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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한국 임진왜란 이후 영웅에게 일어난일
raccoon 추천 0 조회 790 21.01.20 09:4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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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1.01.20 09:47

    첫댓글 와 ;;;
    서기장 동지는 죽였으면 죽였지 저렇게 치졸하게 갈구는 짓은 안 했다

  • 초반 내용은 다르게 생각하는게, 일단 실록을 찾아봤는데 선조 때 사헌부가 신분으로 태클을 걸긴 하지만 선조가 끝까지 윤허하지 않고 쉴드를 치는 장면은 일단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만 더 생각해보면 이것도 결국 선조가 자기 편을 유지하기 위한 vs 왕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헌부 간 정치싸움으로 보이네요.

    북방으로 가는 것도 당시 정세를 생각해보면서 이후 기사들(제주에서 진상한 전마에 적합한 아마 한 필을 내주었다, 노모를 보고 북방으로 가게 해주었다, 임란 때 전공이 있던 자들에게 취품했다)을 보면 선조도 나름대로 대우를 해 준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그만큼 믿으니까 모종의 연락을 통해 북방으로 보내도록 했을 수도 있다고 보이고요. 당시 조선 변경이 평화로웠던 것도 아니고, 조정에 불만이 있는 자나 신뢰하기 힘든 자를 변경으로 보내는 건 정치, 전략적으로나 나쁜 수니까요

    나중에 파직되긴 하는데, 이것도 멋대로 역의 말을 타게 한 것 때문이고(선조 37년 5월 15일), 그에 따른 유형도 노모가 위중하니 미루거나(37년 6월 2일), 결국 광해군 때 이르러 복직되어 길주 목사로 부임하게 됩니다.(광해군 1년 3월 3일, 7년 4월 17일)

  • 인조 때 사직 거부하고 나중에 역적으로 몬 거는 사료를 찾지는 못하지만, 킹리적 갓심을 발휘해보면 광해군 당시 나름 논상도 받고 했기 때문에 광해군파로 분류되어 숙청당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요약하자면, 1) 한명련은 나름 보상을 받았으며, 2) 선조 이후 승승장구했고, 3) 당시 사헌부가 유교꼰대라기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정치적 싸움이 핵심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사학 관련 학부생 나부랭이지만 그 사학과 특인 '과연 그럴까?' 의심이 발동해서 한번 찾아보고 생각한 바를 적어봤습니다. ㅎㅎㅎㅎㅎㅎ

  • 21.01.20 11:59

    @자유공룡당원 티렉스 똑같이 천민출신에 반역을 의심받았던 정충신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면 한명련만 유독 억울하다고만 하기엔 좀 그렇긴 하죠.

  • 21.01.20 14:29

    좀 심하네요. 아무리 신분사회라지만 저정도일줄은

  • 21.01.24 04:05

    뿌린 대로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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