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머슴과 마님?
🌺🍀💙🎁 언제나 조용하던 이 진사네 집이 발칵 뒤집혔다. 이 진사가 숙부 소상에 다녀온 사이 벙어리 머슴이 사랑방 다락에서 돈 궤짝을 뜯고 거금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이 진사의 처남인 집사가 동헌으로 달려가 발고를 했다. 그다지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사또는 여럿이 어울려 술잔을 돌릴 때 몇 번 합석하여 과묵하고 학식이 높은 이 진사를 가슴에 새겨두고 있었던 터라 육방관속을 모아 도둑을 잡아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포졸들이 흩어지고 형방의 앞잡이들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여기저기 염탐했다. 50리 밖 포구에서 나룻배를 타려는 벙어리 머슴이 붙잡혔다. 그는 포박 당해 동헌 마당으로 끌려왔다. 사또가 “네 이놈, 주인이 하루 동안 집을 비운 사이 다락에서 돈 궤짝을 뜯어 훔쳐 가다니!” “어버버버~.” 벙어리는 고개를 쳐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도 못 알아듣는 벙어리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나루터에서 잡힐 때 두드려 맞고 동헌 마당에서도 매타작을 당해 벙어리 머슴은 피투성이가 돼 옥에 갇혔다.
그날 저녁, 이 진사가 사또를 찾아갔다. 사또는 마침 도난사건을 재빠르게 마무리 지은 병방·형방과 이방을 치하하며 주안상 앞에 앉아 있다가 이 진사를 합석시켰다. 너털웃음이 어우러진 주연이 끝나고 세 관속이 자리를 뜨자 이 진사는 도포 속에서 전대를 풀어 사또에게 바쳤다. “아, 이럴 필요 없어요,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 진사가 거푸 전대를 들이밀자 “그럼, 이 돈은 초량천 다리를 놓는 데 보태겠습니다.”
그날 밤, 사또가 침실에 들어가는데 수문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으리, 주무시는지요?” 사또가 벗던 옷을 다시 입고 “무슨 일이냐? 왜놈들이라도 쳐들어왔단 말인가?” “어떤 여인이 장옷을 입고 두 눈만 내어놓은 채 사또 나으리를 뵙겠다고 이 늦은 밤에 찾아왔습니다.” 달빛이 파랗게 내려앉은 동헌 마루에서 사또는 그 여인을 만났다. “쇤네는 이 진사의 청상과부 며느리로 벙어리 머슴이 돈을 훔쳐 달아나도록 다락 열쇠도 줬고, 돈 궤짝은 제가 열쇠가 없어 부수도록 해 돈을 꺼내 줬습니다.”
사또는 술이 확 깨고 잠이 싹 달아났다. 며느리는 조용조용 그 사건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이 진사에게는 막내딸이 있었다. 열일곱에 시집갔다가 오년 만에 시집에서 쫓겨나 친정에 와 있었는데, 이 진사는 벙어리 머슴을 들일 때 데릴사위로 삼겠다며 삼년 후에 막내딸과 혼례식을 올려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총각 귀신이 될 뻔한 벙어리는 감격하여 이 진사에게 큰절을 올린 후 황소처럼 일했다. 청상과부 며느리 눈에는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22살 시누이는 재혼이고 벙어리는 스물아홉인데 데릴사위는 무엇이고 삼년 후에 혼례식을 치르자는 건 또 무엇인가? 어느 가을날, 벙어리 데릴사위가 들에서 돌아와 조끼 주머니에서 다래를 한 움큼 꺼내 시누이에게 건네자 그녀는 시궁창에 던져버렸다. 삼년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 벙어리가 밭에 일하러 간 사이 곱게 차려입은 시누이가 이 진사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저녁때 이 진사 혼자 돌아왔다. 시누이가 40리 밖 어느 부잣집 홀아비에게 재취로 시집을 간 것이다.
벙어리 머슴에게는 시누이가 몸이 아파 의원을 하는 외가에 갔는데, 병을 고치면 돌아올 것이라 거짓말을 했다. 이 진사 며느리가 눈물을 흘리며 “벙어리는 돈을 훔쳐서 달아난 게 아닙니다. 제가 3년 치 새경을 계산해서 준 겁니다.” 몸을 벌벌 떨면서 여기까지 듣고 있던 사또가 “여봐라, 당장 옥에 갇힌 벙어리를 풀어 오렸다.” 동헌에 불이 밝혀지고 육방관속이 모여들었다. 피투성이가 된 벙어리가 걷지도 못해 들것에 실려 동헌 마당에 오자 며느리가 대성통곡을 하며 버선발로 내려가 벙어리를 안았다.
삭발을 하고 입산하겠다는 며느리를 사또가 달래고 달랬다. “저 벙어리가 여기서 풀려난들 어디 가서 어떻게 살겠소? 또 이 진사 같은 나쁜 놈을 만나 신세를 망치겠지요. 저 벙어리를 보살필 사람은 이 진사 자부님밖에 없소이다.” 십년이 흘렀다. 백 여리나 떨어진 강가의 조그만 농촌마을, 저녁나절 벙어리가 지게에 풀을 한 짐 지고 어미 소를 몰고 송아지는 졸졸 따라 아담한 기와집으로 가자 아들 둘, 딸 하나가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벙어리 아버지가 큰 호박잎에 새빨간 산딸기를 가득 싸왔다. 이 진사 며느리였던 그 여자가 활짝 웃으며 부엌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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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의 모든 희망은 언제나 오늘 부터 입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마음과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교훈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잠 11:29).
은혜의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