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12월20일 [(자)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 판관기 13,2-7.24-25
복음 루카 1,5-25
◈ [서울] 12월20일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사제서품을 받기 전에 3가지 서약을 합니다. 교구장님 앞에서
서약하고, 자필로 서명을 합니다. 독신 서약, 신앙고백, 순명
서약입니다.
독신 서약은 온 마음과 정성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온 마음과
정성으로 맡겨진 사목에 충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혼자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살지만,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지
않다면, 혼자 살지만 자기 뜻대로 산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독신은 아닙니다.
신앙고백은 교회의 전승과 교회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며,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교회의 문헌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사제는 성서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사제의
강론은 시대의 징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희망의 불을 밝혀야 합니다.
순명 서약은 단순히 교구장의 명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사이동으로 정해진 사목의 현장으로 가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순명입니다. 진정한 순명은 주님께서 맡겨 주시는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낳으셨고, 요셉과 혼인을 하였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독신을 삶을 사셨습니다. 평생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담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서 시대의
징표를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높이시는 하느님의 뜻을 아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들었던 것처럼 참된 순명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야구 경기는 투수와 포수가 공을 던지고 받는 경기입니다. 그러기에
투수와 포수는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합니다. 포수는 투수가 던지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투수는 포수가 잘 받을 수 있도록 미리
던질 곳을 약속합니다. 던지는 공의 유형도 직구인지, 변화구인지
사전에 약속합니다. 이것이 투수와 포수가 함께 공유하는 사인입니다.
사인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유능한 포수도 공을 잘 받을 수 없습니다.
사인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투수도 정확한 곳으로 공을 던질 수
없습니다. 야구선수들은 훈련을 통해서 서로 사인을 숙지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상식과 양식이라는 사인을 공유해야 합니다. 관용과
인내라는 사인을 나누어야 합니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사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징표를 보여 주시는 하느님과 그 징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하느님께서는 내 가족들을 통해서, 내가
만나는 이웃을 통해서, 흘러가는 구름과 부는 바람을 통해서 표징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나의 믿음의 눈에 이물질이 묻어 있으면 성탄의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사랑의 눈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으면 주님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내 희망의
눈에 고통의 비가 내리면 주님의 성탄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해마다 계절이 오고 가듯이, 매일 태양이 뜨고 지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내 마음에
욕망의 먼지가 묻어 있다면, 내 마음에 분노의 이물질이 쌓여 있다면,
내 마음에 열등감의 비가 내린다면 우리는 늘 새롭게 다가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대림 시기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으면 그것에 순종한다
2018년 다해 12월20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믿으면 그것에 순종한다>
복음: 루카 1,26-38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질문에,
“모든 성공은 스스로 인생을 절제함으로써 완성됩니다. 작은 성취에
들떠 한눈을 파는 사람에게 성공은 달콤한 맛만 보여준 채
떠나갑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절제하지 않는 사람에게 성공은
뜬구름일 뿐입니다.”라고 가르치는 책이 있습니다. 2백 년 전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고 3천 명에 달하는 제자를 두고 완벽한 생을 마쳤다고
평가받는 일본의 미즈노 남보쿠가 쓴 ‘절제의 성공학’이란 책입니다.
그는 폭식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하여 음식과 절제 없는 욕망
등을 버려야만 성공에 이르고 성공한 채 생을 마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음식에 대해 철저한 절제를 강조한 이유는 그의 생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는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싸움과 타락의 삶을 살았습니다. 18세 되던 해에 도둑질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그 곳에서 가난하고 죄 지은 수감자들의 생김새가 성공한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출옥 후
곧장 한 관상가를 찾아갑니다. 관상가는 미즈노의 얼굴을 보고는
“당신은 1년 안에 칼에 맞아 죽을 운명이니 속히 절로 가서 출가를
청하시오.”라고 말해줍니다.
미즈노는 관상에 대한 믿음이 생긴 터라 그의 말에 순종하여 절에
가서 출가를 청했지만 절의 주지스님은 그의 얼굴을 보더니 만약 1년
동안 ‘보리와 흰 콩’으로만 식사를 하고 오면 받아주겠다고 말합니다.
미즈노는 바닷가에서 짐꾼으로 힘들게 일하면서도 살기 위해 보리와
흰 콩만을 먹고 술도 끊고 절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어울리던
사람들이 난폭하여 종종 싸움이 일어났지만 작은 상처만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1년을 무사히 넘기고 절로 향하던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던
관상가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는 놀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군요. 어디서 큰 덕을 쌓았소, 아니면 사람의
목숨을 구했소?”
“생명을 구한 일은 없지만, 보리와 흰 콩만 먹고 1년을 살았습니다.”
“식사를 절제한 것이 큰 음덕을 쌓았구려. 그것이 당신을 구했소!”
이후, 그는 출가보다는 운명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첫 3년은
이발소에서 얼굴모양을 연구했고, 다음 3년은 목욕탕에서 벗은 모습을
관찰했으며, 마지막 3년은 화장터 인부로 일하면서 죽은 사람의
골격과 생김새를 살폈습니다. 이렇게 9년간의 수업을 마친 후에
관상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나중에는 대일본(大日本)이라는
칭호까지 받게 됩니다. 미즈노는 죽기까지 보리와 흰 콩만을 먹었고,
운명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맞혔다고 전해집니다.
1년 안에 칼에 맞아 죽을 운명이었던 그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다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평생 보리와 흰 콩만을 먹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먹는 것은 내가 정하지만 그 먹는 것이 나를 만듭니다. 그가
음식을 절제하게 된 이유는 사실 관상가의 말을 먼저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하루하루의 삶의 변화로 이어졌고 그것이
미즈노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게 되면 삶이 변화됩니다.
믿음이 이렇게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는 이유는 바로
‘믿음이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천사의 말에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신 것이 곧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이란 엘리사벳의 찬송을 듣게 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있다면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다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고 하십니다. 이 순종이 우리
안에 참 주인이신 하느님을 살게 하는 힘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만큼 믿음이 약한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께서 매 순간 우리 안에서 내리시는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순종은 믿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음은
나를 너무 믿은 결과입니다.
결국 관상도 운명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는 각자의 믿음의 대상과
그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즈카르야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해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너무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믿고
순종함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믿음만으로 구원되고 믿음이 우리 일상을 바꾼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로써 하루의 일상이 믿음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구별되어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믿고 신앙인은 하느님을
믿습니다. 각자가 믿는 것에 순종하기에 각자의 삶이 구별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예수님의 잉태를 알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8년 다해 12월20일
복음: 루가 1,26-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가 이어지고 있다. 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는데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28절) 이런 인사는 남자가 들은 것이 아니라 오직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인사였다.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새로운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28절)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천사를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하늘의 심판관을
몸에 받아 모시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녀를 당신의
어머니로 만드셨고, 당신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다. 온 세상도
하느님을 품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온전히 그 품에 오시어 사람이
되셨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1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행하시는
거룩한 신비를 드러내 줄 아기에 대하여 말한다.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
되실 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의미한다. 그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분이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34절)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이 물음은 동정
잉태라는 신비에 대한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천사는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시어 잉태하리라고 한다. 마리아가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물위를 감돌며 창조를 이루신 분도
성령이시다.(창세 1,2 참조)
마리아에게 내려와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신 성령께서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의 양식인 빵과 포도주에 내리시어,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거룩한 성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믿는 이들의 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마리아의 잉태는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요한 1,13)
성령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래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마리아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하와의 불복종을 되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한 천사였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첫 번째 처녀의 타락이 다른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이 처녀
마리아의 믿음으로 극복되고 있다.
마리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평범한 한 시골
처녀였다.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인간이었다.
그 마리아가 그렇게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고백하고 실천해야 한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 31)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8년 다해 12월20일 목요일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 31)
어떤 이름은 사람을 살리고 어떤 이름은 사람을 죽입니다.
모든 이름에는 고유한 인격이 들어 있습니다.
모든 이름에는 저마다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에는 가시가 있고 십자가가 있고
돌아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합니다.
우리에게서 예수라는 이름을 그 누구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순간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이름, 우리의 예수님이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삶을 바꾸어 줄 이름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실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삶을 사랑하게 하실 예수님의 이름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대림시기 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우리 마음에 받아 씁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통해 사랑을 배웁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기타] 12월20일(목) - 순종하는 자
오늘은 “순종하는 자”에 대해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 말씀에 “한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 하시므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순종함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만드신 최상의 제품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으로부터 원하시는 사인을 받아 행동하는 제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 성도가 세상을 주관자 되는
마귀의 말을 듣게 된 것이 바로 죄인이 되 버리고 만 것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나 목사님이 하나님의 일이나 교회에서 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 그 어떤 이유도 대지 아니하고 봉사를 하는 것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 죄를 범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부터 우리는 마귀가 기뻐하는 사람들의 소리와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로 인해서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 칭찬받는 성도가
되십시오.
죄를 선택한 아담과 하와의 실수를 결코 범하지 않도록 말씀에
순종하는 승리의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청주]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다해 12월20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루카1,26-38)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믿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확인한 후 그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보지 않고도 그렇다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믿기 위해 아는 것이 인간적이라면, 알기 위해
믿는 것은 신성에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요한 20, 29).
성경을 보면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메시지를 들은 즈카르야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루카1,18) 하고 그 메시지가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메시지가 이루어지는 날까지 벙어리로 지내야 하였고, 비로소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무엇보다도 먼저 믿었고 그런 다음에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1,34) 라는
마리아의 질문은 곧’ 어떻게 해서 처녀가 어머니가 될 수 있단
말인가?’하는 우리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천사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7)
사실 이 대답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친히 하셨던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하느냐?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내가 내년 이맘때에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창세18,13-14). 그리고 마리아의 그에
대한 대답도 확실 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우리도 마리아처럼 먼저 믿어야 합니다. 먼저 믿으면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기적이나 표징을 요구하지 말고 먼저
믿으면 애당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시련과 고통 안에서
더욱 빛나게 됩니다. 마리아의 대답은 바로 목숨을 내 놓는
기도였습니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써는 처녀가 임신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지만 당신의 일을 인간과 더불어, 인간을
도구 삼아 하십니다. 인간의 자발적인 협력 안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의 은총과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열매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믿음에 따르는 순명을 통하여 예수님을 낳아드려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만큼 우리의 믿음이 더해지길
희망하며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를 도구로 쓰십시오.’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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