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 독거노인 배곯다 돌연사하지 않을까 부산에선 보름에 한번꼴로 구호물자를 올려보낸다.
대개 식량이 9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양말이나, 의약품, 수건, 실내화, 치약 따위의 생필품인데,
양말은..............때깔 진심 현란한것들로만 선별해서 보내주신다.
※또랑이 기저귀 : 고양이 맛동산과 감자 캘때 담는 봉투
양말에 '짱'이라고 적혀있음. 써클 일진된 기분도 들궁~
한결같이 초중딩이 환장하고 달겨들것 같은
조잡한 만화그림이나 형형색깔의 무늬로 치장된 양말들로만 보내주시기에
한날은,
'엄마~ 엄마눈에는 내가 아직 열세살 어린애로 보여~?'
짐짓 불퉁한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더니
'아니, 마흔으로 보여. 눈가에 잔주름때문에.'
정색하며 ★년 세월을 더 얹어주셨다. 양말 얘기는 더이상 꺼낼 수 없었다.
평소 뭐든 잘 안씻고 그냥 낼롬낼롬 주워먹는다는 것을 알고 계셔서인지,
'절대로'라는 부사까지 사용해서 씻어먹기를 신신당부 하시고 있다. 그나저나 메리스 뭐여ㅋㅋㅋㅋ
찌개와 국은 1인분씩 냉동된 상태로 낱개포장되어 있고
각종 쌈나물과 채소, 심지어 마늘과 고추도 한끼 분량으로 소분하여 지퍼락에 담겨져 있다.
불고기나 오징어볶음, 닭발처럼 양념이 되어 있는 요리는 2~3인분 용량으로 포장되어있는데
식사가 아닌 안주 대용으로 먹고있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하시곤 넉넉하게 담아주신다.
서른세짤 먹은 딸년 안주 뒷바라지까지 하시는 엄마ㅠㅠ 남은건 옥바라지인가.
사실 굳이 이렇게 세세하게 챙겨주지않아도 끼니는 알아서 잘 차려먹는다.
헌데 언젠가 식사하는 도중 부산에서부터 걸려온 영상통화 하나로
두달에 한번이던 구호물자가 보름에 한번꼴로 잦아졌고, 식량 봉투에 붙여져있던 단순한 음식명 견출지가
메모지로 바뀌면서 장문의 잔소리까지 택배로 배송되었다.
[텍스트에서도 멈추지 않는 폭풍 잔소리]
번거로운 잡일을 줄이기 위해 보통은 간단하게 라면이나 국수,
또는 큰 대접에 밥과 각종 반찬을 한데 넣고 비빔밥을 해서 먹거나,
그것마저 성가신 날에는 밥에 물을 말아서 김치만 꺼내 먹는다.
그리고 설거지할때 최대한 손이 덜가게끔 밥풀때기 한알 붙어있지 않게 싹싹 긁어먹는데
절에 들어가면 참된 발우공양의 일인자로 거듭날 것 같다.
여튼 영상통화가 걸려오던 시점 나는 물밥+김치의 식단으로 나름 만족스런 식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직사각형의 액정을 가득 채운, 추레한 몰골로 물밥을 후루룩 마시고 있는 딸년의 궁상맞은 작태에
엄마는 적잖이 충격을 먹었던 것 같다. 동네 끌뱅이도 아니고.....하는 표정이셨다.
잔소리 쪽지는 한장도 버리지 않고 냉장고 수납칸에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다.
삶이 지치고 괜스레 무기력해질때마다 음주와 폭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수선을 피울때가 있는데
그럴때 수납칸에 겹겹이 쌓인 엄마의 잔소리 쪽지를 한장한장 읽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다시금 평온한 상태를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10분 뒤, 갑자기 엄마 보고싶어서 폭풍 마셔재낀다ㅋㅋㅋㅋㅋ 염병맞을 것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엄마가 보고 싶어도 전화를 할 수는 없다. 술마셨다고 리얼 잔소리 들을게 뻔하니까ㅋㅋㅋㅋ
잔소리 쪽지의 주요 단골멘트는 아래와 같다.
[~~데워먹어라]
[먹고 운동해라]
[짜게 먹지마라]
[맵게 먹지마라]
[당뇨 조심해라]
[씻어라.........??]
그리고 종종 '당뇨 100% 걸린다.'를 항상 '당뇨 180도로 온다.'라고 표현하시는데
퍼센트와 각도의 쓰임을 아직 많이 헷갈려하시는 것 같다.
폭풍 잔소리
그리고 2년 뒤
부산집에서 택배를 보냈다는 연락이 왔다.
평소 반찬이나 소소한 주전부리 등의 구호물자는 엄마의 손을 거치는데
이번에는 아빠의 주도하에 포장과 발송이 이뤄졌다고 한다.
부피가 크니 수령 즉시 집안으로 들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 너한테 꼭 필요한거야.
.................젊음이 배송되는건가. 아님 개념인가. 아님 상식....염치....머리숱....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현관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센스있는 기사님께서 독거노인 예쁘게 고독사하라고 아주 그냥 문짝에다 바짝~ 밀착 배송을 해놓으셨다.
후럇차~ 거실에 들여놓고 보니, 확실히 지금껏 받은 여느 택배들과 비교해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이었다.
- 엄마를 부치셨나?
조심스레 테이핑을 걷어내고 박스 덮개를 열어젖혔다.
거리에서 나눠주는 판촉 티슈 받으려고 쉬는 날 분양사무실 근방을 느리게 왕복하는 모습을 보신 걸까.
뒷간 휴지 주제에 3겹 도톰 엠보싱은 사치라며 2겹 재생휴지로 칸을 세서 사용한다는 상황을 눈치채신 걸까.
그렇게 지지리궁상개궁상짓으로 아끼고 아껴 모든 돈으로 술 처마신다는 사실을 아신 걸까.
이제 자취보다는 독립으로 불려야 하는 이 나이에
여전히 부모님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 민망하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끝은 항상 시큰하다.
운송장에 쓰여 있는 아빠의 투박한 글씨를 보니 우체국에서 벌어졌을 상황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 아버님~ 따님에게 보내는 내용물이 뭔가요?
- 휴지. 두루말이여.
- 휴지 말고 다른 품목은 없나요?
- 전부 다 휴지. 두루말이여. 80개.
- ........
장 트러블이 예사롭지 않은 딸이구나~ 실시간으로 변을 지리나 싶었을거다.
첫댓글 ㅠㅠㅠㅠㅜ나도 엄마가 반찬 같은거 보내주는데 넘 고마움.....
ㅠㅠ따숩다
ㅜㅜㅜ
엉엉엉엉ㅇ엉엉ㅇ어 너무 따수워ㅠㅠㅠㅠㅠ
눈물돈다...ㅜㅜ 역시 가족은 멀리떨어져살아야 애틋하고 그리워,,
진짜 눈물나ㅠㅠㅠㅠ엄마아ㅠㅠㅠㅠ
경상도 분이신가 ㅋㅋㅋㅋ사투리로ㅠ읽혀 건육~뽁아서~ 사랑이 느껴지는 글이네
눈물날것같애 ㅜㅜ
휴짘ㅋㅋㅋㅋㅋㅋ넘 스윗하시다ㅜㅜㅜ쪽지들이 보물이네ㅠㅜ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개공감,,,
나도...
나도....이런사랑 인받아바놓고 우리엄마인냥 눈물뽑구감....
따숩다
와 나 잘 참았는데 쪽지 모아둔거에서 존나 눈물 빵터짐
ㅠㅠ
아 울엄마랑 똑같아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ㅠㅠ
ㅠㅠㅠ 나도 이런 엄마가 되야지 ㅜㅜ 따숩다. 울 엄마 보고싶네
옥바라짘ㅋㅋㅋㅋㅋ 부럽다진짜 내모친은 레알남인데ㅋㅋㅋㅋ 아빠라도있어서 웃기넼ㅋㅋㅋㅋ
우왕 자취하는데 이렇게도 보내주시는구나. 나는 긴 기숙사생활에 한번도 이런거 받아본 적 없는데.. 뭐 엄마 성격 나름이니까 어쩔 수 없제잉
엄마 사랑해.. 난 진짜 엄마 없이 못살아ㅠㅠㅠㅜㅜ 엄마랑 오래오래 살고 싶다
울 엄마도 나 학생일 때 자취할 땐 저런 거 없었는데 취직하면서 찐 독립하니까 올 때마다 과일도 엄청 사서 오고 하더라 ㅠㅠㅠㅠ 엄마 보고싶다
진짜 눈물 대폭 풍 ㅠㅠㅠㅠㅠㅠ
아 눈물...나ㅠㅠㅠ간절히기도합니다..라는말...마음을 울린다..
필력 뭐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술먹고 울고있음 ㅠㅠㅜㅠㅜㅜㅜㅜㅜ
좋겠다 나도 저런 잔소리 듣고 싶어
ㅠ엄마 사랑해 .... 세상에서 제일 ㅜㅜ 내 목숨보다 더
따숩다.. 우리 집에선 절대 안 일어날 일이기도 하고.. ㅠ 내가 너무 혼자서 잘 챙겨먹어서 그런가..
쪽지보고 눈물남ㅜㅜ
나도 언니랑 싱가폴 살았을때 엄마가 잠깐 보러왔을때 감자탕 먹고 싶다고 한거 기억하고 감자탕전날밤에 사서 밤새 뼈랑 살 분리하고 국물 따로 빼서 얼려서 담날 뱅기타고 가져옴...ㅠㅠ진짜 찐 감동...
세상 따숩다ㅜㅜㅜㅜㅜ
와 따수워
너무 우리엄마 같아서 눈물나...
와이 아이엠 쿠라잉ㅠㅠㅠㅠ흑흑 엄마 사랑해
진짜 자식이 뭘까ㅠㅠㅠㅠㅠㅠ
진짜 엄마 사랑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ㅠㅠㅠㅠ
너무 재미있게 글도 쓰셨네 ㅎㅎ
읽는내내 뭔가 뭉클하고 흐뭇하고 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