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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서 글로 모아 봤어요. 꼭 연예계뿐만 아니라 현실에 빗대어 생각해 봐도 공감될 만한 이야기들인 것 같아요. 비슷한 유형의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적었는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 오늘, 당신의 외로움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어느 영화에서는 언젠가라는 말을 무책임하고 가장 무서운 말이라고 표현했다. 생각의 차이는 늘 있듯, 시선을 달리하면 언젠가라는 말은 늘 나를 꿈꾸게 해 주었다. 그 '언젠가'들의 연속이 바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가 어렸을 적엔 단순히 눈앞에 있는 즐거움과 사람들과 먹을 것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보단 이 순간에 대한 기쁨이 더 컸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가올 걱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랑도 일도 이 순간의 설렘보단 미래의 불안함이 지배할 때가 많아지고 일어나지도 않은 그 걱정들 때문에 이 순간을 못 보게 될 때가 많아진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다고들 한다. 아마 그 순간을 소중히 여겼기에, 그 순간을 사랑했기에 유년기의 추억이 가장 많은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 운동선수로 한 길로만 달렸다. 다리 부상으로 예상치 못한 좌절이 몰려왔다. 공교롭게 아버지까지 갑자기 돌아가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한 맺힌 듯 노래를 듣고 불렀다. 음악에 위로받고, 의지했다. 꿈을 꾸는 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사람에게는 외로운 요소가 반드시 존재한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는 ‘나는 할 수 있다’, ‘무한 긍정으로 살라’로 강요한다. 그건 누구나 외롭다는 걸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외로움을 친구 삼아 평생 같이 가려 한다. 그럴수록 대중이 만족할 수 있는 곡이 더 많이 나온다. 막연히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열매, 나뭇잎, 가지, 심지어 그늘까지 만들어 줄 수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가수 자체가 봉사를 하는 직업이다. 돈과 명예를 좇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공감을 주고 따뜻함을 선물하며 스스로는 뿌듯함을 얻는다. 아빠가 생각나면 하늘에 편지를 보내고 싶다던 엄마. 그때부터 아버지 산소 옆에 세워 놓은 우체통은 우리와 함께 녹슬었다. 우체통 안에는 매년 그녀의 편지들이 쌓여가고, 작은 새 가족이 찾아와 둥지를 틀고 비바람을 피하기도 했으며 그 흔적들은 마치 아버지가 편지를 읽은 흔적처럼, 손때 묻은 일기처럼 우리와 지금을 살고 있다 말한다. 엄마를 유난스럽게 생각했던 철부지 아들은 이제야 이런 여자를 사랑한 당신과 그런 당신을 사랑한 여자를 노래할 뿐. 가족사진은 그렇게 쓰여졌다. 안개꽃도 눈에 띄진 않지만 꽃을 피워내며 그 꽃 역시 결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자신은 피지 못하는 흐릿함이라고 단정 짓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이미 피어 있다. 그리고 안개꽃은 수많은 것들을 더 돋보이게 해 주며 안정감을 준다. 한 사람의 존재가 피어났기에 세상은 안정감을 찾는다. 안개꽃 속에 장미는 더 아름답고 돋보인다. 장미 한 송이는 외롭지만 우린 무의식적으로 장미 한 송이보다 그 주위를 더 채우고 싶어 한다. 안개꽃 역시 풍성하게 어울려야 그 느낌이 더해지듯 사람들 하나하나의 작은 결실들도 함께 어우러진다면 더 의미 있다. SG워너비는 작은 결실인 세 사람이 함께 뭉쳐 노래로 만든 안개꽃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고, 사람들은 장미가 되어 우리의 목소리에 존재 의미를 주었다. 우리 멤버 동하 형을 떠나보냈다. 안개꽃 하나는 겉으로 보기엔 시들었지만 목소리라는 결실로 이 세월을 함께할 것이다. 그 아픈 날들에 써 내려간 곡이다. 그 작은 결실들이 모여서 가능했던 날들. 우린 안개꽃을 장미보다 더 아름답게 바라봐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노래는 ‘가장 의심 없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비웃음을 당하고 있어요.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거죠. 그렇지만 진실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나타내는 사람이, 진정으로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의 모든 활동들의 초점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그로 인해 우울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은 것에 맞춰져 있습니다. 저는 노래를 행복할 때 듣지 않았어요. 외롭고 힘들 때 들었거든요. 그 외롭고 힘들 때, 이어폰에서 넘어온 목소리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모르는데도 이렇게 내 삶에 들어올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졌고. '아, 이런 노래를 할 수 있다면. 그저 노래를 잘하고, 막 고음을 높게 부르고, 막 스타일이 뛰어나고, 비트가 멋있고. 이런 거 말고. 그냥 이 진심이 무기가 된다면, 나도 그렇고 듣는 분들도 그렇고 함께 행복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네. 물론 행복한 순간에도 노래를 듣죠. 그렇지만, 행복한 순간에는 모두 행복한데요. 외롭고 힘든 순간에는, 행복한 사람들 주변에 있으면 함께 행복한 척하게 되죠. 또 외롭고 힘들 때, 그런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절대 무거워지는 것도 아니죠. 행복할 때보다, 외롭고 힘든 순간에 함께해 주는 친구. 참 소중하잖아요. 노래방 가면 그런 친구들 있어요. '분위기를 왜 이렇게 다운 시켜.' 진지한 이야기들을 못 견뎌 하는. 자신의 마음이 여유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진심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거죠. 그냥 이 순간 행복하고, 이 순간이 즐겁고. 그런 강박 있는 분들도 요즘에 꽤 많고요. 그런데, 참. 우리나라는 명예롭지 않은 자살률이 높은 나라들 중에 하나죠. 물론 일반화하는 건 아니에요. 외롭고 힘들어해도 괜찮은데, 그렇게 보이면 뭔가 걱정이 되는 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되는 거. 깊은 생각보다 단순한 소통이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거. 그 두 가지의 밸런스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음, 어떤 다른 장르의 음악을 배척하고 이런 게 절대 아니고요.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 거기에 집중하는 게 노래를 하고 부르고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노래를 어떤, 노래 자체를 가장 잘하는 건요. 잘 살아야 한다고. 어떤 분이 하신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린 학창 시절, 노래방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웃었고 몇 번의 졸업과 배움이 있었지만 친구들과 지내며 배운 경험이 더 컸어요. 함께한 노래들만이 유독 기억에 남고요. 그런 것이 가장 큰 가치였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돈과 명성을 얻더라도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짜 웃음을 잃어버린 어른이 늘어나는 건 안타깝지요. '다 그래'라며 모든 이들의 고통을 합리화 하는 것 역시 이상해요. 공부 잘하는 법, 성공하는 법은 많이들 말해 줘도 그저 친구들 행복할 때가 언젠지, 그 작은 걸 지켜도 성공이라는 이야기를 누군가 해 주기를 저 역시도 듣고 싶었고요.
요즘 그저 생각 없이 내가 지금 사는 게 바쁘니까 그저 쉽게 즐기고 쉽게 웃고 진지한 거 싫어하고, 누군가 진지한 글을 남기면 밑에 'ㅋㅋㅋㅋ허세 쩜'. 어느새 현실에 너무 찌들어서 누군가의 진심조차도 그렇게 오그라들어하는 청춘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그래서 이 음악을 듣고 그 진심을 늘 꼭꼭 숨겨 놔서 곪아 있는 친구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때로는 저는 '힘내', 그리고 '응원을 해 주세요'라는 말보다 그냥 힘을 빼라고 해 주는 이야기가 훨씬 위로가 돼요. 그리고 응원이라는 것보다는 응원하지 않아도, 응원을 바라지 않아도 '지금 그 상태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평범한 것들이 훨씬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슬프다고 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그, 이게 약간 그런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빗대어서 상대방을 해석하기 좋아하는 게 사람 심리라고, 많이들. 듣거든요. 누군가는 제 목소리를 따뜻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슬퍼 보인다고 하고. 어, 그런 데 자기 자신을 투영해서 누군가를 해석하는 게 아닐지.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전혀 슬프지 않고요. 그냥 평범합니다. 서로 '힘을 내세요'라는 말보다는 힘을 빼시고, 그대로 각자의 자리에 존재해 주시면 충분한 거 같습니다. 나방은 어둠이 필요하다. 어둠 속에 홀로 떠오른 달빛을 보며 유유히 날아가면 나방은 건강히 제 길을 갈 수 있다. 도심의 불이 밝혀지면서 나방은 길을 헤매기 시작하고 잠 못 이룬다. 제가 술을 잘 마실 것 같은, 어떤 느낌이죠? 그런 느낌이 좀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술을 그렇게 잘 마시진 못하고요. 한 20대 후반쯤부터 맥주. 조금 뭐, 먹는 정도. 행복하게. 네. 막걸리, 맥주. 요 정도. 그런데 사실 술보다는 어떤 사람이랑 먹는 것, 어떤 사람과 나누는지가 참 중요하잖아요. 저는 술이 목적이 아니에요.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저랑 함께 그런 술자리를 갖는 친구들, 동료들은 술이 목적이 아닌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행복하게 늘, 어떤 사건사고 없이. 그런 거 있죠? 술로 인한 객기를 부린다던가, 또 허세가 있다던가. 술의 양으로써 근거 없는 자신감들을 나열하고 자랑하는 그런 분들과 술을 마시면. 우선 그런 술자리 자체를 가지 않고요. 자기 관리를 굉장히 못하기 때문에 어떤, 그 허세 끼가 느껴지는. 제가 굉장히 싫어하는. 그런 자리는 행복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성적이다가 갑자기 술을 마시면 돌변하는 케이스들. 예. 많이 참고, 많이 아닌 척하고, 어떤 척들을 하다가 술이 늘어가면 변화하는 그런 모습들을 사실 자주 접하잖아요. 어, 그만큼 억눌린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하다못해 SNS에서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어떤, 잘 살고 행복하고. 핫 플레이스, 또는 좋은 집, 교묘하게 명품 가방과 쇼핑백이 저 뒤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처럼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던가. 그런 분위기들이 참 많다 보니까, 실제적으로 뭐 하나 자연스러운 일상 올리는 것도 신경 쓰는 분, 젊은 친구들 굉장히 많고. 괜히 자신의 일상을 좀, '아, 내가 너무 평범하게 지내나?'라고 괜히 작게 보는 경향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 SNS가 자연스러움과는 좀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게 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일상이라는 나만이 느끼는 콘텐츠입니다.
국적이 달라도 음악이란 마음의 언어로 감정과 울림을 공유할 수 있음은 늘 놀랍다. 그래서 이번엔 미리 써 놓은 멘트나 형식적인 연출을 빼고 모든 초점을 노래 부를 때의 진심에 두었다. 내 마음 가짐이 가장 중요한 공연이었다. 요즘 한국 공연은 대부분 화려한 무대 장치와 이벤트로 듣는 공연이 아닌 보는 위주의 공연으로 변하고 있고 비어 있는 여백을 잘 즐기지 않는 대중들의 인스턴트식 시선과, 그 대중들의 시선에 맞추어 살아남으려는 현실적인 비즈니스식 아티스트와 제작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대중들에게 지루하게 보이지 않기 위한 장치와 계산에 초점을 두어 대중들의 눈치를 보며 만든 공연은 공연이 끝난 뒤 순간의 환호는 클지 몰라도 마음 울림은 적다. 자신의 철학을 품고 지금의 세상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소신 있는 통찰의 노래는 점점 줄고 있는 요즘.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실을 한 방향, 즉 돈이 되는 안전한 길만 외치는 세상에서 마음에서 비롯된 예전 가수들의 노래들이 그 어느 때보다 사랑받고 있는지도. 여백이 많았던 예전 음악과 영화. 시작부터 자극적인 영상과 가사들도 쉴 틈 없는 요즘 음악과 영화. 과거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확실히 지금보다 더 단단했다는 걸 문화에서 엿볼 수 있다. 얼굴도 직장도 사람도 포장하고 채우려 하나, 인정함과 비어 있음은 불편해하고 불안해한다. 겉도는 SNS와 가벼운 대화가 대부분인 메신저는 마음 깊이 소통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요즘 음악처럼, 영화처럼 자신의 삶도 늘 영양가 없는 순간들로 넘치게 채우고 있다. 힐링이라는 단어를 찾고 자기 계발이라는 동기부여제를 감기약처럼 찾고 있는 사람들. 여백을 아름답다 보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 빈 공간 역시 불안함이다 여겨진다면 자살률 1위에 대한민국에서 자극적이고 강한 조미료 친 문화에 병들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젠 마음의 식단 조절이 필요하다.
이상하지요. 어디론가 떠나 다른 환경에 도착하면 아주 작은 물건 하나에, 사람들의 표정이며 눈빛 하나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감성. 낯설지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들, 그 불안한 신선함을 느끼고 즐기는 와중에 아직 작은 것에 두근거릴 줄 알고 부풀 줄 아는 내 심장을 발견합니다. 무뎌졌다 단정 지었던 삶 속, 숨어있는 설렘의 싹을 다시 발견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 혼자임을 음미하는 시간이 극으로 치닫는 순간, 내 발걸음 하나하나 옮길 때마다 자라나는 깨달음들을 가득 담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비슷한 삶, 그 가운데에 들어서면 마치 그 설렘은 꿈결처럼 '그때 좋았지'란 한숨과 잘 섞이는 과거형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삶이 여행과 비슷한 것은 한곳에 정착하면, 그 정착했다는 안도감에 퇴보하는 게으른 여행자가 되거나 혹은 늘 새롭게 개척하며 같은 여행지에서도 남과 다른 설렘을 찾아내는 여행자가 공존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그림과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건, 결국 스스로의 삶이란 여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낄 줄 아는지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지의 환경만 탓할 게 아니라, 제대로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자신의 무뎌진 심장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이 누구에게나 뛰는 심장을 주셨지만 뛰는 심장을 갖고 앉아 있는 자에겐 죽어 있는 영혼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이제 기획사에서 어떤 시점마다, 뭐 하나 이렇게 던져 주고 팬들의 기대를 조금 자극 시키고, 갑자기 빵 터트리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한테 스포라기보다는, 그런 계산을 하고 싶지가 않아요. 들려 드리고 싶을 때, 어떤 계산을 하지 않고. 바로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저한테 돈이라면, 상품이라면 계산을 해야겠죠. 그렇죠. 그냥 제 노래를 들어 주시는 분들이잖아요. 똑같은 사람. 그러니까 사실 이런 이야기를 미리 드려도 상관은 없죠. 회사분들은 싫어하실 수도 있겠지만. 생각 한 번 해 보세요. 취업. 아니면, 우리가 학교에서부터 몇 등 몇 등 노력한 댓가를 등수로 매기고. 그게 어느덧 예술 분야에까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어떤, 마음 차트에 들 생각보다는 보여지는 차트에 되게 신경을 쓰게 되고. 그렇게 계산된, 기획된 음악을 같이 들으면서 모든 걸 흡수하는 젊은 세대들은. 깊게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해지거나, 혹 자극적인 것들을 굉장히 좋아하게 되죠. 그런데 사실, 우리 친구들. 막 멤버별로 시디를 사면 멤버별로 마치 뽑기처럼, 사진들을. 각자 다른 사진들을 앨범에 넣고, 앨범을 많이 사면 그 누군가의 사진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착한 친구들은 마음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서 시디를 사고, 그렇게 나는 마음으로 기여했다 생각을 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이 있겠죠. 저는, 그렇게 순수하게 마음으로 영향이 있는 친구들이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잖아요. 그런데 제작자들이, 거기에 대한 책임감을 가졌으면 해요. 그 친구들한테는 돈을 벌면 안 돼요. 그 친구들의 마음을 얻어야지. 착한 친구들, 어린 친구들의 마음을 공략해서. 계산해서. 어떤 메인 기사를 뿌리고 그럴 때마다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연출된 방송은 멋있게 연예인을 포장해 줍니다. 그래서 더 많은 기대감과 그들에 대한 상상력을 부여해요. 마치 '그들의 삶은, 평상시 모습은 이럴 거야'. 평범한 존재에 점점 살을 더해 멋진 스타가 되기도 하고, 때론 루머에 휩쓸려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연출된 상황에서만 그들을 상상했던 대중들은 배신감도 쉽게 느끼고 내가 보고 느꼈던 이들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요. 모든 것이 100% 연출일 순 없지만 말입니다. 포장지를 벗은 채 알맹이로 다가간다면 스스로의 마음이 편하고 그들을 보는 대중들의 마음도 무장해제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봐요. 그래서 건강한 삶은 자꾸 채우려는 덧셈의 연속이 아니라 뺼셈의 연속이라 부르나 봅니다. '비긴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 참 좋은 프로였죠. 재미 있게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외국분들, 거기서 새롭게 한국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리는 무대도 참 소중하지만. 아직 제가 살고 있는 곳에 제가 만났던 사람들. 하루에도 지옥철을 몇 번을 오가고, 가족 문제로 힘들고, 취업 문제로 힘들고, 또는 연예계가 너무 힘들고. 그런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을 위해 어떤 곡을 쓰고, 가사를 쓰기에도 참 바쁩니다. 부족하고요. 그런 노래들을 방송이 아니고, 카메라가 없어도. 제 친구들과, 어떤 주목받지 않고 조용히 다니더라도. 그 노래가 가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그게 제가 노래를 예전부터 꿈꿔 왔던 이유기도 하고요. 그래도 가끔 과거의 영광이 그립지 않은가요.
음반과 음원은 모두 음악을 들었다는 행위에서 비롯된 결실이에요. 음반은 아티스트의 시간과 생각을 가치 있게 여겨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고, 음원은 아티스트의 한 곡 자체만으로 들려지는 부분이죠. 한 사람을 옆에 두고 오랜 순간을 나누는 사랑도, 스치는 인연과 나눈 찰나의 사랑도 다 가치가 있듯 음반과 음원도 그렇지 않을까요. 두 개 다 사랑입니다.
누군가는 예전처럼 늙지 않는 피터팬을 동경하지만, 누군가는 있는 그대로 늙어가는 자연스러움을 존경한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형, 노래가 잘 되려면 예능 나가서 웃겨야 한다는데 전 음악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안 돼. 너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돼. 제작자가 원하는 그런 것들을 맞춰 주고, 웃기기도 하면서 방송 쪽으로 얼굴을 비춰야지. 그리고 나중에 너 잘 됐을 때, 그때 음악 하면 되지’. 이런 말들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건 선배가 아니죠. 그런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진심으로 조언을 원하고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해 주는 게 과연 좋은 걸까. 그래서 여러분들의 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진심은 알 수 있죠. 그 진심을 여러분들이 느껴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그 진심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조금씩 커지겠죠.
노래할 때, 아니면 어떤 직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사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노래를 '잘' 하죠. 노래로 누군가를 감탄하게, 감탄시킬 수 있는 그것도 정말 대단한 능력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뭔가 '동' 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좀 필요한 시대인 거 같아요. 그래서 감탄은 학교에서도, 또는 어떤 스킬적으로 발성을 배우고. 어떤 기술, 기교를 배우고 요즘 트렌디한 음악과 어떤 보컬 스타일을 따라 하면서 남들을 속일 수 있어요. 눈속임으로. '와, 잘한다.', '와, 세련됐다.' 뭐든 똑같은 거 같아요. 근데 이제 감동은, 아무리 카피를 하고 아무리 멋들어지게 따라 해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좀 어려운 거 같아요. 왜냐면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 마음에 닿지 않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잘 살아야 돼요. 내 삶이. 내가 평상시에 친구들이랑 쓰는 말투, 내가 가족한테 하는 내 행동, 그리고 카메라가 있건 없건 내가 나를 양심적으로 바라보는 태도. 그게 곧 노래가 되는 거 같아요. 노래를 아무리 잘해도 그것이 연결돼 있거나 그 부분이 뭔가 결여돼 있으면 듣는 사람들은 참 신기하게도 느끼는 거 같습니다. 근데 미술도 그렇고, 뭐 어떤 다른 직업군도 그렇고 결국은 어떤 사람이 하는지 그게 참 중요하잖아요. 행복한 게 좋은 거 아닌가요? 평범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는 친구의 시선이, 지금 뭔가 힘든 일이 있는 것 같네요. 누군가의 행복을, 누군가의 어떤 소중한 일상, 또는 평범함을 응원해 주지 못하고 불안하다 여기면 그 당사자가 아픈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계신 게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오늘 오랜만에 집에 갔는데, 강아지가 늙어서 아픈 게 딱 보이더라고요. 같이 오랫동안 행복하고 싶은데.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은 잔디예요. 예를 들어서 '잔디야, 다음이 오면. 다음에 오빠가 산책 많이 시켜 줄게.', '다음에 맛있는 간식 줄게.', '다음에 한강 산책 가자.'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어느 날 잔디가 아파서 하늘나라로 가게 되는 날. 또 강아지의 가족들은 '너한테 못해 줬던 사랑, 다음 강아지한테 잘해 줄게. 미안해.'라고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다음에, 다음에.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음, 사실은 이기적인. 어떤, 그런 내 선택이 다인 거죠. 그래서 아까 이제 글을 써 주셨던, 그 강아지가 아프다고 글을 남겨 주셨던 분도. 또 다음에 찾아가면 더 아픈 모습일 수도 있잖아요. 강아지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친구들도. 뭐, 우리는 다음에라는 말로 참 많은 걸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다음에 만나면 후회하고. 그 후회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음번에 기회를 다짐하고. 그렇게 다짐의 연속을 자주 목격하는 거 같습니다. 다음에보다 더, 지금. 빨리. 추억 많이 만드세요. '애들도 다 키웠으니까, 이제 너 하고 싶은 것도 조금 하고 너 인생도 즐겼으면 좋겠어.'라고 말해 주세요. 그렇게 주문하지 않으셔도 저는 늘 그 마음이에요. 얼마나 고생하셨겠어요. 우리가 누군가한테 듣고 싶은 그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요구하는 거 마음이 좀 그래요.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런 주문들이 많아요. 얼마나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있으면. 지금 여기 사람들 다 다른 곳에서 살고, 다 다른 직업, 다 다른 생각 갖고 있지만 다들 외롭잖아요. 그리고 두렵기도 하고. 그거는 여러분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그렇거든요. 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채팅 글들은 올라가고, 여러분들 마음은 계속 쌓이고. 하트는 뿅뿅뿅뿅 올라가고 있고, 저는 갑자기 이 하트를 제가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하고. 맞아요.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고 위로받기가 참 힘든 세상이 되었어요. 여러분들은 다 지금 존재하고 있죠. 이 세상에 없지 않죠. 고민도 많고, 누군가 이제 어떤 충고할 때는 듣기도 싫고. 근데 살아 있으니까 다 느끼는 감정들인데, 저는 그거 늘 상상하면서 노래 만들어요.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힘 받고 힘 빼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힘을 주고 살았거든요. 여러분들이 주신 힘 받고 힘 빼고 살게요. 여러분들도 힘 빼고 사세요. 우리는 항상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힘내라고. 힘내지 않으셔도 돼요. 너무 힘주면, 몸이 경직됩니다. 힘 빼십시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그 말씀이 저에게도 위로가 돼요. 그렇게 예쁜 마음이시니까, 늘 예쁜 일들이 많을 거예요. 수능 잘 보라고 응원해 주세요.
당신 인생은 그 종이에 채워지지 않을 만큼 위대합니다. 부모님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제가 직접 찍어 드리기로 했어요. 똥손인데, 잘 찍을 수 있겠죠? 걱정되네요.
남자도 울린, '가족사진' 한 소절만 읽어 주세요.
청춘들에게 한 마디만 부탁드려요.
소소한 우리의 일상이 이미 빛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위로하고, 외로워하고, 불안해하고. 이 모든 순간들이 사진처럼 남을 거예요. 사실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씩 추억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아픈 기억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런 기억들 한 장 한 장 모으러 살았나 보다 싶겠죠? 여러분들의 오늘, 어떤 감정이든 오늘 감정을 기억하고 안아 주세요. 우리는 다 그거 모으러 온 거 같습니다. 평온한 밤 되세요. 사람들이 그래요 사실 나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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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절대 지우지말아주세요ㅜㅜㅜㅜㅜㅜ
좋다
좋아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