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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복숭아 크림파이, KBS 각시탈, 위키피디아
(+21.04.01 끌올/스크랩은 그만해주세요~!)
이름높은 포도대장인 조부와, 서자였으나 매우 총명하여 마지막 과거에 합격했었던 부친 밑에서 자란 그.
그의 부친은 고종의 신임을 받던 인물이었는데, 철저한 반일주의자였다.
일본에 의해 신변에 위협이 가해지자 고종은 그의 부친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공사로 임명한다.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간 그는 미국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고,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중등학교를 다녔고, 군사학교도 마쳤다.
그는 당시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의 3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조선인이었다.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면서 일본은 각국 주재 한국 외교관의 소환령을 내린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고종황제의 뜻을 알고 있었으므로, 대한제국으로 귀국하지 않는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자, 본국에서 송금하는 유지비용도 끊겼으나 그는 부친과 함께 비공식적인 외교활동을 계속하며
일본의 불법척인 침략과 대한제국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일본의 침략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통해 대한제국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고종의 의지에 따라 그는 그 외의 2명의 동료와 함께 네덜란드로 떠난다.
유능한 외교관이던 그의 아버지가 러시아 황제에게 이들을 위해 러시아 호위병의 보호를 요청한 덕분에, 그들은 네덜란드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보호받는다.
그들은 사연을 길게 적은 글(長書)과 그 부속문서인 ‘일인불법행위(日人不法行爲)’를 프랑스어로 작성하였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네덜란드에는 도착하였으나 국제회의가 열리는 장소에는 입장할 수가 없었다.
대한제국은 이미 외교권을 상실하였으므로 대표를 파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작성한 내용을 일본 외의 40여 개 참가국 위원에게 보냈고, 각국 위원들에게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각국 대표는 모두 이를 거절했다.
그는 출입이 거부당하여 문이 닫힌 회의장 앞에서,
동료들과 함께 ‘왜 대한제국을 제외하는가’라는 성명서를 프랑스어로 작성해 회의장 입구에서 배포하며 일제의 부당함을 크게 외친다.
그러자, 국제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왔던 한 기자가 그에게 의문을 느껴 질문한다.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왜 딱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 모임의 평온을 깨뜨립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흔히 제단이 이곳에 있다고 말하는, 법과 정의, 평화의 신을 혹시라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기자는 그의 말에 대답하였다.
“드 마르땅(de Martens)씨가 1899년 숲 속의 집(제1차 만국평화회의 장소)에서 이 제단을 찾았습니다.”
그도 대답하였다.
“1899년, 그때부터 법의 신께서는 무명의 신이 되셨군요. 도대체 이 방에서 대표들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기자는 그에게 말했다.
“그들은 전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보장하기 위한 조약들을 체결할 것입니다.”
그는 조소와 함께 말하였다.
“조약들이요? 조약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습니다. 왜 대한제국이 이 회의에서 제외됐습니까? 조약들이란 바로 위반되도록 만들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당황하여 말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정의란 없군요. 여기 평화회의가 열리는 이곳에서조차도. 당신들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려는 것이로군요. 결국, 가증스럽게 당한 치욕을 회복할 길은 없고, 정당한 조약이 불법적으로 위반됐다고 항의해도 무시되며, 또 한 나라의 독립은 그것의 국제적인 보장 여부와 관계없이 침탈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기자는 말하였다.
“당신은 일본이 강대국임을 잊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기자의 말에 반박하였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법의 신이란 유령일 뿐이며, 정의를 존중한다는 것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고 당신들의 기독교란 한낱 위선에 불과합니다. 왜 대한제국이 희생되어야 합니까? 대한제국이 약자이기 때문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정의, 권리, 그리고 법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왜 대포가 유일한 법이며 강대국들은 어떤 이유로도 처벌될 수 없다고 솔직히 시인하지 않습니까?”
기자는 변명하려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참지 못하고 말을 가로챘다.
“싫습니다.”
“정의에 대해 나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소위 말하는 평화주의자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에게서 당신 신념과 어긋나는 점을 찾아보십시오. 대한제국은 무장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침략적 야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라였습니다. 대한제국은 평화롭게 조용히 살아갈 것만을 원했습니다. 대한제국이 주변 강대국들에 대행해 성공적으로 국토를 방어해 내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대한제국은 구릉 하나하나가 천연요새를 이루는 산악 국가이며, 이천만 우리 민족은 우리나라를 극동의 스위스처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었습니다. 내가 여기 이 문 앞에 앉아 있다는 이 사실은, 칼이 아니라 법과 정의, 평화의 신을 신뢰하는 다른 나라들이 겪을 운명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열강들은 이와 같은 호소에도 꼼짝하지 않았으나, 각국 기자들과 네덜란드 언론은 그의 행동에 크게 감명받는다.
그리하여 며칠 후, 그는 국제기자클럽 주최로 열린 ‘한국에 관한 연설회’에 초청받는다.
그는 유창한 프랑스어로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 당한 경위와 일본의 침략상을 낱낱이 지적하여 폭로, 규탄하면서 한국민과 황제는 독립을 열망하고 있으니 세계는 한국 독립에 협조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것이 바로 그의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라고 불리는 명 연설이다.
일본을 지지하는 이들이 일본을 두둔하며 그를 압박했지만, 그는 전혀 기죽지 않은 당당한 웅변조로 일본을 공격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당시 그와 논쟁했던 일본인 기자 다카이시 신고로는 일본 정부를 옹호하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 3명은 진실로 애국지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궁핍해 보였으나 풍채와 언어 거동을 보면 나라의 쇠망을 우려해 자진해서 임무를 떠맡은 것 같았다.”
영어ㆍ프랑스어ㆍ러시아어에 능통한 그는 모든 회의와, 기자회견에서 주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국제 언론에 대한제국의 왕자로도 소개되었다.
그가 전주 이씨 가문의 출신이었다는 사실에서 고안해 낸 것이었으나, 현지에서 특사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였다.
그의 연설은 각국 대표와 수행원, 언론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각국의 언론에까지 보도되어 일제에 대한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대한제국의 사정이 각국 신문기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영국인 스테드가 회장으로 있는 국제협회의 회보에는 연설 전문이 게재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로모코티브>지 기자는 서명운동을 통해 한국을 지지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각국 신문도 매일 한국의 사정을 논하여 한국을 돕자는 여론이 급격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국제 여론은 여론일 뿐이었다. 대한제국의 현실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대한제국 최후의 외교는 이렇게 종말을 고할 운명이었다.
이때 중대한 사태가 돌발하였다.
나라의 운명에 절망한 그의 동료 중 한명이 누적된 과로와 울분으로 인해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그의 동료는 죽기 전 몇 시간 동안 마치 의식을 잃은 듯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 조국을 구해주십시오, 일본인들이 내 조국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동료의 마지막 말이었다.
일본에 의해 고종황제가 퇴위당하자, 평생을 나라를 위해 힘썼던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을 위해 거액의 재산을 모두 기부하고, 조선 민족에게 항일 의식을 심어주고 일본에게는 충격을 주기 위해 자결을 택한다.
“나라를 잃은 자는 머물 곳도 없고, 편히 쉴 땅도 없으니 죽어 마땅하다.”
그의 부친의 유서였다.
그보다 열세 살이 많은 형은 그가 네덜란드에 다녀온 후로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
그의 형은 동생의 사건 직후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그 이후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였으며, 결국은 객사하고 만다.
네덜란드에 다녀온 이후, 그의 행적은 묘연하다.
그러나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연설을 했다’는 기록 등이 발견되어
그가 평생 독립운동을 위해 힘썼음을 짐작 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 힘쓰다 순국한 열사로 임명되었지만, 그는 무덤이 없어,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로 모셔져 있다.
당시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그.
그는 대한제국의 외교관이자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국권수호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였다.
그의 이름,
이위종(李瑋鍾)이었다.
헤이그 특사.
왼쪽부터 이준, 이상설, 그리고 이위종.
<본 글은 '네이버 캐스트', '한국 근대사 산책'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문제시 둥글게 댓글로 알랴주세요!
안문제시 역사속 흥미돋 여인들 시리즈 얼른 쪄옴....ㅎ
뭐라 말해야될지 모르겠다..
헤이그특사! 우와
스무살에..... 진ㅁ자 위대하신 분이다 ㅠ 이름 꼭 기억해놔야지!
헤이그특사 ㅅ내용인가했는데 맞네..... 스무살이라니..... 지금 내 나이보다도 어린데 와.... 진짜 정말 감사합니다
와.....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맞아ㅠㅠ.. 이위종 열사님의 아버님도 평생 나라를 위해 사셨는데, 일본 지배에 반대하여 자결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어 평생 항일독립운동에 힘쓰셨다고 해.. 아버지가 기부한 금액으로 러시아쪽에서 군사훈련이나 교육에 힘쓰셨다는 정보도 있더라.. 그런데 왠지 정확한 행적이 없음...ㅠㅠㅠㅠ 너무 마음이 아파ㅠㅠㅠㅠㅠ 진정한 외교관이셨고 독립운동가이신데ㅜㅜ
우와.......
뭐라고...제가 감히...힘들게 지켜주신 소중한 나라가 이렇게 되어서 어떡하지요...
헐...... 대단하다 정말...
와...스무살에...대단해...
와.... 나 뭐하냐....
아 ㅠㅠ 난 헤이그특사 생각하면서 이준열사인줄.. 이위종열사님 감사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ㅠㅠ 내가 본문에 그의 동료라고 표현한 분이 이준 열사셔! 마지막 유언까지 나라 걱정을 하신 분.. 이준 열사가 돌아가셨을때 이상설 이위종 열사님께서, 특히 이상설 열사께서 부모를 잃은 것처럼 정신을 놓을 듯이 슬퍼하셨다고 들었어ㅠㅠ 세분 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야ㅠㅠㅠ
와 대단하다 ㅠㅜ
와 읽으면서 눈물 났어.... 고맙습니다
오진짜흥미돋이다ㅜㅜㅜ완전정독했어!! 대단하신분이시다진짜로
와진짜멋있다ㅜㅜㅜ나도나라를위해힘쓰는사람이되면좋겠다ㅜㅜ
와...한국사 몇년을 공부하면서 헤이그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이렇게밖에 몰랐다는게 부끄럽다..이위종 열사..머리속에 새겨넣어야지...지금의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역사꼭우리가기억하고배워야할것이야...고맙습니다
감사하고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 댓천 뿅♥
우와 정독했어... 진짜 멋있다ㅠㅠ
헤이그 특사는 알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
진짜 흥미돋이다 ㄷㄷ정독했어ㅠㅠ 진짜 멋있다 존경할만한분이였어ㅠㅠㅠ진짜 감사합니다 ㅠㅠ
정말 멋있는 분이다. 꼭 기억해야지
멋있으셔 ㅠㅠㅠ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ㅠㅠㅠ
정말멋진분이다!
감사합니다... 친일파가 정권을 잡고 휘두르고 소중히 지키고자 하엿던 나라가 부정부패로 물들고 역사또한 왜곡하려는 자들도 잇지만 저도 그정신을 본받아 끝까지 사랑하며 지켜나갓으면...
오...어제 공부한 부분...진짜 근현대사 공부할 때 마다 울컥...
감사합니다
이름 나올때 소름 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예전에 배웠는데 다시보니까 소름이야 진짜 여시야 좋은글 올려줘서 너무 고마워ㅠㅠㅠ
죄송합니다 못난 후손들은 또 다시 예전과 같은 수순을 밟고있네요 지금이라도 다시기억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깨달아가요ㅠㅠ
감사합니다....
와 나 이거 현실소름돋았어 ㅠㅠ
감사합니다.
삼개국어 유창에서 헤이그특사? 생각하긴했는데 스크롤내리면서 진짜 현실 소름.... 감사합니다ㅜ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저렇게 아니 이렇게ㅐ 대단한분들은 자신의 재산까지 모두 바치고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지킨나라인데.. 민족반역자새끼들이 배불리사는꼴진짜보기싫어 다죽어버렸으면좋겠따시발 족같은새끼들 저분들땀과얼로 배불리사는거지 개씨발년들
헤이그특사 3인 이름 외울때는 그저 역사책의 일부였는데 이글로 보니 살아잇던 인물임이 느껴진다 고마워!
감사합니다..
아 정말 소름돋아.. 저 헤이그특사사진 너무나 익숙한사진이고 그냥 보고 말았는데..그것도 가운데 분만 보고 말았던것 같은데 너무 죄송스럽다..이위종..이준..이상설..기억할게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반성하겠습니다..
와...이준..이위종..이상설.......근현대사책에서 볼때는 그냥 하나의 글자였는데 이렇게 다 이야기가 있는 것들이었구나.....감사합니다..
무덤이 없고 위패로 모셔져있는것은 안타깝다ㅠㅠ지금도 어디에서 사망하셨는지는 모르는거야?ㅠㅠ
ㄱㅆ 넹... 헤이그 특사 이후의 행적이 아예 묘연하시고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름ㅜㅜ 외국인 여성분이랑 결혼하셔서 후손분들은 계셔!!! 후손분들도 이위종 열사님의 행적은 아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