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는 편지로 말해요!
유회숙 (사)한국편지가족 회장
길을 걸으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나무가 있어 길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봄이면 일필휘지 가지를 드리우고 복사꽃아래 먹물처럼 하냥 앉아있습니다. 곧게 뻗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걷다보면 잎잎이 팔작집 처마가 이어지고 어느새 고즈넉한 한옥마을에 들어선 듯합니다.
막연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계절입니다.
그대를 기다린다면 등불 같은 둥지와 아늑한 그림자를 드리운 느티나무아래가 좋겠습니다. 가을빛으로 물든 나무마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읽혀집니다. 비바람이 지나간 가지 끝에 넉넉한 열매를 매달 줄 아는 나무는 우리네 사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래서 나무이야기를 하다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인 편지가 써집니다.
결혼한 지 38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에게 쓴 편지, 경찰아저씨께 보내는 초등학생 편지, 아들이 아버지께 가슴 깊숙이 묻어둔 진심을 전하는 편지, 다정한 연인들의 편지는 언제 어느 때 읽어도 감동입니다.
요즘 우리사회는 입에 담기조차 힘든 일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일찍이 편지로 소통할 수 있었더라면 그 현상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편지가족은 국민의 인성과 마음을 가꾸는 일이 사회공헌사업 중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력이 되어주는 우정사업본부에서 5000만 편지쓰기 행사를 3주간 펼쳤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그 말의 끝에서 누군가 단아한 이마를 숙이고 편지를 쓸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편지라는 명사가 동사가 되어 전국에서 애쓰시는 지회장님과 손편지 쓰기를 생활화하고 있는 낯익은 회원님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편지로 하는 일은 마음이 반듯해야하고 그 가운데 보람을 느낍니다.
2014 Soul Korea 5000만 편지쓰기는 학교는 물론 축제장에서 다문화다문학 콘서트에서 군부대에서 엽서와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편지는 사랑입니다. 편지를 써야지 하고 마음만 먹으면 짝사랑이 됩니다. 편지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편지쓰기 행사를 하면서 자연과 사람과 문학이 한마음으로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글날에는 원당샘 공원에 시의 날에는 문학의 집 입구에 추억의 공간을 꾸몄습니다. 그런가하면 안산시 도서관 책문화 축제 등 행사에 오신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기억을 더듬어 소통하는 풍경 속으로 시간이 감겼다 풀리곤 합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눈물이 나는 것도 편지를 쓰면서 입니다.
편지! 소통을 말하다. 빨간 우체통이 그려진 배너는 따뜻한 정감을 불러일으키고, 전국의 어디든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온통 편지쓰기로 물들었습니다. 나란히 앉아 편지를 쓰는 어머니와 딸,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대학생, 나무의자에 앉은 채 발끝이 땅에 닿지 않던 아이의 모습도 편지로 남았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마음도 물이 듭니다. 빨간 우체통에 편지가 쌓이듯 한 잎 한 잎 나뭇잎을 내려놓는 나무의 무한한 여백에 고요가 자리합니다.
편지는 화장을 지우고 맑게 드러난 얼굴이 더욱 고운 여인입니다. 진심이 통하는 세상을 편지로 경험하고 공유하기에 전국이 편지로 들썩이던 2014년 가을입니다.
아직 못다 한 일이 있거든, 처음 출발을 기억해보세요. 아직 못다 한 말이 있거든, 사랑 감사 용서 등 따뜻한 마음을 담아 편지로 말해 보세요. 가을엔 또 다시 편지에 발목이 잡혀도 좋습니다.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다가오는 새해에는 순한 양처럼, 변함없는 열정으로 하시는 일마다 술술 풀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