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平和)를 빕니다.”
40년 전 예비자교리 교육을 받으면서 미사를 처음 봉헌하던 때 일입니다.
낯선 나에게까지 얼굴을 돌려가며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언어들 중 가장 성스러운 말인 평화를 서로에게 기원하는
모습에서 받은 그때의 인상이 강렬하여 지금도 가끔 묵상의 화두가 됩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다 나름 세 가지 결론을 얻었습니다.
먼저, 주님 안에서의 평화입니다.
유다인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떨고 있는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하시며 참 평화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항상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평화는 신앙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런 평화를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가질 수 있도록 권유하는
평화의 도구 역할을 평신도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회는 전투가 끝난 뒤의 야전병원’이며,
평신도는 일상에서 신성함을 지키는 ‘성덕의 중산층’ 역할을 하도록 권유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평신도에게 주어진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더욱더 성실히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정치적, 사회적 구조 안에서의 평화입니다.
정치적, 사회적 어려움으로부터 고통 받는 사람들,
전쟁으로 인해 희생되거나 고향을 떠나야 하는 난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제도로부터 소외된 약자들에게도 평화가 실현되도록 기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먹고 마시는 일, 신체적 아픔 등의 고통으로부터 평화입니다.
평화(平和)는 平(평평할 평)과 禾(벼 화)+口(입 구)로 구성됩니다.
먹는 것이 평등하지 않을 때 우리 사회는 병들게 됩니다.
한편에서는 인류사에 유래가 없는 물질적 풍요와 소비를 즐기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굶고 병들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물론 지구 반대편 사람들까지도 의식주와 질병으로부터
평화롭게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모두 믿음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오늘도 사랑과 믿음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평화의 인사를 나눕시다.
천주교 평신도 여러분 “평화를 빕니다.”
글 : 한병성(세례자 요한) 회장 – 전주교구 평신도 사도직 단체협의회
하느님과 외할아버지
저는 외할아버지를 유난히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늘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함께 떠오르곤 합니다.
외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셨을 때 저는 13살이었습니다.
그땐 제가 스케이트 선수로, 이제 막 시작하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경기를 나갈 때면 외할아버지가 정말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 많이 응원해줬지만 이상하게도 외할아버지의 응원은
시합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에 남아 제게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올림픽에 나가는 때까지 조금 더 오래 살아계셨다면 외할아버지는 아무리
먼 외국이라고 해도 매 경기마다 경기장에 오셔서 저를 응원해 주셨을 것입니다.
제가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건,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이었습니다.
19살에 참가한 첫 올림픽은 부담감 그 자체였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과 아이스 링크로 쏟아지는 눈부신 조명은
저를 떨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밴쿠버 올림픽은 저에게 큰 경험이었고 하느님 선물의 시작이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경기장에서 몸을 풀면서, 저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외할아버지를 기억하며 기도를 마쳤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외할아버지를 기억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외할아버지가 경기하는 저를 지켜주실 것 같았고,
외할아버지를 기억하면서 기도를 드리면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입니다.
소치 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도를 드리며 외할아버지와 마음속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기도를 하며 눈물도 흘리곤 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
저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 기도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면
언제나 떨리는 마음이 진정되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고 무언가를 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겠지만, 우리마음의 첫 번째 기도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제나 모든 일에 자신 있을 수 없고, 두려워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무언가를 바라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기도를
하기 보다는 편한 마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제가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지고 든든해지는 것처럼,
여러분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든든하고 따스함을
느끼는 마음의 평화를 주길 바라는 기도를 드리는 건 어떨까요?
저는 오늘도 기도 속에서 하느님과 저를 아주 많이 사랑해주시는
외할아버지를 만나려 합니다. 외할아버지가 참 많이 보고 싶네요.…
글 : 박승희 (리디아) – 前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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