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방 짓는 일은 잠시 미루고,
사과밭에 몸과 마음을 집중.
며칠 동안 밭을 돌며 병든 사과 따내는 일을 한다.
오늘 따낸 사과는 손수레 두 차.
수레를 끌고 과수원 절벽 쪽으로 사과를 버리러 가는 남편.
멀어져 가는 뒷모습이 씁쓸하다.
연일 오락가락 계속되는 비.
잦은 폭우로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사과나무들도 지쳐가기는 매한가지.
꿋꿋하게 커가는 사과들에게 건투를....
그리고 사과 나무에 사는 온갖 벌레들과의 만남.
말벌은 사과에 아얘 코를 박았다.
우리 사과맛은 말벌이 인정한 셈.^^*
한번 깨물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맛(?)
아니, 그러기만을 간절히 바래본다.
호랑줄무늬 거미.
초록 풀잎과 노랑 줄무늬가 만나 더욱 산뜻.
비행하다 쑥 끄트머리에 잠시 내려앉은 잠자리 찰칵.
미꾸라지 통발에 갇힌 톱다리 허리 노린재들 .
명태 대가리를 넣어 유인을 했더니 셀수 없이 많은 녀석들이 들어온다.
이 녀석들도 사과를 헤치니 이렇게라도 잡아야 한다.
야비한 살생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허물만 남은 매미.
과수원에서 왕왕왕 울어대는 매미들 가운데
이 허물을 벗고 나온 녀석도 있으리라.
잠시 하늘이 반짝.
8월에 만난 해가 이리 반가울 수가....
하지만 이내 땅에서 습한 기운이 올라와 숨이 턱턱 막힌다.
더운 열기에 눈앞이 뿌옇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남편이 별천지를 보여주겠다며 데려간 계곡.
과수원에서 1분 거리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놀랍다.
남편이 그런다.
평소에는 물이 별로 없는데, 요즘처럼 비가 잦으면 물이 갑자기 불어나 계곡이 된다고.
시원하다.
나무 그늘도 시원하고,
계곡물소리에 가슴도 뻥 뚫린다.
좀전까지만 해도
땀에, 빗물에 흠뻑젖은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온전히 노동으로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이,
힘에 부쳐 한숨이 나왔는데.....
맑은 계곡물에 모두 씻겨내려가는 것 같다.
자연이 주는 위로.
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한 위로가 있을까?
흐르다 보면
흘러가게 되는 일.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을
알 턱이 없는 동자.
계곡물을 잡으려고 물고 또 물고.
입을 쩌억 벌리면 잡힐 거라 생각하는지
크게 한입 또 물고...
하지만 매번 허탕.
동자 덕분에 남편과 나는
히죽히죽 웃다.
지금은 여름 한가운데.
초록이 참 예쁘다.
해질 무렵, 또다시 천둥 번개...
그리고 폭우.
작업중이던 남편, 그 비 다 맞더니
뜬금없이 옷을 하나둘 벗어 던진다.
그리고는 온전히 알몸이 되어
과수원을 미친 듯 뛰어다니다.
번쩍이는 번개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진 남편,
요란한 천둥소리에 간간히
으하하하,
남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나 또한 히죽히죽 웃다.
첫댓글 노대씨, 시원하셨겠어요, ㅎㅎㅎ.
차라리 술이라도 한 잔 하실 줄 알면
우리네 삶이 얼마나 외로운 건지 더 뼈저리게 느껴 버리실텐데......
집에서 직접 담가 드신다는 막걸리,
그 맛이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삶이 얼마나 외로운 건지 더 뼈저리게 느끼는 맛이군요.^^*
군침 먹어갑니다.
아~ 진즉 알았더라면 알콩 덜콩 님이 빗으신 막걸리가 얼마나 뼈저리게 하는지.. 같이 느꼈을텐데... 알콩 덜콩님, 우리네 삶이 만만하지 않더라구요~ 우리 언니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다.. 그렇게 살아...> 살아가면서 다..그렇게 살아.. 그 말이 참 많이도 실감나더라구요~ 힘내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 잘지내고 계시죠? 아무쪼록 건강하시구요.곧 뵐날이 오겠지요.
또 이렇게 보고가면 가만히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구요.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요. 왜 그럴까요. ㅋㅋㅋ
요즘같아서는 미친듯이 막노동을 하고 싶은데 이런소리하면 제가 이상해 보이시겠죠.
농사일이 제격이지요. 호미들고 콩밭이라도 ... 흐~
어릴때 생각나네요. 끝날거 같지 않던 밭일들이...사과가 너무 탐스러워요.
애지중지한 정말 자식같은 사과를 버리는 마음이 오죽할까요.
그래도 기운내세요~~ 팍팍!!!!
현아씨, 잘 지내죠?
맞아... 현아씨는 시골 아낙이 되면 정말 일 잘할 것 같아.
밭에 데려다 놓으면 하루종일 그곳에서 시간가는 줄 모를 거야.
옆에서 아가들이 흙범벅이 되어 뒹굴어도 헤헤헤 거리면서....그치?
하지만 집에서 두 아이 키우는 일이 농촌일에 버금가는 막노동이잖아.
끝도없는 막노동.
나도 현아씨에게 기운 팍팍!!! 넣어줄게.
건강하구...
알콩 덜콩님, 지기님.. 삶 속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두 분의 표현 앞에서 저도 잠시 눈을 한 번 감아봤네요~ 각자 만나지는 인생의 삶 앞에서 나름 뼈저린 순간들~~ 지나고 보니 넘을만한 산이었네요~ 그러나 또 다시 만나고 싶지 않는 산이네요~ 사과를 버리러 가기는 모습~ 마음이 왜이리 짠~ 한지요. 얼른 날아갈 수만 있다면 저 일을 제가 대신 해 주고 싶은 마음~~ 지기님,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지나고 보니 넘을만한 산이었네요' 담쟁이 님 말씀에 힘이 납니다. 인생이란 그러나, 그런데 또 그러나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지만 그것 또한 지나가면 감당할 수 있는 것이겠죠. 저도 힘을 보태 모두들 파이팅입니다. 특히 양미 씨! 노대 씨!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보냅니다.
힘든 농사...어째요...
계속 되는 비에 병든 사과들이 그리 많을 줄 몰랐네요.
남은 농사 잘 되어야 할텐데요.
사과밭 위치가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이 밑으로 많이 지나가는 자린가 봐요.
빗물이 사과밭으로 많이 유입되지 않아야할텐데요.
예전 주말 농장할 때 유독 빗물이 흘러가던 가운데 골의
양옆 몇 미터의 텃밭 작물들이 장마에 모두 무름병에 죽었던 기억이 나요.
다행이 우리집 텃밭은 몇 평 떨어진 곳이라 장마철엔 더 잘 컸기에 다행이었지요.
빗물이 과수원 밖으로 잘 빠지게 수로 관리를 하면 나으려나 싶어 써 봐요.
혹 그때 기억이 나서 도움 될까봐 주저리주저리 적어보네요.
시장에 나온 복숭아를 보니 작년까지 행복한 먹거리를 보내주던 귀틀댁 생각이 간절합니다.
카페 분위기가 살아난 걸 보니 상쾌해지네요
반갑습니다. 다시 집을 짓고 계신다니 더욱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