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귀가했을 때 아내는 식사준비를 막 끝내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 아내는 조용히 앉아서 혼자 식사를 했고 나는 화난 듯 말했다.
"난 이혼을 원해" 아내는 나지막이 "왜요?"
너무나 침착한 아내의 말이 거슬러 소리를 질렀다. 그날 밤부터 우리는 딴 방에서 고민에 휩싸였다. 나는 잼을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남은 감정이라곤 그저 동정일 뿐...
죄책감에 휩싸였지만 이혼합의서를 작성했다. 이혼하면 아내는 내 회사 지분의 30%를 가져 갈 수 있다. 아내는 이혼합의서를 힐끗 보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러나 잼에게 준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시일이 한참 지난 뒤 아내는 이혼 조건을 내 걸었다. 물질적 요구는 전혀 배제 한 체 대신 한달 간의 조정기간을 갖기 원했다. 그 기간 동안은 행복했던 지난날처럼 살자고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외아들이 한 달 뒤면 아주 중요한 시험을 보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또 한 가지의 조건을 걸었다. 신혼 때처럼 매일 아침마다 안아 주고 등을 쓰다듬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잼에게 그 애길 꺼냈더니, "그런 꼼수로 나와도 별 볼일 없을거야" 하면서 깔깔거렸다. 내가 이혼을 결심한 이래 둘 사이에는 스킨쉽이 전혀 없었다. 약속 첫날 내가 아내를 힘껏 안아 올렸을 때 마침 아들이 뒤에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빠가 엄마를 안아주네"
그 말에 나는 가슴이 저며왔다. 출근하는 아내를 위해 현관까지 안고 걸었다. 내 품에 안긴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아들한텐 이혼에 대해 뻥끗 하지 말아 주세요"
그 다음 날 우리는 첫날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졌다. 내 품에 안긴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물끄러미 아내를 내려다봤다. 고왔던 아내는 더 이상 아름다움이 없다. 주름진 얼굴에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빠졌고 흰머리가 많았다. 문뜩 내가 아내와 어떻게 살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 네 번째 날 아내를 들어 올렸을 때 무언가의 친밀감이 샘솟았다. 이 여자와 내가 10년을 같이 살았지. 시간이 갈수록 옛 사랑이 회상되었다. 날이 갈수록 아내를 안아주는 건 쉬웠다. 아마도 그 덕분에 운동이 되고 단련이 된 탓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뭘 입고 나갈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 많은 옷들이 왜 맞질 않아?" 나는 화를 버럭 냈다. 아내는 한숨을 쉬면서 "옷들이 다 커져서..."
그제서야 알아챘다. 내가 힘이 세진게 아니라 아내는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아내는 얼마만큼의 고통을 감추고 살았던가. 나도 모르게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그 때 아들이 들어오며 말했다.
"아빠 엄마 출근시간 늦어져요. 빨리 안고 현관까지 가세요"
드디어 약속한 마지막 날이 왔다. 마지막 날 나는 아내를 안기만 했지 한발 짝도 걸을 수가 없었다. 내 품에 안긴 아내를 보며 힘없이 말했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대화가 없었구나. 그래서 점점 멀어진 거야"
회사에서 바쁘게 일한 다음 잼에게 갔다. 잼이 반갑게 문을 열어주며 가벼운 포옹을 했다.
"아, 미안해 잼. 난 아내와 행복하게 살 거야. 나와 헤어지자"
그녀의 놀라고 화난 표정이 무서웠다.
"잼, 미안해 잼, 난 이혼 안 해. 결혼생활이 지루했던 이유는 아마도 아내와 내가 사회생활에 충실하면 가정도 편안하게 지킬 것이라고 여기고 대화를 소홀히 하고 오붓한 시간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어. 아내가 날 보며 웃는 모습이 제일 좋아"
잼과 헤어진 후 나는 꽃집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꽃 한 다발을 샀다. 꽃집 아가씨가 카드에 어떻게 써주길 바라는지 물었다. '죽음이 우리를 떼어 놓을 때까지 매일 아침에 안아 줄 께' 라고 써 달라고 했다.
그날 한밤 집에 도착했을 때 전에 느끼지 못했던 희열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 동안에 아내는 침대에서 싸늘한 주검이 됐을 줄이야. 아내는 몇 달간 말기 암과 투병 중이었는데 나는 잼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지라 아내의 병세에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아내는 곧 죽는 걸 알았고, 우리가 이혼을 할 경우 아들이 내게 보였을 그 어떠한 부정적인 반응으로부터 날 빼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최소한 아들의 눈에는 서로 사랑하는 행복한 부부로 남길 원하면서 죽음을 기다린 것이었다.
부부의 연은 사랑의 최대치이다.
남남이 만나서 더 큰 하나 됨이 결혼이다.
부부의 변치 않는 사랑이 자식들에게 이어져 세상은 밝게 커져만 간다. (기사제공: 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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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일회 발행되는 교포신문에 난 기사를 읽다가 '부부란 무엇인가?' 공유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첫댓글 무언가 반전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사랑은 대단한 게 아닌데----
밥 먹듯 물 마시듯하는 게 사랑 아닐까요. 왜 사랑에게 공주 옷을 입혀주려 하지요?
사랑이란 참 묘한 것이지요 ,,
눈물은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