최했는데, 이번에도 주제는
고양이였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다들 그간 고양이 한마리로
인해 겪었던 마음의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장시간에 걸쳐 열띤
논쟁이 거듭되었고, 마침내 꽤 두툼한 볼륨의 규칙서가
마련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꽤나 웃기는 예화입니다만, 사실 유다인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안식일 규정이며, 정결 예식 규정들도 다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정결 예식 규정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그릇된 패라다임을 한 마디로 산산조각내십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루카 복음 11장 39절)
하루에 몇번 정도 손을 씻으시는가요? 돌아보니 가난했고 위생관념이
별로 없던 어린 시절 기껏해야 하루 두세번 정도 손을 씻은 것
같습니다. 아침에 세수할 때 저녁에 자기 전에...지금 생각하니 기가
막힌 일이기도 한데, 매일 샤워나 목욕을 하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손씻기가 하나의 자연스런 문화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물론이고, 화장실 다녀올 때 마다, 그리고 식사
전후...틈만 나면 손을 씻습니다.
환우들을 방문차 병원에 가면, 어디서나 눈에 띄게 손씻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손만 꼼꼼하게, 뽀득뽀득 잘 씻어도 다양한
질병으로부터 예방할수 있게 된다니, 틈만 나면 손을 잘
씻어야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이들어갈수록 여기저기 신경써서
씻고 닦고 관리하는 것, 참으로 꼭 필요한 노력임을 절감합니다.
이런 면에서 유다인들은 참으로 시대를 앞서 살았습니다. 의료 수준이
열악하던 시절, 틈만 나면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절, 잘 씻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그들은 일찌기 파악했던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교육시 가장 먼저 잘 씻는 예절부터 철저하게 가르쳤습니다.
너무나 지혜로운 모습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이러한 위생 관념은 그들의 율법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었고, 정결예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식사전후, 외출전후뿐만 아니라, 기도나 예식 전에도 손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전, 몸뿐만 아니라 영혼과 정신도
씻는다는 아주 순수하고 기특한 의도였습니다.
정결례는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점점 확대되어, 인간이 사용하는
잔이나 그릇등 생활용품에게도 적용되었고, 나중에는 아주 엄격하게
적용되어, 이를 어길시 강경한 질타와 처벌이 뒤따랐습니다.
위생적인 삶의 습관으로 시작된 정결예식이 율법의 근본정신을
능가하고, 마침내 신앙의 근간인 하느님 위에 서게 된 것입니다.
위생적인 삶을 위해 손과 발과 잔을 자주 씻으면 좋겠다는 습관이,
거룩한 사람인가 불결한 사람인가 가름하는 삶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웃기지도 않는 주객전도 현상을 눈여겨보신 예수님께서 아주 강하게
유다인들의 그릇된 율법주의와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을
질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복음 11장 40~41절)
우리네 인생에서 보다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지 늘
성찰해봐야겠습니다.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늘 점검해봐야겠습니다.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것에 너무 몰입된 나머지, 정작 가장 중요한 것,
좋으신 우리 주님, 사랑스런 동료 인간, 불멸의 사랑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주님 앞에 설때 몸도 깨끗이 씻지만, 마음과 영혼과 의지도 정결하게
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 41)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8년 나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 41)
예수님께서는 삶을 깨끗이 하는 정화의 방향을 가르쳐주십니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납니다.
내면에서 적나라한 우리 모습을 다시 만나게됩니다.
마음이 마비되었기에 나눔도 생활도 생기를 잃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찬 우리 내면을 정화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자선이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됩니다.
마음은 자선으로 다시 깨끗해집니다.
하느님께 받은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할 사랑의 자녀들입니다.
나누고 베풀지 않고서는 깨끗해질 수 없는 우리들 삶임을 기억합시다.
하느님의 자비와 자선에 비친 부끄러운
우리 내면을 나눔으로 정화합시다.
정화의 방향은 우리의 내면에서 나눔으로 정화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원]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동정/
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11,37-41: 겉은 깨끗이 닦아도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예수님과 바리사이 사이에 논쟁이 일어난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겉으로는 깨끗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시면서 잔과 접시의 겉과 속을 닦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겉’과 ‘속’을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겉과 속이 다
깨끗하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겉이 깨끗하려면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이
순결해야 하는데, 이 내용물은 바로 자선과 자비와 하느님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신다. 거기 모인 이들이 좀
더 고결한 사람들로 만드시려고 그 순간을 이용하신다. 바리사이가
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38절)고 한다. 주님의 행동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의인이요 예언자라고
하는 자가 전통적 습관을 따르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신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39절) 예수님께서는 식탁에 놓인 잔과 접시를 들어 비유로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육신의 더러움뿐 아니라,
마음에 감추어진 것까지 씻어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이는 육체를
지으신 분이 영혼도 지으셨다는 뜻이다. 겉과 속이 다 하느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씻을 때는 똑같이 씻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육신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는 방법을 예수님께서는 알려주셨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자선을 통해 깨끗해질 수 있다. 즉 자비가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깨끗하게 되었다.”(요한 15,3)고
하셨다. 또한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준다.”(토빗 12,9)고 했으며, “네 곳간에 자선을 쌓아 두어라.
그것이 너를 온갖 재앙에서 구해 주리라.”(집회 29,12)고도 하셨다.
자비로운 행위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도망자를 숨겨주는
것만이 자선이 아니다. 병든 이와 갇힌 이를 찾아가고, 포로를 풀어
주고, 지친 사람의 짐을 져 주고, 눈먼 사람을 인도하고,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길 잃은 이에게 바른 길을 일러
주고, 조언을 해주는 것도,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자선이다.
용서하는 것도 자선이고 훈육하여 바로 잡아주는 것도 자선이다.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그가 용서받기를 기도한다고
하면 그는 자선을 행하는 사람이다. 용서하고 기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잘못한 자를 꾸짖고 적절한 벌과 함께 그를 바로잡아
줌으로써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자선에는 종류가 많다. 자선을
행하면 우리 죄를 용서받는 데 도움이 된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돈은 똥이다
2018년 나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돈은 똥이다>
복음:루카 11,37-41
몇 년 전 SBS ‘궁금한 이야기 Y’에 한 시골 할머니 사연이
방영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눈이 자주 와서 눈 치우는 게 일인
강원도 정선 산골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마을 사람들이
어느 한 집 눈을 열심히 치워주고는 도망치듯 사라져버립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누구야! 누가 왔다 갔어!”라고 호통을 치시는 90세
호랑이 할머니에게 들키면 혼이 나기 때문이랍니다(이인옥 할머니는
2015년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셨습니다). 할머니는 50대 때부터
척추 문제로 허리가 굽으셨지만 생활에 불편이 없으시고 후레쉬만
있으면 웬만한 것도 다 보일만큼 정정하십니다. 그런데 귀가 약간
어두운 할머니가 쉬시는 동안 마을 분들이 드나들면서 연탄 갈아주고,
반찬 가져다주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할머니에게 들키면 큰일
나는데도 마을 분들은 왜 이런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일까요?
할머니는 본인의 땅(16000제곱미터 상당)과 집을 모두 마을에
기부하고 기초수급 지원비만으로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하루에 한 번
배달되는 기초수급 도시락을 3등분 하여 하루 식사를 해결하십니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그것마저도 나누어먹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공덕비까지 세워주었는데, 할아버지는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시면서 가져온 재산과 농사지은 돈으로 마을에
방제초등학교를 세우셨고 할머니는 굶어서 소나무 껍질을 뜯어먹을
지경이었던 탄광촌 150명의 아이들에게 매일 밥을 해 먹이셨다고
합니다. 이분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관심을 가진 이유는 딸 셋을
피난통에 굶주림으로 모두 잃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아이들을
당신들 아이들처럼 대하며 사셨던 것입니다. 아직도 할머니는
기초수급 지원비를 모은 돈으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누구든 손님이 찾아오면 몇 만원을 쥐어주시며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마음이잖아, 서로...”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머니에게 돈은
마음이었습니다.
이인옥 할머니는 자주 돈은 똥이라고 하셨습니다. 쌓이면 악취를
풍기지만 뿌리면 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똥이 배출이
되지 않으면 변비에 걸리고 결국 관장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며 더
심하면 생명을 위태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변비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은 설사와 같은 방법으로 변을 빼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적당히 먹고 먹은 만큼 적당히 내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내보내는 것들이 거름이 되어 주위에 양식이 풍성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바리사이들이 하는 일이란
선행까지도 남들에게 보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며 불편해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썩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바리사이는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더러운 사람입니다. 그 속을
더럽히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돈입니다. 돈은 쓰일
때 가치가 있고 자신에게 머물러 있을 때는 독이 됩니다. 똥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뉴스에 보니 노키아 핸드폰을 17년 간 사용하고 한 달 용돈
11만원으로 살며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 씨가
자신의 전 재산 8천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영화 한 편 출연하는데 100억 이상씩 받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산이 자신 것이 아니며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있으면 사치스럽게 살고 또 그렇게 돈이 많은 것을
자랑하려는 일부 사람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삶입니다. 과연 누가
세상을 즐기며 사는 것일까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편법이라도 쓰려는
사람들일까요?
집착이 없어야 즐길 수 있습니다. 떠나보낼 줄 알아야 참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예인을 너무 좋아하면 그 연예인이 죽으면
자신도 따라죽게 됩니다. 이는 사로잡힌 것이지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즐기려면 자유로워야 합니다. 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은
분명 밖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돈이 마치 사람 속에 담긴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돈도 집착하면 자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과 하나가 되면 즐길 수 없습니다. 축구경기를 보며
분에 못 이겨 싸움을 한다든가 컴퓨터 게임을 하며 화가 나 컴퓨터를
부수는 정도가 되면 즐기는 게 아니고 사로잡힌 것입니다. 사로잡힌
사람이 노예생활 하면서 어떻게 삶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인생을
즐기려면 인생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은 아깝지 않게 떠나보낼 수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이겨도, 져도 즐길 수 있어야 즐기는 것입니다. 돈을
즐기려면 돈이 있어도, 없어도 상관이 없는 상태여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어야 돈이 더 많이 흘러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깨끗함은 이렇듯
집착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이런 깨끗한 마음만이 참으로 이 세상을
자유롭게 살고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뱃속에 똥이 가득 찬 사람의
불안한 얼굴로 살아가지 말아야겠습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기타] 10월 16일 (화) -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오늘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말씀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은 그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의는 갖가지 형태로 사람들에게 인지되게
합니다. 어떤 이는 환상으로 어떤 이는 응답으로 어떤 이는 선명한
꿈으로 바로 그 의가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 자신에게는 바로 강한 믿음으로 의지하게 되고
그 강한 믿음은 또 다른 믿음으로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믿으며 살다가 실패하고 쓰러지는
자가 되지 말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고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하는 것 당연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청주] 천국의 곳간을 채워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10월16일 연중 재28주간 화요일 (루카11,37-41)
천국의 곳간이 채워질 것이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랑하면 사랑이신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예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깨끗함은 사랑을 실천함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깨끗함은
겉모양을 깨끗이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즉 자선을 베풀게 됨으로써 깨끗해집니다.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선은
하느님의 자비를 우리 위에 내리게 하는 힘이고, 우리 구원의 확실한
표입니다”(성 요한 비안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선을
되도록 많이 해야 합니다. 성베드로 솔로그는 “자선으로 씨를 뿌릴 때
거기서 거두는 열매로 천국의 곳간이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담겨 있는 탐욕과 사악은 자선을 통해서
정화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정결례는 바로 마음속에
있는 탐욕과 사악함을 씻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향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선을 행함으로써 마음을 거룩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외적인 더러움을 씻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거나 마시는 그릇을 깨끗이 씻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외적인 깨끗함보다는 내면의 정결이 더 소중합니다. 모든 불의와
부도덕한 행위에서 정화될 때 그 사람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깨끗합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외적 정결함을 강조하고 중요시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잘 가꾸지 못했습니다. 거짓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들, 안 보이는 속은 내버려두고 겉꾸미는 사람들,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은 그릇을 닦는 일보다 마음을 닦는 일이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늘의 그물은 누구도 빠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외적인 규정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혼자 있어도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고 주 하느님은 속마음을 들여 다 보시니 여러분의 마음이
하늘을 향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선을 숨겨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마태6,4).
얼굴도 이쁘고 말도 잘하면 금상첨화, 둘 중의 하나가 부족하면
천만다행, 둘 다 부족하면 설상가상이랍니다. 그러나 고쳐야 할 것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에 도금을 입히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얼짱, 몸짱을 추구하지만 우리는 마음짱을
추구합니다. 마음을 잘 가꾸는 날 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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