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반려견 ‘베베’를 떠나보낸 지 일 년 하고도 한 달이 벌써 지나간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던 아픔도 조금은 사그라들었으나 숨을 거두기 전 내게 보내던 그 눈빛은 지금도 새록새록 갈마든다. 역시 떠나간 것과 돌아오지 않을 것은 가슴에 응어리를 지었다. 베베를 보낸 후에도 그 눈빛이 나를 잡고 놓지 않아 내가 많이 흔들렸던 모양이었다. 가족들이 새로운 반려견을 입양하자고 운을 뗐다. 나는 강경하게 머리를 저었다. 다시 정 때문에 아픔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가족들이 보기에 내가 너무 흔들렸던 모양이었다.
베베 떠난 지 달포쯤 되는 어느 날 자식이 인천에서 입양했다며 베베와 같은 종인 ‘보스턴테리어’ 암컷 새끼 한 마리를 안고 들어왔다. 나는 당장 데려다주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얼굴이 베베를 빼닮은 주먹처럼 앙당한 그놈은 환경이 서툰지 노상 거실을 헤매며 낑낑거렸다. 가족들이 다독이고 간식을 줘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거부하는 내게는 한사코 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본체만체하다 너무 안쓰러워 손을 내밀었다. 프랑스의 낭만파 시인 알퐁스드 라마르틴은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하지 않았는가. 놈은 언제 낑낑거렸나 쉽게 어미 품에 안기듯 내 사타구니에 몸을 말며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나도 놈을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얼굴 모습은 베베 판박이였으나 검은 톤이었던 베베와는 딴판으로 온몸이 눈처럼 희었는데 등에는 세 개의 검은 점이 삼태성처럼 박혀있었다. 가히 신비할 정도로 품위(?)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놈의 등을 쓰다듬어 주자 놈은 내 아랫배에 코를 박고 금방 콜콜 잠이 들었다. 그런 모습을 숨죽여 보던 가족들의 환호에 놈은 놀라 큰 눈을 까뒤집었다가 눈빛이 순해지더니 다시 스르르 잠들었다. 어느새 내 마음은 봄눈 녹듯 녹아내렸고, 이것으로 게임은 끝났다.
식구들은 놈을 ‘사랑’이라 불렀다. 내가 거부감이 느껴져 딴 이름을 생각해 보라 했더니 아내가 괜찮은데 하였다.
“내 사랑은 당신뿐이잖나?”
내가 말을 돌려 보았지만 아, 옛날이여! 지금은 결정권을 아내가 쥐고 있다. 덕분에 요사인 ‘사랑’이란 말과 ‘감사’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사랑이는 귀여운 볼매(볼수록 매력덩어리)다.
주먹만 하던 것이 어느새 일 년이 훌쩍 흘러 8.8KG 나가는 훤칠한 모습이 단소정한하다. 때깔이 희다 못해 투명하고 맨드리한 몸매에 초강초강한 얼굴과 꼬리는 완전 껌정이고 등에는 삼태성이 뚜렷하게 박혀있다. 지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한다. “고놈 참 자알 생겨 먹었다”고, 입에 침이 마른다. 사랑이도 그에 답하듯 자기에게 손을 내밀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아양을 떨며 수선을 피운다.
사랑이는 껌딱지다.
사람 나이로 치면 초등학교 하급생 정도 될성부른데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세상 공부하는 것이 '개의 공부'라지만 한창 사부작거리며 보체는 철딱서니다. 나를 한시라도 가만두지 않는다. 내가 TV라도 볼라치면 영락없이 코나 등, 허리나 엉덩이를 내 몸에 지남철처럼 착 붙이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흡사 빚 받으러 온 놈같이 주둥이로는 내 주머니를 다 뒤진다. 그래도 그런 놈이 귀여워 맨드리하고 보드라운 몸뚱이 여기저기를 쓰다듬고 있으면 명치에서 따뜻함이 전해와 그리 좋을 수가 없다. 그러면 놈은 한 수 더 떠 발라당 배를 까뒤집고 누워 마사지해 달란다. 그러다 내가 중단하면 앞발로 내 손을 잡아당겨 계속하라는 시늉을 한다. 그뿐인가? 일어서려 하면 주둥이로 옷자락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완전 때꾸쟁이 껌딱지다.
사랑이는 내 건강을 지켜준다.
사랑이와 나는 하루 9천 보 정도 산책을 한다. 걷는 방향에 대해 노박 승강이를 하다보면 대충 2시간 정도 걸린다. 베베 생전에는 목적지까지는 내 마음대로, 돌아오는 길은 베베 마음대로라는 암묵이었는데 사랑이는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제 고집대로다. 어쩌거나 사랑이와 함께 집을 나서면 세상 부러울 게 없고 그리 좋을 수 없다. 육체의 깊숙한 시원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치는 것같이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운동하면 나오는 ‘멜라토닌’과 사랑하면 나오는‘도파민’이 넘쳐난다. 그러다 보면 사랑이가 있어 감사하기에 감사하면 나오는‘세로토닌’은 덤이다. 같이 걷다 보면 배창지 고추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는데 웃으면 나오는 ‘엔도르핀’감동하면 나오는 ‘다이돌핀’도 끼워 달라 보챈다. 산책에서 돌아올 때까지 수 없이 승강이를 하지만 마치면 마음은 가뿐하기 한량없다. 그런데 한 가지 요상한 것은 사랑이가 베베가 생전에 잘 다니든 길과 장소를 순례하듯 보폭을 넓혀 간다는 점이다. 어느 날 꿈자리에서 그 실마리의 촉이 보이는 듯하다가 미궁에 빠졌다. 언젠가 그곳에 햇볕이 들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저러나 사랑이와 산책하는 시간은 모든 시간의 우선순위다. 어떤 모임이나 일이 있어도 사랑이와 나눌 시간은 비워둔다.
사랑이와 나는 서로 소통한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쓴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에티오피아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붙잡아 일을 시킬까봐 두려워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는 거래.’
내가 사랑이 말을 다 알아듣듯, 사랑이도 내 말을 다 알아듣는다. 말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아내는 삐죽거린다. 되는 말을 하라는 거다. 며칠 전이었다. 사랑이가 부엌에 실례를 하고 아내의 불호령에 내게 도망을 와 구원을 요청했다.
“할매 정말 무서워. 할배가 좀 말려줘”빗자루를 손에 든 아내가 걸어오며 말했다.
“저놈 봐! 할배 보고 말려달래”
아내도 이제 사랑이 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모양이었다.
우리 집에선 사랑이가 0 순위다.
우리집 절대자는 안 사람인데 사랑이가 안 사람 머리꼭대기에 올라탔으니 말해 무엇하랴. 사랑이 방은 침대가 둘이요, 어지간한 놀이 시설은 다 있다. 장난감은 산더미다. 겨울철 내방은 난방을 안 해도 사랑이 방은 우선순위다. 난방뿐 아니다. 한 달 지출 되는 경비가 내 유지비보다 더 든다. 모든 음식은 떠다 받혀야 하고, 대소변도 보면 즉각 치워야 한다. 목욕도, 세수도, 털 관리도, 모두 비서인 내 담당이다.
올여름엔 사랑이를 단련시키느라 나는 진이 다 빠졌다. 닥치는 데로 눈, 코, 귀, 입, 혀,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 새 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어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엎어지고, 배를 내놓고 까뒤집다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는데 나는 가히 몸살이 났다. 온 집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 거나 진배없었다. 아니 저리 가라다. 지금은 그래도 그 시절에 비하면 어른이다. 하지만 지난 23일엔 서울은 영하 23도라는데 산책을 하고 싶다고 야료를 부렸다. 대구도 영하의 날씨였지만 나는 째깍 명을 받들었다. 길을 나서면 제가 앞장서야 속이 풀린다. 어쩌다 내가 앞장서면 앞발을 고우고 버틴다. 그러면 나는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랑이를 앞장서게 모신다. 대감이 따로 없다. 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만물이 다 사람에게 순종하고 경외하도록 명하였거늘. 그래도 나는 주책없이 좋아라 히죽거린다. 누가 말했던가? “사랑은 받는 게 아니고 주는 거”라고. 톨스토이는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고 했지, 아마. 무릇 세상 뭇 생명은 서로 기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나도 이제야 겨우 철이 드는가 보다.
첫댓글 아직도 기억력과 사물의 분별력은 탁월하구나
정말 대단하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하는 분 앞으로 간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지극한 정성으로 사랑한 자네가
천국에 가면 얼마나 큰 상급을 받게 될지 부럽다.
베베가 생각난다 보지는 못했지만 친구를 통해 이심전심으로 그 모습이 내게 와 있었다,
다시 사랑 이가 왔다.어쩐지 이름이 베베 만은 못 한것 같지 만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 아닌가
베베를 잊고 사랑 이와 더 깊은 정이 들기를 바란다 유행가 에도 잇지 않은가,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노랫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이젠 그 노랫말이 가슴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