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쯤에 내원암에 계시는 스님을 처음 찾아뵈었습니다. 남해 보리암에서 기도를 마친 후, 반드시 도인道人이 되겠다는 발심發心을 하고, 도인이 되려면 도인 스님을 만나서 공부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도인 스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기 저기 다니다가, 통도사에서 밀양 표충사 내원암에 숨은 도인이 사신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나무하고 풀매면서 농사짓고 사신다는 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나도 그렇게 바깥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지지 않고 숨어서 사는 도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숨에 초행初行 길인 밀양으로 가서 내원암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버스가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고 많이 걸어서 가야 하는, 상당히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처음 뵙고 몇 말씀 듣지도 않았는데, ‘아, 정말 도인이시구나!’ 하는 감感이 그냥 와 닿았습니다. 여기서 공부하면 나도 도인이 될 수 있겠다는, 왠지 모르는 자신감自信感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스님 곁에 살게 되었는데, 별달리 지도해 주시는 것은 없고, 평소 생활하면서, 또는 일하다가 순간순간 한 마디씩 던지듯이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들을 그때는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는데도, 공부를 하다보면, ‘아, 그 말씀이 이런 말씀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칠 만큼 크게 와 닿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인 밑에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 내가 내원암을 처음 찾아 간 그 때, 현파 스님이라는 분이 남해 보리암에서 관음기도를 하고 깨우침이 있어서 스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현파 스님과 함께 백일百日 입제入制를 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현파 스님은 나 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았으며, 식견識見이 높고 도안道眼이 열린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 때 한창 나이인 이십 칠 팔세 였을 때라, 오로지 공부의 진전進前에만 매달려, 그것에 목을 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치구심馳求心이 극에 달해서 캄캄한 밤중에 스님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들어서자 말자, “부처가 되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부처가 되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그것을 한번 털어 내놓고 보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님의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면, 너는 뭐꼬?”
그리고 잠시 뒤, “스스로 거부하지 마라!”는 서릿발이 서는 말씀에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돌아 왔습니다.
天地與我同根 천지가 나와 한 뿌리며,
萬物汝與別無他體 만물이 너와 별개의 몸 아니니라.
無名實性非他物 이름 없는 진짜 성품은 딴 물건 아니니,
幻化空身莫知解 환으로 생겨난 헛된 몸 알려고 하지말고
平朝寅狂機 평상의 아침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內隱道人身 도인의 몸이 안에 감춰져 있으며
坐臥元是道不知 앉고 눕는 것이 원래 도 임을 알지 못하니,
只麽忙忙受幸苦 조급하고도 괴롭기만 할 뿐이다.
<해산 게송>
◎ 스님과 풀을 매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손을 펴 봐라!” 그래서 손을 폈습니다.
“그것이 부처다.”
그 순간 어렴풋하지만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잠시 뒤, “알겠는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대답을 못했습니다만, 살면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로 금방 이해 할 수 있게 이치를 들어가며 가르치는 것 보다는, 시절 인연이 되어 익어서 터진 그 속을 자신이 보게끔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에 앞서 도리어 숙연해 집니다.
一句明明該萬像 한 마디에 깨치면 온 갖 것을 깨치는데
三玄三要事難分 이치로 따져서는 사실을 구분하기 어렵다.
重陽九月菊花新 중양 9월, 늦가을에 핀 국화가 더욱 싱그롭다.
<해산 게송>
◎ 내원암에 살면서, 스님의 숨겨두었던 아들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쏙’ 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생김새가 닮았다는 그런 인연도 싫지 않은 것이지만, 그 보다는 내 가슴 속에서 스님과 닿아있는 끊어 질수 없는 인연의 줄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그것이 더욱 소중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스님을 만났을 때부터 갖고 있는 스님에 대한 무한한 신심信心입니다. 처음 만났을 그 때의 몇 마디 말씀들이—말씀의 내용은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으면서─내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깊은 곳으로부터 공명共鳴을 일으키면서 “아, 이 스님 진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아무런 손상 없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 아름답고 귀하며 자랑스런 추억입니다.
無風適雨水面刻 아무 기세도 없는 방울비가 수면에 무늬를 새기고,
黙言春花呼蜂蝶 소리없는 봄 꽃이 벌 나비를 부르는데
花笑醉客行步遲 꽃의 미소는 취한 이의 걸음을 늦추네.
<해산 게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