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돼지의 싸움
옛날에 아주 깊은 산중에 멧돼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멧돼지는 떼를 지어 살기도 하지만 혹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센 돼지는 혼자 다닐 때도 있습니다. 이런 멧돼지는 무리를 지어 다닐 때는 항상 앞에 서서 의젓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맨 앞에 가는 돼지는 왕돼지 쯤은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돼지는 큰 형님돼지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 돼지들 중에 힘이 세고 그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돼지가 있었습니다.이 왕돼지는 몸집도 크고 털도 억세게 났을 뿐 아니라 어금니가 앞으로
뻗쳐나와 생김새는 비록험상굿을망정 돼지 무리 중에서는 일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이였습니다. 왕돼지가 혼자 호젓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산 모퉁이를 지나 높은 바위를 돌아서니 앞 길에서 큰 호랑이가 어슬렁 걸어내려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돼지는 , 피할 길도 없었거니와 호랑이를 만나 겁을 먹고 달아난다면 산중에 겁장이라고 소문이 퍼져서 위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겁을 먹고 머뭇거리는 중에 호랑이는 벌써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원래 멧돼지도 힘이 세기는 하였지만 큰 호랑이와 싸워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습니다. 호랑이의 날쎈 앞발질과 날카로운 이빨은 돼지로서는 좀체 당해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멧돼지는 속으로는 겁을 먹으면서도 우뚝서서 허세를 부려 보았습니다.
호랑이군, 나와 싸우고 싶은가? 만약 자네가 원한다면 한번 생사 결판을 해 보세
그렇지 않거든 내가 지나가게 길을 비켜주게
호랑이는 이 말을 듣자 별 건방진 놈을 다 보겠구나 생각 하면서 대꾸해주었습니다.
좋다, 잘 만났다 .원한다면 싸워주지 너를 그냥 보내주지는 않겠다.
멧돼지는 더욱 겁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
듬어 또 한번 허세를 부렸습니다.
네가 정 그렇다면 대적해 주지 그러나 잠시만 기다려 주게 .내게 우리 선조 때부터물러 받은 갑옷이 있으니 갑옷을 입고 서 당당히 싸워보자.
호랑이는 가소롭다는 듯이 의젓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마음대로 하려므나
돼지는 바삐 제 굴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똥구더기에 뛰어들어가 몇번이고 뒹굴었습니다. 그래서 머리에서 꼬리까지 온 몸뚱이에 똥을 담뿍 묻히고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서 당당하게 뛰어나오면서 소리를 쳤습니다.
자 , 나는 준비가 됐다. 싸우려면 싸우자 .그러나 싸우기 싫거든 길을 비켜라.
호랑이는 돼지 모양을 보고 정말 지저분한 짐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어덯게 저렇게 더럽고 냄새나는 놈과 싸운단 말인가,나의 발돕과 이빨이
더러워질까 걱정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비켜주면서 말 하였습니다.
자, 길을 터준다 너하고는 싸우기 싫다.
멧돼지는 슬금슬금 호랑이 앞을 지나왔습니다. 호랑이는 서너 걸음 물러서서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돼지는 한참만에 산등에 올라서서야 숨을
내쉬었습니다. 멧돼지는 온 몸에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습니다.
호랑이 앞을 지나오기가 정말 겁이 났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돼지 로서는 역시
또 허세를 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숨을 한번 들이쉬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야 호랑이야 ,너도 네 발나도 네발. 덤벼라 .너는 왜 겁을 먹고 나를 피하느냐.
호랑이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그래서 큰 소리를 내뱉듯이 외쳤습니다.
세상에 털 생긴 짐승 가운데 너야말로 가장 지저분한 놈이다. 똥냄새에 내 코가 썩을 지경이니 어찌 싸움인들 할 수 있겠느냐 .어서 멀리 없어져라.
점잖은 호랑이가 멧돼지를 상대할 리가 없었습니다.
이 소문은 온 산중에 퍼져서 모든 짐승들이 멧돼지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멧돼지는 외톨박이가 되어 외롭게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도 나쁜 행동을 하면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나쁜 냄새가 온 몸에서 풍겨나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것입니다.멧돼지는 끝내 혼자 어슬렁 어슬렁 살다가
외롭게 죽어갔습니다.
비봉산 관음사 자봉동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