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죽어가는 교향곡’
우선 1악장 도입부부터가 그렇다. 만일 선율적인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
말러의 [교향곡 제9번] 1악장의 도입부를 처음 듣는다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간단한 모티브와 음의 단편들이 그저 툭툭 던져지듯 나열되는 이 음악은
마치 점묘주의 회화와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여섯 마디의 도입부를 지나 제2바이올린에 의해
처음으로 제시되는 D장조의 주제 역시 기묘한 느낌을 주는 건 마찬가지다.
이 주제는 F#에서 E로 하행한 후 으뜸음인 D로 결코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E음에 머무르면서 강한 긴장감과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이 주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고별’]의 주제 선율과 화성이 유사해
‘이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2악장은 조금 느린 랜틀러(Ländler, 오스트리아 고지대에서 추던 춤곡으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말러 등의 작품에 자주 나타남)와
빠른 왈츠가 교대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전통적인 랜틀러와 왈츠의 3박자는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제스처로 표현되어 기존의 정형화된 춤곡 형식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빠른 왈츠에서 타악기와 관악기가 거칠고 노골적으로 연주하는
‘쿵작작’ 리듬은 우리가 ‘왈츠’에 대해 통상적으로 갖고 있는 우아하고
가벼운 춤곡의 이미지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시끄럽고 야만스럽기는 3악장도 만만치 않다. ‘풍자와 희화화,
그로테스크’를 뜻하는 ‘부를레스크’(Burleske)라는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음악은 풍자와 조소로
점철되어 있다. 여기에는 경음악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선율과 복잡하고 정교한
푸가토(Fugato,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 ‘푸가’라는 장르가 아닌 기악곡에서
푸가와 같은 방식으로 모방기법이 사용된 부분)가 교대로 나타나면서 마치 인생을 조롱하는 듯 과장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 악장의 후반에 현란한 대위법 속에 펼쳐지는
그 모든 조롱과 비웃음이 갑자기중단되고 더없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나타난다.
이때 트럼펫이 연주하는 고귀한 선율은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 황홀한 에피소드가 끝나갈 무렵에 갑자기 클라리넷이
트럼펫의 고귀한 주제를 비틀고 왜곡한다.
이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말러의 제자이자 지휘자인 멩겔베르크는
특히 이 부분에 주목해 “사탄” 또는 “공포의 찡그림”처럼
연주하라는 지시를 첨가하기도 했다.
4악장에 이르면 그 모든 풍자와 비웃음은 사라지고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정화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여기서는 1악장에서 으뜸음으로 해결되지 않은 불완전한 형태로 제시되었던
이별의 주제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마치 찬송가와 같이 감동적으로 연주된다.
그러나 종결부에 이르면 다른 악기들은 연주를 멈추고 오로지
현악기만이 남아 말러가 악보에 적어놓은 ‘죽어가듯이’(ersterbend)라는
악상 지시어를 끊어질 듯 여린 소리로 구현해낸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말러의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네 번째 곡 ‘아이들은 잠깐 외출했을 뿐이다’의 선율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천국으로 떠났을 뿐이다.
우리도 곧 그 광명 넘치는 천국으로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말러는 그의 교향곡이 죽어가는 순간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장녀 마리아를 생각했던 것일까?
어린아이의 선율은 채 마무리되지 못하고 피아니시시모(ppp)의
여리고 긴 음의 여운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첫댓글 감상 잘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