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악플달면 쩌리쩌려버려 흥미돋 조선이란 나라에 먹구름이 들기 시작한게 세조때문이라고 보는시각이있다는걸 알고있어?
하츄 추천 3 조회 4,669 12.10.09 00:13 댓글 45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2.10.09 00:16

    첫댓글 공남생각난다 ㅜㅜㅜ허구지만 ㅜㅜㅠ세조, 나빳어

  • 12.10.09 00:18

    콩조..나쁘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2.10.09 00:23

    22 업적 짱 많아. 그래서 신기했음 왕 될라고 한 짓 보면 나라 말아먹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잘해서

  • 작성자 12.10.09 00:44

    세조가 나름 세운업적이 많다는건 알고있어.내말은 세조가 업적이 없다는말이 아니라 부정한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하다보니 그부작용이 후대에 영향을 끼쳤다는거야.하다못해 태종처럼 후대를 위해 자신의 공신들을 처단했다면 모를까 본인대엔 본인의 카리스마로 그게 커버가능했겠지만 그이후의 왕들에겐 아버지 할아버지의 공신들은 부담이될수밖에 없었단거지.공신들이 죽은 이후에도 계속문제가 생기는게 저 정당하지못한 찬탈로인해 당시 세조의 조정에 출사하느니 후학이나 양성하겠다며 시골로 낙향한 선비들이키운 사림들이 조정에 출사하게되는데 세조까는 조의제문으로 또한번 피바람이불고 또그때 공을세운 공신들이생기고 후대왕

  • 작성자 12.10.09 00:50

    들에게 또다시 부담으로 돌아오고 공신전은 공신전대로 늘어나서 원래는 국가의 세금이되어야하는것들이 공신들의 개인재산이되버리고 그만큼 왕은 힘이 없어지고의 무한반복.글구 단종이 나이가 어리다고하는데 세조의 손자 성종도 단종과 비슷한또래에 왕위에올랐음.숙종도 14살에왕위에 올랐고 숙종은 그나이에 친정까지했고...물론 왕실어른이있냐없냐의 차이는있겠지만 그당시 12살을 지금의12살로 생각하면 안된다고생각해

  • 선조가 왕세자 시절이 있었어? 명종이 죽기전에 차기왕으로 지목된것만 알았는데 ㅋㅋㅋ

  • 12.10.09 03:56

    조선이 장남승계원칙을 따르나 경국대전이 저땐 완성되지도 않았고 단지 건국초부터이어져온 피튀기는 살육전때문에 또 문종이 몸이 약하고 당시에 늦게 얻은 아들이라 바로 원자로 책봉한것이지 꼭 유교이념 때문에 아니야 오히려 외동이 아닌이상 장자가 왕위를 이은 경우가 더 없어...유학에서 장남승계를 경국대전이나 예기에는 (제사시) 강조해 놨으나 임란 이전에는 그게 지켜지는 분위기도 아니고 신유학은생각보다 매우 유두리 있게 통용되었던거같아
    특히 전기에 ..

  • 작성자 12.10.09 09:26

    돌고래언니가 말했듯이 정통성과 명분이 중요하고 둘중에 명분이 더욱 중요하다고했는데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건 정통성도 없지만 명분이 더더욱 없기에 문제가 되는거야. 세조가 내세운 명분이라는게 왕의 나이가 너무 어려 신하들이 권력을 농단한다, 그럼으로 왕권강화를 위해 나선다라는게 명분인데 왕이 나이어린게 왕위를 내어줄 명분이 되는건 아닐뿐더러 신하들이 왕권을 위협하고 권력을 농단한다는것도 문제인게 세조가 말하는 그 신하들이란 단종이 나이어리다는점을 이용해 권력을 쟁취한게 아니라 그들은 문종의 고명을 받은 신하들이었어. 문종에의해 단종을 보필하라는 왕명을 받은사람들이었다는거지

  • 작성자 12.10.09 09:37

    그리고 정말 세조가 권력을 농단하는 신하들을 처치하기위한 애국심의 발로였다면 그 신하들을 처치한뒤 왕위를 양위받을게 아니라 그냥 단종을 보필했어야 되는거지.거기다 세조는 단종을 죽였지.광해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다못해 그 개막장 연산도 왕위에서 쫒겨났지만 천수를 누렸는데 단종은 죽였어.나이가 어려서 신하들이 권력을 농단한다는게 세조의 명분이었는데 그 신하들도 죽였고 나이가 어려서 안된다고 해서양위까지했는데 그런 단종을 죽임. 이건 결국 세조가 스스로 내세운 명분또한 없애버린거야. 정통성도 없고 명분도 없지

  • 작성자 12.10.09 09:47

    글구 성종은 본인능력으로 왕권을잡고 단종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게 단종은 그럴 기회조차 가져보지못했잖아ㅠㅠㅠㅠ역사에 만약은 없는거라고 나도 단종이 더 잘했을꺼다라는건 아니지만 배후가 빵빵해서 친정을 할수있을때까지 시간을 벌수있었던 성종과 그렇지못했던수 단종을 비교해서 단종은 능력이 없었다고하기엔 단종에게 너무 가혹함. 마지막으로 조선이 장자계승의 원칙이 잘 지켜진 예가 손에 꼽을만하다는건 나도 알고있음. 우선 중전이 자식을 낳지못하는경우(수두룩하게 많음;;;)도 있었고 장남이나 너무 개막장이라서 도저히 안되겠다(선조의 서장자 임해군이 개망나니라서 둘째인 광해군계승)싶은 경우도 있었고

  • 작성자 12.10.09 09:49

    적장자계승이라는건 상황에 따라 달라질수있지만 기본적으로 적장자계승이라는 원칙이있었고 장남이 개막장이 아닌이상 장남에게 물려주는 원칙은 경국대전이 만들어지기 이전 성리학의 큰 기틀인 유교의 이념자체가 그렇고 단종은 문종의 장남으로 단종자체가 개막장이 아니었다는거를 말하고싶었어.

  • 12.10.09 00:23

    존나 나비효과 쩌네....

  • 12.10.09 00:23

    세조도나름세운업적만은디 ㅋㅋ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2.10.09 23:56

    222222222222222나도 인조반정 제일싫어 진짜 무슨 개소리야 재조지은은 무슨 존나 엿이나 먹어라 백성들은 죽든말든 그놈의 명분이 뭐라고

  • 12.10.09 00:26

    오 ㅋㅋㅋㅋㅋㅋㅋ 쩐다 ㅋㅋㅋㅋㅋㅋ 역시 뭐든지간에 힌번에 이루어지진않나봐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2.10.09 01:14

    근데 실질적으론 김종서는 문종의 고명을받은 탁고대신었어.왕실에 어른이 없었기때문에 김종서를 위시한 황보인등이 단종이 친정을 할수있을때까지 보필하라는 고명을 문종이내렸거든.그 과정에서 신하들의 권력이 세질수도 있겠지만 그사람들은 원로들로 단종이 성인이될때쯤이면 나이때문에 조정에서 슬슬 사직할때였거등.김종서가 세조견제 쩔었고 먼저치지않으면 죽임당했을꺼라하는데 나는그건 승자의기록이라 사실 신뢰가 잘안가.결과적으로 철퇴를 맞은건 김종서였고 반역을 꽤했다지만 엄연히 조선도 국법이있는데 절차다 무시하고 반대쪽에서 어떤반박도 못하게 해놓고...뭔가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불어넣으려는거같아서;;;

  • 12.10.09 00:46

    나도 세조 시러 ㅠ0ㅠ

  • 12.10.09 00:49

    문종은 다 좋은데~너무 일찍 돌아가셨어 단종이 제자리를 확립할만한 나이까지만 살아계셨어도 ㅜㅜ

  • 작성자 12.10.09 00:54

    문종은 그당시로 보면 단명한건 아니야.제위기간이 2년밖에 안되고 단종이어려서 그런 이미지가 있는데 문종이 성종보다 오래살았음.ㅋㅋ문종은 39세에 승하하셨고 성종은 37세승하하심.문종의 문제라면 단종을 너무 늦게본거...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2.10.09 01:03

    망했다는게 아니라 시발점이라는거야.둑에 구멍하나생긴다고 바로 둑이 무너지진 않지만 결국 그구멍으로 둑이 무너지듯이 어긋나기시작한 시점이 세조라는거.근데이게 이런학설도있다는거지 100%세조탓이라는건 아니야.나도 전에는 이런생각못해봤는데 이렇게보는 시각도있더라는거양

  • 12.10.09 01:15

    역사글 재밌다ㅋㅋㅋㄱ 댓글들 보니 세조에 대한 여러 얘기가 많넹~그래서 더 재밌당 잘읽었어~

  • 작성자 12.10.09 01:23

    내생각은 그래.세조가 과는 있었지만 그만큼 정치는 잘한것도 맞고 이것도 어느정도는 맞는말이있다고.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이유는 한명회.홍윤성든 자신을 왕으로 추대해준 공신들을 자기대에서 정리하지못해 후대왕들에게 부담을 준거.후대왕들은 아버지신하들을 다루기힘들어.그게 왕위와 관련된공신이라면 더더욱.후손이 그공신들을 숙청하기엔 그러다보면 자기선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꼴이될수도있고 그렇게되면 본인의 정통성도 상실하게 되는지라 본인의 자리도 흔들리게되니까.나도 명분에집착해서 실리늘 챙기지못하는거 존나 답답한데그당시 조선이 명분없으면 암것도 안하는나라인지라...

  • 작성자 12.10.09 01:28

    멀리갈것도없이 태종만봐도 자기공신들은 물론 공신이 아닌 왕권강화에 문제될만한 걸림돌이란 걸림돌은 죄다제거하고 세종에게 물려주었잖아.물론 안해도되는것마저 한게문제지만;;

  • 12.10.09 01:27

    맞는말같다 ㅇㅅㅇ !!

  • 12.10.09 02:05

    나는 김종서 역시 썩은물이였기에 쳐 낸 일은 맞는 거라고생각함 어차피 단종나 문종이 계속 정치를 했다면 김종서 등 개국공신의 후손세력에게 백퍼 휘둘림 (당시 사림은 이제 막 전 왕조가 망하면 2대 자손까진 절대 출사 하지않는다는 대장부의 명분에 따라 산속에 박혀있다가 나온게 태종대 그래봤자 이미 개국공신 후손들한테 자리 밀려힘이..)세조와 한명회의 타이밍은 적절했으나 사후 처리가진짜 엉망태종이 왜 그렇게 외척을 다 쳐버렸는데 그덕에 세종이 학문과 선정에 집중할수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하능데..원래 뒤에 조 자가 붙은 왕은 새 왕조

  • 12.10.09 02:09

    열거나 했을때 붙는 것인데 세조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새로이 정통을 이어기 때문인데 그만큼 새로이 나라를 열었다는 마음으로 정리해야했다는 것이 맞다고 봐ㅋ그건 진짜 동감 ㅋㅋ그러나 이후 연산군과 중종때 대규모 사림에 대한 숙청이 일어나면서 사림세력이 약해지고 명종대에 다시 청요직으로 등장하고 예송논쟁으로 본격적으로 동서남으로 나눠지기에 훈구와 사림의 갈등이 세조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중간에 사림이 싹 쓸리는 기간이 쫌 있어서... 그리고 사림과 훈구가 피터지게 싸우면서 조선의 정치문화가 발달되었고 그 사이에서 성리학이 밝달하

  • 12.10.09 02:12

    이황이나 이이같은 대 학자가 나오면서 역으로 중국에 사상을 가르칠정도 였기에 문화가 후퇴했다? 라고 보는건 오히려 위험한 조금 위험한 시각인거같아 ㅠㅠ ( 온니도 알겠지만 이게 일본인들이 니들이 훈구랑 사림이랑 피터지게 싸워서 당쟁해서 싸우다가 개혁에 늦음 그래서 우리한테 먹힘 니네 아둔 이렇게 주장하는 지라)

  • 12.10.09 02:22

    그게 다 ~~~ 누구?? 인조 덕분이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멋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인조 ㅋㅋㅋㅋㅋㅋ 고답이 ㅋㅋㅋㅋㅋㅋㅋ 속이 터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우리 인조만 생각하면 ㅋㅋㅋㅋ조선의 고구마 다 먹은 기분 ㅋㅋ

  • 12.10.09 02:36

    진짜 언니말에 백번동감 성리학이 절때 여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나이만 많으면 그 어떤 무례를 범해도 용서가 되는것이 아닌 정말 알면 알수록 정말 좋은 학문이거든ㅠ 내가 조선후기가 전공이라(사실 나이롱) 조선도 사랑하고 지배이념인 성리학도 사랑하고 당시의 일상종교인 불교의 이념도 진짜 매력터진다고 생각하거든? (오히려성리학보다ㅜ어려운거같음) 근데 인조는 ㅋㅋ이름부터 싫음

  • 작성자 12.10.09 09:19

    문종이나 단종이 개국공신의 후손세력에 휘둘렸을꺼란건 아니라고봐. 이미 개국공신들은 태종.세종초기때 거진 자연스레 퇴장을했고 그 후손들중 권력을 농단할만한 세력들은 태종이 이미 다 싹 정리를 했음.그리고 태종때부터 내려운 일부대신들은 거진 세종말이되면 다들 자연스레 퇴장을 했고 문종시대에 남은 태종. 세종때의 노신들은 몇 안되는상황이었고 문종을 도울 집현전이하 신진세력이 막 중앙정치에 등장하고있었을때였어.그리고 성리학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건 아니고 임란이후 되게 경직되었다고 할까.난리가 났었으니 이해는가지만 너무 경직되어 새로운것을 받아들이는데에 부정적이 되어버렸다는게 안타깝다는거

  • 12.10.09 05:41

    딱 그렇다 하고 단정지을 수 없는 그냥 학설인뿐인거 아닌가 흥은 양면적으로도 망을 가지고 가는건데 그런걸 가지고 딱 망할 징조가 그때부터 시작됐다 할순 없는듯 공감이 안됨

  • 12.10.09 06:30

    역사시점 - 재밌으다...

  • 12.10.09 08:38

    재밌다 이런 글 자주 올라와서 토론 많이 했으면 좋겠음 이런 지식지식돋는 글 너무 조앙ㅎ.ㅎ글쓰니언니 고마움 근데 댓글정독하다보니 나는 '그렇지 않다'라는 쪽이 맞는거같아. 너무 세조에만 집중하다 보니 주변의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학설 같다는 생각이 좀 드네. ㅋㅋㅋ어쨌든 흥미로웠음bbb

  • 12.10.09 10:47

    이거다 용의눈물보면나옴............. 나그어릴적에 이게 다기억나......... 태조이성계는 김무생님이었고 태종이방원은 유동근아저씨였고 이민우도나왔는데 양녕대군이었나 그랬고 단종은 단종전문배우 정태우였음 ㅋㅋㅋㅋ 그래서 원글의 내용은 다아는거. 다행이다 세세하게 정치인들 신하들까진몰라도 여기원글내용은 다아는거라서ㅠㅠ 세조도 꽤유명한 아저씨였는데 이름을 모르겠고 그 한명회도 최종원인가 그아저씨가했었음 기억력돋네

  • 12.10.09 13:02

    깔끔한 정리 고마워 여시~

  • 12.10.09 13:17

    대댓글이 너무 길어져서 조선이 재상중심의 정치가 절때 아님 네버 아님 그러나 당시의 모습이 수양이 "어린 왕을 끼고 몇몇 재상이 정치한다" 였나? 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해
    그렇다면 이미 김종서 외 황보인 등은 아무리 선대왕의 부탁이 있다고 해도 이미 정도를 넘었던 것이 아닐까? 왜냐면 조선의 지배이념인 유교는 왕도정치를 표방하며 신권과 왕권의 적절한 견제 속에 균형을 이루는 정치를 표방하였는데 왕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정치적인 반대파 종친들을 궐 출입 자체를 막았다는 것을 보면 아예 단종을 고립시켰다고 해석 할 수 도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리고 태종대에는 개국 공신세력을 쳐 낸것 보다는 외쳑 세력을 처낸 것

  • 12.10.09 13:18

    것 보다는 외쳑 세력을 처낸 것이 대부분이고 (자식들이 외가에서 자란데다 양녕이 세자시절에 외삼촌들하고 친해서 민무질 민무구를 쳐냄) 양녕을 폐세자 하는 과정에서 양녕의 난봉질을 도운 사람들을 쳐냈기 때문에 딱히 훈구파를 쳐냈다 라기 보기 힘들어 간신잡배들을 쳐냈다고 이해하는게 맞는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당시에 조선 건국시 출사를 하지않던 선비들의 자손들이 대거 등용되었지만 이미 건국초기부터 세를 닦아오며 자리를 잡아왔던 훈구들과는 그 정치적인 파워에서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지 조선이 아버지의 계급을 물려받는 귀족사회는 절대 아니지만.. 김종서 역시 훈구파지 절대 사림은 아니지..이것만 봐도 단종이 역시 훈

  • 12.10.09 13:19

    구한테 휘둘렸다고보이는데.....

  • 12.10.09 17:21

    언니 다 좋은데 조선이 재상중심정치가 아니라니? 정도전이 조선을 건국할 때 이론으로 애초에 제시한게 재상 중심의 정치였어. 그리고 태종때 없어지긴 했지만 세종때 의정부서사제였기두 하고.

  • 12.10.09 18:19

    아... 내가 말한 재상중심의 정치는. 왕보다 재상의 권한이 큰.. 마치 고려와 같은 시스템을 말한거였어.. 오해가 있을만하다..ㅋ근데 정도전이 주장한 재상중심의 정치도 대간의 기능을 강화하여 군주가 제 역활을 못할 것을 대비하자고 주장한 것이 큰 틀이고, 과전법등은 충분히 왕도정치, 위민이념에 더 입각해 있음을 알수있어.. 그리고 의정부 사서제는 왕권과 신권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마련된 장치지 재상중심의 정치를위한 장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리 적었어. 조선의 재상은 2품이상으로 좀 수도 많고 그 의미 역시 그 이전 왕조인 고려의 재상과는 조금 다른면이 있긴 하지만 조선은 왕권과 신권의 균형을 잡아가며 통치하는것을

  • 12.10.09 18:23

    최고의 정치체제로 여겼다고 나의 필기에 적어져있어서 . 지금 마무리가 안되는데 이걸 어찌 마무리 하지? 모르겠으니 마무리는 뒷북사진으로

  • 12.10.09 18:15

    재미지다잉...근데 당시 단종 곁에 정말 믿을만한 신하들이 오래 있을 수 있는 조건이엇다면 세조는 나쁜놈이지만 그게 아니엇다면 뭐 여러가지 혼란이 왔을 수도 있고 알수 없는거지 뭐ㅋㅋㅋ 글에 나온 시점대로라면 역시 나비효과는 무셔....

  • 우와... 역사 재미있다!!!!! 흥미진진...

  • 언니들 댓글 쩌러...두고두고 다시 읽어야지 확실히 역사를 알아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기는것같아

  • 존나 재미있다노,,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