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후 2시 대구시 남구 대봉동 한 찻집에서다. 이 자리에서 이 할머니는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인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를 비판했다.
할머니는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면서 “성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윤미향 전 이사장에 대해서는 더욱 날선 비판을 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씨가 와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윤씨는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딴놈이 버느냐”고 했다. 다음은 이날 기자회견 당시 이 할머니의 발언 전문이다. 다소 매끄럽지 않지만 최대한 그대로 싣는다.
“30년 간 미국 110번 다녀왔지만 돌아온 건…”
“제가 1992년도부터 윤미향씨에게 (피해사실을) 신고했고 오늘날까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정신대 대책협의회 박물관 지을 때는 (방송인) 박경림 하고 강의도 했고요. 정신대대책위원회 사무실 가서 박물관 짓는다는 말도 했고. 그때 제가 한 얘기는 “(나를) 대표라고 하지마라. 부끄럽다”였는데, 그래도 대표 대우는 해 줘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런 거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박물관이 세워질 무렵 제가 미국을 노상 다녔습니다. 120일 결의안 통과시키려고 워싱턴에 다녔는데 아무도, 돈 한 푼 보태준 사람 없습니다. 제가 1992년도부터 비행기를 110번을 탔습니다. 그 미국에 사는 교포 여러분들이 십시일반으로 할 적에 너무 그분들에게 고마웠고 미안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결의안 통과시키면 얼마나 장합니까. 이런 걸 할머니가 그렇게 하고 왔으면 환영이라도 해 주든 지요. 그런 거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여기는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입니다. 정신대라는 건 공장 갔다 온 할머니입니다. 공장 갔다 온 할머니라면서 위안부까지 판 거 아닙니까. 위안부 활동하고 했는데 지금 들어가 있습니다. 일본이 이걸 구분하겠습니까? 이건 정신대 공장 갔다 온 할머니도 아니고 위안부도 아니고요. 이걸 왜 확실히 못합니까. 이걸 확실히 구분했다면 일본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걸 확실히 구분안하니 일본도 우왕좌왕하는 거죠. 이런 것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10억 엔, 윤미향만 알고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또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10억 엔이 일본에서 들어오는 걸 윤미향(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만 알고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2015년 한·일 협정 때입니다. 10억 엔이 일본서 들어오는데 윤미향 대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외교통상부도 죄가 있습니다. 피해자들한테도 알려야죠. 제가 알았으면 돌려보냈을 텐데, 그 (단체)대표들한테만 얘기하고 저는 몰랐습니다.
28일 공개할 때 저 서울에 있었습니다. 그때에 정신대 대책협의회 쉼터라는 곳에서 그걸 공개할 적에 외교통상부 장관 윤병세 아니고 차장이라던가? 그분이 쉼터에 왔습니다. 제가 멱살 쥘라 그랬습니다. 자기들은 알고 있었을 거 아닙니까. 28일 전에 들어왔을 거 아닙니까. 10억 엔 들어온 거 몰랐습니다. 제가 나눔의 집에도 자주 갔습니다. 거기에 윤OO이라는 저와 동갑인 할머니가 있는데, 아침에 제가 식사하려 들어가니까 “너 여기 좀 와봐라”합니다. 10억 엔 들어오고 한참 됐을 때입니다. 나한테 “나는 암이 두 군데다. 폐암, 자궁암. 나는 그 10억 엔 에서 1억 원을 받아야 된다. 아들 줘야 된다”하면서 웁디다. “그래, 그럼 써라”하니까 자기는 못 쓰겠대요. 그때도 나눔의 집 소장은 이 얘기를 안 해 줬습니다. 저는 돈이 10억 엔이 언제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할머니들이 자기 정신 가지고 받은 거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정신없는 할머니들 이용해서 받았다고 한 거예요. 들어온다는 걸 알아야 말이지요. 들어온다는 거 알았다면 전 그거 돌려보냈을 겁니다. 그걸 속였습니다. 이런 상태입니다. 소소한건 참 얘기 안한 것도 많습니다. 특히 데모할 때 말입니다. 학생들이 멀리서 올 거 아닙니까. 그 십시일반 돈을 꼬박꼬박 받습니다. 그걸 받아서 좀 보태서 점심이라도 학생들한테 먹이든지 하지, 저는 그 생각에 수요일 날(수요집회) 가면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속고, 또 속고 살면서도, 제가 다니면서는 그래도 ‘여성인권운동가’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안 한 대신에 듣고 겪고 당한 걸로…. 이게 제 철학이었습니다. 제가 대구대 홍덕률 총장님 교육감 나왔을 당시, 그해 5월 30일에 명예 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보고 듣고 했던, 이게 바로 산 철학 박사라는 걸 느꼈습니다. 2018년인지, 2019년인지 모르겠습니다. 11월 23일에 전 세계 50개국에서 ‘우먼(woman)’ 뭐를 선출했습니다. 2000명 명단 중에 대한민국에서는 이용수가 들어갔어요. 이게 다큐멘터리로 나온답니다. 독일, 베트남, 프랑스 감독이랑 한국 감독하고요. 이거 자랑스러운 일 아닙니까. 한 번도 보도 안 됐습니다. 얼마나 장합니까. 제가 배우지도 못하고 무식한 사람인데….”
“문제 해결하기 전에 윤미향은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
“30년 전에 내 신고를 윤미향이가 받았습니다. 30년을 윤미향과 해 오고 있는데, 이런 거 해결해야 될 거 아닙니까. 왜 해결 안합니까. 해결도 안하고 국회의원인지 장관인지 그런 건, 거기 간 윤미향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대 대책위원회에서 함께 해결하자고 했던 윤미향이가 그 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5월 7일) 아침에 전화 왔었어요. “할머니 이거 해결하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해서 내가 “나는 국회의원 윤미향은 모른다. 정대협 윤미향만 안다. 왜 정신대가 위안부를 하느냐”면서 따졌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이사장(이나영 신임 이사장) 됐다고 전화가 왔어요. 난 당신 같은 사람 모른다고 했어요. 이거 제가 잘못한 겁니까? 해결하려고 했으면 해 놓고 가야지요. 자기 사욕 차리려고 위안부 문제 해결 안 한 다음에, 어디 엄한데 가서는 “지금해결하려고 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 해서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해야합니다. 국회의원 못합니다.
저를 보고 고맙게도 ‘여성운동가’가 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고, 고마운 일이지요. 하지만 윤미향이라는 사람은 저한테 “할머니는 살아 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왜 뭐 때문에 그 할머니만 챙기냐”고 물었더니요. 죽은 할머니가 그 뿐인가? 살아 있을 때 해주는 게 인간이지, 죽었을 때 뭘 해줘, 그 따위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어쨌든 이런 문제 해결 한다고 해놓고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지금 해결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전 윤미향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거 신경 안씁니다. 모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같이해 온 사람이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요 집회 학생들 보면 가장 마음 아파…단체는 애들 푼돈까지 받아”
“저는 제일 가슴 아픈 게 수요일 뙤약볕에 있으면서도 (학생들이) 부모님한테 푼푼이 받은 돈 그걸 가지고 내놓습디다. 저는 제일 가슴 아픈 게 그겁니다. 그거 제가 보고 “이걸 받아야 되나”한 적이 있는데, 단체 사람들은 그걸 좋은 듯이 받습니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요일에 학생들 나와서 집회하면 이거 공부 안 됩니다. 제 생각입니다. 제 각오입니다. 저는 수요 데모를 마치렵니다. 이것 때문에 학생들이 마음에 상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데모를 마치고 일본, 한국 간 젊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제가 사죄 배상은 적어서 백년이고 천년이고 가도 사죄배상을 받아야합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 이제 기력이 없습니다. 저는 할 만큼 했습니다. 시작은 김학순 할머니가 했지요. 마지막은 예, 당당한 피해자, 가미가제 피해자 이용수가 마지막을 할 겁니다. 피해자 당당한 특공대 피해자 가미가제 피해자 이용수가 마지막을 할 겁니다.
대구에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입니다. 이용수가 정신대냐 위안부냐? 당당히 위안부로 나와서 싸움하면서, 왜 정신대에 속해 있느냐. 이런 얘기 누차 듣습니다. 그런데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또한 서울에도 그랬습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 정신대 협의회입니다. 위안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서 제가 그렇게 미국으로 일본으로 세계로 돌아다니면서 해도, 이 정신대 시민모임에는 내가 혼자 못가잖아요. 사람 데리고 가야하는데, 제가 어떻게든 구해서 데리고 다녔습니다.
제 각오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역사관, 그 사람 다 해먹고 나갔어요. 비도 새고요. 데모를 이제 끝내고 교육장을 지을 겁니다. 당당한 교육을 시켜서, 올바른 역사교육 시켜서 양국 간에 이사람들이 해결하도록 하기 위해선 교육관을 짓고 확장시키는 참다운 교육, 올바른 교육을 시킬 겁니다. 이 사람들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데모는 안하렵니다.
왜 데모를 해서 귀한 사람들을 왜 고생시킵니까. 공부해야죠. 공부 할 시간 하고, 해야 됩니다. 데모해서 돈 걷어서 뭘 합니까. 하나도 쓴 거 없습니다. 그런 돈 걷지 말고 교육장 와서 푼푼이 내고, 교수도 선생님도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로 초빙해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구에 역사관을 그렇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데모는 안합니다.”
“일본, 한국은 이웃… 젊은이들은 서로 교류해야”
“일본과 한국은 이웃나라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서로 함께 활발하게 지내야합니다. 역사 문제는 그렇게 해결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닙니까? 그래야합니다. 양국 간 젊은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사죄배상은 옳은 역사를 아는 그 사람들이 해결할 몫이죠. 저는 그런 각오를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합니다. 이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정신대 대책협의회 대표였던 윤미향씨가 와서 해결해야합니다. 국회의원 안 됩니다. 이 문제 해결해야합니다. 제가 틀렸습니까. 젊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대화를 해야 문제가 풀립니다.
제가 무식하지만 백번생각해도 그렇게 해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김학순이 시작했고 이용수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윤미향씨가 같이 문제 해결하려고 온다면 같이 하겠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안 됩니다. 이 문제 해결 전엔 안 됩니다.”
“내 생일 축하금까지 거둬 가고, 잘못된 증언 실린 책 팔아”
작심 발언을 이어 나가던 이용수 할머니는 이때부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제가 무척 서러웠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누구는 떼돈을 받아먹고…. 제가 호텔에서 생일을 했는데, 그때 모인 축하금을 정신대와 함께 하는 할머니 시민 모임의 역사관 관장, 사무국장, 대표라는 사람이 동티모르에 천만 원 갖다 준답니다. 할머니한테 써야지요! 내가 해서 거둔 돈인데. 내 생일에 모인 돈인데 왜 자기들 마음대로 한답니까? 그래도 가만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당하지 않을 겁니다. 당할 기력도 없습니다.
제가 거울보고 얘기합니다. 용수야 너 참 장하다. 제가 많이 당한 거 아닙니까. 30년 당하면 많이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말 안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카메라 앞에 내가 하소연합니다.
1993년부터 책이 나왔어요.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그걸 6500원에 팔더라고요. 거기 나온 증언은 잘못돼 있어요. 내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왜 파냐고.
여러분 되풀이 하지만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습니다. 이제는 기력이 없어서 그래도 내가 오늘 약을 몇 종류나 먹고, 안 쓰러지려고요. 내가 쓰러지면 누가 알아줍니까. 이런 억울함 분함 누가 알아줍니까. 모릅니다. 내가 여자 몸으로 죽을힘을 다해 살아왔는데 왜 이리 설움 받아야 합니까. 왜 이리 인정받지 못합니까. 당당한 피해자 위안부인데, 왜 정신대로 팔려야 합니까. 뚜렷한 증거 있지 않습니까. 내가 왜 울어야합니까. 내 신세가,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합니다.”
글=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의 기부금이 피해자들을 위해 쓰이지 않고 있다고 투명성 문제를 제기한 뒤 언론 노출을 자제했던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사진) 할머니가 엿새 만에 입을 열었다. 이 할머니는 13일 대구 모처에서 가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할 말을 했고, 이제 더 이상 이용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당선인(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전 정의연 이사장)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하는 게 옳은 거지, 양심도 없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 기자회견에서 윤 당선인이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 전 일본이 10억 엔을 내기로 한 사실을 미리 알았다고 주장했다. 윤 당선인은 이튿날 이에 대해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져 있다”고 해명했지만, 이날 만난 이 할머니는 그간의 위안부 피해자 인권 활동과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상황은 물론이고 열세 살 적 일까지 또렷하게 기억했다. 인터뷰는 약 세 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Q :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언론 보도를 보셨나.
A : “(언론 보도를) 보니 잘못된 게 많더라. 난 잠적한 적 없다. 내가 뭐가 부끄러워서 숨나. 내가 부정이 없기 때문에 더 당당하다. 기자회견에 나서기까지 1년 동안 고민했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에 이곳저곳 절을 다니며 마음을 다스렸을 뿐이다. 난 부정이 없고 혼자 몸이니 당당하게 대항하는 거다(※일각에선 이 할머니가 후손에게 목돈을 물려주고 싶은 생각에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란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Q : 그동안 참았다 기자회견을 한 것인가.
A : “제가 참았다기보다도, 30년을 꾸준히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을) 해왔다. 윤미향이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 것은 안다.”
Q : 그런데 윤 당선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A : “보니까 잘못한 게 많더라. 내가 몰랐던 것도. (윤 당선인이) 위인이 되려면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하는 게 옳다. 자꾸 변명하면 (거짓이) 나타난다. 대통령이 직위를 준다든지, 국회의원직을 준다고 해도 본인이 ‘이 문제(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하고 거절했어야지), 그게 아니라 사리사욕을 챙기려고 다 미뤄놓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건 아니다. 돈을 빼먹었지 않나.”
“윤미향, 사욕 챙기려 위안부 문제 해결 미뤄 … 이건 아니다”
Q :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나.
A : “왜 위안부 문제를 마음대로 팔아먹나. 이건 명예훼손도 되고 이용한 것도 된다. 그리고 왜 거기(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거주 시설) 모신 할머니만 피해자냐? 전국의 할머니를 위하고 도우라고 주는 건데 어째서 거기 있는 할머니만 피해자라고 하나. 이것 한 가지만 해도 (문제가) 충분하다.”
Q : 위안부 합의 사실은 언제 알았나.
A : “(2015년 12월) 28일에 텔레비전을 보고 알았다. 외교부도 그렇지, 피해자들을 위해 (합의)했다면 피해자한테 알렸어야 한다. 그런데 나만 싹 속였다. (나에게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월 29일(2016년)에서야 편지를 써서 보냈다.”
Q :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이 낸 10억 엔으로 세운 화해·치유재단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고 싶어 하는 피해자를 윤 당선인이 회유했다는 주장이 있다.
A : “나눔의집에 갔는데 어떤 할머니가 이리 와보라며 ‘나는 암이 퍼져 있으니 이 돈 받아서 아들 줄래’라고 했다. 분명히 받는다고 했다.”
Q : 위안부 합의 이후 정대협이 국민 모금으로 모은 돈으로 화해·치유재단의 지원금을 받지 않은 피해자 분들께 1억원씩 드렸다고 해명했다.
A : “나는 그거 받았다. 하지만 일부는 정신없고 치매 앓고 할 적에 옆에 보호자가 있는데 보호자한테 주고 그냥 간 경우도 있었다.”
Q :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한 건가.
A :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건 안 해야 할 것 아니냐. 내 생각엔 역사관을 넓혀서 교육관을 만들어 올바르게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옳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수요집회) 나와 봐야 배우는 거 하나도 없다. 사죄하라, 배상하라 하는데 뭣 때문에 하는지 알면서 하는 소리겠나.”
Q : 지난 기자회견에서 수요집회를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A : “학생들이 추우나 더우나 와서 앉아 있고, 저금통 털어서 가져오고 한 돈을 의심 없이 받더라. 난 그 학생들이 참 안타까웠다. 돈을 받으면 더 보태 점심이라도 먹여서 보내든지. 할머니들이 안타까워서 오는 학생들에게 옳은 역사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데, (정대협은) 자기들 운영하느라 바쁘다. 이제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하는데 말이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대한민국 주인이다. 일본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봐야 무엇이 맞는지, 잘못인지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1993년도부터 (정대협) 증언집이 나왔는데 6500원씩 주고 팔아먹었다. (그땐) 증언집이 뭔지도 몰랐다.”
Q : 수요집회에 정말 안 나갈 건가.
A : “이제 너무 기력이 없다. 이제 나가 봐야 나밖에 없다. 피해자가 없는 데모(집회)를 왜 하나. 피해자가 있으니까 학생들이 오는 건데, 난 그 학생들 더 고생시키기 싫다. 없는 돈 받아다가 차곡차곡 쓰는 것 싫다.”
Q : 위안부 피해자를 ‘성노예’라고 표현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A : “위안부라는 명칭은 바꾸면 안 된다. 성노예라고 하는데, 너무 더럽고 속상하다. 윤미향한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야 미국이 무서워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런 말 말아라’ ‘나는 너무 부끄럽다’ ‘내가 왜 성노예냐’(고 했다).”(※정의연의 정식 명칭에 ‘일본군 성 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Q : 기자회견의 배경을 두고 외부에서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A : “1년을 혼자 고민하고 결정한 거다. 최용상(가자!평화인권당 대표)에겐 기자를 소개해 달라고 한 것뿐이지 다른 건 없다(※윤 당선인과 더불어시민당은 최 대표가 비례대표 공천에서 떨어진 데 불만을 품고 이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하도록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최봉태(변호사)는 (7일) 기자회견 이후에는 만난 적도 없다. 그 사람이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기자회견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그 사람 의견일 뿐이다(※2011년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지 않는 부작위 상황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는데, 당시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이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이고 최봉태 변호사는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했다. 최 변호사는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 할머니가 위안부 청구권에 무심한 정부에 분노한 것’ 등의 의견을 냈다).”
Q : 지금 솔직한 심경은 어떤가.
A :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김학순(※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피해 할머니. 97년에 작고했다)이 시작했지만 이용수가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결심하니 마음이 나아졌다.”
Q :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한 것을 본인이 마무리 짓겠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A : “운동을 끝내자는 게 아니다. 아베 총리의 악행을 보고도 일본에 면죄부를 줄 순 없다. 아베 총리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 독도는 또 왜 죽도(竹島·다케시마, 일본이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을 하며 붙인 명칭)라고 부르냐. 다만 운동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우리 다음 세대가 일본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먼저 하늘로 간 할머니들한테 당당하게 ‘내 할 일 마쳤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Q : 정의연이나 윤미향 당선인과 만나 오해를 풀 생각은 없나.
A : “화해는 안 한다. 화해는 할 수 없다. 정대협(정의연)은 고쳐서 못 쓴다. 해체해야 한다.”
대구=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5월 17일 발간하는 월간중앙 6월호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번 정의연 문제제기 관련 이용수 인권운동가의 인터뷰 기사를 모아놓은 거고 다음은 2015년 이용수님의 인터뷰야. 인터뷰 안에 정의연에 대한 이용수님의 의견이 언급된 부분이 있어. 기사 역시 따옴표 안에 있는 이용수 활동가님 인터뷰 위주로 보면 좋을 것 같아. 이 기사는 뒷부분쯤에 기자의 주관이 섞인 것도 같은데 생략하기 애매해서 대부분 실었고 그냥 ""(큰따옴표) 안의 인터뷰 위주로 봐줘!
이용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내 소원은 한국과 일본이 원수 지지 않는 것"
[이 사람]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일본 원조로 경제 발전한 것은 잘한 일. 이제 정부가 피해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달라”
[편집자 주] 본지는 지난 498호(5월 13일자) 기사 ‘정대협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정책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이라는 정대협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대협의 주요 임원 및 측근의 활동을 분석함으로써 이 단체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을 위한 시민단체라기보다는 ‘정치운동 단체로서의 성향을 보인다’는 문제제기를 했다.
이와 관련한 후속 보도를 위해 본지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아닌, 실제 당사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취재했다. 이를 위해 피해 당사자로서 일본의 과오를 알리기 위해 국내외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 심경을 들었다.
▲ 8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이용수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사진 정재욱 미래한국 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던 지난 4월 29일(현지 시각) 미국 국회의사당 내 청중들 한 편에서는 아베 총리를 쏘아보는 백발의 할머니가 있었다.
2007년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을 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일본군의 만행을 알렸던 이용수 할머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아베 총리의 방미(訪美) 일정을 따라 보스턴의 하버드대, 샌프란시스코, LA를 방문해 침묵시위를 벌이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총리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6월 10일 대구 자택에서 만난 이용수 할머니는 올해 8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했다. 먼저 이용수 할머니에게 아베 일본 총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물었다. 할머니는 “아베는 비겁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난 위안부가 아니라 이용수예요. 일본이 날 위안부로 만든 겁니다. 아베는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나요? 아베가 눈이 멀었는지, 귀가 먹었는지 직접 보고, 또 역사의 산 증인인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미국에서 아베를 줄곧 따라 다녔어요.”
아베 일본 총리는 지난 2012년 12월 취임 이후 ‘위안부의 강제 연행에 대한 증거가 없다’(2014년 4월 17일 <타임> 인터뷰), ‘(위안부는) 인신매매의 피해자’(2015년 5월 27일 하버드대 강연)라면서 위안부 동원에 군 개입이나 강제성이 없었다고 발언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동원에 일본군의 개입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를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집권 자민당 내에선 고노 담화에 대해 수정 요구 움직임이 거세다.
16세 소녀의 고난의 세월들
(중략-활동가께서 '위안부'로 어떻게 끌려가게 됐는지에 대한 요약. 인터뷰 속에 나오는 내용)
“우리 고향 집이 초가집이었는데 방에 조그만 봉창이 있었어요. 거기에 모자를 눌러쓴 군인과 여자 아이가 하나가 있는데, 그 아이가 나오라고 손짓을 했어요. 자다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마루에 걸터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입을 막고 뭔가 뾰족한 것으로 등을 찌르는 거예요. 그길로 다른 여자 아이 4명과 함께 기차에 태워졌어요. 그때 ‘난 안 간다’, ‘엄마한테 갈란다’ 하다가 엄청 맞았어요.”
(중략-활동가께서 '위안부'로 끌려가서 겪은 일을 문장으로 요약한 것. 인터뷰 속에 나오는 내용)
“방에 들어가니까 군인 한 명이 담요 안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 안 들어간다’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갑자기 누가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거예요. 광 같은 데 밀어 넣고 발길로 차서 지금도 허리가 아파 잘 못 걸어요. 그날 맞아서 한 일주일 누워 있었는데, 그때 담요 속에서 누워 있던 군인이 미안했는지 약도 가져오고 먹을 것도 가져오고 그랬어요.”
할머니가 가미카제 부대의 지명을 기억해낸 것도 그 군인이 가르쳐준 일본 노래 속에 ‘신죽’이라는 지명이 나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어 대만 수용소에서 지내다 1946년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국하는 배에서 다른 언니들이랑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라며 노래를 부르면서 왔어요. 이맘때보다 조금 이른 시기였던 것 같아요. 보리가 한 허리 춤까지 자랐을 때예요. 그런데 내가 집에 돌아오니까 엄마가 ‘귀신이 왔다’고 ‘그냥 돌아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뛰어가서 ‘엄마’ 하고 안겼는데, 그대로 기절하셨어요.”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에 반감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생각은 의외였다.
“내 소원은 이웃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 원수 지지 않는 것이에요. 나는 일본의 학교에 가서도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해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 라고요.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올바르게 얘기해줘서 서로의 미래를 열어줘야 해요. 괜히 일본 욕하면서 이승만이나 박정희까지 끄집어내서 비난해서도 안 되고요.”
이제 정부가 우리 돌볼 차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 세력을 정부에 대거 기용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과의 밀실 거래를 통해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일본과 무상 3억 달러, 2억 달러의 정부 차관 및 3억 달러의 민간 상업 차관을 지원받기로 합의했다. 다만 이때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청구권 협정 2조)고 합의함으로써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제공했다.
“한일협정을 피해 당사자인 우리 모르게 진행한 것은 큰 문제예요. 그런데 난 당시에 일본에게 원조 받아서 포항제철을 짓고 경부고속도로 건설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라고 봐요. 제 얘기는 그때 그 돈으로 경제 발전을 했으면, 이제는 정부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달라는 겁니다.”
▲ 지난 5월 아베 일본 총리의 강연에 맞춰 하버대를 방문한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아베 총리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 정부나 우리 정부에 대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아베 총리의 공식 사과와 배상이다(이용수 할머니는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공식 사과가 있었음에도 아베 총리의 사과를 바랐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게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아베는 조상도 그렇고 사무라이 기질이 있어서 절대로 사과 안 할 것을 잘 압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본인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죠.”
이용수 할머니는 내후년이면 우리 나이로 90세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친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 정부에 등록된 생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이제 50명이 전부다. 그래서 우리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
“사과는 언제든 일본한테 받겠지만, 정부가 일본에 앞서 우리에게 미리 배상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죽으면 무슨 소용 있나요. 생전에 배상을 받아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정대협, 당사자 의견 안 듣고, 일본과는 협상 거부”
우리 정부는 일본의 국민기금(일본 무라야마 내각에서 정부 예산과 일본 민간 모금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3100여만 원을 지급했고, 현재는 정부 및 지자체 지원금을 합쳐 매월 200만 원이 채 안되는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껏 실질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만을 요구하는 정대협의 목소리뿐이었다. 한때 대구에 살면서도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에 올라와 수요 시위에 참여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단체들에 대해 “맨날 박물관이나 짓고, 자기들끼리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문제 해결을 하려면 피해자를 참석시켜서 의사를 묻고 일본 대표나 우리 정부 관계자들과 회의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요.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무시하는데, 모르면 알려주고 설명해주면 되죠.”
이용수 할머니는 “최근에 일본 정부에서 국장급이 세 차례나 회담을 요청했다는데, 정대협을 비롯한 위안부 단체들이 우리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회담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협상을 하자는데 왜 안 해요? 문제 해결을 하려면 만나야죠. 만나지 않고 어떻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정대협의 수요 시위도 무엇을 위해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무조건 ‘사죄하라’, ‘배상하라’고 하면서 집회 횟수만 채우면 된다는 식이에요. 회담이 있어도 단체 사람들끼리만 해요. 엄연히 피해자들이 있는데, 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수요 시위는 정대협이 1992년 1월부터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는 최근에는 정대협이 주관하는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시위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참석하지 않는다.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수요 집회 안 나가는 이유
“일본 대사관 앞에서 ‘사죄해라’, ‘배상해라’ 외칠 때 마음이 편치 않고, 시위에 나가면 다들 악을 쓰게 돼요. 매주 그러다 보면 성격도 그렇고, 태도도 나빠져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정대협 사람들은 투쟁가 쪽인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비전향 장기수들이 수요 시위에 왔는데, 난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지만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의 남편(김삼석 씨)이 대전형무소에 있을 때 탄원서도 넣고 면회도 갔어요.”
정대협은 수요 시위의 주관을 관련 단체에 맡기기도 하는데, 비전향 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이 수요 시위를 주관해 비전향 장기수들이 대거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말한 윤미향 대표의 남편 김삼석 씨는 1994년 ‘남매 간첩단’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정대협이 1993년 출간한 증언집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증언 청취를 부실하게 하고, 일본에 가서 증언할 때도 통역을 잘못해서 위안부가 된 경위가 사실과 다르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증언은 내 생명과도 같아요. 그런데 정대협 담당자들이 본인한테 확인도 하지 않고 사실과 다르게 증언집을 내고 6500원에 판매까지 하더라고요. 증언을 들으려면 따로 조용한 곳에서 정식으로 해야지 식사하면서 ‘할머니 어디 갔다 왔어요?’라고 질문하고 대답한 게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증언들이 뒤죽박죽 된 게 많아요.”
박근혜 대통령이 6월 12일자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의와 관련해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며 현재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꽉 막혔던 한일 관계에 활로가 뚫릴 것이란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이 아닌, 정대협이 만들어 놓은 ‘법적 배상’이라는 틀에 갇혀 큰 틀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는 2012년 3월 이 대통령이 일본과 인도적 조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곧바로 외교부가 한국 정부는 ‘입법 해결’을 바라고 있다고 말을 뒤집은 바 있다.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이름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인도적 해결에 동조하지 말고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 이행을 촉구하라’고 성명을 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이용수 할머니의 생각은 이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위안부 단체와 피해자들을 한 자리에 모여 의논하고 의견을 들어야 해요. 그래야 피해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해결책이 나옵니다”
여기까지가 이용수 인권운동가님의 인터뷰고 여기까지만 읽어도 돼. 이제부터는 내 사족도 써볼게. 여기에도 상당부분 이용수 활동가님의 인터뷰를 인용할 거야. 일단 인터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 이용수님이 단순히 윤미향 전 대표가 국회의원이 되는 게 서운해서, 계속 같이 활동했으면 해서가 아니라 정의연이 자금 부분에서 깨끗하게 운영되었는지 밝히라는 얘기야. 모든 인터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정의연에 대한 주요 논점 중 하나는 동일하게 이거임.
2. 정의연 운영에 의문을 가지게 된 까닭은 120일이나 미국에 갔는데 아무도 돈 한 푼 보태준 사람이 없었음 등이 있고 또 2015년 기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음. 이 부분은 그대로 옮겨와볼게
“맨날 박물관이나 짓고, 자기들끼리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문제 해결을 하려면 피해자를 참석시켜서 의사를 묻고 일본 대표나 우리 정부 관계자들과 회의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요.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무시하는데, 모르면 알려주고 설명해주면 되죠.”
“일본이 협상을 하자는데 왜 안 해요? 문제 해결을 하려면 만나야죠. 만나지 않고 어떻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정대협의 수요 시위도 무엇을 위해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무조건 ‘사죄하라’, ‘배상하라’고 하면서 집회 횟수만 채우면 된다는 식이에요. 회담이 있어도 단체 사람들끼리만 해요. 엄연히 피해자들이 있는데, 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이유들로 단체 운영에 의문이 생기신 것 같아. 어떤 사람들은 정의연이 비단 피해자 할머니들 지원 뿐만이 아니라 전시성범죄 재발 방지 등 다양한 일을 하는 단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해가 잘 안 됐어. 이용수님이 미국에 직접 증언을 하러 가는 건 단체의 존재이유에 미뤄볼 때 너무나 핵심적인 일이자 행동 아니야? 어떻게 120일을 미국에 가는데 한 번도 금전 지원이 없었고, 협상을 하자고 할 때도 피해자들은 배제하는 부분이 맘에 들지 않으셨던 거지.
3. 이용수님은 화해치유재단에 대해 졸속합의라고 생각하심. 절대 거기에 찬성하시지 않아. 이거에 대해서는 검색해보면 엄청 많이 나옴. 이때싶 화해치유재단이 좋은 합의였네 이런 기사가 나온다면 그게 바로 정치에서 이용해먹는 것...
4. 인터뷰 내용에도 나와 있는데, 이용수님께서 정의연을 해체해야 한다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정의연 해체=위안부 운동 끝이 아니야. 이용수님께서는 백년이고 천년이고 계속 사죄를 받아낼 거라고 말씀하셨어. 역시 인터뷰를 인용해볼게
"운동을 끝내자는 게 아니다. 아베 총리의 악행을 보고도 일본에 면죄부를 줄 순 없다. 아베 총리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 독도는 또 왜 죽도(竹島·다케시마, 일본이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을 하며 붙인 명칭)라고 부르냐. 다만 운동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우리 다음 세대가 일본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먼저 하늘로 간 할머니들한테 당당하게 ‘내 할 일 마쳤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요일에 학생들 나와서 집회하면 이거 공부 안 됩니다. 제 생각입니다. 제 각오입니다. 저는 수요 데모를 마치렵니다. 이것 때문에 학생들이 마음에 상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데모를 마치고 일본, 한국 간 젊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제가 사죄 배상은 적어서 백년이고 천년이고 가도 사죄배상을 받아야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용수님께서는 집회만 하는 것보다 한국 일본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해서 과거의 제대로 된 역사를 알리는 방법이 더 실질적으로 유효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
5. 정의연의 지금까지의 모든 성과를 폄하한 것은 아님. 역시 인터뷰를 인용할게
Q : 그동안 참았다 기자회견을 한 것인가.
A : “제가 참았다기보다도, 30년을 꾸준히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을) 해왔다. 윤미향이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 것은 안다.”
이때다 싶어서 친일보수세력이 위안부 문제를 입맛대로 이용할까봐 걱정스러운 사람들이 많은 거 알아. 매일 온갖 기사가 나와서 혼란스럽기도 할 거야. 나도 그렇고. 그 속에 근거 없는 억측이 있을 수도 있어. 그래서 가장 왜곡이 없을 것이며 당사자이기에 가장 중요한 '위안부' 피해자분들 중 한 명인 이용수 인권운동가님의 입장을 정확히 알고자 직접 말씀한 걸 적은 인터뷰들만 모아온 거야. 혹시 이용수 인권운동가님의 인터뷰 중에 추가할만하다든지 빼먹은 게 있다면 말해줘도 좋을 것 같아. 며칠간 이 일을 지켜보면서 정의연의 말이 더 대표되고 정작 당사자인 이용수님 입장이 묻히는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
나도 이 문제는 너무 조심스러워서 이렇게 글 쓰는 것만으로도 떨리고 그래. 모두가 바라는 건 이 위안부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한다는 것이겠지.
정의연이 만약 자금 운용에 대한 부분에서 투명함이 입증된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도 정의연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에 대해 매일 지켜보는 중이야.
다만 그 전에, 진짜 기본 중에 기본인 당사자 이용수님의 입장을 정확히 알고 있자는 얘기야.
부디 모든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한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일본정부의 공식적이고도 정중한 사죄를 받으셨으면 좋겠다. 자라날 일본 아이들에게도 정확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약속,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과 함께.
+)폰으로 볼 때 보기 편하게 나오지 않아서 다시 수정해서 올려!
첫댓글 이번일이 진영갈등으로 번지면서 이용수님의 발언은 지워지고 있어서 너무 속상함 오랫동안 고민하시고 어렵게 문제제기 하신건데 그냥 '할머니가 섭섭한거같다'로 치부하는건 또 뭐고..ㅋㅋㅋㅋ
그리고 일본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윤미향인거 좀 어이없음^^ 일본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직 생존해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야
그러니까... 나는 지금 계속 정의연 의혹이 어떻게 해명되는지 지켜보는 중인데, 잘 해명된다면 다행인 거고 만약 잘못이 발견되면 그걸 바로잡아야지 잘못은 보수만 할 거야 이러는 것도 경계해야 될 태도라고 생각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자정하고 나아가야지 그게 진보인 거고... 또 공감되는 게 단순히 '서운하셨나보다'라고 활동가님 말씀을 일축하는 거 보고 인터뷰 전문은 읽어봤나 싶었어 당장 인터뷰 속에 그런 게 아니라고 나오는데. 맞아 일본이 진짜 무서워 할 사람이 당사자지 누구겠냐고
@상감 이번일로 화나서 관련 기사 찾아보다가 알게 됨ㅋㅋㅋㅋ 지금까지 위안부 일에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응한 사람들은 인권운동가 타이틀달고 행동하신 위안부 생존자분들 이시더라ㅋㅋㅋㅋㅋ 난 정의연이 다 하고 할머니들은 수동적으로 가만히 계신줄 알았잖아 ㅜㅜ 그런데 반대였어
@가만히바라보면 맞아맞아 지금 대응만봐도 단순히 기부금 사용 공개 요청하는걸 갑자기 친일파들이 자기를 공격하는 거라고 딴소리하는건 또 뭐야.. 나 친일 보수 언론에 놀아난 머리나쁜 애 됨...^^
솔직히 지금껏 진보쪽도 더러운거 많고 말도 많았어 하지만 친일파 먼저 뿌시느라 일단 눈가리고 아웅하며 지지한거였고..
이제는 거기에서 나아가서 내부 자정이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함 진보가 무조건 깨끗한건 절대 아님ㅜㅜ 공격하고 분열시켜서 없애자는게 아니라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고 가자는거야 무조건 감싸기만 하면 결국 나중엔 미통당꼴 남
그리고 또 본문 정말 공감하는게 수요집회에서 학생들한테 혐오와 분노만 주입하는거 정말 싫어하신거 같더라... 이용수님 그런일 겪으시고도 평생을 투쟁중이신데 평화주의자셨어 ㅜㅜㅜㅜ 뭔가 나도 여러가지 반성 많이하게 됨ㅜㅜㅜㅜㅜㅜㅜㅜㅜ
ㅠㅠㅠㅠㅠㅠ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도 평소 조중동 기사는 안 보는데 처음 할머니 입장 적은 기사는 본문 보면 할머니 말씀 그대로 최대한 옮겨적었다고 나와있거든 다른 기사면 몰라도 인터뷰를 그대로 받아적은 기사는 왜곡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
조회수 너무 낮다 페미니즘 지향 카페에서 위안부 문제 관심도 이렇게 낮은거 너무 서운해
이용수 인권운동가님 인터뷰 보면서 틀린말 하나 없고 다 공감가고 믿음이 갔음 특히 한국 일본 학생들, 젊은 사람들 서로의 미래를 열어줘야한다는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어
인터뷰 이렇게 잘 정리해줘서 고마워 정말 잘 읽었어
4 ㅠㅠㅠ
아휴 진짜 볼때마다 속상해....ㅠ
입장 정리글 고마워! 뉴스에서는 찾기 힘들었는데 덕분에 할머니 입장 명확하게 파악했어
글 올려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