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과 구정의 유래
[신정의 유래]
예전에 우리나라는 신정과 구정을 같이 쇠던 시절이 있었다.
원래 신정이란 용어는 일제가 만들어낸 용어이다.
조선왕조가 순종임금을 마지막으로 왜놈들에게 망하자 일제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명절을 폄훼시켜
갑오경장 이후에 강제했던 신정을 만들어냈고 이 신정은 몇몇 위정자들에 의해 군사정권 시절까지 존속되었다.
그리고 1945년 광복 이후 부터는 정부의 경제부흥 정책으로 공휴일이 줄여짐에 따라 설날이 아예 없어졌다.
그 후 1985년 5공화국 정부의 선심에 의해 '민속의 날'로 간신히 회생하여 89년 설날로 완전히 복원 되었다.
설은 우리 민족의 정서가 듬뿍 담겨 내려오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추석, 한식, 단오와 같은 4대 명절중 하나다.
설날의 명칭으로는 세수, 원단, 원일, 신원이라고도 부르며 한문으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쓴다.
구한말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달마다 명절이 있었다.
설날인 1월 1일을 비롯해 3월 2일 삼짓날, 5월5일 단오, 7월 7일인 칠석과 9월 9일 중양절이 있었고
보름과 관련된 정월 대보름, 4월 보름, 6월 보름인 유두, 백중날이자 중원인 7월 보름, 중양 명절 등이 있었고 '
작은 설'인 동지절과 동지절 105일 후인 한식, 2월 초 하룻날인 중화절도 명절이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지배한 시기 고유 민속을 훼손했고 이로인해
우리의 많은 명절과 풍습이 잊혀저 몇개의 명절만 이어져오고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우리 민족으로써 신정의 유래를 바로 알고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의 잔제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아보는 건 어떨까.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수천년 동안 민간에서 지켜 내려와서 관습화 된
우리의 설(음력설)을 말살하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설을 '구정'이라 명명하고 '신정'을 지정한 일입니다.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시간관념은 음력으로 보내었는데.
1896년을 기하여 공식적으로 양력을 따르게 되었으며
일상 생활에 체계적으로 도입된 것은 일제에 의해서 였습니다.
일제는 자신들의 시간 체계에 맞는 양력설을 새롭고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신정으로 부르고,
피식민지인인 한국인들이 쇠는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제가 전통 설을 지칭한 구정이라는 명칭은 일제의 양력설 정책을 답습한 해방 후
한국 정부에 의해서도 사용되었고,
그 사용이 장려되기도 하였습니다 (돈낭비와 국제화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음력설은 해방된 뒤에도 공부원이나 일부 국민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새해를 맞고
차례를 모시는 날이었음에도 정부는 1985년에서야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음력설을 하루만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음력설을 설날로 개칭하고
전후 하루씩을 포함하여 총 3일을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이로써 전통 설은 구정이라는 낙후된 이미지를 멋을 수 있었고
구정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대대로 음력설=설을 지내왔는데 일제강점기 후 양력설을 지내는 일본의 풍습을 강요하였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였습니다.
우리의 설을 없애기 위해 한 악랄한 행위로는...
떡방앗간을 섣달 그믐 전 1주일 동안은 못돌리게 하고,
설날 아침 새벽 세배 다니는 사람이 특히 흰 옷을 입었을 때는 양력설에 세배 안 가고,
또 무슨 색옷을 안입는다 해서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아 흰 옷에 검은 물이 얼룩지게 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신정, 구정이란 단어는 우리의 문화를 없애기 위한 일본식 글자이므로
설날이라고 말하고 쓰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신정 = 양력 1월 1일 또는 새해 첫날
구정 = 설날
신정(新正) 이야기
신정(新正)은 구정(舊正)의 상대어로 새해의 첫머리 1월 1일의 양력설로서,
법정 1일 공휴일로 ‘1월 1일’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양력설은 일본강점기에는 물론 해방되고도 1991년까지 음력설 대신에
공식적인 설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음력설을 진정한 설로 인정하고 음력 설날에 차례나 세배,
윷놀이 등의 세시풍속을 행했지만, 공무원 등의 직업을 가진 이들은 양력설을 쇠었다.
양력(陽曆)이란 태양력(太陽曆)을 말하는 것으로 지구가 해의 둘레를 1회전하는 1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태양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에는 365.2422일 걸려서 1년은 365일 또는 366일이라 한다.
그래서 365일일 때는 평년(平年), 366일 때는 윤년(閏年)으로 하여 2월이 평년처럼 28일이 아니라 윤년은 29일인 것이다.
그 윤달은 양력에서는 4년마다 한 번 씩 와서 2월이 29일이 되는 달이 윤달이다.
그러나 태음력에서는 한 달을 윤년(閏年)으로 하고 있다.
음력(陰曆)이란 달이 차고 기울어짐을 기초로 하여 만든 달력으로 태음력(太陰曆)과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달의 위상변화만 의존하여 엮어진 태음력(太陰曆)을 사용하고 있다
태음력에서는 1년이 13개월인 해가 있다. 그래서 공달이라 하여 민간에서는 이 윤달이 있는 날에는 무슨 일을 해도 동티가 나지 않는다 하여
이 달에는 결혼, 건축, 이사 등을 마음 놓고 하였다.
옛 어르신들은 곡식을 파종하고 수확까지의 1회를 달을 중심으로 1년이란 개념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稔(임)이란 穀一熟一年(곡일숙1년)이란 연(年)의 해당하는 말이다.
*. 한국 신정(新正)의 유래
우리나라 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6세기 무렵부터 음력으로 설을 쇠어 온 듯하다.
그러다가 양력설이 최초로 도입된 것이 1896년 갑오경장(甲午更張)과 단발영(斷髮令) 무렵으로 김홍집 내각부터였다.
그 해 연호를 건양(建陽)이라고 정한 것처럼 당시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후 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의 일본은 우리의 전통 설을 구정(舊正)이라하고 자기 나라처럼 조선에서도 양력설만을 공휴일(公休日)로 지정하였다. 일
제는 조선국민에게 이중과세(二重過歲)를 못하도록 신정(新正)만을 강요하였지만
신정은 일본설(日本-)이라고 생각한 국민 대다수는 항일(抗日) 차원에서도 음력설을 '고집하였다.
그러다가 1989년부터 '민속의 날'을 ‘3일 공휴일인 설날’로 이름을 바꾸고 명칭도 '구정'이란 이름에서 '설날'로 복원되었다가
오늘날에 우리들은 신정은 1일 공휴일, 설은 3일의 공휴일로 쇠는게 된 것이다.
(이상 세시풍속백과사전 참조)
*. 양력설의 의의
양력 1월 1일은 설이 아닌데도 우리들은 연하장(年賀狀)은 물론 문자 카카오톡 또는 e-mail을 주고 받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양력설은 설이라기보다 일년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그러나 1953년부터 시작한 새해 맞이 보신각 종을 33번 울리는 인경소리도 그렇고, 신년사나 덕담(德談) 등이 또한 그렇다. 관공서나 회사의 시무식(始務式)도 1월 2, 3일에 열린다.
새해부터 시작된다는 각종 정부의 시책들도 그렇지만 법정 연령도 그렇다.
이렇듯 양력설은 일년의 시작의 상징성을 벗어나 실제로 음력보다 더 구체적으로 시작되는 새해다. 그런데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방송과 신문에서 신정(新正) 1월 1일을 전후해서 2015년이 '양띠'의 해라고 대서 특필하고 있어서 우리도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신정 1월 1일부터 을미년(乙未年) 양띠의 해라고 무의식적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력 2014년 1월 1일부터 다가오는 2월 18일 설 전날까지는 갑오년(甲午年)이지 을미년(乙未年)이 아니다.
첫댓글 신정, 구정이란 단어는 우리의 문화를 없애기 위한 일본식 글자이므로
설날이라고 말하고 쓰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