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교실] 37. 생명의 가치를 돌아보며
모든 존재, 유기적 인과관계로 형성
자살, 문제 해결 아닌 惡緣 짓는 일
어제도 인신사고로 지체되는 전철을 기다리며 약속시간에 늦을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필자가 주로 타고 다니는 소부(總武)선은 특히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하루걸러 한 번씩은 자살자로 인한 운행 트러블이 발생하는 것 같다. 너무 자주 겪다보니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지만, 굳이 사람 북적거리는 전철역을 자살 장소로 선택한 그들에게서 현대인의 아이러니한 심리 속에 잠재하는 고(苦)를 느끼며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어찌 자살뿐이겠는가. 전쟁, 환경파괴, 인종차별, 낙태, 사형제도 등‘생명’과 관련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현대사회의 이슈는 생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그 만큼 현대사회에서 생명의 가치가 경시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상실한 채 방황하는 현대인, 이들에게 불교가 어떤 실천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는지 새삼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시기이다.
현대인들이 왜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망각하고 살아가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생명이 왜 소중한가에 대한 인식 결여가 그 중 하나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 소중한 이유를 현실의 삶 속에서 이해하게 된다면 실천으로 이어갈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은 왜 소중한 것일까?
우리는 생명을 독립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기적인 인과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의 가르침이다. 어느 것 하나 주변과의 관계성으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는 실체는 없는 것이다. 베트남 출신의 유명한 선승인 틱낫한 스님은 이를 상호존재(interbeing)라는 말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한다.
“만약 당신이 시인이라면, 이 종이 위에 구름이 떠있는 것이 분명 보일 것입니다. 구름이 없으면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는 자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없으면 종이는 만들 수 없으므로, 이 종이가 여기 이렇게 있기 위해서 구름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 구름이 없었다면 여기에 이 종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름과 종이는 상호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종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종이에서 태양의 빛도 발견하게 됩니다. … 좀 더 이 종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 자신도 이 종이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
참으로 아름답고도 인상 깊은 비유이다. 무심히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종이 한 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함께 함으로써 비로소 지금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물며 생명을 지닌 인간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나라는 존재는 우연히 이 세상에 나타나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랜 시간에 거쳐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반복되면서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을 구성하는 무수한 세포는 물론이거니와 나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자연 환경 이 모두가 나라는 존재와 공존하고 있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그들이 있고,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생명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어찌 들에 핀 풀 한 포기 함부로 하겠는가. 내 목숨 하나 끊어버리면 모든 괴로움은 다 끝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또 하나의 악인(惡因)이 되어 그 결과를 나타내게 된다.
나라는 존재,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존재 역시 온 우주의 요소를 다 품고 있는 소중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신중하게 행동한다면,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생명 경시 풍조에 한 가닥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日 도쿄대 연구원
[출처 : 법보신문]
☞'계율교실' 목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