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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을 모시고 함께 풀을 매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풀을 매시는 그 자체가 법문法門입니다.
풀을 매다가 물었습니다. “스님, 왜 이렇게 잡초가 많습니까?” 매일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하면서 사홍서원을 외지만, 젊은 시절이라 그런지 머릿속 전체가 온통 번뇌로만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흙 자체가 풀씨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는 번뇌를 끊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 와서는, 그 무진장한 번뇌를 단번에 조복調伏 받는 길에 대해 말씀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百八煩惱卽是法 백팔 번뇌가 바로 법이니,
法法卽是煩惱性 법이란 것이 바로 번뇌의 성품이다.
一切忘想從心起 일체의 망상이 마음에서 일어나니,
忘想煩惱皆妙理 망상과 번뇌가 모두 묘한 이치로다.
<해산 게송>
◦ 풀을 매고 있었는데, 신사복 차림의 사람이 와서 “큰스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고 촌로村老처럼, 불목처럼 보이는 스님께 물었습니다. “저 쪽으로 가보라.” 하고 총무 스님 계신 곳을 가리킵니다. 그 신사는 알려준 데로 갔다가 와서는 “스님, 왜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하고 묻는 듯 따지는 듯 말합니다. “이렇게 새까맣고 비쩍 마르고 작은 내가 어찌 큰스님일 리가 있겠소?” 하고 도로 반문하십니다. 그 때 스님께서는 진정으로 그 신사분을 위하는 마음에서 물었을 것입니다—‘어떤 것을 크다고 하십니까?’—. 그 신사가 어정쩡하게 서 있으니, “그 스님(총무 스님)이 다 알고 계시니 그 스님께 물으시오. 나는 아는 게 없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아는 게 없는 것이 큰스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千經萬論無用處 천경만론이 아무 쓸데가 없고,
神通變化色皆失 신통변화와 형상 있는 것들은 모두가 사라지는 것.
參問五三善知識 오십삼 선지식을 찾아가 물었는데,
一撣之頃亡諸法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모든 법을 잊어버렸네.
<해산 게송>
◦ 스님의 생신날이 스님의 스승 담월 스님과 먼저 간 사형제師兄弟들의 제삿날입니다. 스님은 따로 그 분들의 제사를 지내시지 않습니다. 생신 차리려고 하면 불전에 차리게 하시고, 스님께서 직접 염불 축원을 하십니다. 은사 아무개, 사형 아무개, 사제 아무개 하고 거명하시는 것을 듣고, 나는 얼굴 모르는 조부, 백부, 숙부님들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되뇝니다.
우리에게 얼굴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인가? 그리고 같이 살았었다는 것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스님은 지금 생일상을 그 분들과 함께 드시고 계시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千年前馬形이나 천년 전 말의 모양이나,
萬年後描貌가 만년 후에 그림으로 그린 모습이,
別有個什甚麽며 뭐가 다를 게 있겠는가?
少有別馬字描字니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말이라는 글자와 그림이란 글자가 다를 뿐.
<해산 게송>
◦ 죽은 사람에게 계戒를 주고 설하는 것은 스님에게서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49재 마지막 날, 상주 모두에게 계를 주시며 “이것이 죽은 자에게 주는 계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불법을 널리 펴는 뜻도 있지만, 산 자와 죽은 자, 삶과 죽음의 벽을 넘나드는 지워지지 않는 법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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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에 관한 이야기는 밖으로 내놓을 것보다는, 나 자신의 가슴속에 깊이 품고 있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스님을 모실 때는 즐겁고 행복했으며, 스님을 모신 이후로는 어디를 가도, 어떤 환경에 처해도, 불편함이 없고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스님이 가실 때는, 삶 전체를 의지하고 있던 기둥을 잃어버린 상실감으로 깊이 모를 슬픔과 아픔을 느꼈습니다.
◦ 75년 통도사 선방에 방부를 드리려고 객실에 머물면서 수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해산 스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촌부처럼 산에 가서 나무하고 풀을 매면서 소탈하게 사신다는 말을 듣고, 천왕산을 넘어 표충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체질에 맞을 것 같아서입니다.
마침, 대원암大願庵에 들렀다가 나오시는 스님을 길에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상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여기는 살 곳이 못 되니 다른 곳으로 가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스님!” “와!” “나도 밖에 나가서 누가 ‘스님’이라고 부르면서, 뭘 물어오면 ‘왜’ 하든지 ‘응’ 하면서 응대를 하는데, 스님은 여기 뭘 하려고 앉아 계시는 겁니까?” 하고 대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라모, 여게 살아볼래?” “예!” 하고 스님을 따라 내원암으로 갔습니다.
첫날부터 지게를 지고 스님을 따라 산에 올라갔습니다. 나도 지게 하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님이 시키는 대로 나무를 하기는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나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산 전체를 정리, 정돈하고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풀 베고, 길 다듬고, 길옆에 있거나 언덕바지에 있는 잡목이나 나무덩굴 뿌리 등 톱도 들어가지 않는 데 있는 것을 베라고 하니, 나무 한 짐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 “스님, 이거 나무하는 겁니까?” 하니 “그래, 이게 나무하는 거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스님 오지 마십시오. 저 혼자 가서 나무해 오겠습니다.” 하고 나서, 혼자 가서는 하기 쉬운 나무, 곧은 나무를 베어서 한 짐 지고 내려오는데, 스님이 올라오시더니 작대기로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입니다. “이노무 손아! 니가 산에 살 자격이나 있는 놈이가? 산을 망치는 놈이…….” “나무하는 데 자격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얼핏 생각이 ‘산에 살면서 산을 망치는 놈은 산에 살 자격이 없는 놈’이라는 스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산에 나무하러 가지 마라!” 하고 내려가셨습니다.
그래도 겨울인데, 나무를 해야 방에 불이라도 지피고 살지 싶어서, 스님 시키신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조심스럽게 나무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그렇게 거기에 있기만 하던 산이 어떤 의미를 갖고 다가왔습니다. 산이 슬며시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마음으로 사니, 산과 같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世上을 산다는 의미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걸음을 걷거나, 산을 쳐다보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 어떤 행위도 막연히 해서는 안 되며, 자격을 갖추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며, 애는 애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왜 어른인지, 애는 왜 애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한 철은 산에 살 자격증을 따는 데 진력했습니다.
我山山我理無關 내가 산이요 산이 나라는 것은 이치理致와는 무관하다.
孰是山容孰是顔 무엇이 산의 모습이며, 무엇이 내 얼굴인가?
孰是異山還着我 무엇이 산과 달라서 또 나를 집착할 것이며,
認山非我未亡山 산은 인정하면서 나를 부정함은 산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해산 게송>
◦ 내원에 살면서, 스님께 지게 만드는 법을 배워 37개를 만들었습니다. 내원에는 대중 수만큼 지게가 있습니다. 조그만 애도 자신의 지게가 있어서, 말 그대로 지게는 도구道具였습니다.
스님께서도 공양 지으시는 일 외에는 전부 손수 하십니다. 그래서 몇몇 신도들 사이에서 불평이 있었습니다. 연로하신 스승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뿐 아니라, 스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모시고 있는 제자분들이 스님을 찾아뵙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스님, 이젠 저희들이 욕을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웬만한 일은 시자를 시키시죠.” 그 말에 스님은 당신의 두 손을 들어 보이셨다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내 손이 멀쩡한데 왜 다른 이의 손을 빌리겠느냐는 뜻일 수도 있지만, 나는 더 깊은 곳에서의 대답임을 짐작합니다. 그 뒤에도 변함없이 스님께서는 당신 손수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간곡하게 부탁드렸다고 합니다. “스님, 저희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소소한 일은 시자에게 시키시죠.” 스님께서 이번에는 손을 드시는 대신에 “시자가 하면, 시자의 일이지!”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스님 곁에 사는 동안은 이렇게 일만 하다가 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왜, 스님은 일만 시키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언제 너보고 일 시켰느냐?” 하고 도로 반문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께서는 저에게 일 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그 후로는 한 번도, 일한다, 예불한다, 수행한다는 구별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딜 가도 내 집이고, 무슨 소임을 맡아도 만족스럽게 여깁니다.
◦ 스님께서는 한 번 부르고 두 번 불러서 대답이 없으면, 그냥 가십니다. “인(忍?)아!” 하고 불러서 대답이 없으면, “수(修?)야!” 하고 부르시고 반응이 없으면, 아무 말씀 않으시고 그냥 가시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를 때 각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시고 “인아!” “수야!”라고 부르십니다. 당신이 쓰신 글의 낙관할 자리에도 ‘일기(一氣)’라고 표시하십니다.
아마도 정해져 있는 독립체로서의 개체個體라는 개념(아상我相)을 갖지 않게끔 하시려는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스님에게서는 상相이란 걸 느낄 수가 없습니다.
◦ 내원암과 국사암, 불일암을 번갈아 오고가면서, 내 딴은 열심히 살았습니다. 한 번은 국사암에서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8일정도—나중에 알았지만—가 그냥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계境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스님을 찾아 나섰는데, 한 달이 지나 내원암에 나타난 것입니다. 내원암에 도착했는데, 스님이 불을 때시다가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보시고, 불붙은 작대기로 때리려고 했습니다. 피해야겠다고 피했는데, 그 때 제정신이 돌아 왔던가 봅니다. 분명히 때리려고 불붙은 작대기를 위로 치켜드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님께서 작대기를 내린 채 앞으로 모아 쥐고 계셨습니다. 그제야 확연히 정신이 바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스님이 입적하시기 전까지, 스님 곁에서 산 기간은 5년입니다. 제대로 공부도 되지 않은 상태, 천방지축으로 철없이 살던 때에 스님을 만나서 너무도 짧은 기간인데, 스님은 가셨습니다.
지금 와서 미련이 남고 후회스러운 것은, 그런 올곧은 스승이 계실 때, 그런 스승이 지켜봐 주시는 앞에서 좀 더 확고하고 깊이 있는 수행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기는 그 정도라도 나 자신의 분에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한 선지식을 만났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합니다.
◦ 어느 날 나무를 하시다가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공부를 하다보면, 성취감이 생기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한층 더 조심해야 한다. 수행에는 마魔가 따르기 마련이다. 절대로 남에게 내보이지 말고 숨겨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공부는 끝이 나버린다.” 스님께서는 당신의 쓰라린 경험을 예로 들면서 당부하셨습니다.
“무주 구천동으로 기도를 하러 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늦어져서, 목적지 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믐밤에다가, 암자까지 가는 길도 험하고, 동행한 세 보살이 있어서 더욱 어렵고 불가능한 길이었다. 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몸에서 방광放光이 일어났다. 그 빛에 의지해서 암자에 닿으니 사라졌다.”
스님께서는 그 한 순간의 일로 인해, 세 보살 중 자매인 두 보살이 공부의 마장이 되어 오랜 세월 끊임없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7년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않고 습한 동굴에서 기도하다가 천식을 얻게 되고, 정화에 휩쓸리고, 정신적인 고초도 엄청나게 당했다고 하셨습니다.
◦ 스님의 세계가 너무도 특출特出하여 대중의 오해도 많이 받으셨고, 또 대중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 것 같습니다.
만공 스님의 회상에서 입승을 보실 때, 만공 스님이 오수를 즐기시는 것을 알고, 점심시간에 가셔서 죽비로 사정없이 내리치다가, 대중들에게 똘똘 묶여서 산문출송山門出送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어른을 모시고 하는 법거량은 자신의 목숨을 떼어 바치고 하는,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인정을 받기까지는 자신의 모든 살림살이를 송두리째 드러내서 밑바닥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물어뜯기까지 한다고 하니…….
어른뿐만 아니라 도반과의 법거량에도 치열하셨습니다.
경월 스님은 스님의 절친한 도반이십니다. 그리고 경월 스님은 대금의 명인이셨으며, 그 연주는 신기神技에 가까웠습니다. 실지로 인간문화재인 제자를 두셨습니다. 그런 경월 스님이 대금을 연주하면 모두들 가던 걸음을 멈춥니다. 하루는 대금 소리에 골짜기의 대중들이 모두 모였는데, 해산 스님만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 후 며칠 뒤 해산 스님께서 경월 스님을 만나자마자, 가지고 계신 대금을 빼앗아 바위에 쳐서 부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둘이서 엉겨 붙어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분은 사력을 다해 싸우시는 것 같았습니다.
◦ 경월 스님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해산 스님과 경월 스님이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나던, 부산 광성사에 머물고 계실 시절입니다. 해산 스님이 일주일이나 종적이 묘연한 상태가 되어서 신도분들과 이리저리 찾아 나섰는데, 영도다리 밑에 앉아계시는 스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경월 스님에게 연락이 되어 가서 보니, 속복 차림의 스님이 낚싯대를 걸어두고 그것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처럼 하고 있는데, 정定에 들어 계셨습니다. 아마도 일주일 동안 거기 그렇게 계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깨우지 않고, 그냥 하루를 더 두고 보았다고 합니다—스님께서는 선방에서도 정에 들어 일주일씩 앉아계신 적이 왕왕 있었기 때문에—. 8일째 되는 날,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경월 스님이 스님을 깨우셨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니는 여기서 뭐 하고 있노?” 스님께서 부시시 고개를 돌려 경월 스님을 보시더니, “응, 전생에 살던 곳에 좀 갔다 왔다.”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스님께서 하루는 나를 부르시더니, 당신을 업으라고 하셨습니다. 업고서 가자는 곳을 여기저기 한 바퀴 돈 뒤 바위 위에 앉혀 달라고 하시길래, 내려 드렸습니다.
“내가 간다.” “아직은 연세도 있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십니까?” “내가 명命이 다 됐다.”라고 하시면서, 지나간 일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내원암은 인법당이었습니다. 어느 날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깨어서 보니, 한 젊은 보살이 스님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지금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목숨을 부지하게 해 달라고 애걸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먹을 갈라고 해서 먹을 갈아드리니, 문종이를 펴서 두어 번 먹물 위에 얹어서 아교를 묻혀 제거한 뒤, 글(문수보살항마게?)을 두 장 쓰셨습니다. 그리고 한 장은 남편 베개 밑에, 한 장은 방문 앞에 붙이라고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돌려보내고, 보살이 남기고 간 봉투를 집어서 나에게 용돈하라고 주셨습니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 때에 스님의 명을 떼어 그 보살의 남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이놈아, 중은 주는 거다, 주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도인의 세계를 모릅니다. 그런 능력에 관해서도 알지 못하지만,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庭前梅花雪不知 뜰 앞의 매화는 눈 내리는 줄 모르는데,
解制結制幾回逢 해제 결제를 그 몇 번이나 맞았던고?
夏去冬來如過客 여름 가고 겨울 오는 것은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고,
問來聞去似春風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오가는 것은 봄바람과 같도다.
過去如是今如是 과거에도 이러했고 지금에도 이러하니,
此兒莫問我年齡 아이야! 내 나이를 묻지 말아라.
<해산 게송>
출처: http://haesan.tistory.com/26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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