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다해 5월25일 [(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16,1-10
복음 요한 복음 15,18-21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한 사람만이 십자가를 희망으로 만든다
2019년 다해 5월25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부활한 사람만이 십자가를 희망으로 만든다>
복음: 요한 15,18-21
한 부모가 딸을 낳았는데 양 팔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아무
상관 안 하고 같은 나이 또래가 하는 모든 것을 시켰습니다.
“양팔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많단다. 매일 네가 새롭게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보렴.”
그녀는 손대신 발로 콘택트렌즈를 끼고 휴대전화 문자도 보냅니다.
피아노 연주도 문제없고 태권도는 검은 띠 유단자입니다. 마침내 정식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까지 땄을 때, 사람들의 입은 떡 벌어졌습니다.
팔 없이 비행기를 조종하는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양팔 없이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게 아니에요. 제가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뿐이죠.”
제시카 칵스(Jessica Cox)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양 팔이 없으면서도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합니다. 그래서 그녀를 보며 많은 이들이 희망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고난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을 겪어야하고 그 고난을 또한
반드시 이긴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아마 그녀의 부모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딸의 장애도 희망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조: ‘왓칭: 상보성원리로 인생이 갈린다’, 김상운, 정신세계사]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난과 박해와 미움을 각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고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의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들보다 먼저 스승이 그런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알라고 하시는
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예수님을 먼저 미워하고 박해하였다는 것을 아는 것은 박해 받는
사람들에겐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결국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무한히 긍정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당신이 우리가 세상에서 받을 모든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 고난을 모두 희망으로 바꾸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겪는 가난과 멸시와 배고픔은
긍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희망으로 바꾸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링컨은 40대 후반까지 무려 여덟 번이나 선거에 낙선했고, 사업이나
해볼까 시도했으나 두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에디슨은 축전기를
발명하기 위해 무려 5만 번의 실패를 했습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 농구부에서 거절당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종일
울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선수생활 중 9,000번이나 넘는 슛에 실패했고, 300차례의
경기에서 졌습니다. 제 손에 동점골을 넣으라는 기회가 주어진 게
26차례나 됐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평생 수없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슛을 잘 날릴 수 있게 됐습니다.”
톨스토이가 죽은 뒤 그의 방을 정리하던 사람들이 방 안에 빼곡하게
쌓여있는 실패작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셰익스피어도 평생 154편의
시를 썼는데 성공한 몇 편 빼고는 형편없는 졸작들이었습니다. 음악의
신동이라 불리는 모차르트도 평생 600편이나 되는 곡들을 발표했지만
99%가 졸작들이었고 1%만 알려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실패 안에서 희망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99%의 실패가
1%의 성공을 낳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그 사람들이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도 온통 가시밭길이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
그리고 권력자들과 사제들에게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희망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수많은 실패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결코 무너져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성공한 사람이
실패를 품어야 실패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 성공을 꿈꿉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듯 넘어지고 깨지고 실패하고 박해받고 미움받고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면 누구에게도 희망을 줄 수 없고 자신도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더 큰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큰
고통과 멸시까지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부활 제5주간 토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5월25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주님을 따르는 삶
복음: 요한 15,18-21: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18절)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들로
만드시려고 고난을 겪으셨다. 그러나 우리를 계속 하느님의 아들들로
계속 남아있게 해 줄 고난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의 미움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 하지만, 주님께서 먼저 세상의 미움을 견디셨다.
우리가 이 세상의 비난을 받고 귀양을 가고 고문을 받지만, 주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일을 겪으셨다. 저주받은 세상은 박해를 하고 하느님과
화해한 세상, 즉 교회는 박해를 당한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19절) 주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현세에 살지만 그것은 우리를 붙들어 놓을 수
없다. 세상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조금도 잘못된 일이 아니다. 같은
행동으로 하느님과 세상을 똑같이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리에 복종하는 사람은 진리의 원수들과 싸워야 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20ㄱ절) 이 말씀을 제자들이 온갖 종류의
박해를 당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도 사악한 자들이 방자한
말로 그분을 공격했고, 온갖 말로 당신을 모욕하였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그분이 받으신 모욕과 굴욕적인 상황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닮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그분께 싸움을 걸더니,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시니까 제자들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이미 제자들에 앞서 당신이 먼저 박해를 받으셨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20ㄴ절)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쥐고 계시는 그분이 당신을 박해하는 자들이 각자 자신의
행실을 선택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박해를 받으셨다.
우리도 그분과 같은 길을 걸으려 한다면 박해를 당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얻는 길이다. 이것 모두가 역시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행하고 열매를 맺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21절) 여기서 ‘그 모든
일’은 세상이 당신의 이름 때문에 우리를 미원하고 박해하고 우리의
말을 업신여기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세상은 주님 대신 우리를
미워할 것이며, 주님 대신 우리를 박해할 것이고, 세상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그것이 당신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에 속한
자들과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완전히 다르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어떠한 삶으로 주님을 닮아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총을 청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운명을
지닌 운명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2019년 다해 5월25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운명을 지닌 운명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요한 복음 사가는 세상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내립니다. 먼저
긍정적인 세계관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복음 3장 16절)
다음은 부정적인 세계관입니다.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이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요한 복음 12장 31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 복음 15장 18절)
여기서 지칭하는 세상은 예수님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적대시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정신과는 달리 사탄의 지배 하에
꿈틀거리는 인간의 집단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초세기부터 엄청난 조롱과 박해, 의심과 몰이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회로부터의 대대적인 배척과 증오는 초대 교회
공동체가 매일 일상적으로 겪어야 할 현실이었습니다.
AD 64년 네로 황제에 의한 대대적인 박해를 필두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시련에 시달렸습니다. AD 90년 경
유다교 지도층 인사들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파문((破門)과
출교(黜敎) 처분을 내렸습니다.
유다교 광신자들은 출교 처분에 만족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살상하였는데, 놀랍게도 자신들의 살상행위를
하느님께 바치는 유혈 제사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박해자들의 무지와 악행,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실체를 명확히 파악했었더라면,
그토록 역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운명을 지닌 운명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으니, 우리 역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을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깊이 동참하는 것이니, 더할 나위없는 기쁨과 영예로 여겨야겠습니다.
세상이 예수님과 교회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존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비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은 요구성이 훨씬 많고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날선 지적과 충고가 가슴에 찔리고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미움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 안에서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이라는 것,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참으로 영악하고 사악합니다. 정말이지 고단수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비둘기처럼 단순할 필요도 있지만, 뱀처럼
지혜로울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 앞에 매일 펼쳐지는 이 세상, 사랑이신 하느님 손길과 흔적이
담겨있는 이 세상이기에, 때로 이해할 수 없고, 때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큰 사랑의 마음으로 성장시켜나가고 완성시켜나가야
할 대상입니다.
동시에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세상, 바로 옆의 이웃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극단적 자기 중심주의와
천박한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은, 다같이 합심해서
극복하고 투쟁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 교회는 때로 세상과 보조를 맞추어 토착화시키고 현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동시에 악한 세상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대안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요한 15, 18)|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5월25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 15, 18)
우리의 미움이 한 사람을 십자가에 메달아 죽였습니다.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점점 멀어지는 우리의 미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우리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미움입니다.
미움을 통해 무엇을 위해 우리가 살아왔는가를
다시금 반성하게 됩니다.
끝내 미움의 여정을 거쳐 사랑에 이르게될 것입니다.
미움속에서도 걸어가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미움에서 사랑으로 나가는 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이십니다.
나라는 자아가 있기에 미움이 있는 것입니다.
미움은 우리의 적나라한 민낯입니다.
미움을 통해서는 결코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고 제대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을 위한
사랑의 회복입니다.
사랑과 용서는 우리의 참된 여정입니다.
미움속에서도 사랑과 용서로 주님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하느님께 속한 사랑의 자녀들은 예수님 사랑의 길을 따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부활 제5주간 토요일
2019년 다해 5월25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작년 가을부터 어머니께서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허리 시술을 하였습니다. 시술을 잘 마치고, 재활운동을 하면 걸을 수
있다고 합니다. 걸으려는 어머니의 의자가 확고하고, 의사 선생님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걸을 수 있었던 사람처럼,
어머니도 건강한 모습으로 걸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서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난주 뉴스를 검색하면서 졸업식 축사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축사하던 연사는 졸업생들이 대출받았던 학자금 전액을 갚아주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몇천만 원의 부채를 가지고 졸업해야
했습니다. 연사가 갚아주기로 한 금액은 우리 돈으로 400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엄청난 돈을 아무런 조건 없이 갚아주기로 한 연사의
마음도 감동이었지만, 졸업식에서 한 연사의 말도 감동이었습니다.
“학위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앞으로
당신들의 부와 성공, 재능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학위는
사회적 계약입니다. 여러분의 재능과 열정을 헌신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사회와 마을, 팀이 만들어낸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도
누군가가 먼저 닦아놓은 길을 걸어왔으며 나는 여러분이 나의 선행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학위 취득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하고 인상적인 성취이며 우리 모두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가 있다는 점을 확신합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If I have seen further than others,
it is by standing upon the shoulders of giants) 성공했을 만큼
운이 좋았다면, 그다음은 당신이 타고 온 엘리베이터를 다시 내려보낼
책임이 있습니다(If you're lucky enough to do well,
it's your responsibility to send the elevator back down)”
저도 과분하게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가
있었기에 부족한 제가 거룩한 성사를 집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의 공로와 노력을 보지 않으시고, 저의 뉘우침과 회개만으로도 저의
모든 허물과 잘못을 탕감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건강을
주셨고, 함께 할 수 있는 이웃을 보내 주셨고, 마음의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받은 만큼
나누지 못한 것입니다. 용서받은 만큼 용서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전에 레지오 단원들이 피정 갔을 때, 신부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첫째가는 직무는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출석이라고 답을 하셨고, 어떤 분은 선교라고 답을 하셨고, 어떤 분은
사랑이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기도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모든 답에 점수를 주시면서 가장 정확한 대답은 ‘자기
성화’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성화 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출석하고, 자신이 성화 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선교하며, 자신이
성화 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기도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신은 성화 되지 않았으면서 남을 성화시키려고 하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분들을 볼 때도 있습니다.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곧 지치게 됩니다. 힘이 빠지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신앙이
식어버립니다. 즐거웠던 일들도 시들해지고, 성당에 나오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집니다. 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화 된 사람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기도할 수 있으며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성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원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저 고철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원이 연결되어야만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냉장고도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성화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연결될 때, 주님 곁에
머무를 때 성화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화 된 신앙인은 박해를
받을 수 있고, 고독할 수 있으며, 십자가를 지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를 살리는 길이고, 그 길이 영광과 부활의 길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청주] 더 큰 사랑으로|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5월25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요한15,18-21)
더 큰 사랑으로
꿈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룰 수 있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바라는 것에 걸 맞는 노력과 정성이 함께한다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대한 꿈을 지니되 선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거나 선에 대치되는
꿈과 희망은 결코 현실화 될 수 없습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모 그룹 재벌회장이 술집에서 폭행을 당한 아들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조직 폭력배를 동원하여 보복을 하였다는 얘기가
떠들썩하였습니다. 결국 그 아버지는 구속되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고귀한 마음은 나무랄 수 없지만 선에 대치되는 방법을 선택하였기에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빌미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선생님을 폭행한 학부모도 있습니다. 폭행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녀 교육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자녀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것입니다.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부모의 자녀에게는 바른 인성을 기대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방법을 좋아하고
그것으로 자신을 내세우며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을 자기사람으로 만들고 그것을 즐깁니다. 옳고 그렇지 않고는
상관없이, 좋고 싫고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그것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가치를
두지만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저 멀리 하늘의 가치를 봅니다. 그래서
결국 미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두려워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곧 내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이 증거 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움을 당하는 것은 악에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야 할 소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실 사악한 세상의 미움을
받지 않고 그들과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조직폭력배와 공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믿는이들은 누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구애 없이 선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상에서 뽑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삶이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극복해야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유로움과
영원함을 줄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형태의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온갖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치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는 현실에 공감하시고 "매일 공동선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일종의 순교와 같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저분하게 되거나
지치게 되더라도 우리는 현실 안에서 다시 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누가 나를 미워하면 더 큰 사랑으로 되 갚아주시길 다짐하며……
'더 큰 사랑으로', 미루지 않는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기타] 5월25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
시편 128편 1절-6절 말씀에 믿는 자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복을 받는데 평생
보증하는 것을 눈으로 볼 것이고 또 자식의 자식을 보고 건강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이런게 행복인데 많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가지 않고 자기 길을 가다가 자기 꾀에 넘어져 스스로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가 결정하는 자유의지가
있지만 자유의지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망하는 길을 택하고,
흥하는 길을 택할 수 있는데 분명 망하는 길도, 흥하는 길도 자기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길을 갈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빠져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로 가는 사람들이 왜 이리 적습니까?
하나님의 길로 가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고 놀랄 정도로 쉽습니다.
그것은 결정권을 내가 갖지 않고 하나님이 갖고 계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내기 기분대로 화를 낼 것이냐? 화를 내지 않을 것인가?를 하나님께
묻고, 행동 하는 그 결정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