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름 방학을 마치고 통통하게 볼살이 올라 돌아온 에디터M입니다. 이번 휴가엔 KTX를 타고 가족들과 함께 목포에 다녀왔어요. 1박 2일 여행인데 뭐 별거 있겠어요? 가벼운 기차 여행인 줄 알았건만, 어째 출발할 때보다 훨씬 무거운 몸으로 돌아왔다는 건 안 비밀.
이번 여행엔 특별한 가이드가 함께 했어요. 목포에서 한 평생을 사신 나의 당숙. 역에서 내리자마자 활짝 웃으시며 우리를 반겨준 그분 덕분에 목포 찐 토박이들이 간다는 식당만 야무지게 골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그 식당 리스트를 공개해보려고요. 온갖 산해진미를 쉬지 않고 위에 밀어 넣은 덕분에 저는 살이 3kg나 올랐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기사를 쓸 생각이 없이 정말 간단하게 다녀온 여행이라, 오늘 사진은 모두 아이폰11pro로 찍어서 좀 험블합니다. 가볍게 즐겨주세요! 그럼 시이작!
1. "목포의 조식은 여기서 먹습니다"
목포 조식으로 이곳을 추천합니다. 전라도 특유의 후한 밥상 인심을 느낄 수 있거든요. 메뉴는 깔끔하게 백반 하나. 들어갈 때 몇 명인지만 이모님께 말하면, 커다란 알루미늄 쟁반에 우려 스무 가지가 넘는 반찬을 차례차례 올려주세요. 새끼갈치 무침이나 잘 삭힌 고추 장아찌, 서울에서 보던 것보다 조금 크기가 작은 게장, 이곳의 특산물인 무안 양파로 만든 양파김치, 맛조개 간장조림, 매콤한 꽈리고추 조림까지. 아…여기까지 쓰는데 입에 침이 고여요.
그런 느낌 있잖아요. 외할머니네 놀러 갔는데, 할머니가 “에휴, 너무 갑자기 와서 차린 게 별로 없어”라고 말하시며 보물처럼 아껴두신 냉장고 밑반찬을 쫙 차려주신 그런 한 상말이에요. 딱 그런 느낌의 밥집이었어요. 하나같이 간이 삼삼하게 되어 있어서 반찬 한 입에 밥 두 숟갈은 먹어야 하는. 이건 뭐 밥 도둑이 아니라 밥 도적떼예요.
특히 통통한 조개를 잘 삭혀낸 조개젓을 매콤하게 무쳐낸 이 반찬! 저는요. 이거 하나만으로도 여기에 또 올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뭉근하게 익힌 무와 부드러운 고등어조림도 너무 훌륭하구요. 솔직히 평소에 해산물 반찬을 막 찾아서 먹는 편이 아니었는데… 아직 잠이 덜 깬 이른 시간에도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가격은 인당 7,000원. 목포 시내에서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하는 곳이긴 하지만, 가는 길도 운치있고 바로 옆이 일로 재래시장이니까 밥 두 공기로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시장 구경을 해도 좋겠어요.
옛날시골밥상
전남 무안군 일로읍 시장길 17-10
2. "나 이제 서울에서는 민어 못 먹을 것 같아…"
목포 당숙이 그러시더군요. “민어는 목포에서 여기가 제일 잘 해” 맞아요. 정말 엄청난 곳에 다녀왔어요. 이름은 석심회집. 가격도 맛도 너무 훌륭해서, 볼록하게 나온 배를 잡으며 식당에서 나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목포 민어는 이렇게 싸고 맛있는데, 나 앞으로 서울에서 민어를 먹을 수 있을까?’
처음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딱 앉았는데, 노련한 이모님이 숙련된 솜씨로 밑반찬을 깔아주시더라고요. 가장 먼저 제 눈을 사로잡은 건 바로 민어를 찍어먹는 장. 다진 마늘과 송송 썬 파, 참깨, 그리고 막장을 넣고 참기름을 작은 접시(종지가 아니고 크기가 작은 접시 말이에요)에 나오는데… 느낌오시죠? ‘아 여긴 찐이겠구나’ 싶더라구요.
주인이 바로 앞 밭에서 직접 길러 향이 강한 깻잎에 두툼하게 썬 민어를 장에 푹 찍어 고추랑 마늘까지 야무지게 넣어서 싸먹으면 크으. 헤실헤실 웃음이 나옵니다. 솔직히 3시간 마다 식사를 했기 때문에 아직 배가 부른 상태였거든요? 근데 너무 맛있어서 배부른 것도 잊고 계속 먹게 되더라구요. 너무 허겁지겁 먹으니까 당숙이 민어는 쌈으로 싸지 말고 장도 진짜 조금만 찍어서 먹어보라고 권하시더라구요.
아, 제가 성급했네요. 민어의 참맛을 느끼기도 전에 쌈부터 싸서 먹다니. 민어는 참 기름지고 단 생선이더라구요.
그리고 나온 샛노란 민어전! 고소한 기름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거에 정신을 잃고 입에 넣었다가 입천장이 다 까졌는데, 너무 맛있어서 뱉지도 못하고 거의 울면서 씹어 삼켰습니다. 다들 아시죠? 방금 부친 전이 얼마나 맛있는 지.
하지만 여러분 원래 주인공은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법. 민어의 하이라이트는요. 부레 껍질, 아가미살, 그리고 민어의 뼈와 고기 껍질을 넣고 다져 고춧가루 양념을 살짝한 특수부위예요. 감히 물고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육해공의 맛이 모두 이 한 접시에 있습니다. 부레는 껌인지 크림치즈인지 씹으면서도 헷갈리고, 아가미살은 참치 뱃살, 껍질은 내 치아를 사정없이 밀어내면서 밀당을 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맛이랄까요… 민어는 진짜 조금만 맛볼 수 있는 이 한 접시를 위해 먹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여러분도 꼭 드세요.
아직 놀라긴 일러요. 다섯 명이서 배가 터질 정도로 소주에 민어를 먹고 나왔는데 10만 원이 조금 넘게 나오더라고요. 여러분 목포를 가게 된다면 기억하세요. 석.심.회.집. 그리고 목포는 민어다.
석심회집
전남 목포시 영산로307번길 16
3. "삼합 초보도 반한 맛"
당숙이 저를 이끈 곳은 한정식집입니다. 목포에 왔으니 삼합정도는 먹어줘야 하니까요. 고백하자면 저는 홍어를 못 먹습니다. 저희 어머니 아버지는 때가 되면 찾아 드시는 편인데, 저는 옆에서 고기랑 김치나 집어먹는 편이죠. 그런데 결론적으로 저는 이곳에서 삼합 맛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홍어는 서울에서 보던 것처럼 회색빛에 톡쏘는 화장실 냄새가 나지 않고, 선홍빛에 마지막에 살짝 올라오는 맛을 빼면 그렇게 강하지 않았어요. 입 안에 질겅질겅 남을 만큼 뼈가 질기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김치, 김치가 정말 맛이 좋았어요. 양념이 많이 되어 있는 전라도식 김치가 아주 잘 익었는데 어쩜 그렇게 시원한지. 잘 익은 김치와 씹는 맛이 좋은 홍어, 그리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수육을 싸서 먹으면 크으. 이 행복한 맛의 삼합을 오물대고 있자니, 아 다들 이래서 삼합을 먹는구나 싶었다니까요. 어찌나 기가 막히게 익혔는지 숙회와 회의 중간 정도되는 낙지 다리는 또 얼마나 맛이 좋다구요.
알고 보니 여기 광명한정식은 목포 시장이 즐겨 찾는 식당이라고 하더라구요. 아시죠? 공무원들이 찾는 맛집이 진짜인 거. 정갈한 반찬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고, 삼합으로 시작해서 시원한 미역국과 병어찜, 조기구이로 이어지는 식사 그리고 마무리로 나오는 단호박식혜까지 기승전결이 확실한 구성도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게다가 대부분의 공간이 독립된 방으로 되어 있어서 일행끼리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3인이 와도 14만 원짜리 한상을 시켜야 하니, 4인 구성을 맞춰서 오시는 걸 추천해요.
광명한정식
전남 목포시 소영길 9-1
4. "목포를 대표하는 빵집"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이 하나쯤은 있잖아요. 대전 성심당, 대구 삼송빵집, 부산 옵스처럼요. 목포에도 있어요. 바로 코롬방제과점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메뉴는 바게트예요. 크림치즈 바게트나 새우 바게트. 크림치즈야 상상이 가는 맛인데, 새우는 뭘까요? 언뜻 들었을 땐 상상이 안가는 조합이죠? 바게트 속을 파내고 안에 허니머스타드 소스와 건새우를 넣고, 겉에는 간새우 시즈닝을 넣었어요. 달콤하고 새콤하고, 새우의 풍미랑 쫀득한 바게트의 맛이 아주 좋더라고요.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정말 급하게 먹어치우는 바람에 아쉽게도 단면을 보여주는 사진이 없네요.
새우 바게트가 아니어도 이곳은 오래된 빵집답게 재미있는 빵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튀긴 빵에 달달한 필링을 넣고 거기에 완두콩과 작두콩을 넣은 이탈리아노도 있었구요, 파이 도우로 만든 만주인 땅콩 파이도 달달하고 맛있었어요. 목포에 가신다면 한 번쯤 들리는 걸 추천합니다.
씨엘비베이커리(구 코롬방제과점)
전남 목포시 영산로75번길 14
5. “중깐을 아시나요?”
위에 소개한 코롬방제과점은 간단하게 간식으로 먹거나 혹은 서울에 싸가시고요. 식사는 맞은편 중화루에서 하는 걸 추천해요. 혹시 ‘중깐’이라고 알아요? 일종의 간짜장인데, 일반 짜장보다 면이 더 가늘고, 각종 야채와 다진 고기를 춘장에 볶아서 따로 나오는 면이에요. 목포 사람들은 이 중깐이란 걸 굉장히 즐겨 먹는데, 중깐의 원조가 바로 여기 중화루라고 합니다. 중깐의 화룡점정은 튀기 듯이 부쳐낸 계란 프라이에요. 달지 않은 대신 짭짤하고, 감칠맛이 좋은 짜장 소스와 얇은 면 그리고 계란 프라이의 조합이 정말 좋았어요.
중화루는 모든 메뉴가 평균 이상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는 탕수육이었어요. 아니 반죽이 어쩜 이렇게 고소할까요? 입청장이 까질 정도로 바삭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푹신한 쪽에 가까운데 튀김옷이 간이 잘 되어 있고 고소한 맛이 가득해서 소스를 안 찍어도 한 접시 정도는 우습게 뚝딱하겠더라고요. 탕수육을 작은 걸로 시킨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여러분은 꼭 큰 걸로 시켜서 드세요.
첫댓글
빵만 눈길이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