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의 삼태극 사상
지하철역 환승표시나 전국에 산재해 있는 사찰과 서원 그리고 고궁에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문양이 있다. 바로 삼태극 문양이다. 삼태극 문양은 이외에 여러 가지 기구에서도 보인다. 부채, 연, 목각, 기타 장식품에서도 삼태극 문양은 애용되고 있다. 위의 삼신할머니 그림을 보면 삼신할머니가 삼태극 부채를 들고 있다. 한민족과 함께 숨쉬는 전통 풍류문화인 풍물놀이(풍장)에서 풍물패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몸에 3가지색의 띠를 두르고 있는데 빨강 노랑 파랑 색의 띠다. 이것은 풍물을 연구한 전문가도 인정하듯이 삼태극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분야에서 삼태극 문양을 볼 수 있다.놀라운 사실은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북에도 삼태극 문양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삼태극 문양은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종교와 이념을 뛰어 넘어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민족 고유의 상징으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그럼 왜 삼태극 문양이 이 토록 광범위하게 애용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삼태극에는 홍익인간 사상이 녹아있다. 홍익인간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것은 다툼과 반목 시기 질투 분쟁을 그치고 각자의 개성 또는 고유의 색깔을 존중하고 상생과 조화 배려를 살려 궁극적으로 인간을 존엄케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삼태극에는 이와 같은 사상이 완벽하리만치 새겨져 있다. 삼태극을 보면 우선 각 태극이 각자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자기모습을 잃지 않은 체 서로 의지하여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자기 탐욕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의 개성과 영역을 침범하여 파괴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 또는 가족 그리고 자기가 속한 집단 내지 조직만 잘 먹고 잘살자는 이기주의에 중독되어 남을 부정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삼태극은 상대방의 개성을 인정하고 또한 자기 색깔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자기목소리를 내되 결코 자기 것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목소리도 존중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 태극은 자기 할 것은 다 하면서도 크게 하나의 원을 만들어 결국 하나라는 운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만약 각 태극 중에 하나라도 삐닥선을 타면 하나의 원이라는 운명공동체는 여지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부분과 전체가 별개의 다른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밀어주어 결국 부분이 전체를 이루고 전체가 부분이 되는 조화와 균형 상생의 원리를 담고 있는 것이 삼태극이다. 둘째, 삼태극은 우주를 형상화하여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다. 삼태극의 빨강 노랑 파랑의 각 태극은 우주안의 모든 존재를 말하는 것이고 이들이 모여서 만드는 하나의 원은 우주전체를 의미한다. 밤하늘에 무수히 뿌려진 별들이 마치 태풍이 소용돌이를 치며 돌듯이 도는데 이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 삼태극이다. 별들의 소용돌이 방향이 왼쪽으로도 돌고 오른쪽으로도 도는데 삼태극의 회전방향도 한쪽으로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 회전방향을 정한다. 이 삼태극의 회전방향에 대하여 왼쪽으로 돌때의 의미와 오른쪽으로 돌때의 의미를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한다. 그런데 나사의 경우를 보면 왼쪽으로 돌릴 때는 풀어지고 확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오른쪽으로 돌릴 때는 조여지고 축소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오른쪽은 강함을, 왼쪽은 온건함을 상징한다. 완화와 응집, 관대함과 엄격함 등 무수한 상호 대비되는 개념을 왼쪽과 오른쪽을 가지고 생각해 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삼태극을 어느 방향으로 돌도록 할 것인지는 우리의 상태를 면밀히 진단을 한 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셋째, 삼태극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고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는 완전성 사상을 의미하는 3이 깃들어 있다. 3이라는 숫자는 동서고금을 아우르며 자주 쓰이는 숫자인데 우리의 삼태극에서 발견된다. 이 3이라는 숫자가 완전함을 나타낸다고 한다. 3이라는 숫자가 대표적으로 애용되는 곳은 운동경기에서다. 전 세계적으로 운동경기 시합을 할 때 3번을 함으로써 승패를 최종적으로 가른다. 3번을 겨루어 보면 더 이상 시합을 할 필요가 없이 승패가 완전히 결정 난다고 보는 것이다. 종교에서도 3이라는 숫자가 나와 삼태극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특히 기독교 성경에서 자주 눈에 띈다. 성경에는 ‘요나’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물고기에게 먹혀 배속에서 3일동안 있다가 살아나오는 얘기가 있다. 또한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닭이 세번 울 때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는 죽은 지 3일만에 부활을 한다. 기독교의 3위일체 사상에서도 3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성부 성자 성령은 3위이나 결국 이는 하나로 합쳐진다. 이 밖에 여러 군데서 3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3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 불교의 대표핵심 경전인 반야심경에 보면 ‘삼세제불三世諸佛’이라는 말이 나온다. 인간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시도하였는데 그것을 삼세제불로 나타낸 것이다. ‘석가모니가 있기 전’의 ‘모든시대의 제불諸佛’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법한데 왜 하필 ‘삼세제불三世諸佛’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3이라는 숫자가 더 완벽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의 경우 갑골문자로 된 천부경(天符經)이 발견되었듯이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일석 삼극(三極)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삼극이 삼태극이며 천지인(天地人)도 삼태극에서 나온다고 한다. 또한 삼신할머니도 삼태극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삼일신고에는 천부삼인(天賦三印)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것도 3이라는 숫자와 관련된다. 참고로 이 천부삼인은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뜻한다고도 하고 북 거울 칼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그런데 북 거울 칼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사제 즉 무당이 제천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지금도 시베리아 바이칼의 부리야트(부여)공화국에서는 무당인 샤먼이 이 천부삼인을 사용하여 천제를 지낸다. 한편 삼태극은 빨강 노랑 파랑의 삼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일부 삼태극은 다른 색깔도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빨강 노랑 파랑이다. 그럼 왜 하필 삼태극을 빨강 노랑 파랑으로 했을까, 이 세상에는 색깔이 무궁무진한데 이 삼색을 조합하고 그 조합한데서 새롭게 나타난 색깔을 다시 조합해 볼 때 이 세상에 있는 색깔을 가장 많이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 창조와 풍요의 원리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전 세계국기의 색깔 99%가 이 삼색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반드시 빨강 노랑 파랑 중 최소한 하나는 들어가 있다. 전 인류가 가장 선호하는 색깔이 이 삼색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루마니아와 에콰돌은 아예 삼색 줄을 가로로 나란히 배열한 것을 국기로 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각기 다른 색깔을 하고 있는 각 태극은 세계 각국이고 전체 원은 지구를 나타낸다고 본다. 삼태극문양도 그렇지만 빨강 노랑 파랑의 삼색도 한민족은 삼색 광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쓰고 있다. 왠 만한 곳에는 기본적으로 이 삼색이 다 들어가 있다. 전통적으로는 한복의 색동저고리에 들어가고 오늘날에는 가게를 문 닫을 때 내리는 철시문, 교통관련 표식 등에서 삼색이 눈에 띄는데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주의 깊게 둘러보면 삼색 천지임을 알 수 가 있다. 이러한 삼색중심의 문화는 현재 한반도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바이칼의 소수민족(부리얏 공화국)과 중원대륙의 소수민족, 파키스탄과 히말라야 고산지대 태국 등 동남아 국경지대의 소수민족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무당문화(제천의식)의 상징이라고 하는 삼색중심의 천조각과 끈이 흐드러지게 펄럭이고 있다.
넷째, 삼태극에는 독립 주체 자주적인 삶의 원리가 들어있다. 각 태극은 자기고유의 색깔과 영역을 올 곧이 지키며 돌고 있다. 누구의 지배와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기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는 국가적 민족적 관계에서 준수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일부 탐욕스런 국가가 힘이 약한 국가나 민족을 침략하여 지배 종속시키고 민족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를 강탈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그들의 만행이 우리의 삼태극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됨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쥐나족(중공)은 우리의 역사를 자기 것으로 강탈하면서 현재 중원대륙에 널려 있는 수많은 우리 조상님들의 무덤인 피라밋을 쉬쉬 숨기면서 파괴하거나 조작하고 있으니 땅을 치며 통곡을 할 노릇이다.
한편 일제는 한국을 강제병합하여 영원한 왜국의 일부분으로 만들려고 하였는데,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류에게도 비극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한글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세종대왕상을 만들고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감탄하며 향후 국제어로써 영어를 대체 할 것이라고 할 만큼 뛰어나다. 또한 최첨단 과학기술분야(전자반도체)에서는 관련용어를 영어나 라틴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한국말의 사투리(산스크리트의 뿌리언어=천축실담어)를 빌어다 쓰고 있다. 가장 적절한 용어가 이 사투리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를 들면 이른바‘나노’기술이다. 여기서 ‘나노’가 바로 사투리로써 ‘나눈다’는 말이다. 그리고 한류라는 문화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특히 왜국은 한류에 푹 빠져 병든자도 치료를 받는 은혜를 입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일제가 한국을 완전히 병합 흡수해 버렸다면 한국의 전 세계인류에 대한 이러한 기여는 사라졌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삼태극에서 나오는 독립 주체 자주적인 삶의 원리는 민족간 국가간에 더욱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다섯째, 삼태극에는 이 세상 모든 종교의 뿌리로서의 하나님 사상이 녹아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생산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 개념이 삼신할머니다. 그리고 이 삼신할머니의 변형된 모습이 삼태극이다. 현생인류의 최고의 경전인 천부경도 삼태극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지구상의 대표적인 고등종교라고 하는 기독교(이슬람교포함) 불교 유교 도교등이 출현하기 전에 이미 우리는 삼태극이라는 압축된 경전이자 하나님사상을 갖고 있었다. 기독교 성경 요한계시록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이 나오며 그 핵심은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처음과 끝이 같다면 이 둘은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이렇게 보면 결국 원이 그려진다. 그리고 불교의 한 갈래인 원불교에서도 원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원은 평면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삼태극은 보면 원을 포함하면서도 우주의 소용돌이처럼 각 태극이 꼬리를 물고 끝없이 회전하며 나선형을 그리고 있다. 이는 평면적인 차원에서 더 진화한 모습인 입체성을 말한다. 따라서 삼태극은 이들 종교의 상위에 있다. 더구나 이 삼태극이 회전하는 것을 보면 끊임없는 창조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연속하여 회전하는 삼태극은 무수한 궤적을 그리며 수많은 형상을 창조해 낸다. 그래서 삼태극은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고 삼태극은 한국시대의 신인神人한인, 신시개천시대의 신인한웅, 단군조선시대의 신인단군의 삼성조三聖祖를 일컫기도 하고 천인지天人地이라는 삼재三才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삼태극은 각 태극의 색깔이 다 다른데 이것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이 세상에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존재한다. 그러므로 자기와 다르다고 업신여기지 말 것이며, 인간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다 뜻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이는 족족 죽여 없애 버리던 해충조차도 요즘에는 최첨단 과학을 태동시키는 원료를 제공하고 있음을 볼 때, 참으로 무가치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만물을 그 종류대로 다양하게 (According to their various kinds)창조하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삼태극 하나님과 기독교 하나님이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하나님 개념의 핵심중의 하나는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창의성과 독창성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천편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교리를 앞세워 세상을 온통 기독교 세상으로 통일시키고자 하는데 이는 하나님 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됨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오늘날 우리 한국의 교육현실도 인간을 인간답게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충실한 자원을 양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주입식으로 붕어빵 찍어내듯이 교육정책을 펴는데 이것도 창의성과 독창성 다양성이라는 하나님 개념에 반하는 것이며 이는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아울러 오늘날 무한 경쟁사회에서 사상과 표현을 억압하고 획일적인 체제로 일관하는 사회는 이와 같이 하나님에 역행하기 때문에 그것이 자본주의사회든 공산주의사회든 신권주의(제정일치)사회든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북한이 그 대표적인 사회다. 이와 같이 전 세계 모든 종교의 뿌리가 삼태극에서 나오는데 이는 다른 말로 한국이 전 세계 모든 종교의 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거를 대표적인 고등종교인 불교, 기독교, 유교, 도교를 통해서 확인해 본다. - 불교다. 석가모니부처가 출현하기 전에 한국(코리아)에 전불시대(前佛時代)가 있었다는 기록은 아도화상의 비문과 '삼국유사' 그리고 지공선사 (指空禪師) 의 천보산 희암사 중수문에 나와있다. 불교의 핵심경전인 반야심경에서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말 그대로 석가모니부처가 있기 전에도 또 다른 부처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자신도 '대방광 불화엄경' 보살 주척품에서 말하기를, "해동 금강산에 법기 (法起)라는 보살이 있어서 1200 대중을 거느리고 법을 설하고 있는데 그 불법이 거기에 예로부터 있었다 (從昔己來)" 고 말한 것은 한국이 불교의 시원지 임을 증명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또한 가섭불(석가모니 출현이전의 또 다른 부처)이 앉아 법을 설한 연좌석(宴坐石) 이 신라의 월성 동편 용궁 남쪽에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옥룡집' (玉龍集) 과 '자장전' (慈藏傳) 에 있다고 한다. - 기독교다. 기독교는 이슬람교와 함께 그들의 직계조상인 아브라함이 한국문명인 수메르의 우르출신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기독교 구약성경 초반을 장식하고 신약성경의 예수를 이끌어 내는 모세5경도 수메르의 우르남무 법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소도경전본훈(한단고기 태백일사)의 '삼일신고' 신훈 (神訓)에는 "신(神)은 재무상일위(在無上一位)이고, 유대덕대혜대력 (有大德大慧大力) 하사 생천(生天) 하시며 주무수세계 (主無數世界)하시고..."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일신사상과 일치한다.( 신은 끝없이 높은 곳에 계신 한분이시며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을 가지고 있어 하늘을 만들고 무수한 세계를 주관 하신다- 필자 역) 또 '참전계경' 총론에 보면 "여화신이 흙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고 혼을 불어 넣어 7일만에 이루어 마쳤다. (女禍鍊造成而注之魂七日而成)" 하는 것은 기독교 창세기 2장 7절하고 같다. 여호와와 여와, 야희와 여희 등은 음도 같고 행적도 같다. 또한 수두 제단(제천의식)에 치외법권 지대가 있다는 내용, 그리고 동지에 양을 잡아 붉은 피를 문설주에 바른다는 구약의 기록은 우리나라에서 동지에 붉은 팥죽을 끓여 문설주에 바르고 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지금도 파키스탄 고산지대의 소수민족은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집주위에 뿌린다.
참고로 예수는 복음을 본격적으로 전파하기 전(30세 전까지)에 인도에 와서 불교고승들 밑에서 수행과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신약성경의 핵심인 4복음서에서 나오는 예수의 줄기말씀(사례: 천국은 너의 마음속에 있다.)과 20세기 중반에 발견된 도마복음서를 보면 불교사상과 거의 일치한다. 이런 이유에서 인지 4복음서에는 예수의 어렸을 적 생활만 몇 줄 기록되어 있고 그 이후 30세가 되기까지의 기록은 하나도 없다. 한편 ‘예수’는 인간개인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적 차원의 존재를 뜻한다. 이에 대응하여 불교의 ‘석가모니’도 인간개인을 말하며 석가모니‘부처’는 우주적 차원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와 불교는 그 본질에서 같다. - 유교다. 유교의 시조 공자는 동이족의 혈통으로 은나라 왕족인 송미자 (宋微子)의 후손인데, 홍콩 대학의 임혜상 교수나 대만 대학의 서량지 교수도 "은나라는 동이족(한민족)이다" 라고 하고 '고사변' 에도 같은 얘기가 실려 있다고 한다. 또 공자 자신도 '논어' 에서 말하기를 "술이부작" (術而不作) 이라 하여 "나는 요와 순의사상을 계승해서 서술했을 뿐이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고 밝혔고 중국의 고전 '초사'를 보면 "황제 (黃帝)는 백민 (白民) 에서 태어나고... 그는 동이족에 속한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니 황제의 5세손인 요임금이 동이족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이족인 요와 순임금의 사상은 동이 사상이고, 이를 계승한 동이계인 공자의 유교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도교다. 노자 (老子)가 황제의 사상을 이어 받았다고 해서 황노지교(黃老之敎) 라고 하는데 앞서 유교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이족인 황제의 사상, 즉 동이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 노자의 도교이다. 비록 중원 대륙에 오래 머물러 있는 동안 다소 변질되어 고구려 시대 때 역수입되어 들어왔다고 해도 역시 그 뿌리는 한국에 있다. 도교와 관련 있는 태극권도 최근에 고려인이 만들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섯째, 삼태극에는 영원불멸사상이 깃들어 있다. 각 태극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각 태극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전체를 보면 삼태극은 하나의 원이다. 원은 처음과 끝이 없다. 시작을 하려고 점을 찍으면 그곳이 곧 종착지다. 이는 처음과 끝이 둘이 아닌 하나이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음이다. 바꾸어 말하면 시작을 뜻하는 ‘삶’과 마침을 나타내는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이다. 이는 태어남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이니 죽음에 대하여 그렇게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이 곧 태어남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끝을 의미하는데 삼태극의 원은 끝이 아니라고 한다. 죽음조차도 영원으로 가는 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른바 ‘깨달은’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죽음은 없다고 한다. 오관으로 감지되는 육신이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탐욕과 생각에 집착하다보니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고 죽음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현생인류 최고의 하나님의 말씀, 천부경도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하여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끝난다. 이것을 풀어보면 ‘처음이 있으나 처음이 없고 끝이 있으나 끝이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 성경과 불교경전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경전을 압축해 놓은 듯하다. 삼태극의 각 태극은 서로 맞물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전체형상인 원은 늘 그대로 있다. 태풍의 눈처럼, 동중정動中靜처럼, 시장속의 사원寺院처럼,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고 늘 여여하게 거기 영원불멸의 무엇이 있다. 삼태극은 그 무엇이 바로 우리자신의 본래 참 모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종교가 이것을 말한다. 이러한 영원불멸을 깨달은 사람들이 한국, 신시배달국, 단군조선시대에는 통치자요 사제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라를 다스렸기에, 유독 한민족의 나라만 각 나라가 세워지면 수천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근본원리는 홍익인간이다. 이처럼 한민족은 삼태극을 민족의 정신이요 뿌리로써 간직하고 일상생활에서 그 깊은 뜻을 알든 모르든 애용해 오고 있다.
본 삼 태 극 사상 에 대한 저작권은 까페지기 삼태극에게 있습니다.
|
삼신할머니 참 예쁘네요.
내용이 굿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