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라도남쌍도남다재기해
알면 알수록 흥미롭고 입체적인 인물이고
남성이었다면 다방면으로 다뤄졌을텐데
다뤄지지않는게 신기하고 화나서 글 써본다.
나혜석 선생님은 페미니즘 작가이자
여성최초 서양화가이자
독립운동가이기때문에
이번편은 문학에 대해 먼저 쓰고
다음은 작품활동, 독립운동 순으로 올릴게
나혜석 (1896-1948), 아호는 정월 (晶月)
경기도 수원 출생
아버지 나기정과 어머니 최시의의 5남매중 넷째 딸로 태어남.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 유화과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뒤 1918년 귀국하여 화가,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였다.
(1) 문학활동
1914년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그가 학지광(學之光)에 기고한 현모양처와 부덕을 비난한 글
“현모양처는 이상을 정할 것도, 반드시 가져야할 바도 아니다.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부덕(婦德)을 장려 한 것이다.
《학지광 1914년 12월호》”
또한 여자도 인간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계몽적 단편 '이상적 부인'과 김일엽과 일본 유학 때 세이토(靑踏)라는 일본 최초의 페미니스트 잡지를 통해 여성해방에 처음으로 눈뜨게 됨.
1918년에 발표한 소설 '경희'는 국내 첫 페미니즘 문학으로 평가됨.
내가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나혜석 선생님의
임신에 대한 관점 변화
1920년부터 그는 일본 유학을 하고 온 김일엽 등과 함께 개화 신여성 운동을 주도하였다.[36] 1923년 그는 첫 딸을 출산한 후 그는 잡지 동명지에 출산과 자녀 양육을 감동적이라고 표현하였다.
... 원래 임신이라는 것은 여성의 거룩한 천직이니 여성의 존귀가 여기 있고, 여성이 인류에게 향하여 이행하는 최대 의무의 한가지인 것을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
- 동명 지 1923년 2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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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이름은 김나열(金羅悅)로 지었는데 남편의 성과 자신의 성을 합쳐서 나열이라 하였다. 그는 여성에게 아이를 낳는 것은 거룩하고 신성한 일이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보기도 했다.
이어 아들 김선과 김진을 두고, 파리 체류 중 셋째 아들 김건(金建)을 두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자녀에 대한 맹목적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에 염증을 느낀 그는 그 뒤 그는 '어미된 감상기'를 발표한다.
여기에서 '나는 할일이 많다. 이제야 예술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이와 동시에 나는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라는 말을 통해 어머니로서, 화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서술한다. 그리고 그는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아이를 낳는 것,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하지만 조선사회에서는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 거룩한 것이니 너희가 참아라, 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한다' 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출산의 고통을 남자들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남자가 임신을 하지 않으니 모른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사회가 여성에게 어머니 역할, 모성애를 일방적으로 강요한다고 주장하였다. "모성의 신화는 없다"고 이야기하자 수많은 남성들의 비난에 부딪히게 된다.
아래는 유럽여행후 보고 들은것을 대중에게 소개 한
나혜석 선생 명언
“우리가 여긔서는 여자란 나부터도 할 수 없는 약자로만 생각되더니 거기 가서 보니 정치, 경제, 기타 모든 방면에 여자의 세력이 퍽 많습듸다.”
— ‘구미만유하고 온 여류화가-나혜석씨와 문답기’, <별건곤> 1929년 8월호
“나는 여성인 것을 학실이 깨다랏다. …그리하여 나는 큰 것이 존귀한 동시에 적은 것이 갑 잇난 것으로 보고 십고 나뿐 아니라 이것을 모든 조선 사람이 알앗스면 십흐다.”
—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삼천리> 1932년 1월호
그리고 선생이 이혼 후 조선의 남성들에게 남긴 글 이혼고백서 ^^
조선남성 심사는 이상 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여성에겐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 합니다. 서양이나 동경사람쯤 되더라도 내가 정조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관념 없는 것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남에게 정조를 유린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愛好)하도록 애호해 주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가, 자기가 직접 쾌락을 맛보면서 간접으로 말살시키고 저작 시키는 일이 불 소하외다, 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이요.
조선남성들 보시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오.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들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이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 이였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 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줌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뿌려져 우리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이름을 기억할 것이리라, 그러니 소녀들이여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라
영화 안만들고 뭐하냐
첫댓글 진짜 좋아 ㅠㅠㅠ 너무 멋있고요 역사책에 ‘여류시인’이라고만 띡 적혀있어서 화남..
글고마워 다음글도 기다릴게
잘 읽었어! 다음글도 기대된다!!
저 시대에 어떻게 저렇게 깨어있을 수 있었는지 너무 궁금하고 신기해..
우리나라 여성위인중에 가장 유명한 유관순 열사 영화도 올해서야 만들어졌네 그러고보니...
잘보고가 !!!!
몇 년 전에 수원 나혜석 거리 지나가는데 친구가 이 여자 창녀라고 그러는거야 ;; 고딩때 선생이 그렇게 알려줬다면서 ;; 그 땐 누군지 몰라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창녀가 뭐냐고 한 마디 하고 말았는데 알면 알 수록 화남 ㅡㅡ
와,,
와 마지막문단 좋네
나 나혜석님 제일 좋아해!!!!
진짜 인계동갈때마다 벅차오름 ㅜ
나혜석거리가 이 분이셨구나.. 맨날 가면서도 몰랐네 멋지다
영화만들어 좆팔들아 지우지말고~!~!~!~!~!~!~!~!!!!!!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단편 산문집인데 추천해 책도 작고 가벼워서 들고 읽기 좋더라! 특히 유명한 이혼고백장도 수록돼있고 나혜석님 글 읽어보고 싶은 여시들한테 완전 추천이야
근데 가슴아픈게 가족,자식들까지 외면하고 결국 되게 쓸쓸히 고독사하셨어ㅠㅠ 선각자.. 여성의ㅣ 외침을 사회가 외면하고 매장시켜버린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