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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처음과 마지막이요, 죽었으나 살아 계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계 2:8).
스머나는 그 뜻이 몰약이며 죽음, 순교를 뜻한다. A.D.100~325년까지의 교회였던 이 시대에는 로마 제국의 열 차례의 대박해가 있었으며 성도들은 검투장에서 화형당하고 사자에게 뜯어 먹혔다. 필자가 쓰려는 것은 교회시대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여러분이 피터 럭크만의 "신약교회사"나 "폭스의 순교사"를 참조하면 된다.
앞서 에베소 교회는 수고와 인내가 있었지만 첫사랑을 놓쳤기에 주께서 그 교회의 촛대를 옮기셨는데 그들은 더이상 환란시대의 교회로 쓰임받지 못하게 되었다.
교회시대의 역사는 환란시대의 거울이요 추측의 재료가 된다. 교회시대의 부흥의 역사를 추적하면 환란시대의 부흥과 배교의 역사도 비슷하게 추론되리라고 본다. 똑같이 궤적을 그리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경향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교회시대에는 일곱 번의 배교가 있었고 그 중 마지막 배교는 현재 진행형인 라오디케아 시대의 배교이다. 이 배교는 이전까지 있었던 모든 배교들보다 죄질에 있어 심각한데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을 넘으려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찬들을 남겨두셨고 그들은 로마 카톨릭에 저항하며 복음과 진리의 지식을 증거하고 지켰다. 이 시대에도 바이블빌리버는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이 시대의 배교는 교회 시대의 끝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바이블빌리버들이 올바른 믿음을 회복해서 배교를 치유하고 교회를 정화시킬 찬스가 남아 있지 않은 "대배교"라는 데 있다.
그래서, 스머나 교회에 대한 주제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로마 제국 당시의 대박해는 암흑시대의 훨씬 심한 박해의 서막이었다. 로마 제국 당시 성도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았고 그들은 견뎌냈지만 나중에 지쳐서 타협하는 쪽을 많이 택했고 결국 배교자들이 나타나서 "기독교계"를 마귀의 수중에 넣었다. 그 배교자들은 암흑시대의 카톨릭이 되어서 신약 교회를 더욱 심하게 박해했다.
스머나 교회가 대환란 전3년 반에 속한 교회라면 전3년 반에도 환란 성도에 대한 박해가 있다는 말이다. 교회시대의 스머나 때에는 옛 로마 제국이 박해했고 대환란 시대의 스머나 때에는 부활한 로마 제국이 박해할 것이다.
내가 보니, 보라, 흰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더라. 그에게 한 면류관이 주어졌고 그는 나가서 정복하고 정복하려 하더라(계 6:2).
면류관을 쓴 자는 적그리스도인데 처음에 그는 교황의 자리에 앉을 것이고 뒤이어 UN을 접수하고 세계 정부를 꾸릴 것이다. 그는 "정복하고 정복하려" 하는데 여기서 의문 1번은 그가 정복하려는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유대인인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전3년 반에 적그리스도와 잘 지낸다. 7년 평화 조약이 발효되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는 유대인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세계에 속한 환란 성도들은 박해받을 것이다. 카톨릭의 본성은 암흑시대에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고 전3년 반 때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의 시련도 받았고, 더욱이 결박당하고 감옥에도 갇혔으며 돌로 맞고, 톱으로 켜지고, 시험을 당하고, 칼로 살해되었으며, 양의 가죽과 염소의 가죽을 쓴 채 유리하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당했느니라. (세상은 그들이 살 만한 데가 못 되었으므로) 그들은 광야와 산속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였느니라(히 11:36-38).
적그리스도가 정복하고자 하는 대상은 "내심" 이스라엘이지만 전3년 반 때는 이스라엘과 화친을 유지한 채 그때 "환란 시대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일 것이다.
내가 너의 행위와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2:9).
"행위"는 지금은 구원과 상관없지만 환란시대에는 구원의 조건이다. 그들은 박해받을지라도 끝까지 인내하고 선을 행해야 한다. "환란"은 문자적 대환란을 말한다.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환란, 환난, 대환란이라는 용어 정의에서 이전 성경들보다 향상된 체계를 갖고 있다. 영어에는 두 가지 구분만 있는데 그것은 Tribulation과 Great tribulation이다. 한킹은 "의미상" 대환란을 가리키는 경우 Great가 붙지 않았을지라도 대환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환난"과 "환란"을 구분해서 대환란의 의미에 가까운 tribulation은 환란이라고 표기했다. 본문이 그런 경우이다. 교회시대에 적용한다면 로마 제국의 열 차례 대박해 환란이지만 예언적으로는 대환란 때의 환란 중 하나인 것이다.
이들은 궁핍하게 될 것이며 즉, 재산을 몰수당하고 사회의 찌꺼기가 될 것이다. 클라렌스 라킨은 예견하기를 교회의 휴거가 발생하고 나면 악이 번창하는 것을 저지할 방패가 사라짐으로 인해 세상에 엄청난 악의 바람이 몰아칠 것이라 말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맞는 예측인데, 세상의 빛과 소금이 사라졌기에 세상은 엄청난 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이때 성경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며 크리스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집단 구타하거나 살해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추어짐을 기뻐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처럼 시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라(약 1:10).
약 1:10은 유대인 환란 성도에게 주어졌으나 전3년 반의 "첫열매들"에 속한 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지금은 부와 믿음이 반비례하지 않지만 대환란 때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있던 부를 포기해야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풀의 꽃처럼 시들어질 것"도 각오해야 한다. 굶어죽거나 맞아죽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스머나 교회에게는 라오디케아 교회에게 없는 부요가 있었는데 그것은 "불로 단련된 금"과 관련 있다(계 3:18).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경청하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택하시어 믿음 안에서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그 왕국의 상속자들로 삼으신 것이 아니냐?(약 2:5).
불로 단련된 금은 불같은 시험과 환란을 통과하여 금처럼 단련된 믿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내가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니 그가 나를 연단하시면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9절).
"자칭 유대인"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역사적으로 로마 카톨릭, 여호와의 증인들, 몰몬교 같이 실제 유대인의 권리를 가로채기 위해 거짓 유대인 행세를 했던 자들을 말한다. 자칭 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악명높은 자들은 "이슬람교"인데 그들은 아예 구약 성경을 카피해서 마호메트의 거짓 종교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환란 시대의 "자칭 유대인"은 누구일까? 카톨릭, 모슬렘, 기타 이단들 가운데 어떤 특정 무리를 가리키는 것인가? 어쩌면 그들 전부를 배제하고 원점에서 다시 따져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회당"(synagogue)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모슬렘들은 "모스크"를 짓고 카톨릭은 "성당" 중심으로 모인다. 모슬렘과 카톨릭은 자기들의 "종교 센터"를 절대 "시나고그"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유대인들이 사는 곳은 전세계 어디든지 "시나고그"가 세워져 운영된다. 한국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지만 미국의 대도시에 가면, 이를테면 LA 같은 곳에 가면 웅장한 시나고그가 세워져 있다. 나는 한인타운 근처에서 그 시나고그 건물을 본 적이 있는데 외양을 갖고서는 유대인 회당인지 잘 모르게 되어 있었다. 헬라식 건축 양식 같기도 하고 성당이나 교회로 착각할만도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유대식 시나고그와는 좀 거리가 멀었다.
여튼 성경이 특정 고유 대명사를 적용했다면 그 의미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야 된다. 사탄의 시나고그라고 했으니 그들은 최소한 할례받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일 것이다. 음? 대환란 때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방인들이 나타난다고? 생소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부연 설명하면 이것의 예언적 그림자는 솔로몬 시대의 시바 여왕이다.
솔로몬왕이 시바 여왕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녀가 왕에게 가져온 것말고는 다 그녀에게 주니라. 그리하여 그녀가 자기 신하들과 함께 자기 나라로 돌아가니라(계 9:12).
환란 성전이 세워지고 본토 유대인들에게 경배의 자유가 허락되면 이스라엘의 국운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다른 민족과 나라들은 전3년 반에 혼란에 빠져 있지만 이스라엘은 성전 때문에 국운이 뻗친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동경하고 이 참에 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의 후광을 입어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자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들이 "개종자"(proselyte)인데 이 개종(자)라는 단어는 한글킹제임스성경에 도합 다섯 번 등장한다.
여러분이 성경의 숫자를 공부했다면 "5"는 사탄, 마귀, 죽음의 숫자임을 알 것이다. "개종자들"(유대교 개종자를 말함)은 액운을 몰고 오는 존재로 성경이 말씀한 것이다.
여기서 그 구절들을 다 살피면 너무 글이 방대해질 것이기에 영어와의 차이점만 언급하겠다. 영어에서 proselyte는 네 번 나오고 한킹에 개종으로 나온 한 케이스(행 15:3)는 영어에서 conversion이라는 다른 단어로 나온다. 그리고 하기 인용한 마 23:15의 경우만 "개종자"가 나쁜 의미로 쓰였고 나머지 네 건은 모두 "유대교를 믿다가 크리스찬으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말씀한다. 그런데 그 나쁜 케이스가 결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한 사람의 개종자(proselyte)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마 23:15).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실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방인들의 개종에 부단하게 힘을 쏟았던 적이 있는가? 우리는 역사를 아무리 뒤져 봐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스라엘 바깥으로 나가서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탐사하고 다니면서 "흑인과 백인과 아시아인들" 개종자를 모으러 선교 여행을 다녔다는 기록은 찾지 못한다. 물론 주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사악함을 증거하기 위해 다소 "과장법"을 써서 말씀하셨다고 설명하고 이 구절을 넘길 수도 있다. 혹은 미래에 나타날 로마 카톨릭이 할 짓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말씀하셨다고 보기도 한다. 어느 해석이든지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어쨌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문자적으로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유대교 선교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 부류의 인간들이 지금도 이스라엘에 있으니 그들은 "랍비들"이다. 나는 메시아닉 쥬들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 가운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부류도 끼어 있는 것을 아는데 그 자들은 크리스찬인 체 하고 이방인들에게 접근하여 "토라 신앙"을 전파하여 결국 유대교로 회유시키고자 하는 것을 본다. 그들이 갈라디아서에 경고한 대로 "자유를 엿보려고 비밀리에 들어와" 수작을 부리는 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거짓 형제들이 몰래 들어온 까닭이라.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진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비밀리에 들어와 우리를 노예로 삼고자 함이더라(갈 2:4).
지금이 교회시대의 끝무렵으로서 환란 때의 전조들이 다수 나타난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기독교로 개종한 체 하는" 유대교 랍비들이 대환란 때 "사탄의 회당"이 될 잠재적 부류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짐작은 아닐 것이다.
유대교로 개종한 것이 무슨 큰일인가? 더구나 대환란 때는 유대인 14만4천 전도자가 다니면서 모세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전파하는데 유대교를 오히려 믿어야 구원받는 것 아닌가 여러분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문제는 진짜 복음을 전하는 선한 유대인들이 있고 짝퉁 복음을 전하는 악한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계 2:9의 "자칭 유대인"은 마 23:15에 나온 마지막 때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거짓 회심한 "지옥의 자식"으로서 그들은 "회당"을 결성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탄의 회당"이라 부르신다.
그때에 리버티노의 회당이라고 불리는 회당에 속한 어떤 사람들과 쿠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서 스테판과 더불어 변론하더라(행 6:9).
리버티노라는 뜻은 "해방 노예"를 말한다. 그 뒤에 언급된 쿠레네와 알렉산드리아는 리비아와 이집트 지역을 말한다. 리버티노는 어쩌면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가리킬 수도 있는데 그것은 추정이고 확실하진 않다. 그런데 이 회당에 속한 자들은 스테판을 돌로 치는 자들 중에 포함되어 있다. "리버티노"는 마귀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붙인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고 더 심한 지옥의 자식으로 개종한 자들이었다.
스머나 교회를 공격하는 자들은 유대교 개종자들로서 이방인 개종자들이 "정통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스테판을 저주하고 돌로 쳤듯이 환란 성도들을 괴롭힐 것이다.
너는 고난받게 될 일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서 시련을 당하게 하리니 그러면 너희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 2:10).
이 구절에서 난해한 부분은 "열흘 동안"인데 이것이 역사적으로는 로마의 10차례 대박해에 적용될지라도 대환란 기준으로는 문자적 열흘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전3년 반의 어느 열흘 동안 스머나 교회는 "UN-바티칸 종교 관리국"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 자칭 유대인들은 모독하고 린치하는 정도였지만 여기 열흘 간의 환란은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을 당하는 것이다.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이라고 했으므로 이들은 특정 소수의 사람들을 분명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머나 교회의 박해는 "전체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 중 몇 사람이 투옥되어 고문당하는 정도인 것이다. 아마 교회의 지도자인 인사들을 감옥에 넣어서 예전 불가리아의 하랄란 포포브나 루마니아의 리처드 움브란트가 당했던 것처럼 회유하고 협박, 고문한다는 것 같다.
그들이 투옥될 사유는 어디에 있을까? 마귀는 거리 설교자들을 항상 죽이고 싶어한다. 스머나 교회는 분명 거리 설교와 복음 전파 때문에 박해를 당한다. 그들이 사면이 벽으로 둘러쳐진 건물 안에 온건하게 숨어서 예배만 드렸다면 자칭 유대인들이 모독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투란노 학교에서만 가르치고 거리에서 전파하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은 그를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환란 때의 성도들은 모두가 거리 설교자들이다. 그들은 마귀의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마귀, 마귀의 자식, 지옥불, 영원한 정죄라는 말들을 선포한다.
이 투옥된 스머나인들이 죽임을 당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시련(trial)을 당하지만 놓여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죽기까지 신실하라"는 말씀은 그들이 석방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석방이 아니라 천사에 의해 구출될 수도 있다.
헤롯이 그를 끌어내려고 한 그 날 밤, 베드로는 두 병사 사이에서 두 쇠사슬에 묶인 채 자고 있었고 또 간수들은 문 앞에서 감옥을 지키고 있었는데, 보라,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니 감옥 안에 빛이 비치더라. 또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일으켜 말하기를 “급히 일어나라.”고 하니 쇠사슬들이 손에서 벗겨지더라(행 12:6-7).
시험을 견뎌 내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는 그가 시련을 거친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생명의 면류관은 "시험을 견뎌 내는 자"가 받는데 그 시험 때문에 순교하거나 죽지 않거나 차이가 없이 받게 된다. "죽기까지 신실하면" 받는 상이지 "죽어야만" 받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열흘 동안 받는 시련은 죽음에 이르는 시련은 아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으로부터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1).
이 구절은 앞절의 "죽기까지 신실하라"를 근거로 말씀하신 것이다. 스머나 교회가 받은 10절의 박해는 대환란이 시작되고 나서 처음 당국으로부터 받는 공식적인 박해인데 이 시기에는 아직 환란 성도들에 대한 "최종적 해결"(final solution: 나치 히틀러가 유대인 완전 청소를 공식 결정한 1942년)은 발효되지 않았고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별"을 부착하기 시작하고 그들을 게토로 집단 이주시키는 계획이 논의되는 정도의 시점이다.
"이기는 자"는 그 앞에 무엇이 붙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크리스찬으로서 이겨야 할 대상은 "세상"과 "육신"과 "마귀"인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 외에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5).
요일 5:5의 "세상을 이기는"의 의미는 교훈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며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 상관이 없지만 계시록에서 "이기는 자"는 적그리스도와 그의 형상, 짐승의 표를 이겨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다.
다시 말해 계 2:11을 환란 성도에게는 적용할 수 있지만 크리스찬에게는 불가하며 우리에게 굳이 적용하고자 하면 "이기는 자"를 "이긴 자"로 읽으면 의미가 통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이미 "이긴 자"로서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환란 때의 구원은 끝까지 견딤으로 받기 때문에 "이기는 자"이지 "이긴 자"는 아니다.
내가 이런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화평을 지니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시더라(요 16:33).
크리스찬은 크고 작은 환난(환란이나 대환란이 아닌)을 당하지만 그 사람 안에 계신 구주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라고 선언하셨기에 그의 승리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죄를 갖고 죽으셨고 지옥에까지 다녀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지옥과 사망의 열쇠를 가지신 그분으로 인해 더이상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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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화대혁명도 라오디케아 시대에 일어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