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사는 것 또한 사람 사는 관계의 연장이다 보니 저 또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게 된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다 보니 말이 많아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 않을 말을 하게 된다거나, 말이 헛나오거나, 후회가 되는 말들을 많이 하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 한 구석이 싸한 것이 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람을 만나도 말 수가 적거나, 대화 가운데에도 오랜 침묵에 익숙한 사람을 만나면 참 믿음이 가고 든든하다. 그런 사람과는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람은 말이 없으면서도 은은하고 향기로운 침묵의 언어, 소리 없는 소리의 가장 강력한 언어를 안으로 움트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이따금 끄집어내는 한 마디에서도 큰 신뢰가 쌓인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말이 많은 사람은 그 말에 믿음이 가지 않고, 말과 함께 사람도 가볍게 느껴진다. 말이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번거롭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말하는 것을 삶의 가장 큰 행복으로 아는 사람이 몇몇 있는데 말이 시작됐다 하면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는 말 앞에서 듣는 사람은 참으로 힘겨운 고행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꼭 어떤 특정한 사람을 정할 것도 없이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그다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참으로 많이 하고 산다. 절제되지 않은 말, 거친 말, 속이는 말들이 자연스러운 용어가 되어 넘쳐나는 세상이고, 심지어 그런 교묘한 술수의 말들을 잘 뱉어낼 수 있어야 성공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필요 없고, 쓸모 없는 말이나, 허물이 되는 말들이 늘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툭 내뱉어 놓고 다시 되담고 싶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머릿속에만 있게 되면 하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입으로 표현됨과 동시에 하나의 창조적 힘으로 곧장 현실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마음 속에 상대방에 대한 조금 불만의 마음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너머갈 수 있을 법한 아주 작은 불만들일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시시콜콜 다 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말을 하다 보면 이런 것들을 그냥 어쩌다 보니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로 표현되고 나면 그것은 힘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 말이 제3자를 통해 당사자에게 전달되게 되면 그 무게감은 한층 커지게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나를 이렇게 미워하고 있었다는 현실에 분개할 지도 모른다. 사실 그러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일이 커진 것이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별 생각 없이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에 상대방은 며칠이고 충격을 받는 일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도저히 안 되겠어서 풀려고 찾아가 그 때 왜 그랬느냐고 큰 맘 먹고 물으면 상대는 자신이 그랬다는 사실조차 기억에 없기도 하다. 말 한 사람은 이처럼 별 생각 없이 내뱉은 것이지만, 그렇게 내뱉은 말은 힘을 부여받기 때문에 상대를 다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말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내면의 걸러짐이 있어야 한다. 알아차림의 필터로 인연따라 불쑥 불쑥 올라오는 내면의 숱한 언어들을 침묵으로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보은경』에서는 '구업은 몸을 깎는 도구이며, 몸을 멸하는 칼날'이라 했고, 『사자침경』에서는 '화는 입으로부터 나와서 천 가지 재앙과 만 가지 죄업이 되어 도로 자신의 몸을 얽맨다.'고 했다.
모름지기 수행자는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법구경』에서는 '말을 하더라도 선하게 하여 말 한마디라도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것 같이 하라'했다. 이처럼 침묵으로 걸러진 말은 그대로 종소리가 되어 법계를 울릴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말을 하더라도 선하게 하여 말 한마디라도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것 같이 하라' --> 참으로 새겨들어야 할 법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