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같이 외출을 마치신 후 돌아오셔서
부처님 앞에서 엎드려 절하시며 열반하셨다는 소식에
득도하신 가슴이 얼마나 넓으실까 그려본다”
"동곡 일타(東谷 日陀)스님 형제는 2남 2녀였다.
위로 누나와 형, 그리고 아래로 누이동생이 있었다.
형제 중에서 가장 먼저 출가한 사람은
일타보다 6살 위인 누나 응민(應敏) 스님이었다.
응민은 비구니로서 만공스님에게 ‘한 소식한 비구니’
라고 인가를 받았을 정도로 걸출하게 여장부처럼 수행을 잘 하다가
1984년 입적하였다.
천도재를 지내는데 초재와 이재는 수덕사 견성암에서,
삼재는 일타의 누이동생인 대구의 쾌성(快性) 스님 절에서 지내게 되었다.
"(정찬주 장편소설 ‘인연’중에서)
지난 12월 13일 일타 큰스님 가계의 마지막 스님인
쾌성 스님(1932: 본명/金明喜)께서 입적하셨다.
20세기 우리나라의 마지막 큰스님인 일타스님의 가족사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사실이다.
‘나의 가족은 친가와 외가를 모두 합하여
문지방 식구까지 41명이 승려가 되었습니다.
이 41명의 출가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일족의 출가 이후
가장 많은 숫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41명의 출가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인가?
아닙니다. 나의 외증조할머니인 안성이씨 평등월(平等月) 보살의
기도와 입적(入寂), 그리고 방광의 이적(異蹟)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라고 말씀 하시던 일타스님은
6대째 불교집안으로 우리고장 충남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에서 1929년 태어났다.
1942년 사의(思義;일타스님 본명)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김봉수)는 수덕사 만공선사를 찾아가 출가하였고,
일타 역시 외할아버지 추금스님의 손을 잡고 양산 통도사로 향하면서
대가족이 모두 출가의 길로 떠난 것이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불문에 귀의한 일타는
26세 때 십 만 배 후 오른 손가락 열 두 마디를 태워 연지연향 할 정도로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걷고 나서,
태백산 도솔암에서 6년 동안 장좌 불와와 동구 불출
이후 살아생전에 연지한 손에서 생사리 100여점이 나왔다는 일타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전계대화상을 지낸 대율사요,
자유자재한 언설변재로 듣는 이의 마음에 깨달음의 씨를 심어주는 대법사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가슴에는 태양을,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를 띠우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기쁨을 주었고,
주옥같은 저술로써 뭇 불자들의 마음을 밝혀준 많은 저서를 우리에게 남기었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이루려는 의지를 펼치던 중,
1999년 하와이 금강굴에서 71세에 입적하는 순간까지
순수한 구도자로서의 삶을 추구해온 일생을 마치었다.
스님의 가계는 이 경이로운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들 모두가 하나같이 ‘중노릇’을 아주 열심히 한 참된 수행자였다는 점이다.
추금스님이 비록 늦게 출가하였지만 열성으로 정진하여 견성하였으며,
말년에는 태고사 조실로 추대되어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스스로 장작을 쌓고 불을 붙인 다음 올라가서 자화장을 하는 이적을 보이기도 했다.
1941년 어머니와 함께 문경 윤필암으로 들어간 쾌성스님은
외사촌인 혜유(慧柔)스님과 함께 마지막 남으셨던 분으로
대구 파동의 염화사(拈花寺)에 머물고 계셨다.
불자가 아닌 필자가 일타스님의 가르침 따라 좋은 인연으로 맞나 처음 찾아 뵈었을 때, 평생을 선하며 살아오신 모습을 입가의 미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때가 되어서 밥상머리에 앉은 내가 절밥에 서툴러 하자
선뜻 “피자 시켜주랴?”고 말씀을 주시던 다정하신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음이 새삼 안타까웠다.
옆에서 늘 같이 하시던 염홍스님과 퉁명스럽게 나누시던 대화는
일상에서 보기드믄 애정의 표현이기도 했다.
평소같이 외출을 마치신 후 돌아오셔서
부처님 앞에서 엎드려 절하시며 열반하셨다는 소식에
득도하신 가슴이 얼마나 넓으실까 그려본다.
영천 은해사(銀海寺)초입 일타스님 사리탑 앞에
수목장으로 조용히 치러 달라는 말씀에 따라 한 치 남짓 땅을 파 뭍고,
젊은 스님 한분이 낙엽 한 묶음 모아다 뿌려 덮어놓으니,
다시 환생할 인생을 펼치는 듯싶다.
옆에 우뚝 솟은 소나무를 견주어 보면서 쾌성스님의 모습을 그리면서,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날따라 깔끔해 보였다.
쾌성스님의 천도재중 사재는 1월9일 공주 동학사에서,
육재는 익산 자명사에서 지낸다.
유 병 우 (주)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출처 : 충청신문(http://www.dailyc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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