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다해 7월19일 [(녹)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제1독서 탈출기 11,10─12,14
복음 마태오 복음 12,1-8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안식일에 ‘자비’의 열매를 봉헌합시다.
2019년 다해 7월19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일에 ‘자비’의 열매를 봉헌합시다>
복음: 마태오 12,1-8
“정훈이 엄마, 정훈이가 우리 애랑 어울리지 않게 신경 좀 써 주세요!!”
이런 문자를 받는다면 어머니 마음은 어떨까요? 송정훈은 날라리로
소문난 소년이었습니다. 모든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정훈이와
어울리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학생 때부터 춤이나 추러 다니고
공부는 꼴찌였습니다.
“아들, 엄마가 항상 믿어!”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20대 중반이 된 정훈이는 여전히 날라리였습니다. 부모님은
힘든 형편에도 불구하고 정훈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정훈이에게 미국 시골 유타의 삶은
끔찍했습니다. 심지어 “너 벙어리냐?”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청년은
모든 걸 포기하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 티켓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에 십만 원으로 생활하며 자신을 미국으로 보낸 부모님 때문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놈이었나?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갈 수 없어.”
그때부터 청년은 미친 듯이 레스토랑 알바를 하며 영어도 배웠습니다.
그는 공부는 못했지만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 놀라운 재능이
있었습니다. 정훈은 ‘그냥’ 서빙을 하는 대신,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특별함’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남들이 ‘바닥’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장사’의 기본을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정훈은 TV 다큐를 보던 중, 머리가 번쩍거리는 걸
느꼈습니다. 그곳엔 노량진 컵밥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컵밥으로 푸드 트럭 장사를 해보자!’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극구 말렸습니다. 정훈은 돈도 없었고 음식을 해본
경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정훈은 유학 중 만난 지형과
종근에게 동업을 부탁했고 셋은 의기투합하여 4,500만원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20년 된 트럭을 하나 샀습니다. 그들은 그 트럭에 목숨을 걸고
밤을 새우며 음식 만드는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냉담한 유타 사람들을 사로잡을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정훈은 정량만 주는 미국의 고정관념을 뒤집어보기로 합니다. 한국인의
‘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덤’으로 음식을 주고 몸을 부대끼며
손님들과 춤을 추고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추억을
선물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음식은 무조건 주문 후 30초 안에
만들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미국 전역에 노량진 컵밥 매장은 21개가 되었고
매출 3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그들은 노숙자들을 돕기 위해 자신들의
컵밥을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으며 부채춤, 태권도, 김치 행사를 열며
한국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학교 때 전국 꼴찌였던 그는 말합니다.
“자존심이 뭐가 중요해요? 내가 하고 싶은 꿈이 있는데.”
[참조: ‘미국에서 낡은 트럭 사고 인생 뒤집은 전교 꼴찌 한국인’,
포크포크, 유튜브]
송정훈씨의 부모님은 송정훈씨를 끝까지 믿어주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이 믿음 때문에 그는 무너질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교 꼴찌 날라리 아이에게 자비롭지 못했지만 부모님만은
자비로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믿어주고 희망하게
합니다. 믿음과 희망은 사랑의 양 날개입니다. 그렇기에 자비로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믿어주고 희망하는데 어떻게 잔인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임에도 남의 밭에 들어가
밀 이삭을 훔쳐 먹습니다. 이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은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을 탓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며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쉬라는 의미는 자신을 위해 그만 벌고 주님과 이웃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억매여 쉬기는 하지만 그것을 자랑삼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들을
나무라는 사람들이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하느님께 봉헌도 하고
이웃을 위해 나눔도 하라고 정해놓은 율법이 그 반대로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고 이웃을 판단하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랑이 목적이고 자비가 목적이기에 오히려 미워하고 자비하지 못하면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자비롭습니다. 믿고 희망하기에 끝까지 참아줍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연습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믿어주신 것에 대한 결과를 기다리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우리가 이제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와 자비로 보답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주일도 주님께 더 내어드리고 이웃을 용서하고
도와주는 목적의 거룩한 날이 되게 해야겠습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연중 제15주간 금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7월19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12,1-8: 내가 바라는 것은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안식일이란 창조주 하느님께서 일하신 뒤 쉬셨으므로 우리도 쉬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안식일도 그 깊은 의미를
보면,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일주일에 엿새를 일하고 하루를 쉬면서,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 즉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면서 쉬는
날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느님 안에 정신과 육체가 편안히 쉬는
날이다. 이 휴식은 그래서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살기 힘들다고, 하느님의 구원 은총에 대한 감사의 행위와
인간의 건강을 위하여 제정된 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오로지
돈만을 위해 사는 것은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뿐 아니라, 점점 자기
자신의 건강까지도 잃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지금은 더구나 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40시간 근무를 의무로 하고 있고 휴식을 하게
하는 것은 생산을 위한 충전의 시간도 되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은총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1절). 여기서 밀밭은 세상이며, 안식일은 휴식의
날이고, 밀 이삭은 미래의 믿는 이들의 수확 때 얻게 될 결과이다.
그러기에 안식일에 들로 나가신 것은, 세상에 오시어 인류라는 밭에
뿌려진 밀을 보러 오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2절)라고 한다. 이 주장을 예수께서는 다윗과
아히멜렉의 이야기로 물리치신다. 다윗과 그 일행이 허기로 지쳐서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부탁한다. 아히멜렉은 여자들을 멀리 했는지
묻고는 사제들과 레위 지파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빵을 주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호세6,6)라는 말씀을
떠 올린 아히멜렉은 그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희생제물은 바로 인간 구원이다. 우리의 구원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재를 지킨다는 것은 재를
지킨 후 그것이 이웃 사랑으로 실현될 때, 그 재가 완성되는 것이다.
형식을 채우지 못한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완결되지 못한다면 재를 지키지 않은
것과 같다.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면 그 법은 사람을 위해서 지켜져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사순절이나, 대림절에 이러한 재를 지킬 때는 이러한 마음으로 재를
지키고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완결시키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8절)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강조하신, 사람을 위할 줄 알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그래서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 8)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7월19일 금.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 8)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안식일의 독점권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에 있지 않습니다.
안식일에도 열매를 맺는 삶의 신비는 계속 일어납니다.
안식일에도 회심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아들을 위한 사람을 위한 안식일이 되어야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안식일의 함정과 안식일의 차단막을
제거하며 우리를 은총으로 이끕니다.
서로를 위한 서로의 딱한 처지를 이해하는 안식일이
살아있는 안식일입니다.
서로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간격과 거리를 좁히는 것입니다.
주님의 현존을 믿습니다.
안식일의 기쁨을 모독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우리들 마음입니다.
생명에 대한 감사가 울려퍼지는 기도의 날이 안식일임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안식일은 사랑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사람을 위한 사람의 마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서로를 자비롭게|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7월19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마태12,1-8)
서로를 자비롭게 대해야 한다.
가끔은 많은 것을 아는 척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무안을 주면 다음부터는 좀 겸손해 질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고
넘어갑니다. 그야말로 시쳇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그를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잊고 삽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이삭을 뜯어 먹은
행위에 대해서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당시 안식일 법에 의하면
안식일에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 항의하자 “성전 보다 더
큰이가 여기에 있다” 하시고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시고 안식일의 주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자비이고 우리가 서로에게 자비로운 존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은 서로에게 철두철미해 지고 사나워지지만
신앙인은 서로를 자비롭게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밀이삭을 잘랐다는 것은 안식일에 추수를 하지 말라는 규정을 어긴
것이고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면 타작하지 말라는 조항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손으로 비벼서 후후 불어 껍질을 털어냈다면 키질을 하지
말라는 법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편지를 뜯는 것도 불을 지피는
행위도 금지사항입니다. 닭이 안식일에 알을 낳았다면 그 역시 먹을 수
없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주일을 거룩히 지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렇게 철저히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한
법이 오히려 올가미가 되고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중요시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사람을 우선시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관대 하고 소위 힘 있는 사람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엄격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날 유다인이 살고 있는 이웃에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려서 나갔더니 자기 집의 가스 불을 꺼 달라고 부탁을 하더랍니다.
가스 불! 자기가 끄면 되지 그런 부탁을 하러 오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안식일이 되기 전 불을 켰는데 끄기도 전에 안식일이 온 것입니다.
불을 지피는 일을 금지하고 있으니 안식일이 다 가기까지 켜 놓을 수도
없고……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부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겉모양에 묶여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당신은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법조문을 지키기에 앞서 법의 의미와 내용을
살리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이웃에게 자선을 베푼
다음 의식상의 규정을 준수하라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알맹이
보다는 껍데기에 충실해서 야단을 맞았다면 오늘 우리는 알맹이를 빌미
삼아 규정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여 꾸중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주님의 날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찾기 보다는 내 취미와
즐기는 일을 더 우선시 하고 기도와 미사는 뒤로 미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주님의 날은 주님과 함께 쉬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면 거룩함이 넘쳐나게 되고 이웃도 우리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폼 잡지 말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기타] 7월 19일(금) - 찬송으로 변화
오늘은 ‘찬송으로 변화’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시편 40편 3절 말씀에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송 자체가 이미 지은이가 있고 이 지은이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
체험한 내용을 곡에다 붙여 만든 것이 찬송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그 찬송을 부르면서 이미 지은이의 믿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송을 부르는 것은 한 사람의 신앙 간증이 내 속에서
생생히 역사하여 또 다른 사람의 하나님의 역사의 체험으로 연결되어질
수 있게 하므로 우리는 찬송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하나님께 올리는 찬송이 새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노래는 새가 지저귀는 노래가 아닙니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하나님을 대면하는 노래가 새
노래지요.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기쁠 때 부르는 찬송이 아니라 지은이의
찬송 간증이 하나님의 찬양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주위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와 기적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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