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안운동으로서 협동조합운동의 의의와 미래 2000 제1차 생협활동가 연수회(2000.4) 원고
김성오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1. 20세기의 시작과 21세기의 시작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한국은 다른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열강의 각축장이었다. 밑으로부터는 갑오동학농민전쟁을 분수령으로 하여 기존의 봉건적 지배질서의 개혁을 주장하는 민중의 힘이 분출되고 있었으며 위로부터는 기존의 왕조질서를 공화정으로 전환하고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개혁운동이 불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양대 개혁운동은 아직 불완전하고 또한 서로 잘 결합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 열강 중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등장하던 일본의 힘이 한반도를 압도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전통적인 농업국가였으며 5% 미만의 봉건적 지주계급이 전 농지의 70% 이상을 소유하는, 지주-소작관계가 일반화된 봉건적 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였다. 따라서 소수 지주층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국민들은 보릿고개의 고통을 겪는 것이 연례화되어 있었다. 또한 당시 대다수 국민들은 30%도 채 안되는 문자해독능력을 가지고 정식교육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미신과 주술이 판을 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이 설 땅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반 국민들은 세계에 대해, 그리고 사회에 대해, 자기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인식을 갖기 힘든 상태였다. 또한 여성의 지위는 안정되지 않았고 평범한 남성들의 경우에도 정치적인 참여의 기회나 사회적 참여의 기회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일반 국민들은 절대적인 빈곤과 미신, 그리고 신분차별이 구조화된 봉건적인 제반문제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전세계적으로 다소간의 편차가 있긴 하였으나 대체적으로 비슷한 지경이었다. 산업화가 일찍 진행되었던 서구 유럽 일부국가들의 경우에도 일반 노동자와 농민들의 상황은 결코 한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회적 부는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일반인들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교육수준과 문자해독능력은 보잘것 없었으며 일반인들, 특히 여성의 경우 참정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20세기 내내 사람들은 경제체제가 어떤 것이든, 정치체제가 어떠하든 절대적 빈곤과 미신, 그리고 신분차별과 비민주적 사회풍토에 대항한 싸움을 전개했다. 아니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잘 극복하기 위한 경제체제와 정치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21세기를 몇 개월 앞둔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이 지구상에는 여전히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초반과 비교해서 엄청난 진전을 이루어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고민하기보다는 너무 많이 먹어서 찐 살을 빼는데 더 관심을 두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고 한족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한 ‘상대적 빈곤’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낮은 교육율과 문자해독률에 기반한 미신과 비이성적인 사고관습과 인식체계는 20세기 들어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고 하면 바로 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 진행된 여러차례의 과학기술혁명은 최근 정보화사회에 대한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모든 사람들이 전세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정보에라도 접근가능해질 만큼 사람들의 이성적 사유의 폭을 확장시켜 놓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미신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으며 기껏 ‘전통문화’의 범부로만 존중받고 있을 뿐이다.
20세기 내내 신분제도에 의한 차별과 성적차별은 감소해왔다. 태생에 의해 사람들의 신분을 매기는 습관은 극히 일부국가에서나 그 잔재가 남아있을 뿐이며 민주주의에 기반한 일반인들의 사회적 참여는 이미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21세기를 몇 달 앞둔 현 시점에서 인류에게는 20세기와 다른 새로운 과제가 제출되고 있다. 그것은 20세기 내내 인류가 역사의 진보를 위해 투쟁해 온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의 성격이 짙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새로운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먼저 21세기에 인류는 심각한 자연환경의 파괴와 이로 인한 지구자원의 고갈, 그리고 심각한 복합오염으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20세기 내내 추구되었던 ‘높은 생산력’발전에 대한 인간의 희구와 관련되어 있다. 자본주의체제든 사회주의 체제든 생산력 발전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지구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데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대부분의 가정에 승용차가 주어질 정도의 경제적 성취는 역으로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가정의 유아들에게 만성적인 천식과 기관지 장애를 가져다 주었다. 더욱 윤택한 생활환경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으로 인해 제조업 가동률은 더욱 높아지고 그에 따라 마음 놓고 마실 물은 점점 줄어들거나 거의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정수기 생산공장의 가동률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20세기 내내 이루어진 개인의 자유영역과 민주주의의 확장은 역으로 공동체 문화를 파괴 내지 약화시킨 채 개인주의를 만연시키고 또한 개인간의 경쟁을 정당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에 따라 수많은 개인들, 경쟁우위에 있든 경쟁하위에 있든(이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사회생활자체가 여러 가지 스트레스요인이 되는 위험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이제 문제는 개인적 자유의 빈곤의 아니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 개인적 자유의 올바른 소화가 되었다. 이로부터 높은 자살률과 마약, 그리고 각종 정신과질환이 만연되었다. 21세기를 몇 달 앞둔 현 시점에서 볼 때 개인적 자유의 문제는 이제 공동체의 파괴와 정신과질환과 같은 문제로 치환된 것이다.
2. 20세기 한국 협동조합운동이 역할
세계협동조합운동의 전개와 마찬가지로 20세기에 진행된 한국에서의 협동조합운동은 크게 볼 때 20세기에 인류에게 제기되었던 문제해결을 위한 지난한 투쟁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세기 내내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절대적 빈곤 해결을 가장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부문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 한국의 농촌근대화에서 농업협동조합운동의 역할은, 그것이 상당기간 비민주적이고 관 주도적인 성격으로 진행된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부정될 수 없다. 이는 수산업협동조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일반서민들 속에서 서민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잡은 신용협동조합운동 또한 60년와 70년대 만연하던 한국에서의 절대적 빈곤문제 해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협동조합운동이 수행한 이러한 역할은 국민들 속에서 협동조합에 대해 깊은 인상을 심는 정도가 아니라 다수 대중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성과를 낳았다. 즉 협동조합은 20세기에 들어 ‘이상한’ 소수가 하는 특별한 공동체가 아니라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식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협동조합의 조합원 현황과 사업규모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998년말 현재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참여정도가 낮든 높든 조합에 출자금을 낸 출자조합원이 1,000만명이 넘는 양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한국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약 50%가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업규모에 있어서도 한국의 협동조합운동 전체는 1년에 약 200조 규모를 넘어서게 되었는데 이는 한국정부 예산의 3배가 되는 액수이다. 사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단일한 블록으로 형성될 경우 이는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경제부문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신분차별의 철폐와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시류에 앞서서 비상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특히 신용협동조합운동에서는 모든 선거가 관권선거에 가깝게 되고 피선거권이 제한되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선거문화를 꽃피우고 조합원들의 평등한 1인1표 원리를 고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중요한 민주주의의 학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988년 이전 농업협동조합과 수산업협동조합은 비민주적인 경영체제를 유지했으나 1988년 이후 농업협동조합과 수산업협동조합은 농어촌 민주주의의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사실은 선거가 과열되어 민주주의의 과잉이 문제가 될 정도였다. 기업문화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산업화가 급진전되던 70년대와 80년대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비민주적인 1인 오너체계, 혹은 족벌경영체계로 운영되었던 것과 달리 다수 조합원들의 이해를 고려하면서 비교적 ‘조심스럽게’ 운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합리적 이성의 확대와 관련한 과제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주로 교육의 원칙에서 접근해 왔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에서 교육의 측면은 언제나 강조되었으며 협동조합기관을 통한 사회교육기능은 지역사회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다하고 있다. 특히 노년층과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교육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단일한 규모에서는 지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발전하기 위해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은 계속 강조될 것이다.
20세기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한국사회가 짊어지고 있던, 아니 한국국민들이 짊어지고 있던 세기적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순기능을 다해왔다. 이로 인해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양적 팽창이 이루어지고 대중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진 격이 되었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해 많은 모순과 문제점들 또한 노출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시 광범위하게 협동조합개혁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3. 21세기 한국사회의 과제와 협동조합운동의 과제
20세기의 협동조합운동이 당시 제기된 인류의 세기적 과제에 선도적으로, 혹은 순응해 옴으로써 협동조합운동의 대중적 지반이 넓어졌다는 점은 21세기 협동조합운동의 과제 및 전망을 고민하는 출발점이 된다. 즉 21세기의 협동조합운동은 21세기 인류의 세기적 과제를 이해하고 이의 해결을 선도함으로써만 자신의 존재의의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활기찬 생명력을 분출하고 동시에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여러 가지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 중 가장 주요한 것들을 세 가지 범주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범주의 가제는 20세기에 채 해결되지 않은 20세기적 과제이다. 20세기를 통해 매우 주요한 문제들, 즉 절대적 빈곤의 해결이나 신분적 질서의 철폐, 그리고 미신의 추방과 합리성의 획득 등의 과제들은 큰 틀에서 해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와 연관된 문제들, 즉 실업과 상대적 빈곤의 심화, 경제영역에서의 민주주의의 확대, 그리고 정보사회에 대한 적응과 같은 과제들이 21세기 전반부에 한국사회의 주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두 번째 범주의 과제는 20세기에 그 맹아적인 형태로 제기되었으나 그 해결을 21세기로 넘겨놓은 21세기적 과제이다. 그것은 주로 환경친화적이고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쾌적한 삶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개인과 개인 사이의 단절, 이로 인한 인간존재의 소외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과제는 진정으로 현대인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해결되지 않으면 안되는 절실한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첫 번째, 두 번째 범주의 과제들은 한국사회 뿐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전인류가 직면한 가제이기도 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누구도 이러한 과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세 번째 범주의 과제는 한국사회만의 독특한 과제인데, 바로 분단의 극복과 통일의 과제이다. 한국의 분단과 그 고착화는 20세가가 우리민족에게 남겨 놓은 가장 커다란 비극 중의 하나이며 21세기에 접어들어 한국 국민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분단의 상태가 해결되지 않은채 만일 한세기가 더 지나가 버린다면 한반도에는 영원히 분단된 두 개의 체제가 고착될 것이고 한국국민들은 심각한 정치적 군사적 위협에 계속 노출되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한국협동조합운동에서 20세기 잔존과제의 해결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21세기의 전반기 내내 실업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의 접근에 있어 협동조합운동은 자신의 경영목표 안에 ‘고용의 확대’를 새로운 목표로 추가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협동조합은 기존 조합원의 복리증진을 가장 중요한 경영목표로 잡고 있는 조직이다. 이 목적은 부정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고용의 확대를 새로운 경영목표로 추가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시대의 요구이다. 만일 기존 조합원들의 복리증진과 고용확대라는 목표가 서로 상충되는 국면(이러한 가능성은 늘상 존재한다)에 접할 경우 앞으로 협동조합의 경영자들과 활동가들은 기존의 접근법(조합원들의 복리증진을 우세한 것으로 보는 접근법)에서 벗어나 이 두 가지 문제의 합리적 절충에 주목해야 한다. 조합경영이 상승국면에 있을 때 경영자들은 기존 조합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배분되도록 하는 것과 함께 고용을 어떻게 확대시킬 것인가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조합경영이 하향국면에 있을 때에도 무자비한 정리해고와 인원감축은 신중하게 처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협동조합운동은 협동조합 내부의 고용확대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고용확대 효과가 있는 사회경제 분야에 대한 투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도시 빈민지역에서의 자활적 생산협동조합과 부도기업 노동자 안수를 통한 협동조합으로의 전환 등과 같은 실업억제 프로젝트에 대해 협동조합운동 진영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21세기의 끝 무렵에서 21세기의 협동조합을 돌아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현재의 실업문제에 올바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언제나 주의를 돌리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협동조합운동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운동이 될 것이다. 조합원들은 자신의 대표를 통해 이러한 원칙을 관철시킴으로써 자기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호흡하려 노력한 사람들로 기억될 것이다.
협동조합운동은 20세기에 절대적 빈곤의 해결에 앞장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21세기에는 상대적 빈곤의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협동조합 일반이 고수하고 있는 저소득 주민들, 저소득 조합원들을 우선시하는 정책이 의연히 견지되고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저소득 조합원들의 중산층화, 혹은 저소득 주민의 자활에 적극 나서고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협동조합금융의 영역에서 이 문제는 저소득 조합원들을 우대하는 상호금융정책의 확대와 이들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위 프로젝트 금융의 확대의 문제로 집약된다. 협동조합금융이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앉아 있는 경영’이 아니라 이들의 삶의 현장을 보다 면밀하게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뛰는 경영’의 풍조가 정착되지 않으면 안된다. 신용협동조합운동에서 이 문제는 외국의 거대금융자본이 판을 치고 점차 각박해지는 금융시장환경에서 신용협동조합의 존폐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신용협동조합이 이들 저소득 조합원, 주민들과 좀 더 밀착한 경영을 해 나갈 수 있다면 신협은 제2의 부흥기를 누리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신협은 자신의 존재의 의의를 잃고 조합원들을 다른 금융기관에 빼앗기게 될 것이다. 협동조합 사업의 영역에서 이 문제는 저소득 주민들의 자활적 협동화 사업에 대한 투자 및 지원, 그리고 교육사업의 문제이다. 특히 농수축협의 경우 이러한 조합원들의 협동화사업을 통한 부가가치의 증대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아마도 얼마 안 있어 외국기업의 거대하고도 섬세한 투자정책에 뒤쳐지게 되고 많은 조합원들을 이들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자기자신의 운영을 다수 조합원들이 민주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체제로 정착시켜 감으로써 경제영역에서의 민주주의의 확대의 본보기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제기되는 경제민주주의의 무제는 주로 기업지배구조의 변혁과 관련되어 있다. 최근 제기되는 재벌체제의 개혁과 소액주주운동, 그리고 노동조합의 경영참여운동은 바로 현재 소수에게 집중된 기업지배권력을 다수에게 분산시키고 이들간의 상호견제와 합의구조를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다. 협동조합은 그 조직원리 자체가 이미 태생부터 민주적인 지배관리의 원칙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농수축협의 경우 1988년 이전까지는 전혀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았고 현재도 그 관성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대부분의 신협에서도 필자가 보기에는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몇몇 경영자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제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경제민주주의의 확대’가 시대적 흐름으로 되고 있는 때에 이 흐름을 선도할 수 있는 힘을 효과적으로 발휘하여야 한다. 그것은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원리를 철저하게 고수하기 위한 노력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정보화사회의 진전에 따라 협동조합경영자들과 활동가들에게는 협동조합운동이 정보화사회에 어떻게 잘 적응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주어졌다. 조금 더 적극적인 활동가들은 협동조합운동이 어떻게 정보화사회를 선도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협동조합운동의 위상을 어떻게 더 높일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원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협동조합운동은 정보화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 정보화는 한마디로 말해 “정보의 네트워킹 내지 공유화”라고 할 수 있고, 정보화를 촉진한다는 것은 정보생산자들의 수준을 높이고 정보네트워킹에 요구되는 시설과 장비, 소프트웨어를 고도화한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정보의 질을 고도화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원리적으로 볼 때 ‘경쟁과 독점’보다는 ‘협동과 연대’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과정이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네트워킹에 참여시키느냐 하는 것이 정보화의 질을 가늠하는 한 잣대가 된다. 협동조합은 연대의 매개가 분명한 자신의 조합원들 속에서 일단 정보화와 관련된 연대의 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수익을 추구하는 어떤 정보산업체가 새로운 네트워킹을 위해 투자할 때 그가 가장 곤란을 겪는 영역은 바로 네트워킹에 참여할 손님들을 찾아내고 이들을 조직하는 것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이미 기본 손님들이 연대되어 있는 체계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이 이 영역에서 작업을 시작할 때 일반 업체들이 하려는 그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도 더 많은 효과를 거들 개연성이 높다. 경영자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협동조합들은 다른 업체라면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를 투자해야 할 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풍부한 조합원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한국에서 이종 협동조합들이 연대되는 큰 틀이 마련된다면 협동조합운동은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단일 네트워크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러한 기본자산을 가지고도 협동조합운동이 정보화에 뒤진다면 역사는 협동조합 경영자들과 운동가들을 ‘바보들’로 규정할 것이 틀림없다.
5. 한국 협동조합운동에서 21세기 현대적 과제의 해결
앞에서 지적한대로 자연환경과의 친화 내지 환경보호의 과제는 20세기 후반기에 이미 맹아적인 형태로 제출된 과제이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진영에서는 특히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이 과제에 주목했다. 한국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은 저농약 유기농산물의 유통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응해 왔는데 앞으로도 이 기조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들어 농업협동조합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아직 본격적인 단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신용협동조합운동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의 초기에 이 운동을 지원하고 격려해 왔다. 특히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의 중심활동가들은 신협운동을 통해 배출되었으며,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의 활동공간을 넓히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앞으로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먹거리 문제 뿐 아니라 전체적인 생산과 유통, 소비 시스템 속에서 환경친화적인 부분이 더욱 커질 수 있도록 강력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농업협동조합운동의 21세기 전략은 이 부분에서 성공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평가될 것이라 생각된다. 환경농업을 위한 투자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조합원들을 상대로 하는 환경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정부의 환경정책과 전 사회적인 환경운동에 본격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21세기의 후반부에 이 과제는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한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이슈로 떠 오르며 기존의 경제, 정치, 사회시스템 일반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21세기 전반부까지 이후의 사회진화 과정을 염두에 두고 협동조합운동이 ‘지속가능한’ 우성인자로 남아있기 위한 구체적인 환경정책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공동체의 복원과 관련된 문제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중요한 경험과 자산을 가지고 있다. 협동조합은 기존 조합원들 속에서 횡적인 네트워킹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강화시키고 고도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잘 해결할 경우 협동조합자체를 중요한 공동체의 틀로 발전시켜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원 내부에서의 적극적인 교육과 다양한 ‘나눔’의 틀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조합원들 사회에서의 익명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이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 ‘규모의 경제’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진행되고 있는 단위협동조합의 합병 움직임은 그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된 시점을 지난 후 다시 최대한 작은 규모로 분산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새로운 협동조합의 경우 규모의 경제와 경쟁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작은 규모로 유지되어 조합원들 속에서의 익명성을 최소화하고 조합원 상호간의 원활한 네트워킹이 가능하도록, 그리고 협동조합이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공동체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21세기가 진행될수록 수많은 외로운 개인들은 좀 더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어떤 場에 대한 향수를 더욱 진하게 느낄 것이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이미 핵가족화되어 그 기능이 바뀌어진 상태에서의 옛날의 가족공동체에 대한 집착과 향수로 나타날 것이고, 한편으로는 무언가 자기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장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내연될 것이다. 협동조합은 바로 이러한 마음들을 획득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협동조합운동은 점차 고령화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노인 조합원들이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듬어야 하고, 조합원 자식들을 위한 청소년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하며, 조합원들의 성별과 나이, 취향을 잘 고려하면서 조합원 사교클럽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가능한 횡적 연계망들을 확충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21세기에 중심적으로 제기될 이러한 두가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경우, 협동조합은 많은 조합원들과 지역주민들에게 비전있고 따뜻한, 그리고 매우 수준높은 공동체로 인식될 것이다. 이는 한국협동조합운동에 대한 평가에서 현재의 양적성장에 대한 수량적 평가를 질적 성장에 대한 본질적 평가로 바꾸어 놓게 될 것이다.
6. 한국 협동조합운동이 통일대비 전략
21세기에는 한반도에 통일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체제의 성격은 현재의 북한체제보다는 남쪽의 체제에 더 근접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중첩적으로 얽혀 있고 분단의 골이 의외로 깊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체제는 경제적으로는 이미 공황상태에 있다. 수많은 주민들이 1995년 이후 전개된 식량위기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제조업 가동률은 50% 이하를 맴돌고 있고 에너지 위기가 겹쳐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군사적으로는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현재의 집권체제에 대항할 만한 대체세력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최근까지 전개되어 오고 있는 통일관련 논의에 대해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남북간의 통일은 근본적으로 남북 주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세 측면의 통합이 모두 이루어질 때 전면적인 통합체제가 구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가지 전개되어 온 통일논의는 주로 ‘정치적’ 통합에 집중되어 왔다. 연방제 통일방안이나 혹은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그리고 국가연합방식의 3단계 통일방안 등에서 모두 선차적인 해결과제는 정치체제를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제적 통합이나 문화적 통합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치부되었다. 하지만 사정이 다소 바뀌었다.
현재와 같이 남북간의 경제력 격차가 엄청나게 크고 남쪽이 통일독일 직전이 서독만큼 경제적으로 큰 여유가 없는 경우 정치적 통합은 실상 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만일 남북의 정치체제가 어떤 식으로든 하나의 정치원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과연 남과 북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휴전선이 걷어지겠느냐 하는 점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휴전선을 지키는 군인의 수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이 북한의 경제가 어려워서 절대적 빈곤에서 헤매이는 사람들이 많으면 당연히 그들 중의 대다수는 남쪽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할 것이나 남쪽 경제가 그것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주민의 대이동이 방치된다면 남북의 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의 통합된 정치지도자들은 휴전선(이름은 바뀔지 모르지만)의 경비를 더욱 강화한 상태에서 북한경제를 복구시키는 정책을 상당기간(남북의 경제력 격차가 거의 해소되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 분명하다. 여권을 소지하고 친척을 방문하는 정도는 허락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은 상당기간 남쪽의 주민들보다 경제적으로 열등한 사람들로 분류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문화적 통합 또한 완전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부터 통일로 나아가는 긴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긴급한 과제는 따라서 ‘정치적 통합’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정치체제가 어찌되었든 남북간의 경제력 격차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완전한 의미의 통일의 전제조건이고 그것은 북한경제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 뿐이다(남쪽의 경제를 더 망가뜨려서 하위평준화시킬 수는 없으니까! 최근 정부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유연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간의 대화에 있어 정경분리원칙에 입각한 경제적 교류 및 지원 확대정책 햇볕 정책은 통일의 전제를 만들기 위한 올바른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 또한 이러한 정책에 대해 금강산 관광 허용이나 경제교류 확대라는 식으로 화답해 오고 있다. 아마도 북한의 경제정책이 ‘개방’으로 나아가 외부의 자본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식으로 바뀌어 가는 도중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틀림없이 한국의 협동조합에게는 북한의 경제적 변화에 상응하는 중요한 기회가 찾아들 것으로 판단되며 이에 대한 면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경제력 향상에 있어서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네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북한은 현재의 협동농장 중심의 농업정책을 수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이 부문에서 한국의 농업협동조합은 중요한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협동농장에는 공동으로 경작하는 부분과 개인적으로 경작하는 부분이 공존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공동경작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으나 이후 개인경작비율을 점차적으로 늘려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현재 북한의 협동농장에서 개인경작지의 단위당 생산성이 공동경작지의 그것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다. 만일 개인경작지의 비중이 조금씩 높아져 간다면 이들 사이에서는 공동의 판로와 유통체계를 도모하는, 개인농민이 주체가 된 농업협동조합 형성의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한국농업협동조합의 경영자들과 활동가들은 이 국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북한의 농업체계를 혁신하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농업협동조합체계가 아니면 이것을 주워담을 다른 그릇은 별로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한국의 농업협동조합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면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북한의 기업지배구조가 바뀔 것으로 판단되며 이 때 한국의 노동자협동조합운동은 중요한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현재 북한의 제조업 기업들은 100%가 국영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력 향상을 위해 일정정도의 사유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진행된 사유화의 경험을 두고 판단할 때 외국자본이 주도하는 사유화는 그 개발이익이 외국자본의 수중으로 들어가 결국 현지경제의 활성화에는 제한적으로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현지인들에게 이익이 최대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유일하게 그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 뿐이다. 이 때 그 기업의 노동자들은 그 기업을 인수할 만한 씨앗돈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기업 소유권은 국가에게 두고 그것을 임대해서 완전한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사유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임대기업의 유형은 광범위하게 나타났는데, 이때의 내부운영원리는 협동조합방식과 큰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협동조합 활동가들은 북한의 국영기업을 노동자임대기업으로 바꾸어 운영하는데 필요한 경영상이 노하우와 지원시스템을 준비해서 북한의 기업지배구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셋째, 북한의 경제력 향상을 위해서는 북한에 새로운 금융시스템 도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때 협동조합 방식의 상호금융시스템은 아마도 개발이익을 노리고 들어오는 외국의 거대금융자본들로부터 북한주민들을 보호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신용협동조합을 필두로 하여 한국의 협동조합 금융부문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면밀한 타산과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넷재, 북한에도 새로운 개념의 유통 및 서비스 시스템이 도입될 것인데, 이때 외국의 거대유통자본과 맞설 수 있을 만한 협동조합유통, 즉 소비자협동조합방식의 유통시스템 도입과 협동조합방식의 서비스시스템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가 보기에 북한경제가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에 의해 크게 개선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많다. 그리고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 부문에서 적극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경우 협동조합운동의 위상은 통일한국사회에서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의 협동조합 경영자들과 활동가들이 이것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차근차근 준비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 별도의 협동조합기금이 조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7. 21세기에 적합한 한국협동조합운동 진영의 체제정비
21세기에 협동조합운동 진영이 세기적 과제들에 맞서 제 역할을 온전히 다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협동조합체제로는 매우 부족하다고 본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은 보다 공격적이고 치열하게 체제정비문제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핵심적인 것은 세 가지라고 생각된다.
첫째, 한국협동조합운동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협동조합운동은 농업협동조합운동과 신용협동조합운동이 큰 두 개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과 노동자생산협동조합운동은 너무나 약하고 아직 제 궤도에 올라와 있지 않다. 이럴 경우 전체 사회에 대한 협동조합운동의 대안제시 능력이나 문제해결 능력은 불균형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이후 이 두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요구되며 이것의 수준을 현재의 거대 협동조합들에 버금가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기존의 먼저 진행된 협동조합의 경우 협동조합의 원리원칙에 충실하면서도 보다 강한 협동조합으로 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이 협동조합 개혁이라고 불리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할 것 없이 어쨌든 지금가지 전개된 운동을 평가하면서 보다 전투적이고 강인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셋째,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통일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종협동조합간의 연대가 일상화되고 더 나아가 한국협동조합 연대기구를 통한 ‘진영의 형성’ 내지 ‘블럭화’가 요구된다. 이를 통해 협동조합운동은 전체사회에 대해 제3의 부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자기만의 목소리’를 통일적으로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유명무실화된 한국협동조합협의회의 기능은 무조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되고 더 나아가 협의기구가 아닌 연합기구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협동조합은 정부기관도 아니고 민간기업도 아닌 독자적인 어떤 힘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협동조합운동이 정부의 눈치나 살피면서 지낼 것인가?
8. 맺음말 - 행운아들
우리는 현재 뜻하지 않은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세기 전환기에 살고 있음으로 해서 ‘세기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문제를 세기의 차원에서 본다는 것은 어쨌든 보다 멀리 내다보는 눈을 열어주고 또한 보다 멀리 뒤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당면한 문제들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를 검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한 세대 전의 우리 선배들은 아마도 이러한 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행운아들이다.
21세기의 한국사회 진화에서 협동조합운동이 과연 우성인자로 남아 자기 역할을 계속하게 될지 아니면 열성인자로 판명되어 도태될지는 우리가 이 시대의 과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협동조합운동이 이 시대적 과제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의해 결정되리라는 점은 누누히 이야기해 온 바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한국사회 진화에서 협동조합운동의 위상이 어떠할 지는 두고볼 일이다. 그것은 2099년쯤 해서 우리의 후배들이 평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