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소설명 : 교육열
원작 작가명 : 탈룰라전용
원작 링크 : http://cafe.daum.net/sweetjissouseki/dZSt/7119
리메이크 소설명 : 뒤틀린 모정
리메이크 작가 : 큰누
===============================================
4월, 겨울이 끝나고 살아남은 모든 이가 생명이 움트고 희망에 찬 울음소리를 내뱉는 그 시기에, 남녀 한쌍이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2층의 카페테리아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따듯한 봄날의 정오에 카페에 앉아 커피를 기울이는 두 남녀의 모습은 언뜻 보면 연인 같기도 했고, 행복해 보이는 장면처럼 보여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녀의 표정은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자는 답답한 듯한 표정과 체념이 얼굴 한가득 밀려나와 있었고, 여자는 그저 남자의 그런 표정에 불안과 망설임이 가득한 듯, 계속 그런 남자의 표정을 눈치 보듯 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두 남녀가 거북한 침묵 속에서 조용히 커피잔만 노닥거리고 있던 그 때, 무언가를 결심한듯 남자가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이내 나직하게 말했다.
"이혼하자. 미영아."
"영호씨...."
이혼이라는 말을 꺼낸 남자는 눈앞의 여자- 아니 자신의 마누라였던 미영이의 시선을 일부러 무시하듯 창밖을 넌지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듯, 한숨을 푸욱 푸욱 내쉬고는 영호씨라 불리었던 남자는 자신의 서류 가방에서 싯누런 서류봉투를 꺼내어 여자의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스윽 하고 밀었다.
"나는 이미 할 말 다했다. 서류에 내가 적을 것은 전부 다 적어놨어. 도장까지 다 날인했으니 미영씨것만 작성하면 될 거
야. 직접 내는게 힘들면 내가 가서 낼 테니 지금 바로 작성해주면 좋을 것 같아."
"영호씨."
미영이라고 불린 여성은 아직 눈가에 남은 애정어린 눈망울을 담은 채, 영호씨를 향해 다시한번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것을 들은 남자는 마치 가위로 꽃을 잘라내듯이 무감정한 목소리를 담아서 대답했다.
"이미 우리 사이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냥 끝내자."
"다시한번 더 생각해주면 안되나요? 영호씨. 이러지 말아요. 제발..."
여자는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영호씨의 손을 마주잡고 간절히 애원했다. 그러나, 영호씨는 손을 잡은 여자의 손길을 뿌리치는 대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자를 마주보았다. 영호씨의 얼굴에는 더 이상 아무런 애정도,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유리가면을 쓴 듯한, 차가운 시선만이 미영씨를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느껴버린 미영씨는 절망에 빠져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영호씨의 손을 놓았다.
"미안해요. 영호씨. 제가 다 잘못했어요."
"뭐가? 뭐를 잘못했는지 당신이 정말 아는거야? 모르는거야?"
남자는 조용히, 그러나 문장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가면서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전교 1등을 못했다고 아이를 때려 병원에 보낸 게 미안한건가? 아니면 일년에 두어번밖에 못 오는 뱃사람인 나에게 거짓말을 해가면서 아이를 예뻐하는 착한 엄마를 연기하라고 딸에게 시킨게 죄송스럽다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고작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이에게 겨우 4시간만 재우게 하면서 단 한번도 아이의 행복이 뭔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놈의 잘난 교육열에 미쳐서 학교 끝나면 학원만 다섯개에 과외강습까지 하면서 아이를 닥달해대기만 해놓고 그것을 나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여태 그래온게 미안한다는 거야?"
"..........."
"그것도 아니라면, 작년 7월말쯤이 우리 딸 생일이었지. 그 생일날 애기 잘 챙겨주라고 편지보냈더니, 너란 년은 전교 1등 못했다고 애를 동네 개 잡듯 두들겨 패놔서 생일은 커녕 다락방에다가 며칠동안 감금하다시피 했던 일이 미안하다는 거야? 공부나 못했으면 내가 이해를 해. 전교 2등하고 온 애에게 그게 할 짓이야? 엄마로서 자격이 있어? 대체 니가 말하는 미안하다는 게 어떤게 미안하다고 지껄이는 건데? 어디한번 내 딸에게 손찌검 하듯이 당당하게 지껄여 보지 그래?"
계속해서 쏟아지는 팩트 공격에 한마디도 못한 채로 불만과 억울함만이 가득한 미영씨를 바라보는 영호씨는 그저 답답함을 느끼면서 테이블에 올려둔 자신의 손가락을 꾸욱 주먹을 쥐듯 감았다 펴고는 커피잔을 들어 쓰디쓴 액체를 목으로 넘겼다. 울분이 올라와 칼칼해진 목을 커피로 채워, 그 울컥함을 가까스로 뱃속으로 내려보낸 영호는 고개를 푹 떨군 채로 눈물을 흘리는 미영을 바라보면서 마저 말을 내뱉었다.
"더 이상은 할말이 없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태도만으로도 있던 정도 다 사라진다고 정말. 어차피 이혼이라는거 상상조
차 못했을 테니 도장이고 나발이고 준비도 안 되어 있겠지. 그냥 작성하고 퀵으로 보내세요. 법원엔 내가 제출할테니까.
최소한 사나흘 내로 마무리 짓기를 바랄께요. 어차피 끝난 거, 깔끔하게 끝냅시다."
통보하듯 차갑게 말을 마친 영호씨는 가방을 닫고, 의자에 걸어둔 외투를 집어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옷깃을 잡고 고개를 드는 미영의 모습에 영호는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전 아이를 사랑했어요."
"......"
"아이를 사랑해서 한 일이라구요.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다 사랑해서..."
미영이의 그 말을 들은 영호는 순간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감각에 애써 눈에 힘을 주어 울음을 참았다. 이 바보같은 여자는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정말 사랑했다면 적어도 자식을 때리진 말았어야지. 그런 하잘것 없는 이유로 아이를 굶겨서는 안 되었잖아. 설령 그게 기대에 못 미쳐서 저도 모르게 그런 거라도 나에게 그 사실은 숨기지 말았어야 할 거 아닌가. 나를 속이고, 자신의 욕심에 미쳐서 그 어린 딸을 때리고 욕하고 굶기고, 그것도 생일날에 그딴 짓을 저지르고는 사랑해서 그런거라는 여자의 말을 듣자, 영호는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그러나 어차피 때려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어차피 어른답게 처신해야 할 일이었다. 남자는 목 뒤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울화를 필사적으로 구겨넣으며 이를 앙다물었다.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제가 무조건 용서를 빌게요. 영호씨. 이혼만은...이혼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이에요..."
여자는 옷깃만이 아니라 이제는 아예 남자의 허리를 감싸안고 울먹이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호는 그 팔을 잡아 풀어내어 정중하게 뒤로 밀었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미영의 눈물 젖은 두 눈가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뭔가 착각하는거 같아서 말하는 건데... 너랑 이혼하려는 이유가 단순히 애를 때리거나 훈육했다고 이러는게 아니야. 그것뿐이었다면, 하다못해 내 딸이 너랑 있는 동안 공부도 안하고 말썽만 피워서 그랬다면 나는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수도 있어. 비록 그 훈육이 좀 거칠었다 해도 나름 납득할 만한 이유라면야 시간이 좀 걸린다 쳐도 당신도 용서하고 내가 딸을 오히려 달래고 니 엄마를 이해하라고 다그칠 수도 있었을 지도 몰라. 그렇지만 내가 용서할 수 없는 게 무언지 알아? 그건 말이지.... 아이의 진정한 행복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같이 나아가려는게 아니라, 그저 니 욕심, 니가 자식을 통해 바라마지않는 헛된 기대를 아이에게 강제로 주입시키는 그런 생각이 도저히 나랑은 맞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런 마인드를 가진 여자가 우리 딸의 엄마랍시고 나와 내 딸 곁에 있는 거 자체가 싫은거야. 게다가 나랑 상의하지도 않았잖아?"
"일년에 한번인가 두번정도 집에 돌아왔을때 당신은 어떻게 했어? 아이 먹고싶은거 다 사주고, 놀아주면서 아이를 생각하는척 레스토랑과 놀이동산을 오고가는 현모양처를 연기했잖아? 결혼 생활 내내 말이야. 이번에 내가 다시 뱃일하러 나가면서 하도 의심쩍어서 몰래카메라 설치했기에 다행이지, 애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공부만 시키면서 두들겨 패는 걸 평소처럼 몰랐으면 아마 너란 년은 지 애가 견디다 못해 자살할때까지 애를 그따위로 대했을거야. 내 말이 틀리면 틀리다고 말 해 봐."
"그...그건.."
"아이를 위해서 그랬다는 허튼 소리는 내뱉지도 마. 아이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물론 아이에게 저 나이때의 어린 애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도 잘 알아. 그렇기에 난 분명히 기회를 줬어. 물증을 들이밀기 전에 바른대로 고하라고 한번, 그리고 물증을 보여주고 왜 그랬냐고 따질때 한번, 총합 두번이나 난 기회를 줬다고. 그런데 넌 그 성의에 대해 뭐라고 대응했어? 일년에 두번 오는게 고작이면서 뭔 생색이냐고 되려 짜증을 부렸잖아. 야. 이 시발것아. 그럼 내가 니들 먹고살게 해주려고 돈벌러 나가지, 놀러 나가디? 내가 같이 못 있어주니까 너에게 그 큰돈 싹다 맡기면서 애 잘 보살펴주라고 한 것만으로도 난 내 할일을 다 한거야. 근데 뭐? 뭐가 어째요? 게다가 물증 들이대니까 한다는 소리가 뭐였어? 요즘 아이들 장래 생각해서 아이를 위해서 그랬던 거라고 화냈잖아. 그래 니 말마따나 우리 딸이 공부도 안하고 말썽꾸러기였으면 니 말이 어느정도 납득이 갈수도 있지. 내가 학생기록부 보니까 얼척이 없드만? 우리 딸 전교 2~4등 아래로 내려간적이 한번도 없었어. 그런데도 생일날 밥을 굶겨? 때려? 다락방에 감금을 해? 니 지금 나랑 장난하냐??"
남자는 한꺼번에 울화를 쏟아붓듯이 연이어 말하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서 자리를 박차듯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는 그런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이혼 서류가 담긴 봉투를 잡아채듯 쥐고는 카페 출입구로 나가는 영호씨를 쫓아 달려나왔다. 그리고 길가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로 다가가 차문을 열어젖히는 영호를 미영이는 문을 손으로 잡고 그를 돌려세우면서 말했다.
"널 속이려고 한게 아니야!! 널 속이려는 마음은 없었어. 그저 언제고 말하려고 했다고!!"
여자는 전력으로 소리를 지르고는, 여전히 냉담한 얼굴을 하고 있는 영호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저 그걸 말할 시간이 조금 늦었을 뿐이야. 아이에게 나는 딱히 나쁜 마음 먹은 적 없다고!! 정말이야!! 난 아직도 당신과 아이를 사랑해. 영호씨. 그저 아이에 대한 교육방법에서 서로 의견이 달랐을 뿐이야. 우리 여지껏 잘 지내 왔잖아. 당신이랑 나, 벌써 십 년이야. 결혼하고 나서부터 십년째 잘 살아 왔잖아. 그 시간을, 그 사랑했던 세월을 어떻게 이렇게 단칼에 잘라!! 어떻게 이렇게 쉽게 헤어지자고 하냐고.... 영호씨 제발 다시 생각하자. 별거를 해도 좋으니 이혼만은 제발..."
"그럼 하나만 묻자. 아이에 대한 너의 잘못된 기대와 욕심. 버릴 수 있어?"
미영이는 전력으로 애원하다가, 갑자기 번개가 내려치듯이 선언한 영호의 말 한마디에 그만 돌처럼 굳어서는 두 눈만 껌벅거렸다. 마치 무슨 소릴 하느냐는 듯 멍한 그 눈을 바라보던 남자는, 다시한번 여자에게 쐐기를 박듯이 말을 이었다.
"내 딸에 대한 너의 그 미친 교육열. 버릴 수 있겠냐고?"
"그게...무슨 소리에요? 딸을 위한거잖아요 그건...앞날이 어찌될지도 모르는데..."
"야. 장난하니? 니가 내 딸을 위해서 정말로 딸이 원하는게 뭔지, 정말 하고픈게 뭔지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냐고 묻는 거잖아."
"영호씨 하지만 그거는..."
미영은 그 어느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자신이 무엇이 잘못됬는지도 잘 모르는 듯, 연이어 복잡한 표정을 나타내는 여자의 망설임 가득한 눈빛을 본 남자는 마치 먼지를 털어내듯 거칠게 차문을 잡은 미영의 손을 쳐 내고는 운전석에 앉은 후 차문을 닫았다. 그리고, 열려진 유리창 너머로 여자에게 대답했다.
"그건 버릴 수 없을 테지? 맞지? 대학 못 나온 너로서는 그 기대를 자식을 통해서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밖에 없을 테니까. 문제는 너는 그걸 분충 자실장이 행복회로 돌려먹듯 사랑이라고 생각할 거잖아. 아이를 위해서 그랬다고 행복회로 돌리는거랑 뭐가 달라? 넌 인간도 아냐. 실장석만도 못해 너는. 더 할말 있어?"
남자가 모멸감 가득 섞인 말을 하는 동안, 여자는 그저 대답 없이 고개만 떨군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다.
"당신에게 나란 사람은 그저 그것밖에 안 됬던 거야. 나에게도, 딸에게도 그저 그정도밖에 안되었다는 이야기지. 한때는 사랑했던 아내였던 니가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지금 다시한번 확인되어서 참 기쁘네. 거 참 미안하게 됬네그래. 너의 그 알량한 욕심. 안이한 생각을 안아주고 이해하지 못해서 참 미안하구만. 만나서 즐거웠고, 다신 보지 말자. 애초에 너나 나나 잘못된 만남이었어. 내가 미쳤지."
그리고는 남자는 유리창 문을 올리고, 그대로 차를 출발시켜 그 장소를 떠났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미영은 남편이 준 이혼서류를 구기듯 움켜쥐고는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절대 당신은 이혼 못 해. 우리 딸 못 뺏어가... 법원에서 반드시 결판을 내고 말겠어. 양육권은 절대 못 줘!!"
그리고, 그 이후로 4개월이 지났다. 미영씨는 변호사도 구하고, 법원에서 이어진 재판에서도 계속해서 자신이 얼마나 아이를 사랑했는지를 판사에게 설파했다. 자신만큼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없다고 그녀는 철썩같이 믿었고, 사랑스런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4개월 동안 남편이었던 사람과 고성을 오가면서 법원에 출석하고, 또 출석했다. 하지만 판사의 판결은 그녀의 그나마 남아있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법원의 최종 판결은 두 사람의 이혼을 허가한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상식적으로 살펴보면 미영씨가 이길 확률은 거의 없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재판 선례가 없었기에 재판 과정이 늘어지고 길어졌을 뿐, 사실상 누구도 미영씨의 '아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해서 그런것' 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는게 당연했다. 생각해 보라. 고작 초등학교 2학년 짜리를 학교 다녀오면 학원을 다섯군데나 보내서 밤 10시 넘겨서 오게 만들고, 그조차도 과외강습으로 실제 잠드는 시간은 12시를 넘기기 일쑤인데다, 그마저도 잠을 4시간밖에 안 재우고, 새벽에 강제로 깨워서 문제집을 풀게 하고 못 풀면 아이를 때리고 아침을 굶기는 부모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다못해 아이가 공부도 안하고 말썽만 부리는 불량아라면 이해라도 하건만, 아이는 정작 학교에서도 품행방정에, 2년동안 전교 수석은 아니지만 전교 2~4등을 계속 유지한 우등생이었다. 이런 아이를 그저 전교 1등이 아니라고 굶기고, 때리고, 다락방에 가두고, 1년 365일 오로지 공부만 시키고 놀지도 쉬지도 못하게 하면서, 그것이 아이를 위해서, 사랑해서 그랬다고 주장하는 이 여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법원의 최종 판결은 여자의 희망과는 정반대의 것이 나오고 말았다. 가정법원 가사4단독 담당 판사는 영호씨(34)가 정상기준에서 너무나 예외적으로 지나친 교육열을 보인 아내 미영씨(29)를 상대로 낸 이혼과 친권 및 양육자 가정 청구소송에서 이혼을 허가함은 물론, 영호씨(34)를 10세 자녀에 대한 친권 및 양육자로 지정한다고 판결을 내리면서, 판사는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두 사람이 자녀에 대한 양육과 교육관 문제로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미영씨의 모욕적 언사로 영호씨가 상당한 상처를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부 사이에 신뢰와 애정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 혼인 관계는 파탄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아이는 장기간 이어진 미영씨의 과도한 교육열로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지만 미영씨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따라서 본 법정은 아이 성장과 복리를 위해 친권·양육자로 아버지인 영호씨를 지정한다"
판사의 판결이 내려지자, 미영씨는 큰 소리로 소동을 벌이면서 "경쟁사회에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건 부모의 의무다. 사랑하지 않으면 어찌 그렇게 아이를 엄하게 대했겠느냐" 라면서 항의했다. 하지만 법은 법이었고. 판결은 절대적이었다. 법치국가에서 사람으로소 삶을 살아가는 이상, 법의 판결은 준엄했다. 그나마 미영씨에게 다행이라 할 만한 것은, 이혼에 있어서 위자료 책정이 비교적 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영호씨가 한때의 정이나마 생각해서 후하게 조건을 책정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여자는 그저 소중한 아이를 뺏겼다는 마음에 밀려 법원을 나오면서도 소동을 부렸다. 결국, 법원 명령으로 강제 조치된 미영씨는 접근금지조치까지 받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그 후, 며칠동안 미영씨는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면서, 전 남편이 버리듯이 두고 간 텅빈 집 안에서 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영호씨는 딸의 물건들을 가져가면서 두번 다시 미영의 흔적조차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집을 떠넘기듯 여자에게 명의를 변경해 두고는, 단 한마디 작별의 인사조차 없이 그대로 딸과 함께 종적을 감추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미영씨는 헤메듯이 딸을 찾아 거리를 헤매었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남편과 딸을 찾아낼 방법은 없었다. 설령 찾아낸다 하더라도,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이 있어 접근할 수조차 없었을 테지만, 사랑해 마지않던(?) 소중하고 어여쁜 딸을 뺏겼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차 있었던 미영씨에게는 법원의 판결 따위는 애저녁에 머릿속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부여잡고 남편 못봤냐며 딸이 없어졌다며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대의 동정 섞인 시선 뿐이었다.
그렇게 부질없이 거리를 헤매면서, 남편도 딸도 다 떠난 텅 비어 있는 이 집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여쁜 자신의 딸의 그림자만을 추억 쫓듯 그리워하던 여자는 어느사이부터인가, 집 근처의 공원에서 멍하니 앉아 해가 질 때까지 물끄러미 공원 건너편에 보이는 딸이 다녔던 학교를 바라보는게 주된 일과가 되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아이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공원의 울타리 가장자리를 따라 재잘대듯 학교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정오가 지나면, 학교가 끝난 아이들이 즐겁게 집을 향해 가는 것을, 여자는 그저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여자는 스스로도 이런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한 것임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지만, 그것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딸을 정말로 사랑했다. 그리고 좋아하고, 어여삐 여겼다. 그랫기에 엄하게 대했다. 요즘같은 경쟁 사회에 뒤떨어져서야 어찌 딸을 위하겠냐고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그런데 남편도, 딸도 그런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법원에서는 그래도 그런 자신을 이해해주리라고 희망을 가졌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자신이 잘못됬다고, 미쳤다고 말할 뿐이었다. 여자는 그런 주변의 시선이, 몰이해가 너무나도 싫었다. 그리고 그 갈데 없는 분노를 삭히기 위해서, 여자는 이렇게 매일마다 등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과거의 행복했던 막 딸을 낳았을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과거를 추억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위안하곤 했다.
그렇게 몇달이 더 지났다. 이제 주변은 완연히 늦여름 날씨였다. 매미가 마지막 목숨을 불태우듯 빽빽 소리지르며 녹음이 우거진 벤치 아래에서, 언제나처럼 무료하게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엄마처럼 벤치에 앉아 공원 건너편의 학교를 망연히 쳐다보던 여자에게, 평소와는 다른 이색적인 변화가 생겼다.
"인간씨.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인데스?"
여자는 문득, 상념에 잠겨있던 머릿속 생각을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다소 멍한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여자는 잠시 잘못 들었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간 고개를 기울여 아래를 보자, 그곳에는 초록색 옷을 입은 작은 소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요 사이 공원에서 자주 목격되는 실장석이라 불리는 생물이었다. 사람과 어느정도 언어가 통해서 알아듣는다는 그 묘한 생물이었다. 물론 인간은 실장석의 말을 바로 알아듣진 못했기에, 눈앞에서 데스데스 거리는 실장석의 말은 여자에게는 그저 자신의 사색을 방해하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기에, 이내 시선을 돌리고는 차갑게 대답했다.
"신경 끄고 니 갈길이나 가라."
하지만, 성체로 보이는 실장석은 무언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여자에게 뭐라뭐라 말을 하더니, 아예 벤치 옆 땅바닥에 철퍽 하고 앉아서 여자를 향해 무언가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던 여자는 귀찮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내 링갈 앱을 키고는 자신의 일과를 방해한 친실장에게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뭔데 자꾸 귀찮게 구는데. 뭐 콘페이토 상납하라느니 그딴 개소리하면 걷어차 버린다?"
그러자 친실장은 고개를 빠르게 한 3배속으로 빨리가기를 하는거마냥 파르르 흔들고는 여자를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아인데....혀 깨물었데스. 아닌데스요. 요 며칠간 지나다니면서 봤는데 상태가 너무 불안해보여서 그만 말을 걸고 말았던데스."
여자는 실장석의 대답을 듣고 픽 하고 웃음을 지었다. 실장석이 보기에도 상태가 불안해 보인다니, 나 정말 주변에서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던건가 하고 여자는 실소했다. 그리고는 실장석에게 말했다.
"불안해 보이기로는 너네들이 으뜸 아니야? 나 걱정할 정도로 너희가 평화롭진 않을 거 아니니."
"그건 맞는데스. 사실은 원래대로라면 인간씨에게 이렇게 접근하면 위험한 일인데스. 하지만 웬지 나를 버리고 가셨던 옜날 주인님이 떠올라서 어쩔 수 없었던데스. 옜날 주인님도 마음이 아주 울적하고 힘들면 지금 인간씨가 하는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러셨던데스."
"헤에. 너 원사육실장이었니? 그런것 치고는 잘도 살아남았네?"
"태생부터 원사육실장이라면 운치굴 독라 자판기로 전락했을 것인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들실장이었던 데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모를 잃고 고아 자실장으로 목숨을 연명하다가 친절한 인간씨를 만난 덕에 사육실장으로 잠시 있었을 뿐인데스. 그래서 공원에서 뭘 해야 살아남을지 정도는 어릴적에 대충이나마 이해하고 있었기에 슬픈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데스."
여자는 가만히 성체 실장석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 실장석 또한 자신마냥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그리고 사랑하던 대상을 강제로 떠나보내야 했던 자신과 어쩐지 겹쳐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실장석 따위와 동일시되는 자신의 마음이 어쩐지 불쾌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런 마음을 선뜻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 아이도 스스로 한 말대로라면 어릴적에 부모를 잃고, 자신을 구해준 주인을 만나 기뻐했지만, 그 주인에게도 버림받아 다시 들실장으로서 살아왔다는 것인데, 그 모습이 마치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이 여자는 살짝 서글퍼져서 눈물이 났다. 여자는 눈가를 살짝 손가락으로 훔쳐 눈물이 보이지 않게 하고는, 성체실장에게 입을 열어 아까의 질문을 다시 했다.
"그래서, 뭔데? 왜 나에게 접근한거야?"
성체실장은 그런 질문에 잠시 뭔가 먼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대뜸 여자에게 되묻듯이 대답했다.
"인간씨가 너무나도 불안해 보이는데스. 요 며칠간 계속 봤지만 그랬던데스. 그래서 온 데스. 그냥 지나치기엔 옜날 주인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서 어쩔수 없었던 데스. 주인님이 언젠가 하던 말이 있었던 데스. 불행은 나눌수록 덜 불행해지고, 행복은 나눌수록 더욱더 기뻐진다고 했던 데스. 그러니 인간씨도 뭔가 불행하다면 와타시에게라도 말해보시는 데스~"
그 말을 듣자, 여자는 속으로 살짝 어이가 없었다. 실장석이 보기에도 얼마나 딱하고 불안해 보였으면, 이렇게 다가와서 고민을 이야기해 보라고 접근해 온다는 건지, 여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자신이 그정도로 상심해 있는 동안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려고 접근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여자는 실장석이 말한 그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이혼한 후, 집과 많은 위자료 덕분에 사는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자신이 처한 불행에 대해 이렇듯 진지하게 접근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을 탓하기만 했을 뿐이었기에 여자는 그 대상이 비록 실장석에 불과할 지언정, 이렇게 다가와서 불행을 나누자고 말이나마 해주는 따듯함에 그저 할 말을 잊었다.
그렇게, 한명의 이혼한 아녀자와, 성체실장석의 기묘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달이 가고, 날이 가는 내내, 가을의 계절이 고즈넉히 몰려오도록, 매일 정오, 같은 장소에서, 한명의 여자와 한마리의 실장석은 잠시 인사하듯 만나 대화하고, 서로의 불안을 덜어내곤 했다. 여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딸과,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실장석은 자신의 삶에 대해 여자의 말에 따라 조금씩 과거를 덜어내 지우듯이 대화를 조곤조곤 나누곤 했다.
둘은 그렇게, 한 계절을 지나면서 제법 안면을 틔우고, 서로가 서로의 고민을 나누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여자는 어느덧 자신의 인생사를 자포자기하듯 실장석에게 모두 털어놓았고, 실장석 역시 자신의 옜 주인과의 과거와, 이 공원에 버려졌던 때의 크고작은 일들을 여자와 함께 나눴다. 둘은 어느 사이엔가, 인간과 실장석이 아니라, 같은 아픈 기억을 공유하는 동료 같은 것에 가깝게 되어 있었다. 여자는 이 성체실장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절대로 할 리 없는 말을, 여자는 성체실장과 만난지 한달여 쯤 지났을 때에, 자신이 이혼을 통보받았던 그때의 그 전황을 남일 이야기하듯이 슬그머니 꺼내고야 말았다.
"참 멍청하지? 이제와서 후회해본들 소용이 없지만.... 이제 나에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어졌어. 참 허무하지."
"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바보같은거야. 너무나 바보였지."
그러자, 그것을 내내 지켜보던 성체실장은 어쩐지 그 모습이 주인이 자신을 버리기 전날 밤에, 전 주인이 짓던 표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그것을 부정하듯 소리질렀다.
"아닌데스!!"
성체실장은 여자가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보는 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큰 소리로 외치듯이 말했다.
"그건 아닌데스!! 바보는 그 사랑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인데스!!"
"뭐?"
"나는 인간씨의 말을 전부 이해하진 못하는데스! 하지만 그래도 인간씨가 자신의 자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랑했는지는 와타시의 돌씨에도 전해지는데쓰우!! 그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씨가 나쁜데쑤!!"
그 말을 들은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을 뻔했다. 여태까지 자신의 마음을 아무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부모도, 남편도, 주변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한 행동의 의도를 이해하고 헤아려준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그저 실장석에 불과한 생명체가, 한갓 인간에게는 굴러다니는 돌멩이 이하로 보여지는 하찮은 실장석이 유일하게 자신의 참된 의도를 이해하고, 동의하며, 같이 울분을 토해내주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여자는 그만 감동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감동의 물결에 떠밀린 채 주위를 인식하지 못하고 기쁨에 겨워 있을 때, 성체실장은 단언하듯이 외쳤다.
"와타시에게 생각이 있는데스!!"
성체실장은 뭔가 결연한 각오를 한 듯, 여자를 바라보면서, 힘있게 단어 하나하나를 힘주어 말을 이었다.
"와타시는 인간씨의 남편상이 될 수는 없는데슷!! 하지만 자라면 가능한데스!!"
"뭐어?"
여자는 순간, 코앞에서 터지는 분충 발언에 이 실장석에 대한 평가를 시급히 재고해 보려고 했다. 실제로도 정이 싹 다 사라지는 소리기는 했다. 사육실장도 아니고 인간의 자라니.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하고 여자는 내심 정색하고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신의 불행에 대한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이렇게 며칠동안 끈기있게 들어 주고, 그리고 그것에 내심 동의하며 격분한 것을 돌이켜봤을 때, 그것은 분충발언이라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불행에 진심으로 동의했기에 내뱉은 소리일지도 모른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와타시는 총명한 실장석인데스!! 인간씨는 잘못하지 않은것인데스!! 마마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게 분충인데스요!!"
어느 사이엔가, 자신에 대한 호칭이 마마로 바뀐 것에 어이가 없었지만, 적어도 이 실장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고아자실장으로 반생, 잠시 사육실장이 되었지만 또다시 버림받아 반생을 살아온 그 실생은 인간으로 치면 부모를 잃고, 사랑하는 이도 잃어버린거나 같았다. 자신도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에게는 의절당했고, 사랑하는 남편은 자신을 떠났다. 그녀는 사랑했기에 그랬다고 끊임없이 항변하고 이해해주길 바랬지만, 남편도 부모도 그 어떤 누구도 그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여기 있는, 흥분해서 자기가 무슨 소릴 하는지도 모를 터인 바보같은 실장석 하나를 빼고 말이다. 여자는 문득, 자신의 상황과, 실장석의 상황을 완전히 겹쳐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나와 그녀는 사람이냐 실장석이냐는 것만 빼면, 사실상 똑같은 처지이자,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공유하고 공분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 유일한 상대가 고작 실장석이란 이유로, 무시하고 가소롭게 대하기에는 여자는 너무나 오랫동안 외로움에 지쳐 있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고독을 너무나 오랫동안 보낸 여자는 실장석이 내뱉은 그 말을 결코 가벼이 여기며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자는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대답을, 천천히. 그리고 싱긋 하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그래. 뭐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인생.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여자는, 아니 미영이는 허가의 대답을 해주면서, 문득 스치는 영감을 느끼고, 그것을 구슬려 머릿속에서 풀어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딸을 데리고 떠났다. 사랑해 마지않는 자식을 빼앗기고는, 그저 여태까지 비탄에 빠져 살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제 여자는 그런 과거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일개 동물이, 실장석이 자신의 가치와 사랑을 이해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에 대해 최소한 보답해야만 했다. 사랑으로서 말이다. 미영씨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차피 모두가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모두가 내가 틀렸다고,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직접 내가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었고 자식을 위하는 길임을 스스로 증명하면 될 것이었다. 남편에게 애원할 게 아니라, 직접 수치로 증명된 것을 내보였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결과가 될 수도 있었다고, 여자는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만약, 실장석을 사랑으로 가르쳐서, 진심으로 사랑의 결과가 어떠한지 직접적인 결실로 보여준다면, 그래서 자신의 사랑이, 생각이 옳음을 객관적으로 보여줄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때는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는것은 무엇보다도 당연한 말이었다. 물론 그 사랑을 주는 대상이 실장석이라 해도.
미영씨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환한 미소로 웃음을 지으며, 성체실장석을 안아들어 가슴에 껴안듯 들어올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미영씨는 성체실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말고는 없지? 설마하니 새끼가 있다거나 하는건 아니지?"
"데...뎃.. 자들은....어. 없는데스. 자를 밴 적도 없는데스"
"그렇지? 후훗. 그러면 됬어. 앞으로는 주인이 아니라 마마라고 부르렴."
"알겠는데스 마마~"
성체실장은, 다시한번 원사육실장에서 사육실장으로 올라온것에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일 뿐, 처음에 여자가 새끼가 있냐고 물을 때만 해도, 성체실장은 기쁨은 커녕 일가실각의 두려움에 떨었다. 그도 그럴것이, 성체실장은 인간씨에게 자신이 자가 되겠다는 분충발언을 내뱉었다는 것을, 말하고도 한참이나 지나고서야 그 과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성체실장에게 있어서 자가 되어주겠다는 말은 딱히 자신이 분충이라서 뱉은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자신과 겹쳐 보이는 인간씨의 불행이 너무나도 감정이입이 된 나머지 우발적으로 내뱉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을 인간씨가 이해해 주리라곤 실장석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성체실장은 자신에게 새끼가 있냐고 여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말했을 때, 저도 모르게 새끼를 가지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여자의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정신나간 분충발언에 가까운 소릴 했다는 사실때문에, 여자의 질문은 마치 일가을 송두리째 실각시키기 위한 것으로밖엔 들리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인간씨가 한 말은 그녀의 예상을 한참이나 뒤엎은 일대 격변이었다. 인간씨가 자신을 마마라고 부르라고 말해줬던 것이다. 자신의 분충발언에 가까운 정말로 실례되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인간씨는 화내지도 않고, 정말로 따듯하게 주인사마 대신 마마라고 부르라고 말해주었고, 이것은 친실장의 행복회로를 한계까지 돌리게 만드는 촉매가 되었다. 친실장은 너무나 기뻐서, 그것을 사육실장이 되었다고만 생각하고 두번다시 없을 자신의 행운에 크게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일반적으로 사육실장이 되는 것은 들실장, 그것도 고아자실장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질 수준의 행운이건만, 그것도 모자라서 다시 원사육실장이 사육실장으로 거둬지는것은 그야말로 로또나 다름없는 엄청난 일이었다. 그렇기에, 친실장은 이 엄청난 행운 앞에서 그만 행복회로를 있는대로 돌렸다. 아니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으로 치면 백수로 지내다 로또를 두번이나 1등 당첨된 거나 같은 수준이니, 정신을 제대로 유지하는게 더 이상하리라. 하물며, 행복회로가 본능적으로 발동되는 실장석은 오죽하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친실장은 자신이 자가 있다는 사실을 주인사마. 아니 마마에게 다시 말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떨어진 행운을 붙잡느라고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깡그리지워버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안고 가는 마마와 똑같이, 행복과 사랑에 가득 찬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한명의 여자와, 한마리의 실장석은, 서로가 서로를 통해 목적과 이해를 동시에 느끼면서, 골목길을 돌아가 사라졌다. 여자는 어딘가 비틀린 모정을 가졌다는 것을 모르고, 실장석은 인간씨가 어딘가 비틀린 모정을 말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서로가 서로에게 밝은 미래만을 떠올리면서, 그녀들은 정말로 행복하게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갔다. 갑자기 다가온 행운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하지만, 그것이 그저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친실장이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실장은 애초에, 인간씨가 말했던 자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저 자식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훈육하고 아끼는 그런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랬기에 그런 사랑을 거부하고 이해는 커녕 떠났다는 사실에 같이 분노를 터뜨렸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씨가 자를 잃은 슬픔을 달래주고 싶은 마음에 그만 인간씨의 자를 자청했던 것이었다.
처음 인간씨의 집에 들어가서 삼사일 정도 같이 지내는 동안은 그저 행복했다. 친실장은 처음으로 인간씨를 마마라고 부르면서 마치 인간씨의 아이처럼 여자에게 응석을 부렸고, 여자는 그걸 정말로 진짜 자기 자식인양 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매일매일 아침마다 아기를 보살피듯 품어주고 웃어주었다. 친실장은 정말로 다시 한번 더 사육실장으로 돌아온 행운을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었다. 가끔, 골판지 둥지에 내버려 둔 채 남긴 자신의 아이들이 생각나긴 했지만 친실장은 그 기억을 재빨리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물론 친실장은 나름 모정이 깊은 개체에 속하는 편이었고, 그랬기에 가을에 낳은 추자임에도 보존식으로 만들지 않고 제법 몇일 동안 정성을 들여 키우기도 했지만, 그것도 인간씨에게 거두어져서 다시 사육실장으로 돌아가는 행운 앞에서는 부질없는 옛 기억에 불과했다. 사육실장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금기 중 하나가 새끼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미 전 주인에게 버려질때 뼈저리게 깨달은 원사육실장이었던 친실장은 두번은 없다는 각오로 간단히 새끼들이 있었다는 기억을 머릿속에서 깔끔히 지워 버렸다.
혹자는 이것을 보면서 실장성의 모성애는 결국 값싼 것이며 모성애 따윈 없는 천한 존재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어느 실장석에게도 사육실장의 기회가 두번이나 찾아오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었다. 사람들 조차도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안면몰수하고 친구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는 일이 왕왕 있는 판국에, 그야말로 자연계 생태계의 밑바닥에 있는 실장석이라면 더 말이 필요하겠는가? 어찌보면 친실장으로서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아끼며 키웠던 자식을 꺼리낌없이 버릴 정도로 엄청난 행운이었다. 생각해 보라. 이 행운을 걷어차고 아이들을 우선시해본들, 조금만 빗나가면 그대로 일가 실각이거나, 잘 해도 겨우내 굶주림에 지쳐 간신히 월동을 마치는 게 고작일 터였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자를 몇마리 정도는 가뿐하게 잃을 것은 뻔했다.
친실장은 생각했다. 어차피 자들은 겨울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었다. 자신이 낳은 자들이 자실장이라면 그 노동력에 기대어 월동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었다. 허나 낳아진 자식들은 자실장이 아니라 엄지실장 네마리에 구더기가 셋이었다. 아마도 주인에게 버려져 원사육실장으로서 들에서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가 영양마저 충분하지 못한 탓이 컸으리라. 그래도 친실장은 우지챠를 뺀 나머지 엄지들을 자신의 자로서 받아들여주고, 버리지 않고 여태까지 키워주긴 했지만, 그 가족에는 더이상 미래가 없었다. 친실장은 스스로 아이를 버리고 사육실장이 된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주인사마, 아니 마마와의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새출발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인간씨의 집에 들어온지 며칠이 흐르면서 친실장은 어딘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사육실장이 되었을 텐데, 인간씨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친실장이 여태껏 겪었던 수많은 실생 속에서도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해괴망측한 것이었다. 주인사마, 아니 마마는 집에 들어온 지 몇일만에 대뜸 코앞에 동그란 공을 두개 놓고는 입을 열었다.
"순아. 이거 몇개니?"
"두개인데스..? 왜 이런걸 물어보는 데스우..?"
그러자 여자는 씨익 웃고는, 이번에는 공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바닥에 쏟아붓고는, 다시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 공을 하나씩 바구니에 집어넣으면서 입으로 소리내서 세면서 넣어봐.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뭐인데스? 왜 이런걸 시키는지 모르겠는데스..."
"마마가 시키잖니? 착한 아이라면 말 들어야지?"
친실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머리 위로 물음표를 마구 띄우듯이 얼빵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마의, 아니 주인사마의 명을 어길수는 없었기에 친실장은 형형색색의 공을 하나하나 집으면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둘....셋.."
"넷...다섯...여섯...."
친실장은 하나하나, 천천히 공을 두손으로 집어들면서 바구니에 담으며 숫자를 세었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인간씨를 바라보았다. 인간씨는 자신이 천천히 공을 집어넣으면서 숫자를 세는 소리를 지긋이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것을 본 친실장은 무언가 마마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계속해서 공을 집어넣으며 숫자를 세었다.
"아홉...열.. 다했는데스!"
마침내 열개의 공 모두를 넣은 친실장은 마마를 올려다보면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인간씨는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공을 하나 더 꺼내준 다음, 그것을 바구니에 넣으면서 계속 세어 보라고 시켰다. 친실장은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얼빵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마마가 시키는대로 공을 넣으며 숫자를 말했다.
"하나"
그러자 인간씨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친실장에게 물었다.
"하나인거니? 바구니에 든 것은 하나가 아니잖니?"
"열개 하고 하나인데스. 틀리지 않은데스."
그 말을 들은 인간씨는 잠시 머리를 손으로 짚더니, 이내 바구니에 공 아홉개를 차례차례 순서대로 넣은 다음, 바구니 안의 공이 모두 몇개인지 말해보라고 친실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친실장의 대답은 아까와 같았다.
"열개 하고 열개인데스."
인간씨는 이제 알겟다는 듯, 친실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넌 숫자를 10 까지밖에는 못 세는 거구나. 그 이상의 숫자는 10을 몇번 했느냐로 받아들이는 거고. 저런,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네."
"......??"
인간씨, 아니 자신의 마마는 잠시 일어서서 어딘가로 가더니, 곧 한장의 종이를 가져와서 벽에 붙였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친실장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숫자를 배울 거야. 너는 10 까지 읽을 수 있나본데 그걸로는 한참 부족하단다."
"이게 뭐인데스? 숫자가 뭔데스?"
마마는 살짝 웃으면서 숫자가 뭔지 친실장이 이해할 수 있게 시간을 들여 말해주었다. 숫자는 갯수를 세는 단위이고, 표시된 것은 숫자를 표시하는 글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친실장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나마 1부터 10 까지는 어찌어찌 알아먹을 수는 있었다. 자신이 여태 한개 두개 셌던 것이 1과 2라는 것을 이해하는것은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그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개념을 머리에 두드려 박느라 어색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마마가 12를 가리키고 말해보라고 했을 때, 친실장은 그것을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말했다.
"하나하고 둘인데스."
"아냐. 열개 다음에 두개잖니. 그러니 둘을 합쳐봐. 열 하고 둘."
"열둘인데스?"
"그래 잘하잖니. 열두개야."
그래도 처음에는 비교적 화목한 가정의 아이와 엄마처럼 지나갔다. 매일 저녁때마다 마마가 종이를 펼쳐놓고 공부를 시켰지만, 처음에는 친실장도 이것을 새로운 놀이의 일종으로 여기고 비교적 즐겁게 참여하곤 했다. 마마 역시 그냥 공부만을 시키는 것은 아니었고, 나름 그날의 목표를 달성하면 보상으로 그날은 같이 식탁에서 인간씨의 음식을 나눠 먹거나, 인간씨와 같이 잠들 수 있는 실장석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을 주곤 했기에 친실장은 더욱 더 마마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매일매일의 공부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차츰차츰 숫자를 공부하면서 단위가 올라갈수록 친실장은 점점 한계에 부딪치곤 했다. 일단 열개에 하나가 두개를 합쳐 열하나(=11) 열개에 다섯개가 두개를 합쳐 열다섯(=15)라는 것은 그나마 친실장으로서도 어렵사리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숫자의 범위내에서 그저 개념만이 어색할 따름이었으니, 새로운 개념만을 받아들이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20에 이르자 친실장은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20을 세보라고 했을 때, 친실장은 기존의 개념만 가지고서 열개에 열개가 있으니 열열개라고 했다가 마마에게 한대 맞았다. 주먹으로 맞았다는 것은 아니고, 싸리빗자루에서 한올 뽑아낸 싸리줄기로 회초리 맞듯 한대 후려친 것이었지만, 그 아픔은 친실장을 자기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펄쩍 뛸 만큼 따갑고 아팠다.
그리고 맞은 곳을 짧은 팔로 부비며 고통을 견디는 친실장에게 마마는 전에 없이 엄한 목소리로 친실장에게 입을 열었다.
"스물이잖니! 20이면 스물이잖아! 열열개는 뭔데!!"
"이상한데스. 열개에 열개인데 왜 스물인데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친실장은 몰랐다. 간신히 스물이 20이라는 것을 억지로 뇌에 쑤셔넣었을 무렵, 친실장에게 다가온 그 다음의 숫자는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마마가 30이 뭐냐고 물었을 때, 친실장은 그만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스물하고 열개니 스물열이라고 했다가 정말 비내리는 날에 먼지나도록 마마에게 두들겨 맞아야 했다. 물론 휘두르는 것은 싸리빗자루에서 뽑아낸 한가닥의 싸리줄기로 만든 회초리였지만, 인간보다 여린 실장석의 피부에는 마치 사람이 가죽채찍으로 얻어맞은 듯한 자국이 죽죽 그어져 나갈 정도로 엄청나게 가혹한 체벌수단이나 다르지 않았다. 한참을 싸리줄기로 채찍 맞듯 두들겨 맞은 친실장은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빌었고, 가까스로 매질이 그친 친실장에게 마마가 말해준 정답은 친실장의 영혼을 송두리째 탈곡기로 두들긴 듯한 충격을 주었다.
"잘 들으렴! 30은 스물열이 아냐!! 서른이야!! 서른!!"
"뭐가 어떻게 되는 거인데스. 20은 스물인데 왜 30은 서른인데스?? "
"모르겠으면 외워!! 내 아이라면 당연히 할 줄 알아야지!"
친실장은 왠지 너무나 억지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마를 거역할 수는 없었기에, 마마의 가르침대로 외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일반적인 실장석과는 달리 머리가 나쁘진 않았기에 외우는 것은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친실장은 외우면 외울수록, 도대체 이 숫자의 단위가 어떻게 굴러가는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스물 뒤엔 서른, 서른 다음엔 마흔이었다. 그리고 50에 가서는 난데없이 한글자인 쉰이 되고, 다시 60에 가서는 두글자인 예순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일흔, 여든, 아흔이 되더니, 100에서는 다시 한글자인 백이 되는 것이었다. 친실장은 도무지 이 순서가 뒤죽박죽인 것처럼 느껴져서 억지로 우격다짐으로 외우기는 했지만 전혀 이해를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씨. 그러니까 미영씨가 단위를 옛날 식으로 불러서 생긴 일이었다. 보통 학교에서 가르칠 때는 순한글이 섞인 옛날 단위를 피한다. 왜 그러냐 하면 어린 아이들이 단위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에, 학교에서 가르칠때는 10, 20, 30, 40을 십,이십, 삼십, 사십 하는 식으로 누가 봐도 단위를 파악하는데 일관성 있는 한자 발음으로 가르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미영씨는 숫자 단위를 가르칠 때, 옛날 식으로 순우리말 발음으로 가르쳤기에 애초에 이런 혼란이 가중된 것이련만, 미영씨는 그저 이 간단한 숫자 단위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는 자신의 수양딸이 그저 괘씸하고 못나 보여서 틀릴때마다 혹독하기 그지없는 체벌을 가하곤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수양딸은 연신 데갸아악 비명을 지르며 용서를 구하곤 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자, 친실장은 그동안의 수업의 성과를 자랑하듯 1에서 1000까지 자유롭게 숫자를 셀 수는 있었다. 여전히 왜 그렇게 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마마가 만 단위까지 가르쳤다면 또다시 피의 채찍질을 당할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마마가 천 단위에서 숫자 단위를 가르치는 것은 그만두었기에 친실장은 간신히 마마의 훈육을 빙자한 매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친실장에게 있어서 진정한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천까지의 숫자를 자유롭게 가리키는 대로 발음해내는 것을 확인한 미영씨는, 이번에는 수양딸에게 한가지 테스트지를 내밀었다.
"이게 뭐인데스..?"
친실장이 본 테스트지에는 2+1 = 이라거나, 10+2 = 같은 익숙한 숫자 단위 사이에 처음보는 희한한 기호가 가득했다. 마마는 그런 친실장을 사랑스런 얼굴로 바라보면서, 예전에 처음 숫자를 가르쳐 줄 때처럼 부드러운 어조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여기 + 표시 보이지?"
"봤는데스."
"이건 덧셈 표시야."
"덧셈이 뭐인데스?"
그러자 마마는 공 두개를 건네 주면서 말했다.
"자 이게 몇개야?"
"날 뭘로 보는 데스. 두개잖는 데스."
"그래 둘이지. 여기에 이렇게 공을 하나 더 주면, 몇개니?"
"그야 세개인데스."
"그래 그게 바로 덧셈. 더하기 라는 거란다."
마마는 다시 미소를 짓고는, 방금전에 준 테스트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2+1 이란건 조금 전에 내가 너에게 공을 주었던 과정이라고 생각하려무나. 그럼 이해가 될거야. 2+1 옆의 = 표시는 그 과정의 최종 결과. 즉 답을 말하라는 의미지. 이해했니?"
"알겠는 데스 마마. 그럼 2+1= 의 답은 셋인 데스?"
그러자 미영씨는 정말로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면서 수양딸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기쁨에 눈을 가늘게 뜨고 텟츙~ 거리는 친실장을 향해 말했다.
"아주 잘 했어. 순이야. 그럼 다음을 볼까?"
순이라고 불린 친실장은 마마가 간만에 해 준 칭찬에 그만 너무나 기뻐서 운치를 지릴 뻔 했다. 하지만 그것을 참아내고는 마마가 가리키는 것들에 하나하나 정답을 말하기 시작했다. 10+2= 열둘. 20+10= 서른. 친실장은 미영씨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르게 학습해 가고 있었다. 숫자를 천까지 이해하게 하는데는 한달이나 걸렸지만, 한번 단위를 이해하자 생각보다 능숙하게 덧셈을 해내고 있었다. 내친김에 뺄셈도 가르쳐보니, 덧셈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원리를 이해하고 답을 내기 시작했다. 10-2=여덟, 20-8=열둘. 친실장도, 미영씨도 상상이상의 결과를 눈앞에서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친실장은 처음으로 느끼는 마마의 기대감에 부응하는 자신의 만족감을, 미영씨는 자신의 수양딸이 제법 빠른 진척을 보이는것에 기뻐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까. 기분에 휩쓸린 미영씨는 평소라면 천천히 단계적으로 수업 진도을 나갔을 터인데도 그만 수양딸의 성과를 확인해 보고픈 마음에 그만 한단계 더 난이도 높은 한가지 문제를 수양딸 앞에 내놓고 말았다.
"자. 이걸 풀어봐! 순이야! 풀면 오늘은 치킨이야!"
"치...치킨인데슷!! 무엇이든 던져보란 데스! 다 풀어주고 말겠는 뎃.....뎃...?"
치킨이란 소리에 흥분한 친실장. 아니 순이 앞에 떨어진 문제는 다음과도 같았다.
1500 + 200 = ?
언뜻 보면, 꽤나 쉬운 문제였다. 사실 문제를 낸 미영씨도 순이가 이것을 풀지 못하리라는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조금 헤메기는 할거고, 간만에 자릿수가 높은 문제니까 푸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정도는 십분 넘어갈 수 있을 터였다. 사실 저런 문제는 천까지의 숫자 단위를 이해하고, 덧셈 뺄셈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가정에서는 정말 코 안대고 풀 정도로 쉬운 문제였다. 사람이라면, 제대로 숫자의 단위를 배웠다면, 단 몇초. 길어봐야 십여초 내에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친실장, 아니 순이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20. 30. 100, 1000 은 친실장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넘사벽에 가까운 생전 처음 보는 감각이자, 개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장석 기준에서는 평생 가도 10 이상의 숫자를 셀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대개는 3 이나 4 정도 세는게 고작이고, 친실장처럼 10 까지 셀 수 있으면 매우 똑똑한 축에 드는 판이었다. 왜냐 하면, 10까지 셀수 있으면 그보다 더 많은 숫자를 셀 때 10이 몇개 있다는 것으로 더 많은 숫자를 헤아리는 것으로서 더 많은 숫자를 가늠할 수도 있어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잘해봤자 40~60개 정도에 불과했다. 아예 100 단위나 1000 단위는 실장석에게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세기에도 벅찬 숫자였다. 왜냐고? 한번 여러분들이 100 이나 1000단위에 대한 개념 없이, 그저 10 까지만 셀수 있다고 가정하고 1000 개를 세어서 기록한다고 해봐라. 10을 몇번이나 반복해야 가능할지 상상해 보란 말이다. 열까지 세고, 다시 열까지 세고, 또 열까지 세는 것을 백번 하는 것을 암산으로 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우리가 숫자를 셀 때 열까지 세고, 다시 열까지 세는게 일에서 천까지 세는것보다 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1에서 1000까지의 숫자 단위를 제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열까지밖에 못 센다면, 이 방법으로도 친실장이 셀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열번 반복하는 것 까지였다. 즉 100개.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다시, 100개를 만든 것을 다시 열번 반복하는 식으로 머릿속에서 암기한다고 생각해봐라. 아마 사람이라고 해도 머리가 빙빙 돌 판이었다.
친실장이 마마에게 복날에 개처맞듯 맞아가며 숫자 단위를 배울 때도 기실 그 숫자의 자릿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애초에 가르치는 사람이 한자 단위로 가르치는 바람에 직관적인 이해가 어려웠다는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친실장은 스물, 서른, 마흔, 쉰이라는 숫자의 단위를 자릿수 개념으로서 제대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우격다짐으로 단순히 폭력에 굴복하다시피 외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스물에 대한 인식부터가 10하고 10인것으로 이해하는 그야말로 실장석답게 이해하고 있는 거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숫자의 단위가 적을 때는 문제가 안 됬다. 10+2 는 이미 들실장때부터 이해하고 있던 범주라서 쉽게 답을 낼 수 있었고, 단위가 좀 올라서 20+10 도 그냥 머릿속에서 20은 열개 하고 열개니까 거기다 열개를 더한거니 열개 세번. 즉 서른이라고 답을 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아예 1500이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게 되어버렸다.
열개를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그렇게 열번해서 백이고, 그것을 다시 열개를 한번 두번 세번 네번...해서 열번을 또 해서 이백. 다시 그것을 열개을 한번 두번 세번 네번...해서 열번을 더해서 삼백번...이딴식으로 해서 열개를 열번한것을 또 열번을 해서 천이라고 인식하는 마당인데, 그조차도 일에서 열까지를 무한정 반복합산하는 진짜 노가다의 끝판왕 같은 편법으로 연산을 하고 있었기에, 친실장은 1500의 숫자를 이해하는 데만도 거의 1분 넘게 걸렸다. 그렇기에 마마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못푸는 거냐고 말하자, 친실장은 다급한 나머지 "풀수 있는데슷!" 하고 외치고는, 나머지 200을 또 같은 방식으로 세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한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두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세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네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다섯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여섯번 하나 둘 셋......."
"잠깐만. 기다려봐."
"뎃?"
친실장은 스스로 생각하며 암산한 내용을 입밖으로 저도 모르게 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채, 갑자기 계산을 중지시킨 마마를 쳐다보았다. 마마는 뭐랄까, 상당히 복잡한 표정으로, 분노가 절반, 황당함이 절반 섞인 표정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말한거 다시 말해봐."
"데스?"
"맞을래? 방금전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한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두번 이렇게 말했잖아? 그게 뭔 소리야?"
친실장은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 되물었다.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은 데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너 설마, 숫자 단위 셀때도 그렇게 센 거냐? 응? 그런 거야?"
"..그.. 그건. 그게 아닌데스. 아닌데...데걋!"
친실장이 무어라 변명을 입에 담기가 무섭게, 촥 촥 촥 하고 마마의 회초리가 파공음을 울리면서 친실장의 머리와 팔에 내리치듯 휘감겨, 굵고 붉은 채찍자국을 내듯 회초리 자국이 났다. 친실장은 그만 너무나 아파서 소리를 질렀지만, 그럴수록 마마의 회초리를 더욱 더 강하고 빠르게 친실장의 온 몸을 두들기듯 내리쳐졌다.
"데갸아아악! 아파! 아픈데스 마마아!!"
하지만 그런 비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눈에 불이 켜진 마마는 회초리를 더욱 더 빠르게 휘둘러 사정없이 친실장의 몸 위로 휘둘러갔다. 그리고 그렇게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는 친실장에게 더욱 더 회초리질을 하면서 마마는 분노에 차서 외쳤다.
"닥쳐! 순이 너 잘도 마마를 속였구나!! 날 속였어!! 내가 그렇게 가르치던? 어!! 그렇게 가르쳤냐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마마는 회초리질을 잠시 멈추고는 방에 가서 플라스틱 자를 갖고 나오더니 그것으로 가차없이 친실장의 엉덩이와 등짝을 마구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휘웅 휘웅 소리와 함께 짜악 짜악 하고 찰지게 살에 즈려박히는 타격에 친실장은 그만 체면 불구하고 펑펑 울면서 필사적으로 마마에게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마의 폭행은 그치지 않고, 더욱 더 사정없이 몰아쳐졌다.
"마마! 죽는데샤! 아픈데샷!! 이런거 사육실장이 아닌데샤!! 싫은데샤아악!!"
"넌 사육실장이 아냐! 내 수양딸이라고! 수양딸이라면 이정도는 해내는게 당연한 거란 말이야!!"
"와...와타시는 이런거 못하는 데샤!! 이건 자가 아닌데샤!! 사육실장도 아닌데샤아아--"
친실장은 두들겨 맞으면서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말을 외치고 또 외쳤다. 하지만 매타작은 그치지도 않았고, 약해지기는 커녕 점점 더 심해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친실장은 거진 일곱 시간 넘도록 마마에게 사랑의 매를 오지게도 얻어맞았다. 감히 마마를 속이고 알아들은 척, 배운 척 했다는 이유로 완전히 개떡마냥 널브러져 의식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간씨, 아니 마마였던, 이전에도 마마였다던 여자의 본모습을 친실장은 너무나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두들겨 맞자마자 친실장이 본 것은 자신의 위석이 적출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친실장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수양딸이라면 이정도는 해야 한다는 이유로 실장석이 보기에는 온갖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두들겨맞고 학대당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나마 자신이 얼렁뚱땅 편법으로 넘겼던, 숫자 단위에 대해서 혼내는 것이었기에 친실장은 그나마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마마의 사랑이라며 애써 참고 견딘 자신에게 상이라며 주어진 것은 마마와 같이 잔다거나, 마마와 같이 맛나맛나한 인간의 밥을 같이 먹는 그런 따스하고 화목한 게 아니라, 입에 대기조차 힘들 정도로 쓰고 떫은 새카맣고 따뜻한 물이었다. 마마는 그게 몸에 좋은 보약이라며 주었지만, 그것은 친실장. 아니 실장석에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통. 즉 벌이나 다름 없었다. 원래 달고 감칠맛 나는 것에 특화하다시피 입맛이 그렇게 되어 있는 생물이 실장석이다. 그런 생물에게 쓴맛은 도저히 삼키기조차도 어려운 것이었지만, 매가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안 먹거나 뱉기라도 하면 무자비한 사랑의 매에 친실장은 그저 억지로 그것을 삼켜야만 했다. 그나마 그걸 얌전히 다 마시고 나면, 마마가 그때서야 잘했다며 사탕을 하나 쥐어주긴 했지만, 이미 한약의 쓴 맛을 질릴대로 맛본 혀는 모처럼 들어온 사탕의 단맛을 거의 느끼지도 못할 정도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숫자 단위를 다시한번 매맞으며 배울 때는 그래도 아직은 나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 때는 잠이라도 충분히 늘어지게 잘 수 있었고, 매일 저녁에 주어지는 서너시간의 마마의 공부시간만 잘 해내면, 나머지 시간은 그나마 충분히 쉴 수도 있었고, 밥도 정말 사람이 먹는 것과 동일한 것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친실장도 그것을 일종의 인내의 보상으로 삼아서 마마의 혹독하고 엄격한 공부시간과, 억지로 먹이다시피 하는 쓰디쓴 물을 마시는 것을 버틸 수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곧 덧셈과 뺄셈을 다시 가르칠 때가 되자, 같은 문제가 다시금 친실장을 괴롭혔다. 이제 숫자의 단위, 자릿수는 충분히 친실장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숫자의 단위를 아는 것과, 덧셈을 정확히 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물론 이제는 친실장도 무지막지한 폭력의 효과로 인해서 숫자를 만 단위까지도 능숙하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덧셈을 이해함에도 그것을 정확하게, 사람의 아이처럼 빠르게 해내는 것은 실장석에게는 아주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친실장의 일과는 정말로 미쳐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강제로 머리가 좋아지는 한약을 먹고, 졸리지 않기 위해서 포만감이 들지 않는 환약 몇알로 아침을 때우고는 그대로 하루종일 밥먹는 시간 말고는 공부만 해야 했다. 테레비전에는 오직 덧셈 뺄셈을 가르쳐주는 비디오만을 틀고, 1주 동안 문제집 하나를 주고는, 그것을 매주마다 채점받아야만 했다. 만약 마마가 정한 가이드라인 아래의 점수라도 나오면 그때는 정말 죽을때까지 두들겨맞고, 다시 활성제로 되살아나는 짓거리를 몇번이고 당해야만 했다. 게다가 매일 오후마다 기습적인 쪽지시험을 빌미로 학대에 가까운 폭행이 저질러지기 일쑤였고, 식사는 무조건 20분 내에. 심지어 캠 카메라를 확인해서 졸거나 딴짓하면 학대파가 무색할 정도의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는 것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친실장은 위석 파킨 직전에 몰려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몇번인가는 있었다. 그 때마다 친실장은 그저 위석이 파킨하기만을 바라면서, 이 지옥에서 죽음으로서 벗어나기만을 바랬다. 그러나 마마는 그럴때마다 정말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것마냥 비통하게 울면서, 위석이 담긴 통안에 활성제와 고급 영양제를 가득 채우고는 인근에 있는 실장병원에 달려가 한번에 수백만원이 넘는 소생처리를 하곤 했다. 그렇게 병원의 헌신적인 조치로 친실장은 파킨하지 않고 되살아났고, 그때마다 마마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사랑하는 자식을 걱정하는 마마로 돌아오곤 했다.
그저 잠시 동안만.
그리고 몸이 나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엄격하고 혹독한 훈육을 하는 자신의 수양딸이 누구보다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아이의 장래를 염려하며 교육에 열을 쏟는 악마로 변했다. 그렇게 친실장은 스스로의 실수와, 착각에 대한 대가를 온몸으로 치르면서, 겨울 내내 그런 과정을 몇번이나 반복해야만 했다. 파킨하지 않는 자신의 위석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읇는다 했던가. 이 집에 오고나서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을 맞이할 무렵에는 친실장도 그동안의 교육의 성과를 본 듯, 다소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으로, 마마가 자칭 피눈물을 흘리며 사랑의 매를 들은지 수개월만에 친실장은 비로소 마마가 생각한 가이드라인에 간신히 아슬아슬하게나마 턱걸이를 할 수 있었다.
"해...해낸 데스...."
친실장은 자신이 푼 테스트 용지와, 옆에 놓인 타이머를 보면서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총 합계 문항 20개를 단 300초. 그러니까 5분 이내에 푸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친실장은 채점하는 마마의 손을 보면서 잠시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지만, 마마가 100 이라는 숫자를 테스트 용지에 그려주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여태껏 마마가 자신을 훈육한답시고 무자비하게 때렸던 것도 잊고, 그만 쪼르르 달려가서 마마의 품 안에 어울리지 않게도 다 큰 성체실장의 몸으로 마마를 힘껏 껴안으며 말했다.
"마마! 해낸 데스!! 정말 마마 덕분인 데샤~! 기쁜데스! 기쁜데스~"
"나도 널 믿었단다! 정말 대단하구나! 잘했다. 잘했어요!"
"이제 끝난데스! 너무나 길었던 데스으으~ 드디어 끝이 난거인 데슷!"
"..............무슨 소리니? 이제 겨우 덧셈 뺄셈을 익혔는데. 아직 곱셉과 나눗셈이 남았지 않니?"
"데...데스? 곱셈이 뭐인데스?"
그러자 마마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 그렇구나. 아직은 곱셈이 뭔지는 잘 모르겠구나? 곱셈이란 건 말이지, 사칙계산 중 하나란다. 사칙계산은 니가 여태 배웠던 덧셈. 뺄셈과 더불어서 곱셈이랑 나눗셈이 있거든. 여기서 곱셈이란 걸 좀 쉽게 설명하면 말이야, 예를 들어 이렇게 2x3 이라고 한다면, 2개씩 모은 묶음이 3개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란다. 이걸 좀더 알기쉽게 정리하면 이렇게 될 거야."
마마는 어느사이엔가 가져다 둔 매직 칠판을 펼쳐놓고 계산식을 쓱쓱 마커펜으로 그려갔다. 그러자 거기엔 덧셈 뺄셈을 간신히 마스터한 친실장의 눈으로도 대략적으로 이해할만한 것이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되는 거지. 2x3 = 2+2+2 =6 인 셈이야. 여기서 2는 곱해지는 숫자이고, 3은 곱하는 숫자. 그리고 6은 곱해지는 수와 곱하는 수의 곱. 즉 곱셈이란다. 하지만 이렇게 덧셈의 반복 회수를 통해서 곱셈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처음 배울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렇게 할 뿐, 사실은 다른 방법을 배워야 하거든?"
"다...다른 방법....인...데스..?"
친실장은, 마마가 하는 설명의 반의 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벌어질 일들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마마가 가르쳐 주는 숫자 단위와 덧셈 뺄셈을 완벽하게 이해하는데만도 실장석 기준으로는 매우 긴 시간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은 두번다시 겪기도 끔찍한 것들이었다. 사랑한다며 무자비하게 때리고, 학대하고, 매일 혀가 돌아버릴 정도로 쓴 약을 마시면서, 잠도 거의 못자고 놀지도 못한채 진종일 외우고 알지도 못하는, 실장석 입장에서는 도대체 그딴거 배워서 어디다 쓰겠나 싶을 정도로 의미 없는 것을 익히는데만 하루 종일 바치다시피 하는 끔찍한 생활이 이제서야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더 있다는 사실에 친실장은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고만 싶었다. 게다가 그게 한개도 아니고 두개나 더 있었다. 곱셈과 나눗셈. 그게 뭔지는 몰라도 덧셈과 뺄셈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과정을 겪어야 할 것임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옆에서 마마가 계속해서 무언가 곱셈이란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지만, 친실장은 곱셈이란 것을 또 배워야 한다는, 또다시 그 끔찍한 학대를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렵고 끔찍하기만 했다. 그렇기에 마마의 정성어린 설명은 전혀 친실장의 귀에 와닿지 않았다. 그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면서,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안 돌아갔던, 아니 돌릴 틈도 없었던 행복회로를 돌림으로서 다가올 불행의 전조를 조금이라도 피해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말이지. 곱셈을 제대로 배우려면 이걸 외워야 한단다. 그게 뭐냐 하면...구구단이란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행복회로를 돌려 현 상황을 도피하려고 했던 친실장의 시도는 헛되이 끝났다. 눈앞에 펼쳐진, 마마가 구구단이라며 펼쳐놓은 끝없이 펼쳐진 숫자의 대열에, 친실장은 컥 하고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또 다시 한번, 숫자 단위를 익히던 시기의 악몽같은 기억이 되살려지면서 빈약한 행복회로는 팍 하고 전구 터지듯 부서져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제, 정신적 충격을 막아낼 유일한 방파제도 없어진 친실장은 그만 눈앞이 새카매지는 것을 느끼면서, 모든것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친실장은 그렇게 몇초간, 제자리에 선 채로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팩 하고 뒤로 나자빠져서는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고, 이내 경련을 일으키면서 입가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어? 어어? 순아! 순이야! 왜그래 순이야!!"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오락실겜이던, 피시겜이던 간에, 정말 피나는 연습과 고생 끝에, 모든것을 이겨내고 모든 위기를 벗어나 드디어 엔딩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지금까지의 상황은 연습이었다. 이제 다시 처음부터 본편을 시작하자' 라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미치고 팔딱 뛸까 안 뛸까를 상상해 보라. 어떻겠는가? 만약 게임할때 그딴 상황 만나면 당장 그자리에서 키보드를 박살내고 싶어질 정도로 화가 나고 절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하물며 그것이 게임도 아니고 눈앞에 닥친 현실이라면 어떻겠는가? 친실장의 상황이 딱 그짝이었다. 마마가 가르치는 것을 필사적으로 따라잡고, 못하면 무지막지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든 드디어 마마의 칭찬을 받고 테스트에 합격했는데, 잠시도 쉴 사이도 없이 바로 다시 그것을 처음부터 해야하는, 그것도 이전보다 더 어려워보이는 것을 다시 해야하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라. 그건 마치, 사람으로 치자면 수능을 두번 연속으로 치뤄야 하는, 아니 군대를 겨우 제대했는데 아시발꿈 하고 다시 일병부터 시작하더니 거기가 강원도 최전방이라는 것과도 같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사람도 그러할진대, 친실장의 정신은 어떻겠는가. 그야말로 멘탈이 붕괴하는 수준의 엄청난 충격을 받은 셈과도 같았다.
친실장은 그야말로 연속으로 정신적 충격이 거듭된 탓에 그대로 정신줄을 놓고 까무룩 의식이 저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의식이 서서히 날아가 없어지는 와중에도 친실장은 이번에야말로 파킨해 달라고, 돌씨에게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의식을 잃는 그 순간까지.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그리고 그 간절한 소망이 신에게 닿기라도 한 것일까. 본래라면 위석적출을 하여 고영양 에너지 용액에 담가둔 위석은 어지간해서는 거의 위석이 부서질래야 부서질 수가 없는게 상식이건만, 그런 친실장의 염원이 닿았는지 용액에 담가진 위석에 실금이 쩍 하고 가기 시작했고,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치 용액을 일부러 따라내는듯한 스피드로 부글부글 기포를 일으키면서 빠르게 용액을 흡수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친실장의 필사적인 마지막 발버둥처럼 보일 정도로 경이적인 속도로 진행되었다.
"아. 안돼! 죽으면 안된다 순이야! 안 돼!!"
아마도 그대로 조금만 더 지났더라면, 친실장은 바라마지 않는 스스로 파킨사하는 것에 성공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마는, 아니 미영씨는 이런 상황을 겨울 내내 네번이나 겪은 숙련된 사람이었다. 말로는 당황함이 섞여 있었지만 손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찬장 서랍을 열어 한개의 약품을 꺼냈다. 그 약품의 포장지엔 "탈룰라슈어사이드" 라고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한 미영씨는 약의 뚜껑을 열고, 거기에 "전용" 이라고 적힌 가루용제를 적정량 섞어 주고는 그것을 재빨리 위석이 담긴 통에 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하듯이 부글거리던 기포는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도리어 위석의 실금이 도로 붙어 원래의 건강한 빛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약품은 본질적으로는 실장석이 파킨할 정도의 위험상황에 쓰여지는 것으로, 실장석의 위석 자체를 치료하는 물건이라기보다는, 그저 빠르게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약물에 가까웠다. 쉽게 말해 태세변환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약품이었다. 물론 효과는 반나절 정도밖엔 안 되지만, 그 정도면 파킨 직전에 몰리거나 파킨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그 진행을 역전시켜 고정함으로서 병원에 데려가 본격적인 치료를 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문제는 실장석 전용 약품인데다 개당 단가가 그야말로 싯가라서 정말 눈돌아가게 비싼 물건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미영씨는 그것을 크게 아까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상태가 안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미영씨는, 검은 눈물을 흘리며 거의 두 눈이 뿌옇게 되어버리다시피한 친실장, 아니 자신의 수양딸을 손에 소중하게 들어올리고는, 병원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서 서둘러 현관을 열고 밖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몇 시간 후, 여자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보로 약 20분 거리 정도에 위치한 사육실장 전용 병원에서는 진찰실에 의사와 여자가 서로 마주보고는 치료 경과를 설명하고 있었다. 의사는 난감하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에... 순이라고 했나요. 이 실장석. 전에도 물어본 것 같지만, 학대용은 아닌거 맞으시죠?"
"아니에요! 제가 얼마나 순이를 사랑하는데요! 제 딸이나 마찬가지라구요!!"
그러자 여자는 큰 소리로 아니라며 화를 냈다. 하지만 의사는 그 말을 예전에도 들었고, 지금도 들었지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매번 데려올 때마다, 실장석의 상태는 어지간한 학대파도 뒤로 물러설 정도로 실장석의 상태가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물리적인 데미지는 그냥 기본이고, 정신적으로도 몰릴대로 몰려서 거의 파킨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인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나직하게 선언하듯 대답했다.
"그런데 왜 매번 데려오실때마다 실장석이 이모양 이꼴입니까? 벌써 1년은 커녕 이제 반년도 채 안 지나셨다는 사육실장이 뭘 어떻게 하면 7번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실려오는 거에요?"
"........."
"일단은 치료는 가능합니다. 그 탈룰라수어사이드인가 머시깽인가... 하는 그 약품을 아예 때려박다시피 한 덕에 그래도 파킨을 막을 수는 있긴 하겠더라구요."
그 말을 듣자, 여자는 크게 반색하고는 갑자기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정말인가요? 우리 애기 살릴 수 있는 거에요? 그럼 오늘 중으로 데려가도..."
"안됩니다."
"네?"
"안된다구요."
의사는 잠시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챠트를 꺼내 엑스레이 사진을 꼽는 반사판 위에, 여러가지 테스트 결과표를 붙여나갔다. 그리고는 그 표의 상태를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거 보시면 아시다시피, 이 애의 뇌랄까, 여기 보시면 시상하부랑 뇌교를 포함한 자율신경계 수치가 일반적인 평균치를 밑돌고 있는게 보일겁니다. 시상하부는 보통 신진대사랑 기초적인 신체대사에 영향을 주고, 뇌교는 운동 협응에 관한 부분이거든요. 이 부분이 심하게 좋지가 않습니다. 보통 이런 증상이 생기려면, 사람일 경우엔 거의 술에 쩔다시피 살거나 마약중독자라야 가능하거든요. 하지만 실장석이 그럴 리는 없을 테고... 그 탈룰라수어사이드인가 뭔가하는 그거. 사용설명서에 부작용항목은 읽어 보셨나요?"
"네? 부작용은 크게 염려할 거 없다고 약국에서..."
"글킨 하죠. 부작용은 진짜 어지간해서 볼 턱이 없으니까요. 댁처럼 고작 삼사개월동안 일곱번이나 그 약을 물쓰듯 때려박지 않고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부작용이니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탈룰라수어사이드는 일종의 마약성 신경 역전제란 말입니다. 이 약물은 강제적으로 현재 진행중인 위석의 자괴 상황을 행복회로를 응용해서 진행 방향을 역전시킨 상태로 고정해주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돈이 되시는 부자들이 비상약으로 갖고 있으시긴 한데, 근본적으로 마약성 신경 역전제인데다 과용시엔 시상하부와 뇌교, 해마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게 되는 거에요."
"네? 그. 그럼 순이는 정상으로 못돌아오나요?"
"그건 아닙니다."
의사는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충분히 쉬고, 충분히 먹으면서, 정신적 요양을 해주고 적절한 약물치료를 동반하면 2주일 정도면 완쾌될겁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곳에서 입원해 있을때의 이야기입니다. 통원치료같은건 무리에요."
"2주씩이나요? 우리 애가 그렇게 오래요? 그러다간 여태 배운것을 다 까먹을 수도 있는데..."
"죽어도 상관없으시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저의 책임은 없는걸로 하겠습니다."
의사는 자신이 할말을 다 했다는 듯,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는 두손을 깍지를 낀 채로, 여자의 결정을 기다렸다. 여자는 다소 망설였지만, 이내 어쩔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의사는 사육실장의 주인인 여자에게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고, 여자는 못내 자신의 실장석이 걱정되는 듯, 치료실에 누워 있는 실장석을 몇번이고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다가 간신히 걸음을 옮겨 병원 밖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의사는, 혀를 차면서 담배를 꺼냈다. 그러자, 데스크에 앉아서 카운터 업무를 보는 의사 보조 겸 남자 간호사가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금연이에요."
"나도 알아. 하도 답답해서 꺼내기만 한거야."
의사는 꺼낸 담배에 불은 붙이지 않고, 그저 입에만 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 간호사는 저 멀리 사라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저 여자 참 유명하더라구요."
"뭐가"
"실장석 애호가로 동네에 소문이 다 났던데요. 뭐라던가? 실장석을 자기 수양딸처럼 대한다던데."
"그래서 한달이 멀다 하고 저렇게 골로 가기 일보직전으로 만들어갖고 오냐? 도대체 어떤 애호파가 그런다던?"
"뭐, 사랑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긴 하겠죠. 그나저나 저 여자 이혼했다던데, 멀쩡한 직업도 없어보이더만, 어떻게 한건에 최소 수백만원, 평균으로 쳐도 거의 천만원 넘게 드는 치료비를 매번 지불하고 다니는 거에요?"
그러자 의사는 허탈하다는 듯,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이 남자 간호사를 보았다. 하지만 이 남자 간호사는 이 마을에 들어온지 고작 한달밖에 안 되었다는 것을 떠올리니, 모를수도 있겠구나 싶어 의사의 목소리는 조금 부드럽게 바뀌었다.
"네가 보기에 저기 누워서 사경을 헤매는 실장석이 뭘로 보여?"
남자 간호사는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서, 실장석용 집중 치료실이라고 붙여 있는 케이스를 유리 너머로 살펴보았다. 눈을 감고 가쁘게 숨을 들이쉬는 실장석은, 갓난 영유아용 인큐베이터를 실장석 사이즈로 꿰어맞춘 듯한 침대에, 고정된 링겔 주사가 팔에 두개, 목에 하나가 꼽혀 있었고, 가끔식 뭔가가 떠오르는 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다 죽어가는 실장석이죠."
"길가에 흔히 보이는 들실장 같은 그런거?"
"네. 아닌가요?"
그러자 의사는 피식, 반쯤 비웃음이 얽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남자 간호사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가로막듯 거칠게 입을 열었다.
"땡. 틀렸습니다. 저 실장석은 임마 부르는게 값이야. 왠 줄 아냐? 실장석 주제에 숫자를 1억 단위까지 제대로 셀줄 안다고, 거기다가 덧셈 뺄셈도 기가막히게 할줄 알거든."
"실장석이 말이에요?"
"그럼, 새끼손가락만한 탈룰라 수어사이드 한 병에 최소 칠팔백만원은 할텐데, 그걸 한병도 아니고 두박스나 '비상용' 으로 갖고 다니면서 과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일으킬 정도로 퍼붓는데 그게 그냥 일반 들실장 같은 거겠냐. 멍청하긴. "
남자는 짜증난다는 듯이 담배를 펫 하는 소리와 함께 쓰레기통에 뱉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웃기는건 저게 최고급 사육실장이 아니란 거지."
"네에?"
"그냥 들실장이야. 근처 공원에서 대충 주워왔다나 봐. 근데 그걸 고작 겨울에서 봄 사이에, 아무리 잘 잡아도 5~6개월만에 어지간한 최고급 사육실장보다 더 뛰어난 산수실력을 자랑하는 놈으로 바꿔놨단 말이지. 생각 해 보라고. 최고급 사육실장에서 그나마 산수를 잘한다고 해봤자 100까지 세는게 고작이고, 덧셈도 기본적인거나 하면 대단하다고 여기는 판인데, 저 여자가 훈육한 들실장이 단 서너달 만에 숫자를 1억 단위까지 세고 덧셈도 어느정도 해낸다고 생각을 해 봐. 브리더 업계가 뒤집어지고도 남지."
"그래서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브리더들이 미쳐 날뛰었던 건 덤이고. 그래서 브리더들이 그 비법을 한수 전수받으려고 애를 쓰고 난리였는데, 아무에게도 그걸 알려주지 않았었지. 하지만 그 누구더라.. 큰룬 목사인가하고, 맨날 부딪히는 브리더가 하나 있었지. 그게 누구였드라.. 이름이 독특했는데."
그러자 남자 간호사는 대뜸 떠오른다는 듯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 그 여기저기 참견질하기 좋아하는 성격 더러운 깡패 목사요? 그 작자랑 허구헌날 말로 투닥거리는 사람이라면 도슬람이라는 브리더말곤 없겠죠."
"아 맞다 그래. 요샌 나이먹었나 자꾸 사람 이름을 까먹는단 말이야. 여튼 그 두사람이 웬일로 같이 가서 여자랑 쑥덕쑥덕 이야기를 하고 나서부터였을 꺼야. 그 여자가 전에 없이 씀씀이가 헤퍼진 게 말이지."
"설마. 그 두사람에게..."
"아. 그게 맞을껄. 도슬람이랑 큰룬목사는 여자에게 조건을 제시했어. 도슬람은 여자의 훈육 비법을 터득하는 대가로, 자신이 해당 훈육법을 사용해서 키워낸 상품을 고객에게 팔 때마다, 판매금액의 30%를 주기로 했지."
"그럼 목사는요? 달리 제시할게 없잖아요?"
"없긴 뭐가 없어. 큰룬 목사가 제시한건 그거였어. 여자가 갖고 있는 모든 토지와 건물. 그리고 여자의 소속을 교회 소속으로 바꿔주기로 했나봐."
그러자 남자 간호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도움이 돼요?"
"바보냐. 이 나라에서 교회 소속의 토지랑 건물은 세금 안 내잖아."
"아......."
"게다가 여자까지 자기네 소속으로 챙겨 놨기 때문에 그 여자는 세금 내는게 거의 없다고, 다 면제란 말이야. 특히 재산세 같은거."
"와 시바 그건 완전히 개사기잖아요. 진짜 깡패 목사네. 그거. 마피아도 아니고, 그걸 그런식으로 남용하냐."
의사는 잠시 집중치료실에 누워 있는 여자가 맡기고 간 실장석에게 붙어 있는 바이탈 사인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상태를 체크해보고는, 다시 위석이 담긴 통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입을 열었다.
"생각을 해 봐. 도슬람은 브리더 중에서는 업계 1위급의 고급 브리더라고. 보통 매년 열마리가 채 안되는 실장석을 납품하곤 하지만, 개네들 한마리 한마리가 최소 못해도 마리당 수억원이야. 근데 거기다가 그 비법을 적용해서 내놓으면 대체 얼마에 팔릴거 같냐?"
"아니 그걸 사갈 정도로 돈이 썩어난답디까?"
"있나 보더라. 벌써 예약까지 받고 있더라고. 주문 예약이 너무 밀려서 올해는 더는 예약 안 받는다더라."
"미쳤네..."
잠시 충격을 받은 듯, 기가 막히다며 투덜대던 남자 간호사는, 대뜸 기억났다는 듯, 의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럼, 그 깡패...아니. 험험. 목사놈은 대체 어디다 쓰려고 그 비법을 전수받은거에요? 세금면제폭탄까지 뿌려주면서?"
"그거?"
의사는 그 질문에 대해 저 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교회의 십자가를 향해 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요 근래 큰룬 목사가 곧잘 떠들던 말 기억나냐? 찬송가를 부를 성가대가 없다면서 신실한 마음이 없니 뭐니 하던거 말이야."
"그거야 알죠. 겨울이면 항상 사람 못 구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반복되는 이야기잖아요. 그게 왜요?"
"응 그거 대용품."
"예? 아....네에? 진짜요??"
"응. 지금 교회의 지하실에서 맹연습중이라고 하더라. 덕분에 근방의 들실장이 아주 씨가 말랐다고 하드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실장석한테 대체 뭔짓을 하는거에요? 차라리 그냥 학대를 하고말지."
"그러게나 말이다."
남자 간호사는 듣다 듣다 뭐 이런 개소리가 다있나 싶은 표정을 숨기지 않고는 무언가 골똘이 생각했다. 그리고는, 한가지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는 듯이, 집중치료실에 놓여있는, 부르는게 값이라는 국내 최고가 실장석을 가리키면서 의사에게 말했다.
"아니 그럼, 재는 대체 왜 실려온 거에요? 부르는게 값일 정도면 주인에게 학대를 당했을 리는 없을 거고, 이 근방에서 더럽고 무시무시하기로는 소문난 깡패목사랑 학대파 애들 꽉 쥐고 있다시피 하다는 소문이 파다한 도슬람과 관계된 실장석을 핫햐- 하러 오는 애들도 없을 건데, 잰 대체 왜 한달이 멀다 하고 거의 반병신이 되다시피 해가지고 오는 건데요?"
그 말을 듣자, 의사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그러게. 왜 그럴까. 하지만 의사는 내막은 몰라도, 어느정도 의사로서 주인이 병원에 처음 데려왔을때 말했던 두서없는 내용과, 오늘 나눴던 대화. 그리고 확인차 보았던 링갈의 기록을 통해 대략이나마 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의사는 조용하게 그에 대한 대답을 했다.
"사람도 곧잘 있잖냐. 내 새끼는 대학은 반드시 보낸다 하는 그거 말야."
"아, 그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 머시깽인지 하는 그거요?"
"그래. 사랑하는 자식새끼를 위해서, 그 사랑하는 자식을 위한 교육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엄마 있잖아. 아마 그걸꺼야. 한달이 멀다하고 저 실장석이 오는 이유가. 그게 원인이 아닐까 싶어. 사실 물리적인 데미지는 실장석 기준에서는 그리 심각한 편은 아냐. 너도 일해봐서 알겠지만, 진짜 학대파에게 걸리면 저렇게 사지 멀쩡하게 안 오잖냐. 하지만 아마도 정신적인 데미지는 심각할거야. 아니 이미 진단 결과만 봐도 치명적인 수준이지만 말이지."
"치료는 가능하잖아요?"
"그래 치료는 가능하지. 그게 실장석이란 생물의 엉터리이자 부조리함이기도 하걸랑. 어떻게는 위석만 안정화시켜주면, 나머지는 지가 알아서 다 해결해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걸 매번 견뎌야 하는 실장석에게는 살아도 산거 같지가 않을꺼야. 인간조차도 그렇게 수능공부하느라고 진종일 학교에 학원에 놀지도 못하고 몇년간 공부만 시키면 종국에는 못견디고 자살하거나 사고치는 애들도 일년에 몇명씩 나오는데, 실장석은 오죽하겠어. 차라리 인간은 그렇게 공부하면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기라도 할 가능성이나 있지. 하지만 실장석이 산수를 잘해봤자 자기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말 그대로 여자의 대리 만족을 위한 허영심이나 다르지 않지. 그렇잖아? 그 언제의 뉴스인가에서 앵커가 했던 그 말 기억나? 뒤틀린 모정이라는 말. 아마 이 상황에 딱 맞지 않나 싶다."
그러자 남자 간호사는 의사를 담담히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런 실장석을 그때마다 파킨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되살려 주시고요. 맞죠?"
그 말을 들은 의사는 씨익 웃고는, 옷깃을 매만지면서 대답했다.
"돈벌이가 되니까. 생각해 봐라. 탈룰라수어사이드 1병에 못해도 칠백만원은 되. 그거 순이익이 한병당 삼백만원이 넘어요. 거기다가 한번 치료할 때마다 치료비만 보험비 다 떼도 삼사백은 기본이야. 지금처럼 입원을 해야할 정도면 아예 1억원은 족히 넘을걸. 전체 치료비용만. 이 근방에서 실장석 치료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분은 저 여자 딱 하나라고. 당연히 치료해줘야지. 이번 겨울에 뽑아낸 본전만 해도 3년치 순이익이랑 맞먹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치료가 가능하고 얼마든지 지불하겠다고 하는 판국에 안된다고 그냥 두겠냐고."
"결국 선생님도 악당이네요."
남자 간호사가 살짝 놀리듯이 말하자, 의사는 '어쩌라고' 하는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접수처를 지나서, 자신의 진찰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진찰실의 의자에 앉아서, 조금전 실장석의 진료 차트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었다. 실장석 자신에게 내막을 들은게 아니고, 그저 자신은 링갈 기록과 주인의 말을 토대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어느정도 어림짐작은 되었다. 아마도 분명히, 이 실장석은 자식이 있었을 것이었다. 링갈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자가 산수를 가르치면서 실장석이 잘못하고 실수할 때마다, 회초리로 맞는 듯, 간헐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이 기록된 로그 사이 사이에, 마치 울부짖듯 실장석이 외친 단어들이 있었다. 그 단어들은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그 뜻을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지만, 단어의 대부분은 마마, 자식이 아닌 데, 내 아이, 닝겐자가 아닌, 이런 단어가 가득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의사는, 분명히 이 들실장이 여자에게 거두어지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포기했으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아이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여자가 내민 손을 받아들였던 실장석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뻐했으려나? 아니면 슬퍼했으려나? 그 진실은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듣기전엔 모를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아픈 환자에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건 치료에 도움도 안 될 뿐더러, 앞으로의 수명에도 좋지 않을 테니까.
의사는 그 생각을 접어두듯 버리고는, 곧 태어날, 임신해서 집에 누워 있을 터인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면서, 한가지는 확실히 머릿속에 담아두자고 생각했다. 적어도, 앞으로 태어날 나의 아이만큼은 저렇게 되게 하지 말자고, 뒤틀린 모성을 아이의 엄마가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최소한 불구경하듯 방관하지는 말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END
=================================================
뒤틀린 모정 <외전>
공원의 안쪽, 깊숙한 변두리에 위치한 한 골판지 둥지는 불안한 듯 연신 부시럭 부시럭 소리를 내면서 낮고 짧게 치이-치이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골판지는 겉보기에는 허름하니 대충 세운 티가 역력했지만, 의외로 지어진 장소는 실장석치고는 기도비닉에 충실한 위치가 고려되어 있어, 제법 안전하기로는 공원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잘 은닉된 골판지 둥지였다. 다른 실장석들이 먹이수급과 식수, 그리고 아이를 낳기 위한 적절한 장소만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반면에, 이 골판지 둥지를 지은 친실장은 식수를 구하는 위치만을 고려하고, 나머지는 안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고려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 둥지는 인간은 물론이고, 동족에게서조차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한마디로 실장석이나 인간이나 여간해서는 갈 일이 없는 동선에 둥지가 지어져 있었다.
이 공원의 이름은 탈룰라 공원으로, 크기는 20만 1,900㎡ 정도로 공원 치고는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작은 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 공원은 실제 크기에 비해 인접한 산이 차지하는 공간이 더 커서, 사실상 산의 경사면을 따라 좁은 산책길을 빙 두르고, 정상을 일부러 평평하게 만들어서 공원 시설물 및 휴식공간을 만든 구조다 보니 민가가 인접하지 않은 북쪽 경사면의 경우 사람이 갈 일이 없었기에, 안전성과 은닉성을 고려하면 최고의 공간이었다. 허나, 이 쪽은 산의 경사를 따라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공원 시설물의 생활하수를 내려보내는 배수로를 통한 물 공급을 제외하면, 사실상 먹이를 구하러 나가기도 힘든 위치였기에 동족조차도 접근하지 않는 위치였다. 바로 이곳에, 오직 한마리의 친실장만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전날의 점심 때쯤에 먹이를 구하러 발을 떠났던 친실장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둥지에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서 친실장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새끼들만이 골판지 둥지를 지키면서 자신의 어미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잘 위장된 골판지 안에서, 새끼들은 불안한 나머지 둥지 밖으로 나오지말라던 어미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상체를 길게 빼어 입구 밖으로 옹기종기 머리를 내밀고는, 연신 치이-치이 소리를 뱉으며 마마가 언제올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를 내밀고 서있는 새끼들은 모두 네마리였다. 그 네마리 모두, 엄지실장으로만 구성된 희한한 가족이었다. 일반적으로 춘자라면 모를까, 가을에 접어든 이 시기에 엄지라면 춘자가 아니라 추자일텐데, 이 가족은 엄지를 노예로 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독라도 아니었고, 제법 잘 정리된 옷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이 엄지들에게는 운치조차 묻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마...늦는레츄..."
"배고픈 레츄.."
"마마는 왜 안오시는 레찌..."
새끼들은 안 오는 마마를 기다리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싸늘해진 밤기운이 몸을 스치고 나서야, 문을 닫고 골판지 안으로 들어갔다. 배도 고프고, 춥기도 하건만, 마마는 올 기색조차 없었다. 물론 가을이 성큼 성큼 다가오기전에, 친실장은 월동을 대비해서 보존식 구덩이를 만들어 두긴 했었다. 허나 그것은 월동을 위한 것이었기에, 새끼들은 친실장이 곧잘 엄포하듯 말했던 "보존식을 건드리는 자는 자가 아닌데스!" 라는 말 때문에라도 그것을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벌써 아무것도 못 먹은지 하루가 흘렀고, 성체실장도 자실장조차도 아닌 작은 엄지실장. 그것도 추자로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는 엄지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불과 조금 전에, 엄지 네명이 힘을 합쳐서 보존식 굴 입구에 올려진 돌을 옮기려고 해보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허무하게도 아무 성과도 없이 힘만 쪽 빼버린 실패로 끝났다. 네마리가 힘을 다 합쳐도 돌은 꿈쩍도 안 했다. 외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한 탓에, 이제는 다들 허기로 드러난 배가 등에 닿을 지경이 되어 골판지 안에 마치 병자처럼 이리저리 누운 채 숨만 헉헉대고 있었다.
"너무 배고픈 레에엥..."
결국, 참다못한 엄지 중 가장 막내인 사녀가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골판지 안은 먹을 것이라곤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것은 물이 담긴 500ml 페트병 하나 뿐. 하지만 이것도 얼마 크지도 않은 추자 엄지들에게는 거의 난공불락이나 다르지 않았다. 친실장이 단단히 잠그어둔 탓에, 이마저도 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나마도 이게 옆으로 뉘여져 있었기에 시도라도 해본 것에 불과했다. 애초에 설령 기적이라도 있어서 열었다 해도 고작 엄지 네마리의 근력으로는 물이 담긴 페트병을 알맞게 기울이는건 거의 불가능. 아마 열수 있었다한들 쏟아져 나오는 물을 어찌하지 못하고 추운 가을날의 날씨에 찬물에 홀딱 젖어서 그대로 저체온증으로 죽기 딱이었을 터였다.
그렇게, 배고프고 목마른 엄지들은 가을날 오밤중을 다시 한번, 마마의 체온도 없이 서로서로 부둥켜 안고는 억지로 잠들었다. 마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잠에서 부스스 깨어난 엄지들은 여전히 달라진 것 없는 현실에 절망했다. 마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고,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있긴 했지만, 어차피 꺼낼 수 없는 마당에 그림의 떡이나 다르지 않았다. 결국, 새끼들은 기다리다 못해 정말로, 정말로 하기 싫지만, 허기에 지친 나머지 최후의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식분행위. 즉 운치를 먹는 것이었다. 단 한번도 해본적 없는 일이지만, 엄지들에게는 더이상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벌써 이틀 넘도록 밥은 고사하고 물 한모금도 못 마신 상황이었다. 만약에 그녀들이 자실장으로 태어났더라면, 삼사일은 굶어도 버틸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미숙하기 이를데 없는, 그것도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는 엄지실장의 몸으로서는 이미 공복이 한계에 달해 있었다. 작은 몸이기에,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도 적거니와, 태생적 특성상 성장을 위해 굉장히 많은 에너지와 먹성을 자랑하는게 엄지였다. 그래서일까, 식분을 하기 위해 운치를 퍼내기로 결심했을 때는 망설이긴 했지만, 정작 그것을 먹기좋게 적당히 덜어내자,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엄지들은 고개를 쳐박고 그것을 먹는데 열중했다. 공복과 목마름이 한계에 도달해, 정말로 사경 직전을 헤메기 시작한 그녀들은, 더 이상 가릴 것도 없었다. 한동안 그렇게, 네마리의 엄지들은 묵묵히 식사가 아닌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배가 부르자, 비로소 간신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엄지들은 그때서야 운치를 먹고야 말았다는 수치감에 한동안 눈물을 흘리면서, 오지않는 마마를 원망했다.
"마마 어디간 레에에엥~"
"마마가 우릴 버리고 간 레챠~"
"마마 우릴 버리지 마는 레에엥"
그렇게 한참을 울던 엄지들은 오지않는 마마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골판지 둥지 안에서 기다리다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밤이 되고 나서야 피곤에 지쳐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번 아침이 올 때까지도 마마는 오지 않았고, 그렇기에 엄지들은 비로소 마마에게 뭔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마마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자매들 중 누군가가 떠올렸지만, 이내 그것을 장녀 엄지는 부정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자매들에게 외쳤다.
"마마가 죽었을 리 없는 레치. 아니 죽으면 안되는 레챠."
"마마가 안 죽었다면 왜 안오는 레에엥."
장녀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차녀를 달래면서, 말을 이었다.
"마마는 분명 다쳐서 못오는 것일지도 모르는레치. 그러니 우리가 찾으러 나가봐야 하는레치."
"하지만 마마는 집에서 나가지 말라한레츄. 나가면 자가 아니라고 한 테치. 그건 싫은레치이."
"그렇다고 여기서 가만있으면 굶어죽는 수밖에 없는레치. 마마를 찾으러 나가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레치."
자매들은 장녀의 의견에 다소 부정적이었지만, 이내 장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세번째 아침이 밝았다. 그런데도 마마가 안 오는 이상, 집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것은 굶어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치가 있다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운치 먹으며 마냥 기다리는거나, 마마를 찾으러 위험을 감수하는거나, 자매들에겐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심을 굳힌 엄지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밖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래봤자 딱히 챙겨갈 것은 없었지만, 엄지들은 집 안에 있는 부서진 나뭇가지를 한개씩 집어들어 지팡이 대신 삼았고, 남아있는 운치를 아침 삼아서 마저 먹어 치우고는, 처음으로 마마의 말을 어기고 집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장녀와 나머지 세 자매들이 처음으로 골판지 둥지 밖을 나섰을 때, 엄지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풀밭과 눈부시도록 환한 햇빛이었다. 가을이었지만 아직 여름 티를 못 벗어난 따사로운 햇빛은 엄지 자매들의 눈에 오색 무지개를 비추며 반짝 반짝 빛났고, 푸르른 하늘은 끝도 없이 높게만 보였다. 태어나 한번도 골판지 밖 세상으로 나와본 적 없었던 엄지 자매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경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세계였다. 엄지들은 황홀경에 취해서 조금 전의 슬픈 기억을 잠시 잊고는 멍하게 주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레치..."
"밖은 이렇게나 환했던 거인 레챠..."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서늘한 가을바람이 엄지들의 귓가를 스치자, 그녀들은 다시금 무엇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는지 새삼 자각하고는 발걸음을 하나 둘씩 떼어가며 둥지를 뒤로 한 채로 비탈 경사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장녀가 나머지 세명의 이모토차들을 인솔하듯 앞서 걸으면서 자매들을 이끌고 걸어갔지만, 장녀 역시 마마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몰랐다. 그저, 마마가 항상 밥을 구하러 갈 때면 항상 비탈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는 것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자신도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자매들을 장녀를 따라서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해가 중천으로 솟아오르고, 그것이 다시 서쪽으로 내려갈 때까지 자매들은 마마를 찾는 것만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비탈길을 아장아장 걸어 내려갔다.
"장녀 오네챠...힘든 레치..."
"더는 못 걷는 레챠아..."
"목도 마른레치..."
하지만,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비탈길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기껏해야 내려오는데 5분도 안 걸릴 거리였건만, 작고 미숙한 엄지들에게는 천리길이나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에 자라난 풀들도 엄지에겐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람에겐 그냥 잔디나 풀숲이 우거졌을 뿐인 단순한 장소가 엄지들에게는 마치 거대한 정글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키보다도 더 큰 풀과 이파리를 헤치면서, 성인 남자라도 헛디디면 굴러떨어질 수도 있는 가파른 비탈길은 안 그래도 작고 걸음이 느린 엄지들의 이동속도를 더욱 더 느리게 만들었다. 사람에게는 그냥 풀밭일지 몰라도, 그녀들에게는 끝도 없이 계속되는 정글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비탈길을 절반도 채 지나가지 못한 채로 목이 마르고 지쳐 나가떨어진 엄지들은 그만 그대로 주저앉은 채로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바닥에 누워 있는 동안, 해는 야속하게도 빠르게 산 너머로 사라져버려 밤이 되었다.
"밤이 된 레치..."
"배고프고 힘든레치..집에 돌아가고 싶은레치.."
"마마도 보고싶은 레치..."
엄지들은 제각각 돌아오지 않는 마마를 찾으며 원망도 해보고, 배고픔과 목마름을 말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들어줄 대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엄지들이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차게도 집을 나와 마마를 찾겠다며 걸음을 내디뎠건만, 하루 진종일 걸었는데도 마마를 보기는 커녕, 비탈길 중턱에서 체력을 허비하고 오도가도 못한 채, 그저 차가운 밤바람을 피하려고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는 처량한 목소리로 마마를 부르면서 오들오들 떠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밤이 되고, 예뻣던 주변의 광경은 어느 사이 두렵고 무서운 것으로 변했다. 낮에는 빛을 머금고 따듯하게 발씨를 덥혀주던 흙바닥은 이제는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디찬 돌처럼 변했고, 화사하게 햇빛을 반사하던 풀들은 이젠 주위조차 제대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새카매진 어둠 속에서 스산한 소리를 울리면서 사삭 사삭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배고픔과 추위에 몰린 엄지들은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멀리 나왔고 돌아갈 기력도 없었다. 그렇게 이 작은 엄지들이 가을밤의 추위 속에서 차츰차츰 얼어가며 배고픔에 지쳐 갈 무렵, 장녀는 어딘가 괴이한 소리가 나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녀. 방금 소리 들었던 레치?"
"무슨 소리가 난 레치? 아무것도 못들은 레츄."
"잘 들어 보란 레치. 뭔가 이상한 소리가 다가오는 레치."
그 말을 들은 차녀는 웅크렸던 몸을 펴고, 잠시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차녀의 귓가에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풀숲 위를 파삭- 파삭 하고 뭔가가 스치듯이 다가오는 소리를 확인한 차녀는, 두눈을 감은채 자신을 부둥켜 안고 꾸벅꾸벅 졸던 삼녀와 사녀를 서둘러 깨웠다.
"일어나는테치! 뭔가 오는 테치!"
"뭐가오는 테....."
하지만, 삼녀와 사녀가 미처 눈을 뜨기도 전에, 무언가가 그녀들의 앞으로 풀숲 위를 사뿐히 뛰어넘어 엄지들 앞에 다가섰다. 장녀와 차녀는 그것을 보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게 무엇인지 보기 위해 고개를 천천히 위로 올렸다. 그리고 그녀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새카만 어둠을 형상화한 듯한 무언가였다. 자신들보다 몇배나 큰 덩치에, 가장자리는 마치 수많은 풀들이 가득 심어진 것처럼 숲을 이루어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보여지는 줄지어 늘어선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늘어져 펄럭이는 시뻘건 혓바닥이, 엄지들의 코앞에서 하늘하늘 흔들리면서 굵은 침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장녀와 차녀는 본능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것임을 깨닫고는 공포에 질려 꼼짝조차 하지 못한 채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제서야 겨우 잠이 깬 사녀와 삼녀가 딱딱하게 굳어있는 장녀를 이상하다는 듯이 올려다보다가, 문득 장녀가 어딘가를 향해서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장녀의 시선을 따라 자신도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녀와 삼녀는 자지러지듯이 큰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레짜아아아아!!"
"찌이이이이이이!!"
눈 앞에 보이는 정체 모를 무시무시한 것에 혼비백산한 삼녀와 사녀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면서, 그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녀와 삼녀가 그렇게 도망가자, 눈앞의 정체모를 형체는 멍! 멍! 소리를 짖으면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굳어있는 장녀와 차녀를 훌쩍 뛰어넘더니, 이내 도망친 삼녀와 사녀를 쫓아 어두운 풀숲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아련하게, 레챠아아아아--- 하는 단말마의 비명이 어두운 밤 속으로 울려퍼졌다.
"삼녀차...사녀차...."
"이모토챠..."
장녀와 차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눈물을 흘렸다. 마마를 찾으려고 떠난 여정은 오히려 삼녀와 사녀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남은 자매는 이제 둘 뿐이었다. 아마도 삼녀와 사녀는 죽었으리라, 그리고 마마도 그렇게 멍멍씨에게 물려가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장녀 엄지는 생각했다. 물론, 창졸간에 멍! 멍! 하고 짖으며 달려간 것이 멍멍씨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삼녀와 사녀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고, 뒤이어 사녀의 비명소리가 난 것으로 봐서는 이미 두 이모토챠의 운명은 불보듯 뻔했다. 불현듯 장녀는 차라리 집에서 그냥 기다렸더라면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애초에 집을 떠난 시점에서 이미 운명은 결정지어진 거나 다르지 않았다. 엄지에 불과한 자신들이 마마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부터가 실수였던 것이었다. 하루 종일 걸으면서 그나마 남은 체력을 죄다 쥐어짜냈건만, 자신들은 마마를 찾기는 커녕, 인간씨들이 있는 곳까지 가지도 못했고, 오히려 공복에 탈수까지 겹쳐 이 비탈길 한가운데에 갇힌 채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삼녀와 사녀는 멍멍씨에게 물려 가고, 차녀는 조금전의 공포로 인해 정신을 잃고 방귀만을 푸쉭 푸쉭 뀌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침에 먹은 거라곤 운치 한 덩이. 그게 다였다. 자매들이 마지막으로 나눴던 식사 아닌 식사. 평소라면 빵콘해서 팬티를 가득 부풀릴 것이건만, 먹은것 하나 없이 운치 한 덩이가 아침에 먹은 유일한 밥이었던 차녀 엄지는 빵콘은 커녕 방귀만 힘없이 내보낼 뿐이었다.
"마마... 미안한레치... 자매들을 지키지 못했던레츄..."
장녀는, 의식을 잃고 누운 차녀를 꼬옥 안은 채,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음 날 울다 지쳐 잠든 장녀 엄지가 내리쬐는 햇빛에 간신히 몸을 일으켜 눈을 뜬 장녀의 앞에 보여진 것은, 배고픔과 탈수에, 이어진 공포와 자매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밤사이 거듭된 추위 속에서 차디차게 식은 채로 숨이 끊어진 차녀의 창백한 모습이었다. 장녀는 이미 죽은 차녀를 보고는 그만 눈물을 왈칵 터뜨리면서 울고 또 울었다. 얼마동안을 그렇게 정신없이 울었을까. 문득 자신의 앞에 무언가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걸 알아차린 장녀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차녀를 안은 채로 앉아 기도하듯이 조용히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차녀차...이모토챠들.. 나도 가는 레치.. 금방 만날 수 있을 거인 레츄..."
장녀는 무언가, 자신의 몸을 덥썩 무는 듯한 감각을 마지막으로 느끼는 것을 끝으로, 그렇게 의식의 끈을 놓았다.
그렇게, 장녀는 새카만 어둠 속으로 쓸려내려가듯 사라지는 자신을 보았다. 마치 비가 내리면 마마의 골판지 하우스 옆으로 콸콸 소리를 내며 배수로를 넘치듯이 흘러 내리던 물처럼, 새카만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던 장녀는 어딘가로 몸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감각을 느끼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장녀는 문득,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렸고, 지금 이것이 죽고 나서 간다는 하늘나라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늘나라라고 하기엔 너무나 까맣고 어두운 곳이었다. 그래서 장녀는 몇번이나 주변을 더듬으면서 조그마한 팔다리를 허둥거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짚이는 것이 없자, 장녀 엄지는 그만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레챠아앗!"
장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냅다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걸 깨닫고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주변은 온통 새하얀 색으로 칠해진 하얀 벽으로 가득차 있었다. 한쪽에는 동그란 입구가 하나 있고, 바닥은 지푸라기와 수건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장녀 엄지는 바닥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그러자, 전에는 구경조차 할 수 없이 부드러운 천의 촉감을 느꼈고, 엄지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수가 없어 불안해졌다. 혹시 자신은 꿈을 꾼 게 아니라, 그저 아직도 꿈 속인가 하고는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게다가 자신은 분명, 의식을 잃기 전, 멍멍씨에게 물렸던게 분명할텐데도 자신의 몸 어디에도 물린 상처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일까, 장녀는 자신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온건지, 아니면 살아있는지조차도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을 때쯤, 귓가에 어디선가 꽤나 익숙했던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지만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였다. 예전에 마마와 즐겁게 저녁밥을 먹을 때 귓가에 거슬리듯 들리던 자매의 목소리를 닮은 소리가, 장녀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고, 장녀 엄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비틀비틀 앞에 뚫린 동그라미 모양의 입구를 향해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밖으로 한걸음 내디딘 곳에는, 장녀가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이미 죽었을 터인 익숙한 누군가의 뒷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은 멍멍씨에게 물려갔던 사녀와 삼녀였다. 그리고 사녀가 뒤돌아보면서 자신을 보더니 울음을 터뜨리고, 이내 그 소리에 돌아본 삼녀가 오네챠~ 하며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서는 자신을 껴안자, 장녀는 자신도 울음을 참지 못하고 같이 소리쳐 레에엥 치에엥 하고 울어대었다.
"살아 있었던 레챠! 사녀! 삼녀! 무사했던 레치!!"
"장녀 오네차도 무사했던 레치이!"
"멍멍씨가 장녀 오네챠를 물고 왔을 때는 정말 무서웠던 레치!"
그러자 장녀는, 문득 위화감이 들면서, 자신을 껴안고 울먹거리던 두 이모토차를 밀어 내고는 의문을 표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말인레치. 분명히 사녀랑 삼녀가 멍멍씨를 보고 놀라서 풀숲으로 도망쳤고, 그 뒤를 멍멍씨가 쫓아가지 않았던 레치! 분명히 들었던레치. 이모토차들의 비명소리를 들은레치. 그런데 어떻게 이모토차들이 내가 멍멍씨에게 물린것을 알고 있었던 레치!"
"아닌레치. 오네챠. 비명을 지른건 맞는레치."
"그런레치. 하지만 멍멍씨는 우릴 먹지 않았던 레치. 그저 우릴 물어다 여기에 갖다두고 다시 돌아간 레치. 그리고 한참있다가 다시 장녀 오네차를 물고 온 레치!"
삼녀와 사녀는 거의 오열하듯 말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나서 장녀 오네차를 멍멍씨가 내려놨는데 장녀 오네차가 죽은것마냥 꼼짝도 안했던 레치!"
"그치만 착한 인간씨가 도와줘서 장녀차가 깨어날수 있게 해준레치. 입에다 뭘 넣더니 저 나무집에 넣어준레치!"
"장녀오네차 이틀째 안일어난 레치. 걱정 많이한 레에에엥!"
장녀는 이모토차들이 숨도 쉬지 않고 울먹거리면서 설명한 끝에 감정이 북받치는지 그만 레에엥 하고 울음을 터뜨리자, 두 이모토차를 꼬옥 안고는 조용히 다독여 주면서 말했다.
"자자. 뚝 하는 레치. 알아들은 레치요. 울지 마는 레치. 착한아이니까 울면 안되는 레치?"
"레끕. 레큽. 알겠는 레치."
그리고 그렇게 두 이모토차를 진정시키자, 비로소 장녀의 눈 앞에 펼쳐진 이 장소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뭔가 새카만 천으로 덮여 있었지만, 얼기설기 짜여진 구멍 사이로 빛이 흘러넘쳐 약간 서늘한 그늘을 만들면서도 여전히 하늘이 보이는 희한한 형태였다. 시선을 좀더 아래로 내리자, 눈앞에는 자신이 나왔던 나무집과 비슷한 동그란 구멍이 뚫린 집들이 세개 보였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집에서 한마리의 엄지실장이 노란색 실장복을 입고는, 밖으로 나와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한쪽 팔로 우지챠를 하나 껴안고는 아장아장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장녀엄지는 그 노랑 옷을 입은 엄지를 보면서, 조금,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과 같은 실장석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다른, 처음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사실, 전혀 다른 품종끼리 만나는 것이었기에 느껴지는 생소함이었지만, 아직은 어린 엄지가 아무리 장녀라 한들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그리고 그 노란 옷을 입은 엄지가 레치 레치 하면서 창문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자, 창문 옆에 뚫린 작은 문이 활짝 열리면서 인간씨가 하나 걸어나왔다.
장녀 엄지는 낯선 인간씨를 보고 경계하며 이모토차를 자신의 뒤에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삼녀와 사녀는 마치 친숙한 듯 앞으로 쪼르르 달려나가서 인간씨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오셧는레치~쭈인사마!"
"오셨는레치~! 장녀 오네차가 일어난 레치이!"
"어 그러냐? 일어났다니 다행이구만."
인간씨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다가오더니, 장녀 앞에 무릎을 굽혀 주저앉고는 다소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뭐랄까. 거두절미하고 말하는데 말이여. 나는 너를 사육실장 그 뭐시기인가로 대할 생각은 없으야."
그 말에, 장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한 얼굴로 삼녀와 사녀는 재촉하듯 주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직 인간씨가 말을 다 한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어 인간씨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니들이 일을 해준다면야, 이 뒷마당에서 살게는 해줄 테니. 잘 하라고. 알겠어? 대답은?"
남자는 대답을 재촉하듯 장녀 엄지를 바라보았다. 장녀 엄지는 인간씨가 무슨 일을 시키려는지 전혀 감조차 오지 않았지만, 사녀와 삼녀의 반응을 보고는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적어도 인간씨가 학대파 닝겐이라면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을 리는 없으리라. 장녀는 그렇게 판단하고는 체념하듯 말했다.
"네 레치."
그러자 남자는 콧김을 흥 하고 뿜고는 좋아! 하고 외치고는 일어서서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사녀와 삼녀가 다가와 기뻐하며 말했다.
"축하하는 레치! 장녀 오네챠!"
"다행인레치. 장녀 오네챠도 인간씨에게 받아들여져서 정말 잘된레치!"
하지만 장녀는 인간씨가 말한, 일을 한다는것이 영 마음에 걸려서 사녀와 삼녀 엄지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말이다. 장녀 엄지가 생각하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저기 보이는 우지챠를 프니프니하는 거 말고는 없을 것이었다. 노동을 하기엔 너무 약하고, 작은 자신들이 저 커다란 인간씨를 도울 일이 무엇이 있을지, 장녀 엄지의 작은 머리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삼녀와 사녀는 정말 해맑은 듯한 얼굴로,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먹는레치!"
"그리고 싸는레치!!"
"계속 먹는 레치!!"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장녀는 더욱더 모르겠다는듯이, 어안이 벙벙해져서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먹고 싸는게 일이라니, 그런 일도 있는 레치? 하고 장녀 엄지는 기가 막히다는 듯 두 이모토차를 둘러보다가, 문득 가까이 와서 서 있는 노란옷을 입은 다소 자신과는 좀 생소한 외형을 한 우지챠를 안은 엄지에게 입을 열었다.
"저기... 오마에는...누구레치?"
그러자 노랑실장복을 입은 엄지는 우지챠를 껴안은 상태 그대로 머리만 돌려서 장녀 엄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와타시말인레치? 와타시는 짜리인레치!"
"인간씨에게 이름을 받은레치? 부러운레치..."
그러자 노랑옷을 입은 짜리라는 엄지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대답했다.
"오마에들도 이름을 받을거인레치. 걱정하지 마는레치."
"정말인레치?"
"정말인레츄??"
이름을 받을거란 말에, 사녀와 삼녀가 동시에 장녀의 대화에 끼어들어 소리치자, 짜리라고 자신을 소개한 엄지는 우지챠 놀래겠다며 투덜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삼녀와 사녀는 너무나 기뻐서 팔짝 팔짝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번갈아 보던 장녀 엄지는 이내 노랑옷을 입은 엄지가 우지챠를 보호하듯 돌리는 것을 보면서, 사태를 파악하고 기쁨에 뛰어다니던 이모토차를 붙잡아 껴안아서 진정시키고는, 자신이 묻고 싶었던 질문을 쩌리라고 불린 엄지에게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나 물어볼게 있는레치. 여기서 지내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인간씨에게 들었는레치. 도대체 무슨일을 하면 되는거인레치?"
"먹으면 되는레치."
순간, 장녀 엄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는 대체 자신이 무슨말을 들은건지 모르겠다는 얼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표정에 확인사살을 하듯, 노랑옷을 입은 엄지가 추가타를 날렸다.
"그리고 저기 구석에 있는 구멍에 싸면 되는레치. 그리고 배가 꺼지면 다시 먹으면 되는레치. 그걸 그릇이 다 비워질때까지 반복하면 되는레치."
장녀 엄지는 처음에 그 말을 사녀와 삼녀에게 들었을때만 해도 그저 이모토차들이 어려서 뭘 착각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제법 오래 살아온게 보이는 인간씨에게 수제 옷을 입은 엄지에게서 조차도 같은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기에 장녀 엄지는 그저 두 눈을 껌벅이면서 바보처럼 엄지에게 들은 말을 뇌까리듯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먹고 싸는...그거면 되는레치?"
"그런레치. 다만 싸는건 정해진 위치에서, 깨끗하게 해야하는 레치."
어차피 배변을 정해진 곳에서 하는 거는 자신들도 마마에게 그렇게 교육받았으니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일이라니, 엄지실장은 문득, 자신을 포함해서 이모토차들도 사실은 이미 죽어서 하늘나라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날리듯이, 문이 열리면서 인간씨가 외치는 소리가 났다.
"자 얘들아! 일이다 일! 얼른얼른 해치우거라! 자! 어서 와라!"
남자는 커다란 고무 대야 가득이 무언가를 가득 담아와서는, 뒷마당 한켠에 딱 고무대야만한 사이즈로 파놓은 구덩이에 고무대야를 탁 하고 내려놓았다. 그러자, 고무대야는 땅과 착 달라붙어, 웅덩이처럼 변했다. 그리고 삼녀와 사녀의 행복한 얼굴에 이끌려 웅덩이가 된 고무대야 앞으로 온 장녀 엄지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눈앞의 웅덩이는, 그야말로 고소하고 맛나맛나한 냄새로 가득차있었다. 알수 없는 국물은 요란한 기름냄새와 아마아마한 맛으로 가득차 있고, 거기에 둥둥 떠 있는 것은 무언가를 튀긴 고기조각, 먹다남은 소면, 안주부스러기와 폐기된 오만가지 남긴 음식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사녀와 삼녀가 신난다는 듯이 눈앞의 웅덩이로 다가가 정신없이 퍼먹기 시작하자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가 눈앞의 기름내 쩌는 국물을 살짝 손으로 묻혀 햝아먹었다. 그러자, 한번도 느껴본적 없는 정말로 고소하고 맛나맛나한 것이 장녀 엄지의 혀를 마비시킬것만 같이 두드려댔다. 그야말로 실장석, 들실장에게는 맛의 향연, 아니 천국같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제 장녀 엄지도 더이상 생각하는것을 관두고는 정신없이 웅덩이에 있는 것들을 배가 부르도록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남자는, 제법 생각 이상으로 잘 되어간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 주변에서 호프집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장사가 잘되긴 해도 곧잘 준비한 재료가 남는 일이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있었고, 어쩌다 가끔 아예 튀김류가 안나가는 날은 튀김기에서 멀쩡한 기름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 일이 곧잘 있어서, 매달 삼사십만원 정도가 폐기름 수거비용과 음식물 처리 비용으로 날아가던 차에, 우연히 술집 손님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데려온 엄지실장과 우지챠가 생각보다 꽤나 음식물 잔반처리에 큰 도움을 주어, 쓰레기 처리 비용을 꽤나 줄일 수 있었다. 남자는 예상외로 뛰어난 짬처리용 실장석의 효과에 감탄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지챠 하나와 엄지 하나만 가지고서는 모든 비용을 0 으로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적어도 두세마리는 더 있어야, 그나마 좀 안정적으로 돌아갈 것 같았기에, 남자는 그때부터 틈틈히 팔달산을 운동을 핑계삼아 오르내리면서 짬처리용 실장석을 구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찾으려고 이잡듯 돌아다녔더니, 되려 학대파라고 오해라도 받은 모양인지 실장석은 아예 구경조차 못했고, 그랬기에 남자는 들실장을 찾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물론, 근처에 실장샵이 있긴 했지만, 그걸 돈주고 사기도 그랬거니와, 실장샵에서도 어차피 들실장이 아닌 이상 실장사료에 입맛을 들였기에 음식물 쓰레기를 손대진 않을 거라고 말을 들어, 들실장을 찾으려고 애를 썼던 거였지만, 도대체 다들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남자의 눈앞에 나타나는 들실장은 한마리도 없었다.
그렇게, 남자는 포기하고 지금 있는 엄지와 우지챠가 자라기만을 기다리던 참에, 지난 겨울 엄지를 물어다 주었던 자신의 애견인 바둑이가 요 몇일전에 웬 엄지를 두마리나 물어 오더니, 또 다른 엄지를 물어오는 바람에 남자는 그저 입이 쩍 하고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데려온 엄지들도 희한하게도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인지라 남자는 그저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가 않았다. 손님들 말로는 분충이 대다수고 개념체는 거의 가뭄에 콩나듯 한다던데, 자신은 그런 개념체가 하나도 아니고 네마리나 생긴것에 그저 어이가 없었다. 남자는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먹고 싸고, 다시 먹어치우는 엄지 네마리와 우지챠 하나를 바라보다가, 어느정도 바닥이 대충 드러날 때쯤 큰 소리로 말했다.
"음. 좋아! 앞으로도 이렇게만 일하면 된다! 일만 착실하면 여기서 키워주는건 일도 아니니까. 잘들 해라. 알겠냐?"
그러자, 엄지들은 환한 미소를 띠고는 하나같이 고개를 꾸벅이면서 네 레치~ 하는 소리를 연달아 냈다. 그리고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남자는 문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잊어먹었다는 듯, 되돌아와서 장녀 엄지와 사녀, 삼녀를 차례차례 가리키면서 호명하듯 말했다. 먼저 장녀 엄지를 가리킨 남자는 "너는 꼬맹이라고 하마." 라고 말했고, 뒤이어 기대에 가득찬 눈망울로 이름을 받기만을 기다리는 삼녀 엄지에게 살짝 짓궃은 미소를 지은 남자는 "넌 찌쿠라고 하는게 좋겠다." 라고 말하고는 뒤이어 사녀를 가리키면서 "넌 레기야." 라고 말했다. 이름을 부여받은 엄지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연신 쭈인사마~ 감사한레치~ 를 연발해댔다. 그것을 듣던 남자는 손을 들어 엄지들의 소리를 그치게 하고는, 노랑옷을 입은 엄지를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애네들은 너네 선배다. 짜리랑 몽당이라고 한다. 짜리가 엄지. 우지챠가 몽당이야. 잘 기억하고, 선배 말 잘 들고 있어라. 만약 선배한테 덤비거나 때리거나 했다간 머리털 다 뜯고 옷 뺏어서 버린다. 알겠냐?"
그 말을 듣자마자 번개같은 스피드로 고개를 꾸벅거리며 벌벌 떠는 삼녀와 사녀 엄지를 본 남자는 껄껄 웃고는 "말만 잘 들으면 안버려. 누가 너네같은 예쁜이를 버리겠냐" 라는 말을 끝으로, 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장녀 엄지는, 아니 이제는 꼬맹이라는 이름을 받은 엄지는 짜리라는 이름을 가진 엄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선배가 뭐인레치?"
"모르겠는 레치. 가끔 저 주인사마는 뜻모를 말을 하는레치. 그래도 괜히 따져물으면 큰일나는 레치. 처음에 왔을 때도 멋모르고 궁금해서 물었다가 머리에 혹 났는 레치. 조심하는 레치."
"고마운레치. 그런데 그 우지챠는 몽당이라고 하는레치? 한번 안아봐도 되는레츄?"
"그러라는 레치. 그런데 프니프니 되게 시러하니까 조심하는레치."
그 말을 들은 장녀였던, 아니 이제는 꼬맹이란 이름을 받은 엄지는 말도 안된다는 듯, 두눈을 크게 뜨고는 되묻듯 대답했다.
"프니프니를 시러하는레치? 말이 되는 레치? 우지챠 아닌레치?"
"그러게나 말인레치. 게다가 무시하고 프니프니하면 토하는레치."
"말도안되는 레치...."
꼬맹이라 불린 엄지는 쩌리에게서 몽당이라고 불리는 우지챠를 건네받아 안으면서, 묘하게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살짝 어부바하듯 앞으로 흔들 흔들 흔들어주자, 몽당이는 그만 꺄르륵 웃으면서 두 눈을 뜨고는 꼬맹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두리번거리면서 불안한듯이 마마레후~ 마마어딧는레후~ 하면서 마마를 찾기 시작했다. 꼬맹이는 그것을 보면서 쩌리에게 마마가 계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쩌리는 실소하듯 웃더니, 내가 마마인레치~ 하며 우지챠의 앞에 까꿍 하듯이 고개를 숙여 들이밀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몽당이라고 불린 우지챠는 화알짝 웃으면서 마마레후~ 마마레후~ 하면서 그 조그만 돌기로 쩌리를 향해 꼬물꼬물 손을 움직여댔다. 그것을 본 꼬맹이는 쩌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엄지인데 마마인레치? 우지챠의 마마인레치?"
그러자 쩌리는 힘없는 미소를 짓나 했더니, 이내 우지챠를 건네받으면서 보듬듯 안으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레치. 이제는 반쯤 포기하고 나의 자라고 생각하며 사는레치."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꼬맹이는, 문득 자신이 이름도 없이 장녀 엄지로서 마마와 같이 살던 시절을 돌이켜보고는, 이내 그 모습을 쩌리와 겹쳐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생각하던 꼬맹이는 쩌리에게 말을 건넸다.
"분명히 인간씨는 선배를 때리면 안된다고 했는레치. 말 잘들어야 한다고 한레치. 선배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레치. 하지만 오마에는 우리 마마를 떠올리게 하는레치.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
"마마라고 부르면 안되는레치?"
그러자 쩌리는 잠시 멍- 한 표정으로 그걸 듣다가, 레파팟 하고 밝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안될게 뭐가 있는레치! 어차피 우린 한 가족인레치. 이 우지챠도 그랬듯이, 오마에라고 해서 그러지 말란 법은 없는레치. 어차피 오래전부터 와타시는 마마가 되어버린레치. 이제와서 한둘쯤 더 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는 레치!"
그 말을 들은 꼬맹이는 그만 와락 쩌리를 감싸안고는 소리 죽여 울먹거렸다. 그리고, 그것에 깜짝 놀란 쩌리도, 이내 꼬맹이를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면서 울먹이게 놔두었다. 쩌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역시 마마를 잃었고, 인간씨에게 친절하게 거두어진 후에, 간신히 용기를 내어 인간씨를 데리고 간 옛 마마의 둥지엔, 자매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채 죽어 있었다. 간신히 그때까지 살아있던 장녀 오네차는 뜻모를 소리를 외치면서 파킨했고, 그곳엔 장녀의 자로 보여지는 우지챠 하나가 살아남아 있었다. 쩌리는 그때, 그나마 유일하게 장녀의 마지막 핏줄을 건사했다는 것이 그저 다행스러웠다. 그래서 우지챠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하지만 우지챠는 자신을 마마라고, 계속해서 볼 때마다 마마레후~ 마마레후 하면서 기뻐했다. 그런 우지챠에게, 오녀 엄지였던 짜리는 차마 자신이 마마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작 엄지에 불과한 자신이 어느날 부터인가 마마가 되었을 때, 쩌리는 불안보다는 웬지 가슴 깊이 벅찬 감동을 느꼈다. 웬지 그것이 마마가 자신을 두건에 고이 데리고 가서 같이 먹이를 구하러 다니고, 맛나맛나한 것들을 몰래 챙겨줄때의 마마와의 끈끈한 관계가 다시금 장녀 오네챠의 우지챠를 통해서 다시금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기쁘고 즐거웠다. 그랬기에 쩌리는 며칠전에 친절하고 착한 주인사마의 멍멍씨가 물어다준 엄지 자매들에게 연민과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데려온 자기보다 작은 엄지 자매들이 울면서 말한 이야기는 아귀가 전혀 들어맞지 않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마마가 안 와서, 걱정되어서 산에서 마마를 찾아 내려오다가 이렇게 됬다는 것이었다. 그런 정황을 알고 있던 차에, 그 엄지 자매들 중에서도 가장 철이 든 장녀 엄지가 자신을 마마로 부르겠다며 다가와 껴안자, 쩌리는 그만 눈물이 살짝 넘치는 것을 느끼면서, 정말로 행복한 감상에 빠졌다.
자신이 엄지였던 시절, 자신을 챙겨주고 보듬던 마마.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마마를 떠올리면서 쩌리는 눈앞의 꼬맹이를 있는 힘껏 꽈악 껴안아 주었다. 토닥토닥, 토닥토닥, 울먹이는 꼬맹이를 마치 자신의 자인것마냥 부드럽게 등을 두드리며, 쩌리는 전에 없이 행복한, 가족의 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같이 울고, 또 울었다.
둘 사이에 낑겨버린 우지챠가 압박감에 견디다 못해 불만 섞인 목소리로 헬프미를 외칠 때까지.......
"마마레후~ 숨막혀 뒤지는 레뺘~ 살려주는 레삐~ 배씨가 프니프니되어서 토할것만 같은 레뺘아아앗!!"
END/
>>뒤틀린 모정편을 마치면서, 작가의 넋두리
: 이 글은 탈룰라전용님의 허가를 받아 진행된 리메이크작인 레후.
: 이 글에 등장하는 큰룬은 작가 자신을 희화화 시킨 캐릭인 레훗. (본인의 악평을 최대한 반영시킨 희대의 악당인 레후.)
: 도슬람 역시, 오래전에 저의 작품에 등장 캐릭으로 넣어도 되는지를 허가를 받아 삼입된 캐릭인 레후.
: 모든 리메이크의 세계관은 마마레후의 세계관과 동일하며, 시간대도 거의 비슷한 레뺘. 사실상 외전에 등장한 남자는 마마레후에서 오녀 엄지와 막내 우지챠를 데려간 그 남자 맞는 레뺘앗.
: 그림은 아직 직접 그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똥손인 레후. 그래서 모 작가님의 그림과 당돌 작가님의 그림을 오브젝트화 하여 리터칭한 레훼에엥. 나중에 작가의 똥손이 개선되면 삽화를 교체할 예정이니 그때까지만 양해를 부탁드리겠는 레삐.
: 이 리메이크의 원작은 탈룰라전용님이 올린 교육열인 레후. 그것을 보았을 그 당시에, 너무나도 빛나는 아이디어인지라 서둘러 허락을 맡고 지금까지 열심히 작업했는 레후.
: 글을 읽고 모자란 부분이나 지적 또는 조언할게 있다면 뭐든 가차없이 해주시면 고맙겠는 레후.
: 마지막으로, 이런 멋지고 뛰어나고 리메이크 할 만한 보람찬 아이디어를 올려주신 탈룰라전용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레후. 앞으로도 멋진 아이디어 내놔 주시면 가끔 리메이크 허락 요청으로 다가가려 하는 레삐.
그럼, 다음 리메이크 또는 마마레후 본편을 기대바라며. 이만 줄이겠는 레후.
덧: 원래는 오탈자를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하는 레후. 하지만 너무나 졸린레후. 그래서 그냥 올리고 이따 저녁에 오탈자 수정을 하려는 레후우. 그러니 좀 일찍 보시는 분들은 그점을 삼가 관대히 여겨 주시면 감사하겠는 레후우.......ZZZ
첫댓글 참고로 올린 삽화에서 두 엄지들의 크기차이가 있고, 디자인도 다른 것은 일부러 의도된 것입니다. 저의 스크 내에서는 같은 실장석이라 하더라도 품종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개도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듯이 말이죠. (아종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이 스크에서, 품종명은 해당 작가명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모 작가의 실장석은 모 품종으로, 당돌 작가의 실장석은 당돌 품종으로 스크에서 정의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조만간 대회가 끝나면 올라갈 마마레후 본편에서 조금씩 언급될 예정입니다. 각각의 품종에 대한 에피소드를 겸해서 말이죠. :(
2016년에 정리된 도감하고 비슷한 느낌이군요. 거기에는 당돌종은 분충이 많다고 적혀있었...OTZ
괜히 품종별 분류를 마마레후 스크 메인 설정으로 삼는 바람에 필자인 저는 난데없이 생물학 책에 파묻혀 사는 중이죠. 아마도 제 스크에서의 품종 분류 적용의 시각은 식실장과 관련이 있답니다. 물론 그이상은 스포니까 대회 끝나고 마마레후 본편 나오면 그때를 기대해주세요! :)
내용이 길어서 너무 좋네요 한시간내내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습니다
엇 그런가요. 예전에 망하기 전에 놀던 곳에서는 너무 길다고 타박받기 일쑤였는데...덧붙여 말하자면 저는 나눠서 쓰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런겁니다. 그래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잘봤습니다.
읽으러 와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크윽...
자식을 위해서란 심정을 이해한다면서 정작 자기자신을 위해 자식을 버린 친실장이 너무 역겹네요
그래서 제목이 '뒤틀린 모정' 인 것입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탈룰라전용님을 경배할진저. 이런 뛰어난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신 그분 덕분입니다. 간만에 정말 즐기면서 소설을 썼군요. ㅎㅎㅎ
이 오바상은 ㄹㅇ 악마의 재능임
아흑. 감사합니다. 변변치 못한 글이나마 앞으로도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큰누 가히 필력은 과거 오리무종도 울고갈 급인데 왜자꾸 덧글로 문제를 일으키는레후? 주제넘지만 싸우지말길 바라는레후
@뱀왕님 저도 많이 반성하는 중입니다. 다만 워낙에 뭐랄까 순문학 카테고리 출신이라 이런저런 토의하는게 몸에 배어서 그런가봅니다. 여기서는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수고하세요.
그리고 염치없지만 추천 안하셨음 추천 1 찍고 가 주세요 흑흑흑...
신부? 죄송하지만 신부님이 속하는 한국 천주교는 세금 냅니다 목사님을 말씀하시고 싶으셨던거 같은데 목사님과 신부님은 달라요
그렇군요. 다만 이 세계관은 팔달산 /팔달공원을 제외하면 가상의 세계입니다. 흠....하지만, 충분히 참작할만한 조언이라 생각되는군요.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지적이나 조언 있으시면 아낌없이 해 주세요!!
역시 제가 대충휘갈겨쓴거랑은 천지차이가 잇군요 ㅎㄷㄷ... 감사합니다 쓴사람에 따라서 글이 이렇게 변할수도있구나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번득이는 탈룰라님의 아이디어를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거 있어보이면 재방문 하러 갈게요. ㅎㅎㅎ.... 참고로 탈룰라 수어사이드라는 명칭은 탈룰라전용이라는 닉넴에서 발상된 것입니다. 이것을 검색해본 결과 흥미로운 소재로 탈바꿈할 수 있더라구요. 그래서 허가 받고...흠흠...내친김에 신경 역전제라는 약물 이름으로 써먹었습니다. (종종 이 약품 등장하실 겁니다. 제 리메이크나 마마레후에서. 워낙 개사기템인지라.)
덤으로 탈룰라 수어사이드의 뜻은 각각 "빠른 태세변환" + "자살" 의 합성어입니다. 자살하려는 마음을 순식간에 태세변환(탈룰라) 시킨다는 의미죠. 사기템...ㄷㄷ
그리고 추천1도 좀.(도망)
@큰누 전 별생각없이 했는데 고평가를 해주셔서 당황스럽긴 했습니다ㅋㅋㅋ...
닉도 그냥 탈룰라... 탈룰라! 하면서 지었는데 이렇게 맛깔나게 이용해주시니 재미있네요
큰누님 소설도 기대하겠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맞습니다. 아앗 예리하신 의견........한방에 저격당했네요. 크윽. 정확하십니다. (T.T) 원래 초안은 저렇지 않았습니다만, 퇴고를 하면서 수십장을 잘라내다 보니 눈에 띄여서 부부의 거리감을 더 확연하게 보이기 위해 "씨" 를 붙인 거죠.
@치킨이먹고싶다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예리한 의견을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저의 서술의 의도를 알아차리시다니. 정말 소설 쓸 맛이 나는군요. 다음에 올라갈 리메이크 or 본편 마마레후 중 어느게 먼저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도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치킨이먹고싶다 덤으로 우리 딸 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직도 남편을 , 가족으로서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서술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완전 아동 학대로 보일테지만, 이 불쌍한 여자는 정말로 남편과 딸을 사랑해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었기에, 표현이 "우리 딸" 인겁니다. "내 딸" 이 아니고.
말 그대로. 제목그대로입니다. 뒤틀려 있는 모정인 셈이지요...
@치킨이먹고싶다 원래 순문학 커뮤니티 출신이라서 오히려 이렇게 진지하게 토의하고 의논하는거 엄청 좋아합니다. 그러니 제 스크에선 얼마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셔도 괜찮습니다. 단....학대 관련 건의만 빼구요. 전 기본이 애호-관찰-일상계라서요. ")
그리고 좀 염치없지만, 잘 보셨다면 추천 1 부탁드립니다. (아니 이런 추잡한!)
옛날에 이 스크를 매우 축소한듯한 데모버전 스크를 봤던 것 같은데
오바상 작품이었던 레후?
그건 아닙니다. 실장석은 이 카페에 와서 처음 쓰기 시작했고, 그 이전엔 딮~다크한 19세 이상만 출입가능한 커뮤니티에서 연재소설을 쓰거나 이제는 망해버린 순문학 커뮤니티에서 수필이나 일반소설을 반쯤 재미삼아 쓰곤 했으니까요. 오히려 제가 그 데모버전을 보고 싶네요. 일단 그 데모는 제가 쓴게 아닌듯합니다. 본적도 없었고...
차녀는 어떡헤 되었나요?
소설에서 명확하게 말했듯이, 이미 죽었습니다. 이모토챠가 모두 개에게 순살된 줄 알고 그 충격으로 기절했다가, 제대로 먹지 못한 데다 밤새 추운데서 의식을 잃고 있다 보니 다음날 아침에는 저세상 간거죠. 일단 초안에선 이 부분에 대한 장녀의 심리묘사를 많이 해뒀는데, 퇴고하면서 약 70장 넘게 잘라내다 보니 간단하게 생략하는게 나아보여서 말이죠.
굳이 설명하자면, 장녀는 차녀의 죽음을 이모토챠에게 숨기는 쪽입니다. 괜히 충격 받을까 봐. 철부지 삼녀와 사녀는 눈앞의 행복에 전혀 안중에도 없는 상태고요.
ㅋㅋ 글솜씨는 인정 할 수 밖에 없다니까요!!!
평소 카페 활동면에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끔 노력하겠습니다. 그저 순문학 카테고리에서 오래 구르다 와서 그런지 초반부엔 너무 시행착오가 많았던 듯 합니다. -반성중-
다만 학대를 제외한 건의나 의견, 지적이 있으면 저에게는 뭐든 다 해주십시요. 다음 리메이크나, 마마레후 본편에 고려할 수 있다면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원래 자기가 쓴 소설은 자신의 눈으로는 단점이 잘 안보이게 마련인지라....ㅇ.ㅇ
@큰누 좀 커뮤니티 활동이 서툴러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칭찬으로 프니프니해줘야죠 ㅋㅋ 님을 좀 비판스럽게 봤던 만큼 작품에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ㅋㅋㅋ
아 ㅋㅋ 작품 외적인 부분인데 거의 모든 커뮤니티의 암묵적인 룰로 친목질금지랑 직접적으로 닉네임 언급을 하면 안되는 문화가 있어요. 도x람님이나 달룰라전용님에 대한 리스펙이 있어서 작은 실수를 하신 걸 수도 있는데요 ㅎㅎ 이 부분 인지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친목질하다 친한 사람끼리 파벌이 생기고 커뮤니티가 어지럽혀지는 일이 예전 부터 많았거든요 ㅠㅜ 앞으로도 좋은 스크 부탁드릴게요 ㅎㅎ
@닳ㅈㄷㅎ 감사합니다. 보다 나은 소설을 제공할 수 있도록 불철주야 노력중입니다. 다만 이번엔 리메이크가 먼저 나갈지, 마마레후 본편 연재가 먼지일지는 알수가 없게 되버렸습니다. ㄷㄷ... (대회 종료가 코앞이라..)
작품 외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은 참고하여 최대한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덧: 스크 내에서 탈룰라님과 도슬람 닉을 활용한 것은 본인 허가를 맡고 진행한 것이니 그것은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엄지들도 검은 눈물을 흘리며 파킨하는 엔딩을 원했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나쁘지는 않은 데스. 잘 보고 가는 데스
이 엄지들은 제 본편 장편 소설인 마마레후의 메인 캐릭터들입니다. :) 그리고 전 일상. 관찰. 애호 쪽 성향 작가라 학대라거나 죽음에 대한 묘사는 최대한 절제하면서 꼭 필요한 장면에서만 쓰는 편이라서요. ㅎㅎㅎ 혹시 이전에 제가 쓴 것을 못보셨다면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같은 세계관. 비슷한 시간대의 이야기들입니다. 리메이크 역시 마찬가지고요.
뒤틀린 모정(리메이크)/ 외전 포함
친구레후(리메이크)/ 외전 포함
마마레후 외전
마마레후
지금 뱃놈이라 공감.
다른 뱃놈인 친구가 이혼해서 공감.
어릴때 저 딸처럼 1등못했다고, 밤에 잔다고, 놀았다고 오지게 쳐맞아서 공감.
저 실장석처럼 하루 8시간씩 얻어맞고 살아와서 공감.
지금은 모친이 내눈에 보이면 어떤식으로 반신불수로 만들지 나도 모름.
테에 글이 더 발전한 테치. 군더더기는 줄어들고 세심한 묘사는 살아있는 테치. 앞으로도 아마아마한 콘페이토 잘 부탁하는 테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성원에 보답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추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순수함 모두다 있네요
일이삼사, 십, 이십이 한자 단위인 데스... 하나 둘, 열, 스물, 서른은 한글 단위인 데스... 뭔가 본문 설명이 틀린데스야....
어라 그렇군요. 작성중에 단어 혼동이 온 것 같아요. 다시한번 확인해서 고쳐둘게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