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바 꼭 질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문화생활의 일환으로 가끔 단체로 영화 관람을 갔다. 대부분 평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전교생 전체가 영화 한편을 보고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영화는 대부분 일제강점기독립운동에 관한 내용이나 역사물들을 다룬 내용이었지만 극장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때였고 오후수업을 빼먹는 재미도 있어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하루는‘시민극장’에서 전교생이 사극영화를 보고 있는데 좌석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극장 안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시민극장은 건축당시 워낙 큰 건물로 지어 한쪽 벽에 금이 가 있어 안전하지 못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좌석이 너무 심하게 흔들리니 어느 구석에서 불이 나서 극장이 무너지나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보니 재빠른 학생들은 이미 몸을 피해 극장 밖으로 도망 나갔고 나같이 감각이 둔한 학생들은 늦게야 가방을 챙겨들고 극장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영상기사는 영사기를 돌려놓은 채 도망을 가서 영화는 계속 돌아갔다. 극장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도로가에서 멍하니 극장 꼭대기를 쳐다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극장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학생들은 보던 영화를 마저 보려고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끝가지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뉴스에 포항지방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지진이 나도 영화구경은 재미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단체관람 영화는 이제 흥미가 없어졌다. 성인 영화가 보고 싶어졌고 특히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애정영화가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고 싶다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성인영화뿐 만아니라 학생들이 볼 수 있는 영화도 밤에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금지했던 시절이었다. 선생님들은 조를 짜서 밤마다 극장을 지켰고 만약 몰래 입장하여 발각될 시는 교칙에 따라 벌칙이 가해지니 선뜻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포항시내에는 극장이 세 개 밖에 없어 어딜 가던 감시 선생님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가슴을 파고드는 호기심은 어쩔 수 없어 가장 절친한 친구인 국창이를 꼬드겨 ‘시공관’에서 상영하고 있던 『맨발의 청춘』을 관람하기로 하고 준비에 나섰다.
최대한 학생이 아닌 것처럼 치장을 하고 모자를 꾹 눌러 쓰고 입장권을 사서, 기도(입장권을 검사하는 청년을 ’기도‘라고 불렀다)에게 내밀고는 혹시 우리학교 선생님이 단속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기도 아저씨는 “선생님은 왔는지 안 왔는지는 모르겠고 학생들이 밤에 극장구경 오면 되나?” 한마디 꾸지람 비슷한 말을 하고는 모른 척 하고 속히 들어 보냈다. 밤 고양이 주인 몰래 부엌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살금살금 복도를 지나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우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우리와 눈길을 마주친 사람은 그 이름도 유명한 ’드라큐라‘ 유헌준 선생님이었다.
얼굴을 외면한 채 걸음아 날 살리라며 화장실로 화들짝 숨어들었다. 대변 실 한 칸을 차지하고 선생님이 뒤따라오는가 싶어 오가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고 있었다. 워낙 겁이 많은지라 숨조차 크게 쉴 수가 없었다. 이제는 화장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게 됐다. 영화 시작 벨소리가 울리고 애국가 소리가 그치기만 손곱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애국가 소리가 끝나고 영화상영이 시작될 무렵, 그날의 술래 유헌준 선생님 몰래 살금살금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겁은 났지만 돈이 아까워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영화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일 등교해서 교무실에 불려가 받아야할 벌을 생각하니 아름답게 보이던 엄앵란의 얼굴도 시큰둥해졌다. 영화가 끝나기 전에 얼른 극장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유헌준 선생님은 매우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고형사‘라고 별명 붙여진 학생과장 선생님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학생들에게 지독한 존재였다. 이튼 날 등교한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선생님의 호출에 대비하고 있었다. 도통 공부가 되지 않았다. 오전수업이 끝나도 호출이 없었다. 혹시 잊으셨나? 오후에 부른 것인가? 별난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교무실에 거서 이실직고하기 할 사건도 아닌 것 같아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틀이 가도 일주일이 가도 선생님은 우릴 호출하지 않았다. 최소한 몽둥이찜질을 당하거나 교무실에서 몇 시간씩 의자 들고 벌을 써야 마땅한 사건을 덮어버리고 그냥 지나간 이유가 뭘까?
당시 학교에는 담배를 피우거나 불량서클을 만들어 패싸움을 벌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도 소변을 핑계로 화장실에 가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학생도 있었다. 휴식시간이 되면 화장실은 공장의 굴뚝과 같았다. 선생님들은 그것을 알지만 제재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흡연을 하니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이라 생각됐다. 그러나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복장검사를 할 때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담배나 성냥이 발견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은 참 신출귀몰했다.
한편 주먹께나 쓰는 학생들은 세븐스타(Seven star)니 WT(White tiger)등의 서클을 조직하여 패싸움을 벌리거나 힘없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들도 잦았다. 그러나 국창이와 나는 소위 범생으로 담배를 피운다거나 불량서클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공부도 그런대로 잘 하는 편이었기에 선생님이 눈감아 준 것이라 생각됐다.
극장을 마음대로 들어가도 아무 간섭을 받지 않은 대학생이 되었다. 한국영화만 접했던 나는 외국영화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고종사촌 누이와 미국영화 『초원의 빛』을 구경 갔다. 처음 보는 나탈리 우드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 시간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고교 때 내 마음에 자리 잡았던 엄앵란은 나탈리 우드에게 밀려났다. 옆자리에 앉은 여인이 고종사촌 누이가 아니었더라면 입술을 훔쳤지 싶다. 주인공 윌마(나탈리 우드)는 부자집 외아들 버드(워렌 비티)와의 첫사랑에 실패하고 정신병을 앓게 된다. 병을 치료받은 윌마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며 독백한다. “첫사랑의 아름다음은 초원의 빛처럼 순간적이지만 그 영광을 오래도록 간직하며 살아간다.” 윌마의 고백이 아직도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초원의 빛> 윌리엄 워즈워드
한 때는 그토록 찬란했던 광채가
이제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한들 어떠랴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어떤 것도 되불러 올 수 없다 한들 어떠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얻으리.
지금가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본원적인 공감에서,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솟아나
마음을 달래주는 생각에서,
죽음 너머를 보는 신앙에서 힘을 얻으리
그리고
지혜로운 정신을 가져다주는
세월에서 힘을 얻으리
첫댓글 고교시절이 영상으로 지나갑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린 이미 너무나도 멀리 온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