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훌륭한 점성가가 카시Kashi에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카시에서 20년 동안 점성술을 배우고 드높은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강을 건너려고 하다가 모래벌판에 나있는 몇 개의 발자국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것은 세상의 지배자만이 남길 수 있는 발자국이다!”
그가 20년 동안 공부한 점성술 책에 쓰인 것과 똑같은 발자국이었다. 인도에서는 온 세상의 지배자를 차크라바르틴Chakravartin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른다. 여섯 개 대륙 전체가 그의 지배하에 있다. 점성가가 생각했다.
“이 초라한 시골에서 위대한 차크라바르틴이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이렇게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벌거벗은 차림에 맨발로? 이 작고 더러운 강가에서? 말도 안 돼!”
점성가의 마음속에 ‘혹시 내가 공부한 책들이 틀린 것일까?’하는 의심이 일어났다. 그는 다시 한 번 발자국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틀림없이 차크라바르틴을 상징하는 모든 징조가 나타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발자국을 따라갔고, 나무 아래 앉아있는 붓다와 만났다.
이제 점성가는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나무 아래 앉아있는 이 사람은 황제처럼 보였다. 아름다움과 우아한 기품, 고요한 침묵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의 분위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의 현존만으로도 나무가 빛나고 있었으며, 그가 앉아있는 바위가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차크라바르틴이다. 그런데 거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온 세상의 지배자가 동냥 그릇을 들고 있다니!”
점성가가 붓다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말했다.
“당신께서는 저를 심한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저의 모든 책들을 버려야 합니까? 저는 20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발을 살펴보아도 될는지요?”
그가 붓다의 발을 살펴보고 나서 말했다.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차크라바르틴입니다. 당신은 황제 중의 황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주변에 시종 한명도 보이지 않는군요. 이 낡은 옷과 동냥 그릇은 또 무엇입니까? 당신이 거지란 말입니까?”
붓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책들을 버릴 필요가 없다. 그 책들은 옳다. 그러나 그대의 책들은 필연의 법칙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해서만 옳다. 의식이 깨어난 사람은 점성술과 그 예언의 범주를 초월한다. 그에게는 필연의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그는 무한한 힘의 일부이다. 그는 신의 일부이다. 그가 곧 신이다. 그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를 예측할 수 없다. 그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대의 책들을 버릴 필요가 없다. 그대는 다시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 이런 일은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한 사람이 차크라바르틴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떤 사람이 붓다가 되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차크라바르틴이 붓다가 되는 것은 극히 희귀한 일이다. 차크라바르틴도 드물고 붓다도 드물다. 한 사람 안에서 차크라바르틴과 붓다가 결합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희귀한 일이다. 그대는 이번 생에서 다시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몇 번의 생을 살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대의 책이 맞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예외가 있다는 것은 일반적 법칙이 있다는 증거다. 그대는 그 책들을 믿어도 좋다. 그 책들을 따르면 그대는 항상 옳을 것이다. 그대가 틀린 것은 이번 한 번 뿐이다.”
의식적이 되어라. 의식적으로 될수록 그대는 예측할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한다. 그때 그대는 매순간을 전적인 자유로 살아간다. 힘은 자유를 의미한다. 힘은 과거의 카르마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힘이란 그대가 더 이상 과거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과거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그대의 매순간은 과거로부터 자유롭다. 매순간이 전적으로 새롭고 신선하다. 그대는 전적인 자유 안에서 살아간다. 그대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을 구속하지 않는다. 모든 순간이 아무 것에도 오염되지 않고 수정처럼 투명하다. 모든 순간이 그 자체로 순수하다.
필연의 법칙 아래 산다는 것은 속박된 삶을 의미한다. 이것이 삼사라samsara의 의미다. 구속된 상태, 감금된 상태이다. 이것이 카르마의 법칙이 뜻하는 모든 의미다. 사실, 피타고라스가 채택한 필연의 법칙이라는 개념은 카르마의 법칙에서 유래했다.
필연의 법칙이란 카르마의 법칙을 나타내는 피타고라스의 표현 방식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카르마의 법칙은 과거의 모든 행위가 지금도 그대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그대는 죽은 과거의 영향력 아래 있다. 이미 죽어버린 과거가 그대를 지배한다.
그대가 어제 행한 모든 행위는 특정한 패턴, 구조, 인격으로 굳어지고, 오늘 그대는 단순히 그것을 반복한다. 이렇게 반복함에 의해 이 패턴은 더 강화된다. 날이 갈수록 더 강화될 것이다. 이렇게 여러 생을 거치면서 특정한 것을 반복하면 그것은 마음속에 고정된 틀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일이 되어버린다. 그대는 단순히 로봇처럼 그 틀에 따라 살아간다.
오쇼의 <피타고라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