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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5월6일(금)맑음
하루 종일 쉬다. 오후에 강변 산책 길게 하다. 일이 없다.
2016년5월7일(토)맑음
관오사 모임에 가다. 오후 2시 혜진스님 발제하다. 오늘의 내용은 불교사를 검토하고 대화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상부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한 불교이론의 변천사라 할 수 있다. 혜진스님의 키워드는 왕조불교와 민주시민불교의 대비이다. 불교사는 불교이론 변천사이며 그것을 불교의 발전이라 할까, 아니면 불교교리의 세속권력과의 타협이라 할까 일방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 왕조시대에는 승단이 왕권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가 승단의 존망과 직결되기에 어떤 식으로든 불교교리에 변용이 가해진다. 승단은 세속권력과 최소한 적대적인 관계로 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승단자체의 존립을 위해 왕의 통치행위에 거슬리지 않은 한계 내에서 불교를 해석하고 전파했을 것이다. 불교교리의 변천사를 훑어보면 그 변용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일찍이 이런 관점에 눈을 뜬 혜진스님이 간략하나마 인도-티베트-남방불교-동북아불교사를 발제했는데 너무 방대하여 오늘은 남방불교까지 언급하고 가을에 동북아불교를 논하기로 하였다. 밤9시에 끝나고 일부 스님은 돌아간 뒤에 혜진과 영일, 지우스님과 새벽 한 시까지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 하다. 역사와 시대의 양심으로서 불교를 보려고 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승가는 항상 정의를 증거하는 양심세력이어야 한다. 붓다의 진의를 왜곡하거나 퇴색시키는 어떠한 교리변용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불교의 진리를 사회에 알려 시민의 공감과 참여를 끌어내는 불교의식, 예를 들면 티베트의 정초기도 몬람Monlam, 지역중심의 기원모임에 대해 이야기하다.
2016년5월8일(일)맑음
아침부터 몸이 안 좋다. 지우스님이 스님들을 데리고 수변공원으로 산책가다. 혜진스님이 간단한 기공체조를 가르쳐 준다. 돌아오는 길에 서부정류장에 내려서 버스 타고 진주 오다. 너무 피곤하여 쉬다.
2016년5월9일(월)흐림
아침 먹고 우체국 가서 책 아홉 권을 부치다. 이른 점심 먹고 제천으로 출발하다. 동대구로 가서 제천행 버스를 타다. 제천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老老精舍노노정사 사무장 김성진씨가 마중 나왔다. 牧靑목청거사 댁에 들러 차 한 잔 하고 방명록에 일필휘지 하다. 노노정사에서 오후 7시에 법문하다. 불교합창단의 노래 소리가 천상의 음악인양 울려 퍼진다. 80명 정도의 불자가 모였다. 나의 출가와 수행담, 그리고 붓다프로젝트와 불자의 사회윤리, 共業공업과 ‘남’의 발견이 대승의 시작이며 남에 대한 배려에서 나오는 실천을 이야기 하다. 청중의 호응이 좋아 뿌듯하다.
2016년5월10일(화)비
밤새 비 내리다. 새벽5시 사무장 차로 목청거사 댁까지 오다. 거사는 오늘 오전에 진주 경상대학교에서 강연이 약속되어있기에 진주로 동행하게 되었다. 빗속을 달려서 진주로 오다. 笑庵소암거사가 점심 공양을 올린다고 하여 도향스님과 호연거사와 함께 하다.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죽향에 와서 길상선사 주지인 圓澹원담(성철 스님 제자)와 道悟도오스님(극락선원 선원장)과 本海본해스님(화엄사 수좌)를 기다리다 만났다. 원담 스님과는 실로 27년만의 만남이다. 89년도 해인사 선원에서 같이 수행하고 헤어졌다 이제 다시 보게 되니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지대방 한담을 나누다. 원담 스님은 버스타고 돌아가고, 도오 스님과 본해 스님은 남아서 저녁을 함께 하다. 두 분 스님이 하룻밤 유하다.
2016년5월11일(수)맑음
아침 밥상 차리다. 객스님과 아침 먹다. 차 한 잔 하고 잠시 이야기 하다. 스님들 통도사로 돌아가시다. 남강 변 산책하다. 경상대 병원 다보행보살을 찾아가서 초파일 법회 자료를 주고 오다. 마침 하심보살과 정옥분보살을 만나 공부하러 오라고 하다. 저녁에 도향스님 강의 듣다.
2016년5월12일(목)맑음
초심반 학생모집을 위해서 진주에 있는 대학교 사이트를 방문했더니 불교동아리 활동은 거의 전무 상태이다. 다만 경상대 불교학생회 소식 한 개가 올려져있을 뿐이다. 도향스님과 호연거사와 함께 7개 대학을 다니면서 홍보 포스터를 붙여야겠다. 그런데 먼저 학생처로 가서 외부홍보물 게시 허가를 받아야 된다고 한다. 일단 가서 부딪혀보자. 경상대의대 칠암캠퍼스를 찾아가다. 행정과 총무과장을 찾아가니 담당자가 호의적이어서 자기네들이 직접 포스터를 붙여주겠다고 한다. 이어서 경상대 가좌캠퍼스로 가다. 본관 학생처에 들러 협조를 부탁하니 역시 자기들이 붙여주겠단다. 곧 바로 연암공대 총무과를 찾아 포스터를 주고 오다. 도향스님의 염원이 강력하여 만사 순조롭게 진행된다. 호연거사와 함께 점심 먹다. 내일 과기대, 진주보건대, 진주교육대, 국제대학교를 들르기로 하다.
밤에 노무현을 회상하는 유투브 동영상을 보다. 노무현의 좌절은 우리 민주화 세대의 좌절이다. 그의 좌절은 나의 학생시절 푸른 꿈의 좌절이며 한계이다. 遍照편조대사가 좌절하고, 동학혁명이 좌절하고, 어린 왕자는 죽었다. 누가 어린 왕자를 죽였는가? 너인가, 나인가? 사회적 조건인가, 우리의 의지박약인가? 싯다르타는 고행을 포기하고 까삘라 궁으로 돌아가 왕이 되었고, 가장이 되었고, 아비가 되었고 기성세대가 되었다. 환속한 싯다르타는 중력의 혼에 사로잡혀 추락하였다. 어린 왕자는 어른들의 세계에 물들어갔고 타락했다. 환속한 싯다르타는 누구인가? 민주화의 꿈을 배신한 변절자들이다. 그들은 기성 정치 속으로 들어가 개혁의 꿈을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변신했지만 결국 그들과 동화되었고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깊이 들어가 한통속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의 청년시대를 배신했고, 민주화의 꿈을 배신했고, 자기안의 어린 왕자를 죽였다. 그들은 체제내의 개혁을 이룰만한 용기와 지조가 없이 체제와 타협하고 나아가 보수꼴통의 앞잡이가 되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내가 그 이름을 아는 사람으로는 누구 누구가 있다. 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 그와 같은 부류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똥 벌레처럼 똥 더미에 붙어서 우글거리고 있다. 저들은 말하리라. 그래도 자신들이 뜻을 조금 굽히고 저들과 타협한 결과 정치가 조금 나아지지 않았냐고, 자기들이 아주 내끼지는 않았지만 손에 때를 묻힌 결과 사회가 조금 나아지지 않았냐고. 저들의 무리로 들어간 자기들의 선택을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이니, ‘체제내로의 침투’이니, ‘중도 실용주의’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모두 입에 발린 소리요, 더러워진 양심을 세탁하는 말이다. 나는 그들은 기회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들이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아마도 한 때는 독립을 꿈꾸었지만 기회가 왔을 때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학생시절 외쳤던 민주주의와 독재타도, 친일파 청산과 민족정통성회복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오히려 자기들이 학생 때 품었던 뜻을 저버리고 심지어 거꾸로 가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자기 분열이며, 자기 부정이며, 자기 학대이다. 그들의 영혼은 양쪽으로 찢어져 있다. 푸르렀던 젊은 혼은 바닥 밑으로 억눌려 찌그러져 있고, 비열한 웃음으로 민중을 파는 몸짓, 기름기 흐르는 탈바가지가 맨 얼굴 위에 덥혀있다. 그들의 맨 얼굴은 무엇인가? 자기를 속이고, 자기 양심을 배반하고,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이용하며, 남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척, 남을 위하는 척하며 그들의 환심을 산 후 결국 한 자리 차지하여 자기의 허영심과 영웅심을 만족하는 물건에 불과하다. 민중운동가로 출발했다가 기득권의 앞잡이 된 사람이 한둘인가? 애석하다. 그들의 배신과 좌절이 이 나라의 현재를 빚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업에 연루되어 있다. 이것이 共業공업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업은 내가 책임진다. 내가 받고 내가 겪고, 내가 바꾸고, 내가 이루어내야 한다. 한 생이 아니라, 세세생생 할 것이다. 보살은 중생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기로 스스로 서약한 사람이 아닌가? 이순신도 그렇게 갔고, 전봉준도 그렇게 갔고, 안중근과 윤봉길도 그렇게 갔고, 백범과 몽양도 그렇게 갔고, 하준수와 김산도 그렇게 갔고, 틱꽝둑도 그렇게 갔고, 한용운과 윤동주도 그렇게 갔고, 나도 그렇게 간다. 한 방울의 물이 마르지 않으려면 바다에 던져라.
역시 싯다르타가 전륜성왕의 길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택한 것은 옳았다. 전륜성왕도 결국에는 폭력을 쓰지 않을 수 없고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없다. 왜? 전륜성왕의 이상을 이해하고 힘이 되어줄 인민의 지지가 없다면 아무리 전륜성왕일지라도 자기의 뜻을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국가 권력의 질적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의 의식 수준이 결정한다. 국민이 김구를 보호하지 못하여 악의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방치했다. 자기 앞에서 자기의 양심이 짓밟혀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민이 몸을 사리고 있는 동안 저들은 김구를 죽이고, 노무현을 죽이고, 이한열을 죽이고, 김동수를 죽이고, 전태일을 죽이고,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를 죽이려고 모의하고 있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저들이 저질렀다고 변명할 수 있겠는가? 자기 주변과 사회에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죄가 크도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악행의 공범자이다. 이것이 우리의 공업이다. 자기들이 자신을 등지고 저버리며 어둠과 고통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 누군가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일깨워야 하지 않겠는가?
2016년5월13일(금)맑음
부처님은 이 땅에 오시지 않는다. 자기만 알고 비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판치는 땅에는 오시지 않는다. 왜?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고, 오히려 방해를 받고 위해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처음에는 설법하시기를 망설이셨다. 그러나 부처님은 진리를 위해 세상에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했던 결심을 회상하고 전도를 시작하셨다. 그러한 결심을 보리심이라 부른다. 부처님이 세상에 오시는 이유는 보리심 때문이다.
진주보건대와 진주교대, 과기대 세 곳을 다니면서 홍보포스터 부착해달라고 맡기고 오다. 담당자가 협조적이다. 머리도 어질거리고 배도 아프고 피곤해져서 돌아오다. 오후에 탱화의 배접이 완성되어 소암거사가 가져와 벽에 걸었다.
2016년5월14일(토)맑음
10시 경상대병원 법당으로 가다. 환자들과 신도들이 들어차 있다. 부처님 오신 지 2640년 봉축 기념 법회를 집전하다. 삼귀의와 오계를 합송하고 행복의 경과 자애경을 합송하다. 그리고 우리말 천수경을 독송하다. 석가모니불 정근을 5분정도 하다. 염불정진 끝나자마자 입을 닫고 침묵에 들다. 이어서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법문을 간단히 하다. 그리고 마음 바꾸는 여덟 가지 가르침과 사무량심을 합송하고 법회를 마치다. 지하법당 공간이 조용하고 음향효과가 있어서 경을 읽는 효과가 좋다. 독경하는 소리가 가는 봄비처럼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복도에 설치된 아기 부처님에게 목욕물을 한 국자씩 붓는 관불의식을 하다. 불단에서 내린 공양물을 함께 나누어 먹다. 다보행불자(박희자)는 내년에 은퇴하고 초심반으로 들어와 공부하겠단다. 현정과 그 친구들이 초심반에 들어오겠다고 했다. 반가운 일이다. 차기 寶蓮會보련회 회장은 범련보살이 맡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다. 아미화와 해성, 보정과 초월과 점심을 먹다. 그들이 품고 있던 법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주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회통할 것인가? 무아와 윤회는 어떤 관계인가? 마음의 힘, 마음이 주인이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나의 설명을 듣고 가슴에 엉겼던 것이 좀 풀어졌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다.
아미화가 차를 태워주어 산청 대성사로 와서 쉬다. 머리와 배가 아프다.
2016년5월15일(일)흐림
오늘은 스승의 날. 아침에 부산 계시는 전병익 선생님께 전화 드렸더니 등산하러 이제 막 출발하신단다. 점심때 禪河선하보살이 와서 요리를 해주어 잘 먹다. 배 아픈 증상이 위염이다. 위에 염증이 있고, 위산이 많다. 그래서 속이 비었을 때 쓰리다. 유투브에서 박인희의 노래를 듣다. 7080세대의 아이콘이랄 수 있는 그녀는 방랑자, 끝이 없는 길, 모닥불을 불렀던 가수이다. 고3시절과 대학 신입생시절에 들었던 방랑자, 그리고 어디론지 끝이 없는 길을 가야할 것을 예고했던 노랫말, 그리고는 80년 민주화의 봄처럼 홀연히 사라졌던 그녀. 이제 다시 들어보니 35년이 지났다. 나도 흘러간 세대인가? Lost generation 잃어버린 세대, angry generation성난 세대였던 내가 어느새 침묵하고 타협하고 방관하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7080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그들의 꿈은 한때의 객기였나, 아직도 유효하나 이루어지지 않은, 그래서 결국 이루어내야 할 과업인가? 나는 실패한 혁명가인가, 은퇴하여 잠적한 게릴라인가? 편조야, 그 꿈은 부처님도 이루지 못한 것이야. 그러나 한 번 꾸어봄직 하지 않니? 월선대사의 나직한 소리가 들려온다.
2016년5월16일(월)흐림
밤새 비가 왔다는데 빗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미화 차타고 진주로 오는 길에 불단을 맞추다. 중앙시장 가구골목에서 책장을 사다. 저녁에 도향스님 강의 듣다. 새로 온 법우들이 몇이 된다.
첫댓글 "한 방울의 물이 마르지 않으려면 바다에 던져라."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 뜻합니다. 영화 색계에서 대사중의 하나 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5.20 00:22
나 의 삶이 아니 나의 생각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같은시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삶의고민은 이렇게 차이날까! 무엇때문일까? 어줍잖은 나를 가지고 태산같은고민으로 많은시간을 소비한것이 많이부끄럽습니다
큰뜻이 나를 잊게 만드는듯합니다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질때 진정한 무아인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