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젤젤젤리
<문학에스프리 2018. 봄>
무서운 이야기
임지은
나는 무서움이 할머니만큼 좋았다
깜깜한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누군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걸으면 걸었고 내가 멈추면 멈췄다
시체를 파먹는 귀신이나
목소리로 아이들을 홀린다는 장산범은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살았는데
모르는 그림자와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졌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얘야,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단다
할머니는 글씨를 읽을 줄 몰랐다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멀리 떠나 본 적도 없었다
어느 날, 아이가 생겼다
호랑이를 닮은 첫째와 호랑이를 삼킨 둘째와
호랑이를 물리친 셋째와 호랑이를 물어온 넷째...
그런데 얘야, 요즘 세상은 다르지 않니?
나는 천천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런데요, 할머니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작은 칼을 만지작댔다
그것은 누군가를 찌른 적이 없었지만
누군가를 찌르게 될까봐 더 무서웠다
움켜쥔 손을 펴자 여자라는 단서가 또렷해졌다
남자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할머니, 이제 무서움은 이야기 속에 없어요
다리를 달고 거리를 걸어다녀요
나는 남자가 사라진 곳을 한참동안 쳐다봤다
다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 <문학에스프리> 2018. 봄호
첫댓글 공감간다...
나왜 이해못하고있냐.. 시좀 읽고다닐걸ㅜㅜ
귀신이야기, 장산범 =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화자는 어두운 골목길도 좋아했는데(분위기가 무서우니까), 골목길에서 자길 뒤따라 오는 남자를 보고 실제 무서움을 체감.
무서움은 귀신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줄 알았는데 실제로 발이 달려서 돌아다니는구나(여자가 골목길의 남성으로 부터 겪는 두려움, 무서움=즉 일상 속의 공포)라고 느낀거!
너무무섭고 공감...
에휴...ㅠㅠ
하..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